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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e핸드북 /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 ①] 질병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여시재 미래의료 연구팀

2020.01.26 4032

[여시재 e핸드북 /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 ①]

질병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 고대 도시 키운 交易路가 전염병도 옮겨

- AD 165년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로마제국 60000~7000만 명 사망

<죽음의 승리> 피터르 브뤼헐(1525~1569)

여시재 미래의료 연구팀

대표 저자 홍윤철(서울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서울대 공공의료사업단장)

(재)여시재가 2019년 한해 진행했던 연구 결과물 발신을 시작합니다. ‘미래의료’ ‘중국의 변화’ ‘도시순환과 황해오염’ ‘디지털이 바꾸는 세상’ 등 다양한 분야입니다. 그 첫 번째로 ‘미래의료’ 7편을 순차적으로 내보냅니다.

여시재는 그동안 서울대 의대 홍윤철(예방의학과) 교수 연구실과 함께 1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인류 문명의 진화 속에서 질병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질병이 인류의 고통이 될 것인지, 디지털 기술은 의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지,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미래 도시의 모델은 무엇인지, 1년 동안 많은 질문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여시재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이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연구서를 제작했습니다. 의학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습니다. 인간의 몸과 자연, 인간의 몸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디지털 의료 기술의 혁신과 미래 의료에 관해 간편하면서도 일관된 시각을 갖기 원하신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전체 7편 중 1~4편은 역사 속의 질병과 의료, 5~7편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디지털 사회와 의료로 편성했습니다.

여시재는 앞으로 다른 과제에 대한 연구결과물도 순차적으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모든 연구결과물은 ‘e-핸드북’ 형태로 발신됩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연재물을 모두 묶으면 특정 분야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담은 한 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문명의 탄생과 질병의 시작

2. 도시, 질병의 극복과 새로운 문제

3. 새로운 질병의 탄생

4. 새로운 패러다임과 미래의 질병

5. 의료기술의 혁명적 진화

6. 미래의 새로운 의료 기준

7.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의료

<대표 저자 홍윤철>

1960년생.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가정의학,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및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의 상호관계, 특히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이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국제저널에 30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정회원,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의 정책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질병의 탄생』과 『질병의 종식』이 있다.

<1편 요약문>

※ 1편 전문은 하단 첨부파일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農耕이 피부색도 바꿨다

인류의 질병은 농경과 정주(定住), 가축 사육과 함께 시작되었다.

농경과 정주는 잉여 생산물 축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구를 증가시키고 계급을 분화시켰다.

기원전 5000년경부터 서아시아와 동아시아 대다수 농경지대에서 잉여생산물 축적이 본격 시작됐다. 문자가 탄생하고 기념비적 건물이 세워졌으며 종국에는 도시의 탄생을 가져왔다.

서기전 3750년 이라크 남부 지역은 인구학적·기술적·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인류 최초의 국가라 할 수 있는 우루크는 2900년경 가로 세로 각 2㎞, 400헥타르에 이르렀다. 다른 도시들도 한두 세기 만에 인구가 10배로 증가했다. 기원전 7세기 수메르라는 역사적 국가가 탄생했다. 나일, 인더스, 황하 지역에도 도시가 탄생했다.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전환은 축복인 것만은 아니었다. 단기적으로는 먹거리 종류가 줄었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 공급이 부족해졌다. 농경 이후 아시아의 쌀, 중동과 유럽의 밀, 아메리카의 옥수수 등 곡식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먹거리는 안정됐으나 음식의 다양성과 영양소 측면에서 문제가 생겼다. 특히 기장과 밀에는 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루 곡물로 된 조리 음식을 먹게 되면서 안면 근육이 약화되었다. 뇌는 커지고 치아는 작아졌다. 또한 햇볕을 덜 받게 되면서 비타민D 합성이 현저히 줄었다. 비타민D는 뼈를 만들고 튼튼하게 유지되게 하는 칼슘 대사의 필수 영양소다. 임신과 출산에도 필수적이다. 열대지방에서는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많아져 검은색 피부가 됐고 극지방으로 갈수록 비타민D 합성에 필요한 자외선을 가능한 많이 흡수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없는 흰색 피부로 바뀌었다. 결국 농경이 피부색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농경 초기에는 인류의 체구가 작아졌다. 먹거리 종류와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전 5000년경부터 농경 정착생활의 건강상 이득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 건강이 좋아졌다.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도 높아졌고 수명도 늘었다. 인구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모기의 새로운 숙주로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교류와 교역이 새로운 질병을 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정주, 집단생활에 따른 배설물과 쓰레기가 늘었다. 가축은 질병 발생의 온상이 되었다. 영장류 대신 인간이 모기의 새로운 숙주로 등장하면서 말라이아, 황열병 등 모기를 매개로 한 질병이 퍼졌다.

한편 계급 분화에 따라 왕실 및 귀족 계급은 영양섭취 부족이 아니라 과다한 영양공급과 운동 부족으로 심장병,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생겼다. 여러 자료로 확인된다. 만성질환은 평민에게는 거의 없었다. 만성질환의 시작이다.

문명권마다 차이는 있으나 당시 의술은 주술적 내용, 약초 의존, 칼이나 침 등 외과적 시술 등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내용과 수준이 비슷했다.

인류 최초의 의료 문헌 파피루스

의료기술에 관한 인류 최초의 체계적 문헌은 이집트의 파피루스다. 기침, 눈병, 피부병 등 특정 질환과 이에 대응한 치료법이 기록됐다. 피마자유가 변비 치료에 효험이 있다든가 모래바람으로 인한 폐렴과 기관지염 치료법도 들어 있었다. 의술은 주술과 섞여 있었다. 의사도 세 가지 부류였다. 약물 치료를 하는 사람, 외과의(메스, 칼, 핀셋), 주술사였다.

고대 인류는 질병이 육체와 영(靈 )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인체는 혈액·소변·정자·눈물을 운반하는 도관의 체계로 이해했다. 육체적 청결함은 물론 영적 순결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질병은 악마나 악의 세력이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독성분이 든 약제를 이용해 악마를 제거하려 시도했다. 식물이 중요했다. 약과 허브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씨앗 껍질 등 식물재료로 만든 약제를 맥주나 우유에 타서 먹이거나, 와인 꿀 기름에 섞어 외용제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의술 기록은 3000년 전 함무라비 법전 이외에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쐐기 모양 판에 15개 질병 처방전이 기록되어 있다. 재료는 염화나트륨, 질산칼륨, 우유, 뱀 가죽, 거북이 껍데기, 무화과 등이었다. 역시 신 앞에서 육체를 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도 아유르베다

내과 외과 등 8개 분야 의료체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학 이론서는 기원전 1세기 황제내경이다. 황제가 의사들과 나눈 질병과 의술에 대한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기본 내용은 음양조화가 생명의 본질이며 그것이 깨질 때 건강을 잃는다는 것이다. 인체에도 음양 원리가 들어 있다고 믿었다.

인도 아유르베다의 기원은 기원전 1000년 아타르바베다로 내려간다. 구름과 습기, 바람, 건조함 이 세 가지 요인에 의해 질병이 발생한다고 이해했다. 아유르베다는 내과,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산과 및 부인과, 독물학, 노인학 및 영양학, 정신의학과 악마학 등 8개 전문분야로 나누어진 의료체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질병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도시다.

인류 최초의 도시는 기원전 29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다. 우르크의 인구는 5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인더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는 각각 3만 명 이상이었다. 하라파 일부 거리에 있는 모든 집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중국 주왕조 시절의 수도 상주는 각 변 3㎞ 정도의 토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관개시설. 방어구조물, 잉여생산물 운반수단이 갖춰져 있었다.

기원전 2500년경 고대 도시혁명이 완성됐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도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수입 및 교역, 상호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생산된 톱니모양 벽돌건축이 이집트에서 발견됐다. 역의 경우도 있다.

자유인과 노예들의 도시 로마는 사람들을 농경 지역에서 도시와 항구로 끌어들였다. 지중해 서부 지역 전역에 무역 항구들이 조성됐고 이것이 모두 로마로 연결됐다. 도시국가는 교역로를 따라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들을 근간으로 제국으로 발전했다. 이 길을 따라 물품뿐 아니라 병원균도 전파됐다. 로마는 대부분이 도로로 연결됐지만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를 처리하는 위생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가축 사육, 인구 밀집, 활발한 교역 등으로 사람을 숙주로 하는 병원균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번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도시가 궤멸됐다.

<아테네 역병> 미카엘 스베르츠(1618~1664)

투키티데스

‘전쟁의 승패가 전염병에 기인’ 주장

투키티데스는 펠레폰네소스전쟁에서 전쟁의 승패가 전염병에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431~403년 아테네를 강타한 전염병으로 아테네 인구의 25%인 7만 5000~10만 명이 사망했다. 여기에는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포함됐다. 아테네는 전쟁에 패했고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서기 165년 로마에 안토니우스 역병이 돌았다. 로마제국에서만 6000~7000만 명이 죽었다. 무역이나 귀환 군인을 통해 주로 전파됐다. 단체 생활을 하는 군인과 수도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역병은 천연두로 추정된다. 이후 십자군이나 순례자들을 통해 중동에서 서유럽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고 북유럽을 거쳐 러시아까지 갔다.

13~14세기 대페스트로

유럽 인구 3분의 1 죽어

이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병원균으로 인해 감염되는 페스트는 역사적으로 여러 번 대유행했고 지역적으로 특정 지역을 타격한 사례도 많다. 첫 번째는 에티오피아에서 540년경 시작돼 이집트와 가자 예루살렘을 거쳐 541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542년~546년 사이 지중해 동부 지역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두 번째는 13~14세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몽골 기병에 의해 전파됐다. 이때의 페스트 창궐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그리스 의사들에 따르면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영양과 배설, 운동, 휴식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상태다. 히포크라테스적 전통은 질병 보다 환자에게 집중했고 예방을 강조했다. 적절한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 회복시키고자 했다. 주술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 방법과 임상관찰을 중시했다.

로마는 그리스적 생각을 이어받으면서 이를 변화시켰다. 하수 시스템과 목욕탕 같은 위생시설, 병원을 만들었다. 로마인은 인류 최초의 도시 위생시설 건설자였다. 97년 프론티누스는 로마의 수도 공급에 관한 책을 썼다. 공중보건 행정을 처음으로 정리했다. 병원이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로마제국의 국교가 기독교가 된 때였다. 325년에 이르면 성당이 있는 모든 마을에 병원이 건설됐다. 5세기 초에는 병원이 동방 비잔틴 세계로 확산됐다. 12세기에 이르자 콘스탄티노플에 남녀 의사들로 구성된 병원이 생겼다. 이 같은 로마의 병원 전통은 이슬람으로 전승됐고 이것이 수백 년 후 베네딕토 승려들에 의해 다시 유럽으로 갔다. 13세기에 수도원이 맡던 역할을 도시가 맡게 됐다.

말하자면 도시가 질병 관리 조직으로 거듭난 것이 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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