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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한미관계와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

전재성

2017.06.15 789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한반도 인식 (1)미국 - 한미관계와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 

저자: 전재성(서울대)

No.2017-23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유럽 국가들이 현재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이다. 한반도는 주변국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각국에 있어 한반도와 관련된 중심 문제는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나아가 새로운 한국 정부에 대해 각국에서는 어떠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주요 현안 및 관련 정책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1세기 지정학의 부활과 한반도


2014년 11월 5일 당시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 포럼 연설 도중 제3차 상쇄전략을 천명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반테러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 등 지정학적 경쟁국이 급속도로 부상하여 그간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군사적 우위가 점차 감소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정학적 리더쉽을 되찾고 경쟁자들의 군사력을 상쇄하기 위해 미래지향적 군사혁신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지정학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은 경제위기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며 지구적 차원의 축소(retrenchment)전략을 심각하게 고민해왔으며 유일의 리더쉽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해왔다. 소위 지정학의 부활이라는 현상에 맞닥트려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전 세계적 지구화로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이 축소되었으며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자리잡는 듯 보였다. 개별 국가가 다룰 수 없는 초국가적 문제들, 예를 들어 테러, 환경, 인권, 난민, 전염병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가 간 정치보다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전히 국가 이익의 중요성은 재삼 확인되었고, 분쟁의 가능성이 높은 중동, 아시아 등 지역을 중심으로 강대국 간 지정학 경쟁은 심화되었다. 빠른 경제발전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에서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미국과 경쟁구도를 형성하였고 급기야 G-2 담론도 확산되었다. 러시아 역시 푸틴 대통령의 강한 민족주의적 현실주의 전략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에 대한 적극적 개입 등 영향력 확대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비국가 행위자들의 등장이라는 권력확산(power diffusion)현상과 함께 권력경쟁, 세력균형의 국제정치가 지속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한편으로는 지구적, 지역적 거버넌스에 발맞추어 중견국 외교를 추진해왔다. G20, 핵안보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규범 기반의 지구 질서에 공헌하고 MIKTA를 창설하여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패권유지 전략이 부딪히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엄연한 지정학 현실에 직면해있다. 한국은 한편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미래지향적 외교를 펼쳐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 지정학 게임, 강대국 간 경쟁 속에서 생존과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역사 속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와 냉전기 한미관계


역사적으로 한국은 해양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지리적 요건이 한국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중심의 전통질서에서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섬과 같은 나라였다. 중국 주변국들이 중화질서에서 대부분 중국에 흡수된 것과 달리 한국이 독립국가로 생존한 것이 기적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서양의 관찰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양세력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는 중원의 세력에게 그리 매력적인 자산이 아니었다. 전통질서에서 일본이 강성하거나 일본을 지배하려는 중원세력이 있을 때에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상승했다. 임진왜란과 몽골의 일본 침략이 연관된 역사적 사건들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구미 세력이 몰려오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일변했다. 해양과 대륙을 잇는 그야말로 지정학적 요충지로 강대한 세력들은 한반도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거나 혹은 분단을 해서라도 일부분을 지배하고자 노력했다. 일본이 개항한 이후 동아시아의 패권을 넘보면서 청일전쟁을 벌였고, 여기서 승리하여 전통질서를 종식하고 근대 제국으로 자리잡았다. 1904년에는 남하하는 러시아와 러일전쟁을 벌여 서구 세력에 승리한 최초의 비서구 제국이란 지위에 올랐다. 전쟁 직전까지 양국은 한반도를 분할하려는 교섭을 추구했다. 결국 한반도에서 러시아 영향력을 몰아낸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했다.


동북아에서 패권을 다투는 세력들에게 한반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엄청난 지정학적 이점을 안겨주었다. 반대로 한반도를 다른 강대국에게 양보하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자 위협이었다. 2차 대전이 종식되고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에게 온전한 독립국 지위를 부여하기로 약속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은 결국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양분했다. 김일성이 한국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분단이 극복되었을지 알기 어렵지만, 한국전쟁 이후 미국을 위시한 자유세력과 소련, 중국이 지배한 공산주의 세력은 한반도를 놓고 대립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이래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절감했다. 1950년 1월 소위 애치슨라인으로 한국과 대만에 대한 방위공약을 약화시켰다가 소련과 공산권의 큰 위협에 직면했던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호주를 잇는 소위 바퀴살 방위체제를 완비하였고 이후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국을 냉전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한반도는 중국,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고,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 중국이 태평양을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다. 북경와 상해를 가까이 두고 있으며 중국이 서해를 통해 동중국해 및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일본과 동해를 두고 마주하고 있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일본을 축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중요성과 한미동맹의 불가결함을 지속적으로 인지했다. 이승만 대통령과의 불화, 1960년대 말 베트남전에서 고전하던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이후 카터 행정부 당시의 한미 갈등 등을 거치면서 한미동맹이 약화되던 시기가 있었으나 곧 동맹 강화의 수순이 뒤따랐으며, 특히 소련과 중국의 안보위협이 증대할수록 한미동맹은 견고해졌다.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소위 신냉전이 시작되고 1980년대 내내 한미동맹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중요하기도 했지만, 만약 한반도가 북한 주도로 통일되어 공산권의 영향력 하에 들어갈 경우 대만의 안보는 물론 일본의 안위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도 중요하거니와 한국을 잃었을 때의 손실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비대칭동맹에서 강대국이 약소한 동맹파트너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단순히 군사안보 차원을 넘어선 문제이기도 한다. 한국은 냉전기 다른 어느 국가들보다 빠른 경제성장의 성과를 보였다. 그 뒤에는 미국의 적극적인 대한 경제원조정책이 있었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와 차관에 힘입어, 그리고 미국 시장의 개방을 기초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자신의 동맹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한다는, 공공외교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외교적 가치가 매우 소중했다. 사실 1969년 괌 독트린 발표 이후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이 약화될 때나, 카터 행정부 당시 미군 철수가 고려될 때,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시도되었지만, 한국이라는 성공적인 동맹파트너를 미국이 어떻게 대하는가가 미국 공공외교의 중요한 성과이자 자산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소련과 대결하는 미국으로서는 초강대국의 평판이 가지는 외교적 가치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다면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탈냉전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미관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국력에 비견할 수 있는 국가들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단극체제를 유지하는 미국의 전략은 세계 모든 지역과 국가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1990년대에 미국은 세계 군사비의 40%에 달하는 액수를 지출하고 있었고, 미국의 뒤를 잇는 세계 10위권 국가들은 거의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명실공히 역사상 가장 강고한 단극체제를 이룬 미국에게 냉전기 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새롭게 정의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과 동아시아 동맹국가들은 사실상 안보위협이 사라진 상태에서 미국과 동맹의 유효성을 재고하게 되었고, 동맹 약화의 조류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지구 각 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안보 요소들, 예를 들어 구 공산권 국가들의 이행 국면, 내전, 난민, 약소국 분규, 환경 등을 들어 냉전기 동맹을 단극체제 하 인간안보 및 지역안보 동맹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유지한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핵위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국의 국력이 아직 급성장하기 이전, 미일동맹의 유지 근거를 둘러싸고 미일 간 다양한 갈등과 논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1993년 3월 발생한 북핵 위기는 한미동맹의 유지근거가 되었다. 북한은 핵사찰을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었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내 불안요소가 상존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유지는 물론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도 강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위협이 상당히 약화된 미국 단극체제 하에서 미국이 많은 비용을 들어가며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한미동맹 해체론자인 카토연구소의 밴도우는 북한의 군사력은 방대하지만 사실상 무력하고,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의 40배에 달하며 두 배의 인구를 지니고 막대한 기술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제야말로 한미가 이혼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2001년 9.11 테러는 동맹국들의 전략적 가치를 새롭게 조망하게 한 사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많은 국가들에게 지구적 차원의 대테러 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고 한국은 이라크전쟁의 중요한 지원자로 참여하였다. 전쟁경험과 준비된 전투력을 가진 미국의 동맹국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었고, 미국은 지구적 동맹 변환을 추진하며 기존의 동맹을 강화, 변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탈냉전기 10년 동안 미국의 국력은 막강하였고 비록 9.11 테러로 미국의 본토가 위협받았지만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지정학적 도전 국가가 전무한 상황에서 기존 동맹 상대국들의 지정학적 가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하더라도 북핵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균형을 깨트리는 것은 아니었으며, 더구나 미국 본토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새롭게 조망되는 것은 중국이 부상하고 북핵 능력이 향상되는 2010년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


2008년 경제위기는 미국의 단극체제를 크게 약화시킨 사건이었다. 대테러 전쟁의 과도한 전비지출이 미국의 지구적 개입을 약화시키는 걸림돌이 되었고,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방비 지출을 제약하는 자동예산삭감제도로 연결되었다. 반면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국방비 지출을 지속적으로 늘이는 한편, 지구경제 거버넌스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G-2 담론이 등장하고 미중 간의 세력전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가 등장했으며, 궁극적으로 미중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비관적 예측도 등장하였다. 소위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할 수 있는가를 두고 미국이 새로운 고민에 빠져든 것이다. 대테러 전쟁이 어느 정도 관리되는가 싶더니 다시 중국과의 지정학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8년의 집권 기간 동안 중국에게 책임 있는 강대국의 역할을 주문하며, 안보경제 전략 대화를 추진하는 등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2013년 오마바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여 소위 신형대국관계를 설정하여 양국의 핵심이익을 상호존중하며 윈윈 전략을 추진하기로 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위험요소인 양안관계, 남중국해 문제, 동중국해 문제, 그리고 남북한 관계를 둘러싼 양국의 상호견제와 경쟁은 지속되었다. 동중국해 관련하여 2010년 센카쿠 열도의 국유화 이래 중국 어선과 일본 해양순시선이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중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남중국해 분쟁 역시 2011년 중국이 베트남 국영석유회사의 석유탐사선 케이블을 절단하면서 격화되었고, 이후 2014년 들어 중국이 실효지배 중인 난사군도 8개 암초에 인공섬을 건설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가 동아시아 전략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오면서 미국의 기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급상승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일본의 보통국가화 행보를 찬성하면서 일본이 대중 견제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아주기를 희망하였고, 보통국가화가 국가적 목표인 일본은 궁극적으로 개헌을 향해 노력을 지속하였다. 한국은 대외 경제관계 및 북핵 문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중요성 등을 고려하여 대중 견제망에 본격적으로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의식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장차 있을 수도 있는 미중 간의 본격 경쟁을 둘러싸고 한국은 미국에게 중요한 지정학적 자산이며, 만약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 하에 편입될 경우 미국은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의 악화 역시 한국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된다. 미국은 한편으로 북한의 핵, 미사일 확산을 극히 경계하면서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핵 능력 강화를 막는 한편, 핵과 미사일 확산을 막고 중국의 대북 지원을 견제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북한의 핵 확산을 막고자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을 실시하였고 한국도 2009년 5월 26일 전면참여하게 된다. 또한 미국은 한국과 함께 2003년부터 6자회담에 참여하여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한편,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한미관계의 앞날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은 악화되는 경제상황과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 등의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회복, 빈부격차 감소, 중산층 회복 등을 국가의 목표로 내걸고 미국 국익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를 외교안보전략의 기치로 삼고 있다. 미국 경제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되는 안보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안보전략이 대외경제전략에 종속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경제 악화의 주범이라고 지목한 중국에 대해 45% 관세 부과 및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제시한 바 있고, 환태평양파트너쉽(TPP)을 취임 첫날 무효화했으며, 동맹국인 한국, 일본, 독일 등을 지목하여 미국의 안보정책에 편승하는 국가들이라고 비판했다. 외교안보전략이 안보위협에 대한 정확한 평가나 중장기 전략 없이 진행될 경우 미국의 안보는 물론이고 동맹국들의 안보에도 현저한 손실이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트럼프 정부의 안보전략은 많은 국가들의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안보전략은 사안의 중장기적 중대성보다는 단기적 시급성에 반응하며 진행되고 있다. 외교안보라인의 실무진이 완비되지 못했고, 외교안보 위협에 대한 근본적 평가 및 전략도 대선 기간 중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4월 7일 만찬 직후 시리아를 폭격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의 화학무기 민간인 살상 의혹에 대한 공세적 대응이었다고는 하지만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이 체계적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매우 위중한 문제이며 적극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2017년 3월부터 북핵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가 이루어졌고 모든 옵션을 고려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 대응전략이 논의되었다. 특히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4월 동안 한반도 위기설이 확산되기도 했다. 결국 미국의 북핵 정책은 “최대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의 정책으로 정리되었다.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북 압박 극대화, 2차 경제제재를 통한 미국의 단독 제재 강화, 북핵 문제를 다루는 CIA 내 단독 부서 창설, 대북 인권 압박 강화, 국제사회 및 미국 동맹국들의 대북 제재 가속화 등으로 정리된 대안은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특기할 사항은 중국의 대북 압박을 이끌어내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강조했던 대중 경제압박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는 것이다. 중국을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였고,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압박도 현재로서는 중단된 상황이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위협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 안보를 위해 중국에 대한 경제 압박을 완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역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에게 긍정적일 수 있으나, 중장기 안보 전략보다 사안의 단기적 시급성에 따라 외교정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염려스럽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핵 문제 해결과 이를 위한 미중 전략 협력 대화 속에서 한국의 위상이 매우 약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내정치 상황에 기인한 바 크지만, 북핵 문제가 미국 본토 안보의 문제가 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의 목소리와 지분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또한 한국이 북한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고갈되고, 한국이 중국을 움직여 대북 압박을 가할 수단도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약화되어 있다. 4월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 사용 분위기 속에서 미국이 과연 한국과 어느 정도 전략적 대화를 하고자 했는지 여러 면에서 문제제기가 가능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제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국내정치 위기와 악화된 남북관계, 해법을 알기 어려운 북핵 문제, 그리고 유동적인 주변국 관계 속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외교부문에서 미국과의 동맹 및 주요 현안에서 미국의 지원을 상수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던 한국의 과거 정부와는 달리, 트럼프 정부의 가변적이고 예측이 난감한 동아시아 정책, 한반도 정책에 당면하여 한미동맹의 역할과 목적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향후 해결해야 할 대미 전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트럼프 정부가 명확한 외교안보전략을 결여하고 있고 동맹 정책도 가변적이어서 미국의 정책 현황에 조속히 적응해야 한다. 지난 5월 25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회원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는 한편,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회피하였다. 이후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의 안보를 미국과 영국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전략적 성찰을 제시한 바 있다. 유럽의 안보상황에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장기적으로 동맹의 필요성을 평가절하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향이 동아시아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비록 북핵과 미중 경쟁이라는 당면사안이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동맹이 미국의 국익에 얼마나 필요한지 문제제기 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는 선제적으로 한미 양국에 동맹이 어떠한 유용성을 가지는지 명확한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대외 경제, 안보전략에 적응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 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국산 제품 구입확대 및 미국인 고용 증대를 위한 투자 약속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미국의 대중 공세의 예봉을 피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지도력을 확산시키려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일본의 아베총리 역시 7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로 일자리 70만개를 창출한다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국의 방위지원 약속을 받고, 향후 미일 동맹을 강화하면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추진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미국으로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요구, 방위비 분담 증가 요구 등에 직면할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서 최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을 이끌어낼지 고민할 시기이다.


셋째, 북핵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북한의 핵능력이 증가하여 조만간 미국의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중국의 대북 압박으로 탈냉전기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북중관계가 악화되어 있다. 북핵 문제가 악화될수록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것은 중국에게 큰 고민이고 중국이 염려하는 사드 배치도 현실화되었다. 북핵 문제가 더 이상 남북한 간의 문제나 동북아의 지정학 문제가 아닌 미중의 본토 안보와 직결된 문제가 된 것이다. 미중 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하였다. 다만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촉진할 정도의 압박을 가하는 데에는 주저하고 향후 북중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역시 현재까지 대북 압박으로 상당한 외교적 비용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중 양국은 압박 속에서 대화의 조건이 마련되는 때를 기다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의 시기를 협의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정부로서 북한에 대한 지원 및 남북 대화가 북핵 문제에 필요한 한 축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단계적, 포괄적 접근 속에서 한편으로 압박하고 한편으로 대화한다는 것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방안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압박과 대화의 시기, 조건, 시퀀싱에서 미중과의 조율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미중 양국의 북핵 정책과 어긋나는 한국의 북핵, 대북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이 자신들의 국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한국의 문제이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려면 상당 기간 국제공조 속에서 압박과 관여를 조화시켜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주도권이 인정될 때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탈냉전 이후 가장 큰 가변적 상황에 놓여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핵 문제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고, 미중 관계 역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불확실성 속에서 예측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북한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강대국 관계를 도모하는 중견국의 전략을 수립하여 추구해야 할 때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한국이 여전히 중요한 협력의 파트너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국 역시 동맹을 외교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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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현, “반도의 숙명: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에 대한 비판적 검증,” 『국토지리학회지』 제46권 3호(2013), pp. 29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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