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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일본은 어떻게 부품·소재 강국이 되었나 -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작성자 : 황세희 2019.08.20 조회수 : 3361

[여시재 북리뷰] 일본은 어떻게 부품·소재 강국이 되었나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황세희(여시재 대외협력팀장)


어느 때보다 한일 관계가 뜨거운 여름이다. 과학기술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시기에 일본 근대 150년을 과학기술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과학기술 총력전-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이다. 이와나미(岩波)가 2018년 낸 책을 출판사 AK가 번역 출판했다.




메이지 이후 대국주의 내셔널리즘에 빠져든 일본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는 1941년생으로 일본 학생운동의 최절정기인 1960년대 말의 ‘전공투 세대’다. 도쿄대 물리학과 재학 시절 일본의 물리학계를 이끌어갈 학생, 미래 노벨상을 받을 학자가 될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다. 그는 동시에 전국 단위 학생운동 조직인 전공투의 상징적 존재였다. 박사과정 재학 중이던 1969년 체포돼 1973년 출소했다.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철학과 과학사 분야의 번역가 겸 저술가로 살았다. 일본의 대형 입시학원인 ‘슨다이 예비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면서 도쿄대 물리 입시 문제 해설을 25년간 썼다 한다. 그가 쓴 참고서인 ‘물리입문’과 ‘신물리입문’은 지금도 수험생들의 필독서라 한다. 

그는 재야 물리학자로서 참고서 외에 다수의 물리학 전문서를 썼는데 저술상도 여럿 받았다. 2003년에 낸 ‘자기력과 중력의 발견’은 파피루스상, 마이니치출판문화상, 오사라기지로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낸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도 올해 일본 과학저널리스트상을 받았다.

그의 경력에서 짐작되듯,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은 일본 근대 과학기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을 국가 주도로 부국강병의 수단으로서만 받아들이고 거기에 녹아 있는 자유나 합리주의 같은 근대정신을 배제하는 바람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국주의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나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패전 이후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부제가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이다.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된 2018년은 메이지 유신 원년인 1868년에서부터 150년이 되는 해였다. 저자는 일본의 이 150년이 과학기술을 이용해 근대화를 달성하는 총력전 체제의 역사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문에서 저자는 열강과의 경쟁에 직면한 일본이 서구 근대의 정치사회사상은 등한시하고 과학기술만을 ‘탐욕스럽고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흡수했으며 정부 지도와 군의 견인으로 공업화와 근대화를 성취’했다고 평가했다.

많은 일본 근대사 연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일본을 ‘전전(戦前) 일본’과 ‘전후(戦後) 일본’으로 구분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시작되어 천황을 내세운 제국주의가 패전을 맞이한 20세기 전반기는 일본 역사에서 변질된, 혹은 비정상적인 시기였으며 패전 이후 평화국가로 거듭난  ‘전후 일본’은 전전 일본과 다르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총동원 체제라는 점에서 전후 일본도 똑같아

반면 이 책은 전전이나 전후나 총동원 체제라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한다. ‘식산흥업’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했던 메이지 일본의 근대화 과정, 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식민지 자원 약탈에 빠져드는 과정, 전시의 총력 동원 체제, 그리고 패전 이후 진행된 재공업화 및 산업화 과정이 모두 중앙정부, 산업계, 학계 등이 총동원된 체제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그 도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에 서구의 과학기술이 유입된 것은 메이지 유신 한참 전이었다.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난학(네델란드학)이 일어났으나 그것은 제한된 소수 다이묘(봉건영주)나 의사들의 흥미 충족에 국한된 것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1840년의 아편전쟁과 1953~54년 도쿄만에 나타난 페리 제독의 구로후네(黒船)가 일본의 과학기술에 일대 변혁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페리 제독이 막부에 증기선 모형과 유선 전신 장치를 선물했다. 저자는 이것이 일본에 준 충격을 “수력 풍력의 지리적 제약, 인력 축력의 생물학적 한계를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말기 에도막부와 중앙집권화된 메이지 정부는 이후 화석 연료의 사용, 증기 기관의 도입, 전력 생산 등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혁명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저자는 그러나 도입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과학교육이 세계관이나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 일변도의 길을 걸었으며, 이것이 일본의 빠른 근대화를 가능하게 하였으나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실용성, 산업적 이익의 측면에 몰두한 과학기술의 빠른 성장은 일본의 경제력, 군사력 성장에 크게 공헌했음은 물론이다.  군과 산업의 근대화를 주도한 것은 중앙정부와 산업계, 군, 그리고 제국대 공과대학(도쿄대 공과대학의 전신) 출신의 기술 엘리트들이었다. 서구 사회의 기술자들이 시민사회 발전과정에서 기술 혁신의 주체로 등장한 것과 달리 일본은 지배계급 출신의 기술관료가 국가교육을 받고 공업화의 주체로 등장했다. 이러한 탄생 과정이 일본의 과학기술자들로 하여금 엘리트 의식 과잉과 배타적인 성향, 한편으로는 관료적이고 조직이나 국가에 순종하는 특성을 가지게 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과학기술이 부국강병에 봉사하는 체제는 이내 군에 의한 총력전 체제 추구로 변질되었다. 저자는 군의 무기 자급 욕구, 부족한 자원을 과학적으로 보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본이 출병하여 점령지 자원을 약탈하는데 이르게 한 과학 동원의 요체라고 분석한다.



2차 대전 당시 가미카제에 활용됐던 제로센 비행기 출처 오마이뉴스


“자동차는 무기를 생산하는 생각으로 혼신을”

저자는 특히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군사화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과학기술과 군사기술이 분리되어 있다가 1차 대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체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차 대전이 최초의 ‘과학전’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메이지 초기부터 이미 그러했으며 다만 1차 대전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을 재인식했다고 한다. 해군 기술본부(1915년), 해군 항공연구소(1918년), 육군 기술본부(1919년), 육군 과학연구소(1919년), 해군 기술연구소(1923년) 등이 이때 집중적으로 설립됐다. 심지어 일본 과학기술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화학연구소(1917년) 설립 취지가 “세계 열강 대열에 합류한 일등국 지위 보유” “산업 및 국방 자원의 자급자족”에 있었다고 저자는 당시 자료를 인용해 쓰고 있다.  

태평양전쟁 ‘총력전’ 체제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에게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다양한 저술이나 메모 등을 통해 전달한다.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는 국가의 무기를 맡아두고 있다는 생각으로 애호에 진력을” “자동차 생산에 임하는 사람은 무기를 제조한다는 생각으로 혼신을”(1939) 같은 내용들이 수없이 많다. 항공산업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저자는 “일본에서는 자동차 산업도, 항공기 생산도 무기 생산 차원에서 육성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과 중심, 자원 획득을 위한 과학기술 총력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에도 지속된다. 패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 군정은 제국 군대를 해체했지만 전시 통제경제를 지휘한 중심기관이었던 상공성(후에 통상산업성이란 이름을 거쳐 지금의 경제산업성으로 정착)과 기획원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상공성은 한국 전쟁 이후 고도성장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본 경제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하고 있다.  

전쟁 수행에 동원되었던 과학계 내부에서도 반성의 움직임은 전무했다. 패전 직후 부상한 ‘과학전의 패배’라는 논리는 군의 패배 책임을 과학기술에 지우게 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거론하는 것은 전시 총력체제의 무능함을 무마하는 좋은 변명 거리가 되었다. 과학자들 역시 원자폭탄이라는 미국의 압도적인 과학적 우세를 탓하며 책임을 비껴갔다. 저자는 과학전의 패배라는 담론이 ‘미국에 진 일본’에만 주목하게 했고 중국 대륙에서 진행된 중국에 대한 패배는 외면하였으며, 동시에 아시아 침략의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외면하게 했다고 비판한다. 


“조선 공업화는 

군과 관료, 신흥 재벌들이 추진한 

총력전 체제의 실험장이었다”

전후 일본의 재부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미국의 대 일본 전략이다. 과학사가인 저자의 특징일지 모르겠으나 이 책은 미국의 영향에 대해서 비교적 간략히 언급하고 지나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점령 초기 미 군정은 일본이 다시 공업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을 없애려 했었다. ‘평화로운 농업국가’ 일본을 만들려던 미 군정의 계획은 중국 공산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일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산업화 정책으로 급격한 전환을 겪게 된다.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라 불리는 이 결정은 일본이 다시 과학기술을 통한 근대화를 지속하게 하는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국내적 조건(전쟁 시기 만들었던 근대적 공업시설의 잔존, 전쟁 시기 축적된 이공계 인재풀,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자층과 전후의 급속한 인구증가)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자체보다는 역코스의 결과 다시 공업화, 산업화를 추진하게 된 일본이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특수를 이용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히려 일본 본토의 부흥이 오키나와의 미군 점령과 한국의 독재 정권이라는 희생에 의해 뒷받침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저자는 국가 총력체제 속에 희생된 집단들에 주목한다. 공업화 초기 주야 2교대제로 혹사당한 방적공장의 여공들, 아시오 광산이 일으킨 공해로 피해를 입은 주변 농촌, 1960년대 미나마타병으로 대표되는 공해병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한 대처 등 산업화의 어두운 이면을 세밀히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총력체제에 동원된 식민지 한반도의 산업화 기록이다. 그는 조선 산업화가 ‘군의 압도적인 지원 속에서 군의 지배 목적에 부합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며 대표적인 예로 흥남의 거대 콤비나트(관련 기업들을 결합한 공업지대)를 든다. 압록강을 역류시켜 동해안 쪽에서 표고차에 의한 발전을 하는 무지막지한 자연 파괴도 저질렀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얻은 전력을 기반으로 한 흥남 화학 콤비나트 건설로 1만 수천 가구, 수천 명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로 이주되었다고 서술한다. 반면 ‘거대한 수력발전의 수혜는 일부 기업과 일본인 거주지에만 제공’되었다며 “조선의 공업화가 군과 관료, 신흥 재벌들이 추진한 총력전 체제의 실험장이었다”고 평가했다.


“전쟁 일으킨 나라로서 일본은 군수산업서 철수해야”

아무도 전쟁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다시 급속한 산업화에 내달린 일본은 고도성장에 성공하고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져온 부(負)의 유산은 150년간의 과학기술 총력 체제의 파탄을 가져왔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언급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 상징적 사례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수도 없이 회자된 표현은 ‘상정외’(想定外)라는 말이었다. 염두에 두지 않았던, 예상을 넘어서는 범위의 사태가 벌어져서 기존의 매뉴얼로는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변명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과학기술이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니 인간이 책임지려해도 어쩔 수 없다는 책임 회피가 21세기에도 반복되었던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저장소 모습 출처 뉴시스


아베 총리는 2013년 도쿄 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후쿠시마의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장담하였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물질량은 2019년 1월 기준으로 전년도보다 2배 증가하였다. 도쿄전력은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에 누적된 오염수의 제염에 실패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최근에는 누적된 오염수 100만 톤을 태평양으로 방류할 계획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한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이제 성장 중심의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에 매몰된 근대화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감소가 9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 더 이상 팽창하는 경제는 미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임 회피가 만연했던 근대화가 가져온 부의 유산은 다음 세대가 오롯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과거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했고 두 차례의 원폭 피해를 보았으며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나라가 책임 있게 군수산업 철수와 원자력 탈각을 선언하고 장래 핵무기의 가능성을 확실히 부정해야 한다.”

이 책의 미덕은 총력 체제의 한계, 전후 체제의 책임 회피, 조직 혹은 국가를 위해 희생된 약자들에 주목하되 이에 대한 서술이 과도한 정의감이나 감정적인 서술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일본의 일부 진보 지식인들의 글이 신념에 기반한 분석과 서술에 치중해 진실과 괴리되는 경우를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의 관점에서 건조하게 일본 근대사를 조망하되 사회 구성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잃지 않았다. 

일본은 ‘총(總)의 사회’다. 총동원, 총력전, 총단결, 총화 같은 말은 국민과 기업, 심지어 과학기술자들을 동원 대상으로 보는 정치 용어이지만 이것이 거의 그대로 국민들에게 스며드는 것이 일본 사회다. 아베 총리도 2012년 말 두 번째로 집권하자마자 ‘1억 총활약’을 내세웠다. 국가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근원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전개되어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이 적합하다. 특히 일본에서 메이지 이후 과학기술이 어떻게 축적되어왔는지, 그리고 군과 산업, 정부와 과학기술자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왔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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