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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창의 교육이 창의성 망친다'는 단 하나의 메시지 -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작성자 : 이성은 2018.12.07 조회수 : 1763




 이 책의 메시지는 사실 단순합니다. 창의성 교육도, 학생주도 수업도 다 좋지만 ‘사실적 지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육 현장은 ‘창의성 교육 우선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으며, 그 결과 학생들의 지식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오로지 이 한 가지를 쓰기 위해 200쪽(번역서 기준)이 넘는 책을 쓴 듯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메시지가 단순하고 명백하기 때문인지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습니다.

 크리스토둘루는 영국에서 2년제 교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중학교 국어(영어) 선생님으로 3년 일한 현장 교사 출신입니다. 책의 뼈대는 그가 교육 현장에서 실제 부닥치고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창의성 교육’ ‘체험 교육’이라는 것의 문제점을 파헤쳐 들어갑니다. 창의성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신화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다 보니 지식 교육을 등한시하는 현장, 그리고 이것을 부추기는 국가 교육정책을 비판합니다.

 그가 선생님으로 일한 학교는 런던 저소득층 지역의 중학교였다 합니다. 고소득층 자녀들이 주로 가는 사립학교가 아니어서였을까요? 학생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지식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교육정책 당국이 제시하는 교육 기준은 가급적 교사들에게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말도 많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교사들은 이 기준에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학력 저하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선 요즘 부쩍 강조되는 ‘역량 교육’에 대해서도 저자는 같은 입장입니다. 단순 지식은 가급적 가르치지 말 것,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줄 것, 이것이 정책 당국이 요청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체험한 뒤 내린 결론은 다릅니다. 교육계에 팽배한 ‘반(反) 지식 주의’가 오히려 저학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인터넷 검색도 못한다"
"새로운 교육이 요구되지 않던 시대는 없었다"


 저자는 역량 개발이 진정한 교육 목표가 맞지만, 역량 습득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문가 수준의 역량을 갖추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상당한 지식이라는 것이 모든 영역에서 확인되었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저자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수업 사례에서 학생들은 역량을 배우는 활동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정작 역량 습득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지식보다 역량에 중심을 둔 수업 방식은 지식과 관련된 역량의 본질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의 역량을 개발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런 ‘반지식주의’ 7가지를 추렸습니다. 첫째 지식보다 역량이 중요하다? 아니라는 겁니다. 지식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학생 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교사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언제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합니다. 넷째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천만의 말씀. 지식이 없으면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도 비슷합니다. 결론은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지식 교육이 중요하다’, ‘창의 교육이 창의력 배양을 망친다’입니다.


 크리스토둘루는 이 책을 2010년에 썼습니다. 영국 학생들은 2000년 PISA(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읽기 15위, 수학 8위, 과학 4위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점점 떨어져 2012년에 각각 23위, 26위, 20위로 내려갔습니다. 크리스토둘루는 학력저하가 한참 진행되던 시기에 이 책을 쓴 셈입니다. 이 책은 영국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합니다. 영국 교육기준청은 그해 연말 교사들의 자율성을 훨씬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합니다. 교사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했다 합니다.



교육자로서 자존감 가득 찬 ‘번역자 後記’ 인상적

 이 책 번역자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고교 교장, 장학사 등으로 평생 교육 일선에서 일하고 정년 퇴임한 김승호 선생님입니다. 김 선생님은 지식 교육을 점점 등한시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저자에게 연락해 번역 동의를 구했다 합니다. 드문 케이스일 겁니다. 김 선생님은 이 책을 “현재 주류로 여겨지는 이론에 대한 팩트 체크 시도”라고 평가합니다. 김 선생님은 나아가 “우리는 혁신의 시대, 질문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혁신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필요할 땐 과감하게 자신의 울타리를 탈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김 선생님의 짧지 않은 ‘후기’를 읽다가 오히려 본책 못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교육자로서의 자존감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선생님들을 우리 사회가 모시고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일 겁니다.



‘과잉 처방전’을 보는 불편함

 그런데 말입니다. 한가지 사족을 달아야겠습니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창의성 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지식교육’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과연 주장할까요? 물론 있기는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그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밀어붙입니다. 창의성 교육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교육을 망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과도한 의미부여, 과잉처방이라는 느낌이 내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렇게 썼을까요? 

 저자가 비판하는 ‘그들’ 속에는 ‘에밀’의 장 자크 루소, ‘학교와 사회’의 존 듀이, ‘페다고지’의 파울로 프레이리에게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200~300년 전, 또는 수십 년 전 특정한 시점과 공간에서 그 책들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그들의 책에서 한 두 구절 따와서 비판합니다. 온당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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