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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대통령이 꿈꾸는 비전 제시에 초점, 국민과 호흡은 미흡

작성자 : 관리자 2017.01.22 조회수 : 2246

트럼프시대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해보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인 멜라니아 등 가족과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20일(현지시간)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공식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연설은 짧지만 강렬했다. 1433단어로 구성된 연설문은 채 17분이 안 되는 시간에 미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낭독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재천명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당면과제, 정책적 기조, 시대적 좌표들을 때로는 시적인 화법과 수사학을 구사해 가면서 강력한 톤으로 전파했다.



공직 경험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럭비공 같은 발언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켜 온 그를 전 세계는 여전히 불신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취임연설에서 역설한 것처럼 미국은 “이 순간부터 새로운 비전에 의해 통치가 된다(From this day forward, a new vision will govern our land).”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4년의 임기 동안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는 그의 취임연설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을 비교해 봤다.



미 대통령 취임연설이 전통적으로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국민 통합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선거로 인해 분열됐던 ‘청중’을 취임연설을 통해 다시 ‘국민(the people)’으로 통합시키는 리더십을 보였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1801년 3월 4일 취임연설에서 “우리는 동일한 원칙을 가진 형제를 서로 다른 이름들로 불러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공화주의자들이며, 우리는 모두가 연방주의자들이다”는 말로 연방파와 공화파 간의 분열과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대화합을 꾀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2기 취임연설에서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힘을 빌려 호소했다.





미국 국민과 함께한다는 점 강조



취임 전 지지율이 37%까지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국이 분열돼 있다는 점을 의식해 ‘통합’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우선 자신을 지칭하는 ‘I’(3번)나 ‘My’(1번) 대신 ‘우리’란 의미의 ‘We’(47번)와 ‘Our’(48번)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향후 자신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국민(people, 9번 사용)과 함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 빈도수만 비교해 봐도 존 F 케네디 대통령(‘We’ 30번, ‘Our’ 21번)보다 ‘우리’를 더 많이 구사했다.



트럼프는 “잊혀졌던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The forgotten men and women of our country will be forgotten no longer)”는 다소 서정적인 표현으로 국민의 마음을 자극했다. 또 “미국이 통합할 때 미국은 완전히 막을 수 없는 나라가 된다(When America is united, America is totally unstoppable)”며 대통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번창했지만… 정치인들은 번영했으나… 기득권층은 자신을 보호했지만…” 등에서 표출됐듯이 대선기간에 보여 준 기성 정치세력과 기득권층과의 지속적인 분열을 암시하는 말을 함으로써 ‘반쪽짜리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 주는 한계를 드러냈다.



‘미래’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이어 가는 시간상의 ‘통합’ 메시지가 결여돼 있는 한계점을 보여 줬다.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미래에 지금과 같은 찬란한 성공을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의 영광을 강조하고 미래와 연결시키려는 전통을 이어 간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역대 대통령의 업적은 후대 대통령에 의해 많이 거론됐다. 대표적인 예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존 퀸시 애덤스, 마틴 밴 뷰런, 존 타일러 대통령 등에 의해 ‘릴레이 칭송’됐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인 삼권 분립제의 작동 원리를 모두 폐기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보여 준 헌법에 의해 부여되는 대통령직의 제한된 권리와 이와 함께 수반되는 의무를 그 역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취임연설 서두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감사를 표함으로써 평화적인 정권 이임의 전통을 본인이 계승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가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명령에 따르느냐이다(What truly matter is not which party controls our government, but whether our government is controlled by the people)”는 말에서 보여 주듯이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이념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실제 취임선서에 사용한 성경은 링컨 대통령이 1861년 취임식 때 손을 얹고 선서를 했던 것이다. 이 성경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트럼프 국정철학 확고하게 각인



이와 함께 트럼프 역시 대통령은 ‘하느님(God)’ 아래 위치해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번 연설에서 ‘God’을 총 4번 사용했다. 이는 2009년과 2013년 각각 5번씩 사용한 오바마와 비슷한 수준이다. 각각 2번과 1번만 사용한 빌 클린턴 대통령보다 오히려 더 빈도가 많았다. 그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서로 화합하니 얼마나 좋고 즐거운가”라는 성경 구절의 인용을 통해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미국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을 통해 ‘겸손’의 전통적 미덕을 보여 줬다. 하느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표현은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취임연설에서도 사용됐다.



이번 트럼프 취임연설의 가장 큰 특징은 다시 한번 확인된 그의 국정철학과 강력한 의지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대학살(carnage)’이라고 표현하며 지금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국내적으로 직면한 문제로는 빈곤, 일자리, 교육시스템, 범죄, 중산층 붕괴 등을 거론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산업의 희생과 국방력 약화 등을 역설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는 한편으론 국가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력을 보임과 동시에 애국심에 호소했다.



먼저 그는 “매번 숨 쉴 때마다 여러분을 위해 일하겠다. 절대 낙담시키지 않겠다(I will fight for you with every breath in my body – and I will never, ever let you down)”는 말로 대통령으로서의 개인적 결심을 밝혔다. 이어 ‘will(할 것이다)’을 병렬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본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들을 간략하게 표현했다. 트럼프는 이번 연설에서 ‘will’을 총 40번 사용할 정도로 더욱 강력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마지막 부분에 정리 발언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지(will)’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국내 정치의 두 가지 규칙으로 “미국 물건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한다”를 제시했고, 대외정책의 기조로는 자국 이익 우선을 전제로 한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천명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정책들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적으로는 평등한 사회 실현을 위해 소수집단들의 권익 향상을, 대외적으로는 인권·환경·지속 가능한 발전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갈등에는 ‘전략적 인내’를, 협력이 필요한 부분엔 적극적인 대화를 강조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원대한 포부와 더욱 큰 꿈 역설



이 부분에서 눈여겨볼 점은 그가 세계 경찰의 역할보다는 국가 역할 관념 중 하나인 ‘본보기(example)’를 거론한 부분이다. 즉 미국의 생활방식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기보다는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따라오도록 하겠다는 소극적인 국가 역할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미국이 더욱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국민의 충성과 헌신이 필요하며 이와 함께 ‘원대한 포부와 더욱 큰 꿈’을 꾸어야 한다는 걸 역설했다. 그리고 “공허한 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The time for empty talk is over)”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 말이 아닌 행동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많은 명언과 명구를 남겼다. 트럼프의 이번 연설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되고 인용될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사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그는 대구법 등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본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간략하지만 강력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장르’라고 불릴 정도로 역대 대통령의 취임연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대통령으로서 본인이 꿈꾸는 이상과 비전 제시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과 국민 간의 호흡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미흡한 연설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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