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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인사이트] 더 많은 자유가 더 많은 평등인 시대가 온다 - 리눅스와 해커에 담긴 디지털시대의 ‘뉴 모럴’

작성자 : 구희상 2018.09.28 조회수 : 2045

 영화 설국열차 속에서 최고의 가치는 엔진이다. 열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엔진은 신성하며, 기차의 맨 앞칸에서 엔진을 조종하는 월포드는 위대하다고 세뇌당한다. 새로 찾아온 빙하기, 열차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엔진이야말로 신적인 존재이자 가치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엔진 수호자 월포드는 철저한 피라미드식 계급 사회를 만들어 평등을 용납하지 않는다. 환경이 가치를 만들고 시스템을 만든다.


 다행히 곧 빙하기가 올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류는 ‘디지털 시대’라 불리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고 있다.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해커 윤리의 핵심은 탈중앙화

 초기 디지털 시대를 열었던 주도세력의 중심에는 ‘해커’ 집단이 있었다. 60년대 초 MIT를 주축으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프로그래머집단이 스스로를 해커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열정적 해커들이 오늘날 디지털의 기초가 되는 넷, 퍼스널 컴퓨터, 리눅스(Linux) 같은 히트상품들을 만들었다. 리눅스 개발자인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는 ‘해커, 디지털 시대의 장인들’이라는 책에서 “해커들이 우리 시대의 정신적 도전을 상징한다”고 했다. 해커 윤리는 근대의 프로테스탄티즘 노동 윤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윤리 기준일 수 있다. 이것은 컴퓨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회 전 분야에 대한 모든 종류의 도전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초기 해커들이 선구자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Steven Levy)는 저서 <해커스: 세상을 바꾼 컴퓨터 천재들-Hackers: Heroes of the Computer Revolution>에서 7가지 항목의 해커 윤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컴퓨터(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당신에게 가르쳐줄 무엇인가)에 무제한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2. 항상 실전을 통해 배워야 한다.

3. 모든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

4. 권력기관을 믿지 말라 - 분권화를 장려하라

5. 해커는 학위, 연령, 인종 혹은 지위 같은 가짜 기준이 아니라 해킹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6. 컴퓨터 위에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7. 컴퓨터가 당신의 삶을 향상할 수 있다.


해커 윤리의 핵심은 자유, 탈중앙화를 통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50년 전 해커들은 자유와 평등 모두 분권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MS는 최고급 인력으로 형편없는 제품 생산”

 해커 정신이 철저하게 구현된 산물이 리눅스다. 1991년 헬싱키 공대 학생 리누스 토발즈가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유닉스 계열의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그의 이름을 따 리눅스라는 이름의 운영체제로 공개했다. 이후 많은 개발자가 패치 수정에 참여하였고, 자유소프트웨어 재단의 GNU프로젝트가 리눅스에 관심을 두고 결합하였다. 1994년 리눅스 커널 1.0 버전이 공개되었고, IBM 등 대기업들이 리눅스 개발을 지원하면서 현재는 안드로이드 등을 구동하는 운영체제로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리눅스의 탄생은 기존 윈텔(윈도우+인텔)이 가진 세계표준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제는 해커 중심의 리눅스 지식생산모델이 과거 글로벌 표준으로 군림했던 MS의 지식생산모델을 넘어선 모양새다. 과거 IBM이 자사의 컴퓨터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끼워 팔던 관행이 1969년 반독점 제소를 당하면서 무너졌다. 이제 하드웨어 기종에 상관없이 소프트웨어가 호환되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에 따라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새로운 산업으로 등장했고, MS는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의 개방표준을 지향했다. MS의 성공전략은 ‘개방과 소유(open-but-owned)전략’이다. 즉 윈도우 운영체제를 플랫폼으로 삼고,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업체들이 MS의 인터페이스에 접근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소스 코드는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윈도우 운영체제의 수정이나 개선은 온전히 자사만이 제어할 수 있다. 


 반면 리눅스의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 공개는 OS의 지적 재산권 장벽을 제거한다. 리눅스의 기술표준은 이제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리눅스는 MS와 같이 독점적 기업들에 대한 대항할 수 있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MS가 최상급의 전문 인력들을 가지고도 기술적 오류가 많은 제품을 생산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MS는 폐쇄적 환경, 독점적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리눅스 개발자 공동체의 지식생산모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리눅스를 탄생시킨 해커들의 정신과 그들의 지식생산 시스템의 핵심은 무엇인가? 서울대 김상배 교수는 네트워크 이론으로 MS와 리눅스의 지식생산모델을 설명한다. 



 <그림1> 네트워크 이론에서 유추한 네트워크의 유형 구분



 (나)의 단 허브형은 중세시대 성당 모델과 흡사하다. 중세에는 성당이 모든 지식과 정보 교류의 장이었던 것처럼 단 허브형 구조에서는 극소수의 행위자가 독점적으로 지식을 생산한다. MS의 개발방식이 이와 같다. MS와 같은 독점적 거대 기업이 완제품을 개발하면 그 사용자인 노드들에 의한 수정이 불가하다. (라)의 탈 허브형은 장터 모델이다. 사람들이 시장에서 어지럽게 오고 가며 거래를 하는 것처럼 지식을 생산한다. 여기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발자 그룹인 노드가 주도적 역할을 한다. 물론 허브는 존재하지만, 노드들이 허브를 뛰어넘어 소통하기 때문에 허브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제 단 허브형 지식생산 모델은 IT업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무리 MS 같은 대기업이라도 기술적으로 완벽한 소프트웨어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리눅스가 전체 OS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지 이미 오래다. 리눅스는 탈 허브형 지식생산 모델을 따른다. 소프트웨어는 매우 복잡한 기술체계로 일반적인 리눅스 프로그램만 해도 수천만 개의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개발, 수정, 관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소스 코드가 공개되고, 개발자들의 참여가 허용되더라도 인터페이스 기준(표준)만 충족시키면 전체의 원활한 작동에는 문제가 없다. 게다가 인터넷이 등장하여 소스 코드 공유, 개발 거래비용을 감소시킴으로써 누구나, 어디서든, 즉각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리눅스의 탈 허브형 네트워크는 수직, 수평의 이중적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수직적 링크에는 ‘자비로운 독재자’로서의 리누스 토발즈가 있다. 그는 공동체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고 리더십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수평적 링크이다. 수평적 링크에는 사용자이자 동시에 개발자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있다. 이들이 반드시 IT 전문가만은 아니며, 생활 속에서 리눅스를 접하는 사용자이자 개발자인 노드들을 뜻한다. 최초에는 창시자와 그로부터 연결되는 수직적 링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리눅스와 같은 탈 허브형 네트워크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평적으로 연결된 노드들이 제품의 오류를 수정하고, 완성도를 높인다. 적어도 해커들은 이미 50년 전부터 이 같은 노드들의 수평적 링크가 훨씬 우수한 체계라고 인식했다.


 바로 이 탈 허브형 구조 안에서 수평적으로 연결된 노드들이 디지털 시대의 평등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리눅스를 넘어 빅데이터와 블록체인으로 확장해보자.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대중이 다 IT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일상적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빅데이터가 되고, 동시에 빅데이터의 결과물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블록체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노드가 되기 위해서 꼭 블록체인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다. 블록체인 데이터를 다운 받기만 하면, 그 자체로 노드가 되어 블록체인 시스템 유지에 일조하는 것이다.


 초창기 해커 윤리의 핵심은 자유와 탈중앙화를 통한 평등이다. 다가올 디지털 시대가 해커 윤리에 충실한 사회가 된다면 수평적 관계의 노드, 즉 개개인들이 모두 디지털 시대의 주도세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마치 자유와 평등이 완전히 등가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평등을, 평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미래 디지털 시대는 다르다. 이미 50년 전 해커들은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구현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그것이 폐쇄적 시스템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해커 윤리는 디지털 시대의 고전의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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