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협력 보고서

[이슈브리프]미국 ODA 정책의 퇴보: 최대 공여국의 흔들리는 위상

작성자 : 나지원 (동아시아연구원) 2018.01.19 조회수 : 3271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ODA 정책 (1) 미국 - 미국 ODA 정책의 퇴보: 최대 공여국의 흔들리는 위상

저자: 나지원 (동아시아연구원)

2018-006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ODA(정부 개발원조) 정책’ 입니다. 이번 주제에서는 국가별ODA 정책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그 가운데 국가전략 혹은 대외정책과 연계된ODA의 중점 과제는 무엇인지도 살펴봅니다. 또 만약 각국이 특정지역에 중심을 둔 ODA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도 분석해볼 것입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6년 9월 20일, 미국의 국제 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인 글로벌 개발 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CGD)에서는 미국의 대외 공적 원조를 총괄하는 기관인 미국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기 정부의 과제를 제안하는 브리프를 발간했다. 미국의 원조 관련 유수 민간재단과 세계은행의 관계자 등이 참석한 라운드테이블의 논의 결과를 정리한 이 보고서는 USAID가 실천할 수 있는 분야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 개발원조 정책과 USAID의 활동을 백악관(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USAID의 개발원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회와 협력하는 것이며 끝으로는 변화한 개발원조 환경에 맞게 USAID의 운영과 활동 역량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저자인 스콧 모리스(Scott Morris, CGD 선임연구원, 미국 개발 정책 이니셔티브 소장)와 케이시 더닝(Casey Dunning, USAID CGD 정책연구원)은 오바마 행정부 하의 USAID 국제 개발원조 정책을 ‘이니셔티브’(initiative), 즉 사안별 기획 중심의 접근법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구적 기아와 식량안보 문제 해결에 치중하는 기획인 ‘미래 식량 확보’(Feed the Future)와 미국의 공적 원조 수단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전력 생산과 공급에 대한 민간 투자를 확충하려는 기획인 ‘파워 아프리카(Power Africa)’가 있다. 이러한 사안별 해결 방식이 개발원조가 필요한 국가들에 주는 실질적인 혜택과 원조의 효과성 증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저자들은 이러한 접근법의 성과를 더욱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개선 방안을 차기 정부에 제언했다.


첫 번째는 신임 행정부 취임과 함께 USAID 처장을 지명함으로써 개발원조에 대한 신임 정부의 비전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회와의 협력 강화다. 원조개발에 대한 예산은 국내 정치적으로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은 만큼 예산심사와 의결권한을 가진 의회의 협력이 긴요하다. 저자들은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의회 지도부가 참여하게 함으로써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USAID 조직 내부의 역량 강화다. 어느 정부 부처 혹은 관료제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USAID 역시 인사와 프로그램 관리에 여러 가지 허점을 노출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USAID와 여타 유관기관 및 협력 기관과의 관계와 권한, 책임의 명확화다. USAID의 정책 수립 및 집행 능력과 예산 권한 확대함으로써 특정한 사업에 할당된 예산을 보다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현장의 실질적인 필요에 맞출 수 있고 원조의 효과를 증진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조언하고 있다. 


끝으로 이 보고서는 지난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내린 대통령 정책 지령 6호 (Presidential Policy Directive-6, PPD-6)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PPD-6는 미국 대통령이 최초로 순전히 개발 문제만을 다루는 정책 지령을 내렸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개발을 국방과 외교에 버금가는 국가안보 이슈로 격상시켰다는 데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미국이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최대의 원조 공여국이었음에도 행정부 차원에서 그 전까지 구체적인 원조 정책이 단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일견 뜻밖이다. 그러나 원조를 도덕적으로는 옳지만 국익에는 (기껏해야 간접적으로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혜, 혹은 이상주의적 외교의 한 형태라고 보는 관점이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원조개발 정책이 부차적인 입지에 머물러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령을 통해 개발은 전략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의제가 되었다. 환경, 테러리즘 등 지구 전체적인 위협과 과제가 등장하고 세계 경제에서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며 새로운 자원 개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개발원조는 더 이상 타인 혹은 외국을 돕는 문제가 아니라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정부가 대외 원조 사업을 위해 지출한 예산의 규모는 이와 같은 계획과 구상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예산 정책 우선순위 센터(Center for Budget and Policy Priorities)의 데이비드 레이시(David Reich)와 클로이 조(Chloe Cho) 연구위원에 따르면 미국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id, ODA)의 핵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국제 개발 및 인도주의 지원 부문 프로그램에 할당된 연방 정부 예산은 2017년 예산 기준 292억 달러이다. 2010년에 비하면 소폭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방 정부 전체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금액이다. 


물론 절대적인 액수로 본다면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대의 공여국(donor country)인 것은 사실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2위의 공여국인 독일보다 1/3 이상의 금액을 대외 원조에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규모가 독일보다 다섯 배 이상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금 다른 그림이 보인다. 독일이 국내총생산(GDP)의 0.7%를 ODA에 지출하는 반면 미국은 0.18% 수준으로 독일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격차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경제규모 대비 ODA 지출은 OECD 회원국 29개국 중 고작 22위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대외원조 핵심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원조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빠르게 추격했고 일부 부문에서는 심지어 추월하기도 하는 등 ‘원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략적인 수치를 보면 미국이 여전히 이 지역에서도 수위(首位)의 원조공여국이지만 중국은 원조보다는 직접 투자 형식으로 이 지역 국가들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현재 미국의 대아프리카 해외직접투자(FDI) 규모는 이미 2위로 뒤쳐졌다. 2016년 브루킹스 연구소가 개최한 미국-아프리카 기업 포럼(U.S.-Africa Business Forum)에서도 이러한 점과 함께 원조와 개발 부문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규모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취약할 수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은 미국이 중국에게 국제개발 분야의 우위를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그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개발지향적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개발정책과 원조정책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 영향력 아래로 서서히 끌려들어가고 있는 지역과 국가들을 고려하면, 미국은 기존의 국제개발원조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경제적 기회와 거버넌스 향상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과의 이러한 개발원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구미(歐美) 국가들이 갖고 있는 국제개발에 대한 통념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기존 부국과 국제기구들은 대외개발원조를 비상업적, 비영리적 수단을 사용해 빈국의 빈곤을 완화하고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반면, 중국은 자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을 일상적인 경제활동과 ‘밥벌이(bread and butter)’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실상 물질적 생활수준 향상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개발을 거의 전적으로 타국의 (특히 빈국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일반적인 기업 활동과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과는 차별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제 개발이 미국의 핵심 경제, 정치, 안보 이익과 동떨어진 사안이라는 그릇된 관념으로 이 분야를 방기하고 결과적으로 개발원조가 “그냥 원조”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중국에게 이 분야의 주도권을 내어준다면 결과적으로 무역, 투자, 금융 등 사실상 지구 경제의 모든 분야와 기회를 중국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카네기-칭화 지구 정책 센터(Carnegie-Tsinghua Center for Global Policy)에서 중국의 개도국 대외정책 연구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매트 퍼쳔(Matt Ferchen) 박사는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17년 3월 내놓은 2018년도 예산안은 이러한 경고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글로벌 개발 센터(CGD)의 스캇 모리스(Scott Morris)와 아이작 샤피로(Isaac Shapiro) 연구위원은 미국이 “공평한 몫”보다 많은 돈을 내고 있다면서 대외원조 프로그램 관련 예산의 대폭 삭감을 정당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미국이 작년 ODA에 지출한 260억 달러는 다른 선진국들의 기여에 비하면 “공평한 몫”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진실로 “공평한 몫”을 내고 싶다면 ODA 목표 기준인 GDP 총액의 2%에 근접하도록 오히려 예산을 증액해야 함에도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꼬집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제이크 슈네이더(Jake Schneider)와 대럴 웨스트(Darrell M. West) 연구위원의 분석 또한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외원조 중에서도 세계 보건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무려 24%가 삭감되었다. 오바마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16년 2월에 회계연도 2017년에 책정한 세계 보건 관련 예산이 85억 달러였으나 트럼프의 2018년도 예산안에서는 이 금액이 65억 달러로 감소한 것이다. 보건과 교육이 개도국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에 기초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크게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수원국(受援國)에서는 공공 부문 보건 지출 삭감을 상쇄할 만한 규모의 민간 부문 보건비용 지출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세계 차원의 보건 수준 저하 및 건강 상태 악화, 그리고 전염병 등의 확산 가능성이 커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원조를 받는 개도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전체의 안정에 위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충실한 대외원조가 국가안보와 지구안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일선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군인들이 개발원조의 가장 큰 지지세력 중 하나라는 사실에서도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다수의 미군 장교들이 개발원조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득이 될 뿐만 아니라 여러 분쟁과 갈등의 근본원인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대외적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보수 집단은 이러한 대외원조의 이득보다는 비용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는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외 원조가 1990년대 연간 평균 140억 달러 규모에서 2010년대에는 320억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원조가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부족하며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트린다는 연구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조 여부나 규모와 무관하게 시장 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꾸준하고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케이토 연구소의 이언 바스케스(Ian Vasquez) 연구위원은 전통적으로 원조는 각국 정부에 지급되어 사실상 경제 개입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 때문에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서 수십억 명이 빈곤상태를 유지하게 되었고 이러한 개입주의의 결과 개도국의 경제문제가 정치화되는 악순환을 낳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경제자유화를 추진한 국가들이 해외원조에 의존한 국가들보다 빈곤 감소와 지속적 성장에서 더 큰 성과를 얻었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현재 미국의 ODA 정책은 여러 모로 기로에 서 있다. 당초 세계 각국이 약속했던 GDP 대비 2% 선의 지출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예산 규모를 반전시키고 본격적으로 개발원조를 대외정책과 안보, 경제성장을 아우르는 국가 주요 정책으로 격상시키려던 오바마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없던 일이 되었으며 도리어 기존보다 예산과 규모가 더욱 축소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국내의 연구기관과 학자들은 이러한 대외 원조의 후퇴에 대해 단기적 비용 절감에 매몰되어 장기적으로 국익을 해치는 꼴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각국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옹호하면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처럼 국내적으로 개발원조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중국은 빠른 속도로 대외개발원조와 투자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하면서 미국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아직 첨예해지지는 않았지만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다양한 영역에서는 이미 사실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ODA와 관련 해외투자 분야야말로 중국의 미국 추월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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