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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이 될 수 있을까

전병조 (여시재 특별연구원·전 KB증권 사장)

2020.05.19

‘Reshoring Only’ 아닌 ‘最適 재배치 전략’으로 가야

보령제약이 지난해 준공한 충남 예산 소재의 생산단지.
생산, 포장에서 배송까지 자동제어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스마트팩토리다. (출처: 한국경제매거진)

단순 부품 하나 때문에
공장 전체가 올 스톱

COVID-19 사태 이후 리쇼어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우리 기업의 리쇼어링을 포스트 코로나 정책의 큰 줄기의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다.

리쇼어링이 중요한 정책 어젠다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엔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된 국제무역환경의 변화가 있다. 또한 코로나 사태 이후 그런 변화가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핵심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무역구조로 인한 글로벌 공급 사슬의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중국 의존도가 특히 높은 우리나라는 미중 무역마찰의 시작과 더불어 충격파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확산 이후에는 무역은 물론 생산 중단 사태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단순한 저가 부품 하나 공급이 끊어져 생산이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봉쇄 없는 성공적 방역
한국의 브랜드 가치 상승

COVID-19 사태 이후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방역은 국내외 기업들에게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을 각인시켰다. 우리 기업들도 리쇼어링을 하나의 대안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봉쇄 없는 성공적인 방역으로 인해 우리나라 공장들의 생산 중단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생산 재개 속도도 가장 빨랐다. 자동차의 경우 이미 2월 초부터 생산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생산 중단에 큰 충격을 받은 국가와 기업들은 생산기지로서 한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저임금 매력이 감소하고 있는 마당에 ‘세계의 공장’이 보여준 ‘셧다운 리스크’는 국내외 기업들의 생각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책임에 대한 논쟁으로 미중간 무역갈등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미국 기업의 脫 중국을 적극 요구하면서 파격적인 지원정책을 공언하기 시작하였으며,¹ 새로운 생산기지로서 한국 등 기존 동맹국들을 대안으로 거론하기 시작하였다.² 급기야 한국이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성급한 견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³

¹ 미국 정부는 [2020.2월 리쇼어링 기업에 대해 이전비용의 100%를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²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4.29일 “미국 정부는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 등과 협력해 세계 경제를 전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6/2020050600104.html
³ 장 폴 로드리그 미국 뉴욕의 호프스트라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코로나 이후 한국은 ‘첨단 제품 세계 공장’이 된다.” 2020.04.20. 기사

[표 1] 코로나 확산 이후 글로벌 완성차 업체 공장중단율 (자료 출처: 한국자동차협회)

성공적인 방역의 성과로 인한 한국의 브랜드 가치 상승은 우리 기업들에게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많은 ‘K-시리즈’에 ‘K-방역’이 추가되고, 이제는 ‘K-경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생산 입지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Made in Korea’가 ‘Made in 000’보다 더 많이 또는 더 나은 가격에 팔릴 수 있다면 생산 비용 측면에서의 불리함을 감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명품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보고 사는 것이라 했다. 그간 좋은 제품을 만들고서도 시장 확장에 고생했던 우리 기업들로서는 ‘한국의 브랜드’ 가치 상승이 분명 좋은 뉴스임에 틀림없다.

경기도 평택시 LG전자 러닝센터에서 로봇 자동화 교육을 받고 있는 협력사 직원들의 모습 (출처: LG전자)

한국산 프리미엄 시대?
아직은 손 안의 모래

그러나 아직까지는 손 안의 모래와 같다. 몇 가지 환경적 요소만으로 리쇼어링을 결정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 떠나듯 기업을 옮길 수는 없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만큼이나 어디서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며 중대한 모험이다. 실제로 리쇼어링을 포함한 기업의 국제적 입지 결정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표 2] 리쇼어링 요인 (자료 출처: Reshoring Initiative, 2017, Data Report, Reshoring Initiative)

미국과 독일에선
스마트 기술 도입으로 인한
‘리쇼어링’사례 늘고 있다

리쇼어링을 결정하는 전통적인 요인 외에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였다. 4차 산업 혁명의 기술과 확산이다. 스마트 생산기술(스마트 팩토리)은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하여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생산단가의 절감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스마트 생산설비의 채용이 해외에서의 생산 利點(저임금, 시장접근 등)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생산비를 절감하게 될 경우 리쇼어링을 촉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독일에서는 스마트 생산 기술로 인한 리쇼어링 사례가 늘고 있다[표 3]. 개도국의 인건비 상승이 기본적인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스마트 생산기술의 적용은 실제 리쇼어링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스마트 생산기술이 리쇼어링의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정책을 설계하면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되었다.

[표 3] 리쇼어링 이후 스마트 공장 도입에 따른 비용 절감 사례 (자료 출처: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코트라, 조선비즈. NH투자증권 리서치 센터 정리)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
15년 전 이미 시작
그러나 성과는 미미

사실 리쇼어링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정부 정책프로그램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재정경제부가 ‘기업환경 개선 종합대책’ 을 마련하면서부터다. 정부는 기업환경개선의 일환으로 전반적인 규제완화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해외기업 환류지원방안(유턴정책)도 하나로 포함하였다. 리쇼어링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에 치중하기보다는 전반적인 규제 환경을 개선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해외 국내 기업 재유치를 도모한 것이었다. 그 이후 정권마다 수차례에 걸쳐 리쇼어링 정책 지원방안 을 확대해 왔지만 실제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재정경제부. 2006. 9월.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 보도자료 참조. 동 대책에서 ‘新국제분업화 투자와 국내 기업의 환류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적극적인 유인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2018.11.29. ‘유턴기업 종합지원대책’
지난 2014년 이후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69개사에 불과하다. 연도별로는 2014년 20개, 2015년 3개, 2016년 12개, 2017년 4개, 2018년 9개, 2019년 16개, 2020년 4월까지 5개 등이다.

유턴기업 실적이 저조한 데는 정책지원 부족보다는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동기가 현지 시장 진출과 수출 촉진에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소비지역과 가까운 지역에 입지하는 소위 ‘Near-Shoring’이 대부분이다. 저임금 활용을 목적으로 이전한 경우는 7%에 불과하였다. 결국 리쇼어링의 정책 대상 기업의 모집단 자체가 매우 적은 셈이다.

수출입은행이 최근 5년 동안 기업들의 해외지출 동기를 조사한 결과, 현지 시장 진출이 71%, 수출 촉진이 13%, 저임금 활용은 7% 등으로 나타났다.

저임금 보고
공장 이전한 기업은 7%에 불과

리쇼어링이 소용이 없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리쇼어링을 논의하게 된 배경에는 생산 중단 위험을 관리하면서 미중 무역갈등과 COVID-19 사태로 조성된 새로운 환경을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가 있다. 특정 국가 쏠림의 위험성, 변화된 무역 환경(미중무역갈등, 자유무역주의 후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제하면서, 새로이 등장한 긍정적인 기회를 활용하자는 관점에서 리쇼어링이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위험과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리쇼어링에 국한하기보다는 모든 생산입지 선택지를 종합적으로 감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해외 기업을 완전 복귀시킨다는 ‘reshoring only’의 접근이 아니라, 생산 입지의 최적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의 일부를 국내로 복귀시키는 것과 제3국으로의 이전, 즉 ‘near-shoring’까지 포함하여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산 입지 최적 배분에
FTA를 적극 활용할 필요

리쇼어링 화두를 ‘생산 입지의 최적 배분 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정책의 지향점이 분명해진다.

첫째, 위험관리 차원이다. 생산기지를 특정 국가에 전적으로 유지하는 위험이 커지고 있으므로, 이들을 국내와 제3국으로 분산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분산 방법은 여러 가지다. 현지 공장을 부분적으로 폐지하거나 중단하고 신규 투자를 우리나라나 제3의 국가로 이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의 시장접근을 유지하면서 분산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는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현재 입지 국가(예 중국)와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국가로 이전하면 현재의 시장에 접근하는 데 지장이 없다(물론 관련 부품 조달 생태계 부족, 물류비용 증가 등 다양한 제약요인이 발생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ASEAN 간 FTA가 체결되어 있다. 중국 공장의 일부 또는 신규 확장투자를 ASEAN 국가로 적절히 분산하더라도 중국 시장접근을 유지하면서 위험 분산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한중 FTA가 체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분산 이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리쇼어링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부분적인 유턴도 정책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부분을 정책이 놓쳐서는 안 된다.

무역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구성할 필요

둘째, 미중 무역갈등에서 비롯된 위험과 기회를 새롭게 활용하는 전략이다. 미중 무역 협상의 타결에 따른 무역전환효과(trade diversion) 는 향후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감소할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은 바로 미국으로 생산 입지를 일부 또는 전부 이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하여 최종재를 생산, 미국으로 수출하여 왔다. 이제는 미국에 진출하여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에서 중간재를 도입, 대중국 수출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무역의 흐름을 미국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미국 현지법인의 대중국 수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한국의 중간재 수출을 종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 전체의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오히려 앞으로 추가적인 미중 무역 협상이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될수록 우리의 중간재 수출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그림]. 미중 무역갈등의 위험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장의 일부 또는 전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셈이다.

미중 무역협상 1차 타결 결과,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2,000억 불을 수입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안전 필수 물품
국내 최소 전략생산 유도해야

마지막으로 최소 생산시설을 한국에 유지하는 측면이다. 미중무역갈등, COVID-19 위기의 경험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기업의 리스크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산 기반을 한국에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핵심 산업이나 필수 물품, 특히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기본적인 의료물품이나 장비를 국내 생산 없이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는 경우 얼마나 황망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인지 여러 선진국들이 지금 바로 경험하고 있다. 최소 생산 시설을 유지하는 것은 효율성 차원이 아니라 안전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의 대비가 충분하지 않는 기업들은 기존 공장을 모두 유턴시키지는 않더라고 부분적으로라도 국내생산기반 구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런 투자는 리쇼어링 정책 대상으로 지원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반 투자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전략 생산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최적 배분 전략 주효하면
기업이 해외로 가도
국내 일자리 는다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일자리 창출이다. 미국 행정부는 리쇼어링을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여 강조하여 왔고,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다르다. 리쇼어링이든 해외 생산 확대든 어느 것도 일자리 창출 여부가 실제로는 명확하지 않다. 해외 진출 기업이 늘어나도 일자리가 증가할 수 있고, 리쇼어링이 일어나도 해외 생산과 수출 증가로 증가하는 일자리 보다 오히려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것은 해외 진출의 증가든 리쇼어링이든 그로 인해 국내 투자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여부다. 해외 진출 기업이 증가하더라도 우리의 중간재 수출과 투자가 증가하는 경우 국내 고용이 늘어나게 된다.

생산 입지 최적 전략에 따라 한편으로는 리쇼어링이 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3국으로 near-shoring이 일어날 것이다. 최적 배분이 일어나는 과정은 기업의 위험이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결국 수출과 투자가 확대되게 되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배분 결과에 따라 늘어나는 일자리의 성격과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 리쇼어링의 경우 직접적인 생산부문 인력이 증가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해외에서 near-shoring이 발생하는 재배분이 일어나는 경우, 국내 중간재 산업과 제조 관련 서비스 산업(개발, 마케팅, 브랜드 등)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대기업들은 큰 문제 없다. 대기업들은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상황에 따라 기업이 요청하면 정부가 대응하면 된다. 문제는 일부 중견기업과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다. 최적 재배치 전략에 따라 이들에게 정책적 지원을 집중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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