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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미래다 / 08 / 기업과 노동의 미래] 기업도 개인도 순식간에 興하거나 亡하거나 - 대역전의 기준점은 무엇인가?

이명호 디지털 플랫폼 팀장

2020.02.25

여시재는 ‘e-핸드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특정 이슈에 대한 종합적 지식, 간편한 지식 제공을 목표로 합니다. 연재물을 모으면 하나의 e-핸드북이, 그것을 인쇄하면 소책자가 됩니다. 이번엔 전체 10편인 ‘디지털이 미래다’ 제 8편입니다.

여시재에서 ‘디지털 사회변화’를 이끌고 있는 이명호 박사가 쓰고 있습니다. 이 박사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IT-MBA 석사과정과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OD Corea 대표컨설턴트와 삼성SDS 미주법인 시니어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노동 4.0’ 등 여러 책을 썼습니다.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디지털의 개념과 역사(링크)
2. 변화의 동력, 지식 패러다임 변화(링크)
3. 인쇄술과 엔진의 사회 산업사회(링크)
4. 디지털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가(링크)
5. 인터넷, 대중의 시대를 열다(링크)
6. 지식의 미래, 인공지능 시대(링크)
7. 플랫폼 경제의 명암(링크)
8. 기업과 노동의 미래

9. 일과 오피스의 미래
10. 에필로그/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산업시대의 주역은 기업이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기업을 통해 일어나고 대부분의 개인도 기업의 일원으로서 소득을 얻고 있다. 기업은 사회에 필요한 경제적 재화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 기업이 디지털 시대엔 어떻게 변모할까? 또 인간의 노동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산업경제 시대의 아이콘 ‘기업’

경제활동의 본질은 재화를 만들어 교환하는 것이다. 재화를 만들어 교환하는 활동, 다시 말해 경제활동은 역사 변동의 핵심 추동력이었다. 근대 이후 그 중심에 기업이 있었다.

기업의 경제활동은 원자재를 구매하여(input) 생산수단(capital)과 노동력(labor)을 활용하여 원자재를 제품(value 증가)으로 만들어(process) 판매하고(output) 이익(profit)을 남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여 투자한 자본과 지불한 비용 보다 더 많은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다시 말해 가치(value)가 높은 제품을 만들 것인가는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있어 핵심적 과제(본업)다. 산업경제 하에서 기업은 경쟁자 보다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생산하고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하여 대량생산이라는 규모의 경쟁을 벌이게 되고, 기업들은 뷰로크라시(bureaucracy, 위계제·관료제) 조직 형태를 취했다. 동일한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은 동일한 기계를 작동시켜 동일한 작업을 하는 ‘표준화된 노동자 집단(계급)’을 등장시키게 된다.

막스 베버는 근대 국가의 이상적인 정부 조직은 뷰로크라시 조직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조직은 근대 산업사회의 이상적인 조직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베버가 정의한 이상적인 뷰로크라시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① 과업의 분업화 ② 고도의 공식화 ③ 권한의 계층화 ④ 비인격성 ⑤ 능력에 기초한 평가 ⑥ 구성원의 신분보장(종신고용) ⑦ 공과 사의 명확한 구별이다. 이와 같은 수직적 계층 조직의 형태는 산업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인(비용을 낮추고 일사불란하게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도록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기업조직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산업사회의 기업은 공장제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위계적 조직 형태라는 전형적인 특징을 공유하면서 성장했다.

디지털 경제,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역전이 일어나는 시대

디지털 시대란 컴퓨터와 인터넷이 모든 경제활동에 일부라도 사용되거나 기반 기술로 활용이 되는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산업시대의 경제는 주로 유형자산(tangible assets: 기계, 건물, 현금처럼 물리적 실체가 있는 자산, 고정자산이라고도 함)에 근거한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 자산 집약적 경제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유형자산 집약적이었던 서비스업에서 무형자산 집약적으로 역전이 일어나고, 이어서 제조업 부분도 무형자산 집약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무형자산(intangible asset)이란 물리적 재화가 아니지만 지적재산, 아이디어, 지식, 기술, 예술적 콘텐츠, 소프트웨어, 브랜드, 네트워크 및 사회적 관계 등을 의미한다. 특히 선진국에서 무형자산으로 자산의 성격이 이동한 것은 세계화와 IT(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것이었다. 개도국으로 제조 시설이 이동하면서 선진국 기업들은 R&D와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현지 생산 시설과 기업들을 관리하기 위한 경영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기업의 가치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게 된다.

MS의 유형자산은
2006년에 이미 기업가치의 1% 불과

무형자산 경제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다. 2006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가치는 대략 2500억 달러였는데 전통적 자산(유형자산)인 공장과 설비의 자산 가치는 단 30억 달러에 불과하였다. 유형자산의 가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장부가치(자산)에서 4퍼센트에 불과하였고, 시장가치를 기준으로는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로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현대판 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시장가치가 가장 높은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서까지 석유회사, 전자회사, 은행 등이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애플,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등 IT(디지털) 기업 및 플랫폼 기업들로 전면 교체되었다. 이들 기업들의 가치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5%~93%에 달한다. 이들 디지털 기업뿐만이 아니라 많은 수익을 내고 성장하는 기업들은 무형자산 비중이 높은 기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S&P 500 기업들의 기업 가치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17%에 불과하였는데 2018년에는 84%로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무형자산 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고,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무형자산에 더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료 출처: Visual Capitalist, “Intangible Assets: A Hidden but Crucial Driver of Company Value”)

자본이 없는 자본주의의 시대

영국 학자 조너선 해스컬(Jonathan Haskel)은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서 다음과 같이 무형자산(투자)의 특징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무형자산은 확장(scalable) 가능성이 더 크다. 유형자산에 기반한 재화는 하나를 더 생산하기 위해 그에 비례하는 원자재와 노동력을 투하해야 하고, 생산시설의 한계를 넘을 경우에는 추가로 막대한 유형자산 투자를 해야 한다. 이에 비해 무형자산은 추가 생산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거의 추가 비용 없이 무한대로 복제하여 판매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과 같다. 즉 한계비용이 제로에 달하게 되어 확장성이 무한대가 된다. 무형자산의 확장성은 디지털의 네트워크 효과(사용자가 많아질수록 효용성이 증가)로 더욱 강화된다. 이것이 극단화되면 승자독식이라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무형자산의 두 번째 특징은 스필오버(spilover)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아이디어가 세상에 공개되면 빠르게 퍼져 나가고 모방도 쉽기 때문에 지식재산으로서의 아이디어(디자인, 기술, 발명 등)는 일정 기간(특허권 효력 20년) 보호받게 된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쳐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된 특허를 모방하거나 도용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특허 침해의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어떤 기업들은 제조 노하우를 특허로 보호받기 보다 아예 영업 비밀로 공개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공익적 입장에서 무형자산은 스필오버되면 사회적 가치가 커진다는 특징이 있다. 사과 한 개를 반으로 쪼개면 가치도 반으로 줄어들지만, 아이디어로서의 사과는 나누어 주어도 가치가 그대로이거나 가치가 오히려 더 커지게 된다(아이디어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기술)를 다른 사람도 쓰게 되면, 전체적인 이익이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그 기술이 보편화되면 나만 가지고 있을 때의 독점적 장점은 사라지지만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효용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무형자산이 보호되어 무형자산을 만드는 동기를 촉진시키면서도 무형자산이 어떤 곳에 고이지 않고 스필오버(확산)되어 전체 생태계의 효용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공공 정책 설계자들에게 쉽지 않은 과제이다.

세 번째 특징은 무형자산 투자들이 상호 시너지가 생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무형자산, 특히 디지털 자산은 유형자산 보다 융·결합되기 쉽고, 적절히 결합되면 가치가 커지게 된다. 디지털 디바이스 아이팟(iPod)이 소프트웨어이며 서비스인 아이튠즈(iTunes)을 만나서 판매가 증가한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
실패하면 ‘제로’가 되는 시대

그러나 무형자산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몰(sunk) 비용적 성격이 있는 것은 부정적 특징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동안 무형자산을 목표로 들어간 노력과 비용 회수는 극히 어렵다. 유형자산은 부지나 장비를 팔아 일부 회수할 수 있으나, 기술 개발, 소프트웨어나 영화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시장의 수요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회수하기 어렵다. 수많은 개발비를 들여 게임을 개발하였는데, 이용자가 없다면 그 게임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콘텐츠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반면에 성공하면 확장성으로 인하여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무형자산은 그것을 만드는데 들어간 지식이나 기술이 노동에 체화되기 때문에 무형자산을 따로 떼어 팔거나 회수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특허는 구현된 기술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라고 할 수 있어 매매가 가능하지만, 특허와 관련된 노하우는 사람을 통해서 이전된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경제에선
작은 기업도 순식간에
글로벌 기업 될 수 있어

이와 같은 무형자산의 특징은 디지털 경제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생시킨다. 핵심적인 디지털 재화만 잘 만들면, 일반적인 기업에서 필요한 여러 요소들(원자재 구매, 공장, 창고, 유통, 마케팅 등)이 불필요하게 된다. 디지털 재화는 최소 생산량이나 최고의 수익을 내는 적정 생산량이라는 규모의 경제라는 제약도 받지 않는다. 오지에 있는 작은 기업이라도 추가적인 비용 없이, 지사를 설립할 필요도 없이 글로벌 플랫폼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글로벌 수준의 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2014년 페이스북이 190억 달러(약 20조 원)에 인수한 왓츠앱(WhatsApp)은 2009년에 2명의 공동 창업자가 설립하여 불과 5년 만에 55명의 직원들이 3억 명의 사용자와 하루에 500억 건의 메시지를 처리하는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전화 회사였던 AT&T는 1970년에 거의 1백만 명의 직원들이 5천 5백만 명의 전화 가입자를 관리했던 것에 비하면 디지털 경제의 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특정 매니아들만을 위한 재화라고 해도 글로벌 차원에서 소비자를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정 규모의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Long tail 법칙). 결국 디지털 경제는 작은 기업이라도 순식간에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기존 기업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경쟁자(스타트업)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 위탁생산회사에
단 2%만 지불하고
판매액의 60%를 스스로 독점

산업경제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하여 원가를 절감하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유형자산(고정자산)의 가치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 제조업의 밸류 체인(value chain)은 산봉우리 형태였다. 중간에 위치한 제조·조립 과정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얻고 양 끝에 위치한 연구개발(R&D) 및 유통·서비스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가치를 얻는 형태였다.

그러나 무형자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 디지털 경제에서는 밸류 체인의 양 끝에 위치한 연구개발(R&D) 및 유통·서비스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얻고 중간의 제조·조립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가치를 얻는다. 산봉우리 모양이 뒤집힌 스마일 커브 형태다. 기업의 경쟁력이 연구개발과 지식재산, 브랜드라는 무형자산으로 옮겨간 것이다. 단적으로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애플은 판매액의 60%를 가져가고 위탁생산 회사에는 단 2%만을 지불하고 있다. 즉 제품 개발, 디자인, 브랜드 등에서 부가가치를 얻고 있는 극단적인 경우다.

기업의 밸류체인과 스마일 커브

<디지털 경제 시대의 기업 역량>
1. 연구개발과 브랜드의 통합 디자인
2. 빠르게 변화하는 애자일 조직
3. 불확실성을 경쟁력으로 만드는 능력
4. 리스크 감수하는 도전적 투자

이와 같이 지식재산의 가치가 높아진 무형 경제, 디지털 경제 시대에 기업은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형의 지식재산을 만들어 내는 역량일 것이다. 지식재산은 노동력(인재)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지식재산은 주로 연구개발(R&D)과 브랜드 가치에 의하여 형성된다. 브랜드 가치란 소비자의 경험(사용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고 이것은 소비자의 행태를 이해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연구개발과 동시에 소비자와의 밀접한 교류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첫 번째 방법은 연구개발과 브랜드를 통합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역량이다. 원천 기술은 소비자와의 거리가 먼 대학 실험실에서 나올 수 있지만, 상업적인 기술은 소비자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개발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야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인 데브옵스(DevOps: Development and Operations) 모델이 기업 운영 모델로서 확산되고 있다. 즉, 개발이 끝난 후에 운영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팀과 운영팀이 칸막이를 걷어내고 개발 단계와 운영단계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또한 LivingLab(리빙랩)이라는 개념, 연구자가 연구실 안에서만 진행하는 연구가 아니라 시민(수요자)이 직접 참여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고 결과물을 만드는 개방형 실험실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애자일(Agile) 조직 역량이다. 지식재산(특히 디지털 지식재산)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반면 동시에 투자비가 매몰되는 성격이 있다.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직은 빠르게 소비자나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고,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을 고객에 선보이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기능(features)을 향상시키는 것이 매몰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되고 있다. 구글은 매니아에게 베타 제품을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향상시킨 후 일반 대중에게도 공개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애자일 조직 역량은 동시에 긴밀한 커뮤니케이션과 협업 역량을 요구한다.

세 번째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역으로 경쟁력으로 만들 수 있는 창발적(emergent) 역량이다. 지금은 산업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디지털 경제로 패러다임 전환기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이 커진 시대이다. 창발적인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은 조직도 창발적인 조직이 되는 것이다. 작은 단위에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업무 시간의 일정 비율을 설정하여 직원이 업무 이외에 흥미 있는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는 3M의 ‘15% 룰’이나 구글의 ‘20% 룰’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 조사와 기획팀이 있더라도 모든 직원이 소비자 및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운 흐름을 포착하여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조직의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네 번째는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통적 포트폴리오 투자가 아니라 리스크를 감수하는 도전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유형자산 기반의 산업경제 시대에는 투입 요소(자본·공장·노동)를 잘 관리하면 성공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무형자산 기반의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이러한 경향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제품이 급속하게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디지털 경제다. 모든 투자(사업별·부서별)가 실패하지 않고 골고루 성공하도록 하는 것이 산업시대의 기업 운영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다수는 실패하더라도 한두 개가 큰 성공을 하면 전체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맞는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부서)들이 고만고만한 10의 성과를 내도록 하는 문화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여러 개인(부서)이 1의 성과를 내더라도 다른 개인(부서)이 100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한 개인(부서)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장려하는 문화와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 정량화된 항목들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직원들을 실패하지 않고 안전한 길로 가도록 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식은 개별 평가를 없애고, 조직(기업) 단위 성과 평가로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하는 협력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 조직,
작고 얽힌 매트릭스 조직으로 변화해야

그럼 지식재산 역량과 애자일 조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업 조직 구조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소비 시장의 변화와, 조직 속에서의 개인의 업무 방식의 변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선 소비 시장의 변화는 고객의 취향이 다양화되고 자신의 세분화된 요구에 적합한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의 증가는 몇 가지 한정된 재화의 소유보다는 다양한 재화를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공유(임대·구독·경험)로 이동하고 있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조직 속에서 개인의 업무 방식의 변화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정보 유통이 쉬워지면서 누구나 쉽게 제약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말단 직원이나 간부 직원이나 동일한 정보를 접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개인이 활용하는 도구의 통합성과 역량이 강화되었다. 노트북 하나면 어떤 정보든지 입수 가능하고, 어떤 업무 프로세스도 접근할 수 있고, 통합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직원들이 하던 일을 한 명이 노트북으로 다양한 업무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의 역량 강화는 또한 노동자(직원)의 역량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 보다 적은 인원이 팀(부서)을 이뤄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팀 내에서의 더욱 긴밀한 커뮤니케이션 역량과 협업 역량을 요구한다.

직원의 업무역량 강화, 기업의 애자일 역량, 소비자 요구의 다양화는 기업에게 매트릭스(Matrix) 또는 플랫폼 조직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 기업 내에서 최대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개발과 운영을 통합하고, 지식재산의 역량을 강화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플랫폼 조직, 매트릭스 조직으로 조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제품별로 구분되어 사업을 수행하는 작은 규모의 부서(팀) 조직이 지식재산이라는 공통의 역량 위에서 움직이는 모습이다. 하나의 사업 부서는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제품 기획부터 개발, 운영, 마케팅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직원으로 구성되고, 각 기능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동시에 전문적인 지식센터에 소속되어 경험을 교류하고 기능적인 역량과 해결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자율주행차 시대에 사람들은 차량을 소유하기보다는 빌려 쓰는 형태가 될 것이고, 용도에 따라 다양한 차종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승용 자가용 수요는 줄겠지만 레저, 가족여행, 스포츠, 단거리 이동, 장거리 이동 등 다양한 차종의 수요는 증가할 수 있다. 즉 기업의 부서도 다양한 차종을 담당하는 부서로 분화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면서도 공동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능별 R&D 센터, 지식센터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즉 기업도 플랫폼, 매트릭스 조직으로 변하는 것이다.

기업의 미래
: 작은 기업들로 연결된 플랫폼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Ronald Coase)는 1937년 』이라는 논문에서 기업은 거래 비용 최소화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였다고 보았다. 기업이 필요할 때마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노동력을 시장에서 구매하면 적절한 대상을 찾는 탐색과 거래 비용이 발생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공급자와 노동자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이들 요소들을 기업 내부에 상시적으로 확보해 두려 한다(기업 내부화). 이러한 기업의 거래 비용 절감 형태는 수직적 통합이라는 기업 규모를 키우는 동기가 되었다. 코스의 논문이 발표된 지 30년 이상이 지난 후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올리버 윌리엄슨(Oiver Willamson)은 코스의 논문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자가 외부의 단기 노동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계층 구조에서 고용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무원칙적인 기회주의와 조직 정체의 문제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 계약도 단기 임시직 계약에서 장기 정규직 계약으로 변경되면서, 기업 내부화된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플랫폼의 발달은 자원을 외부 시장에서 조달하는데 필요한 탐색과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있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미국 제조기업에서의 아웃소싱(outsourcing, outside resourcing)은 바로 기업에서 필요한 기능을 외부 시장에서 조달하는데 드는 비용(탐색 및 거래 비용)이 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제조 공장의 개도국 이전으로 기업이 핵심 역량만을 보유하고, IT 기술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에 따른 것이지만, 이는 결국 기업의 핵심적이지 않은 다른 기능을 아웃소싱해도 추가적인 비용이 크지 않고 오히려 이익이 된다는 기업 환경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이는 플랫폼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고용의 형태도 필요할 때 인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식(Gig, 프리랜서 등)으로 바뀌고 있다.

그럼 미래의 기업 형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수렵채집에서 농경사회로, 다시 산업사회로의 발전을 검토할 때, 경제활동 단위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단위들이 모인 범위(연결)는 커졌다. 이런 추세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기업 내에서도 부서(팀)의 규모가 작아지고, 개인의 역량이 커지는 추세가 계속되면 결국 소규모 팀이나 개인이 기업과 같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통적인 기업은 이런 소규모 팀이나 개인들에게 공통의 리소스를 제공해주는 공유재(commons)와 같은 성격으로 변할 것이다. 기업의 결속력은 약해지고 동시에 느슨하게 연결된 단위들은 늘어나는 것이다. 기업은 통제 및 관리에서 협력 및 조정으로 핵심 역량이 바뀌게 된다. 기업은 필요(변화)에 따라 수시로 다양한 인재들을 조합하여 부서를 만들어주고 지원하는 프로젝트 관리 기관으로 성격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경제 활동을 위한 공유재를 제공하는 프로젝트 관리기관은 기업의 성격에서 더 범위가 확장되어 도시 속의 공유재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도시 내에 많은 소규모 기업과 개인이 필요에 따라 모이고 협력하고 과제가 끝나면 해체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업의 성격이 이렇게 변할 때 도시의 경제활동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도시 속에 특정 산업 분야의 클러스터나 플랫폼 생태계의 경쟁력이 도시나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참고 문헌]

조너선 해스컬, 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자본 없는 자본주의. 에코리브르. 2018
김은환. 기업 진화의 비밀. 삼성경제연구소. 2017
이근 외. 디지털 사회2.0. 21세기북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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