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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실업률 10%를 8년만에 4%로, 오바마 경제의 본질은 개방혁신(Open Innovation) - “세계의 인재와 자본이 한국에 와서 아이디어로 돈을 벌게 하라”

윤종록 가천대학교 석좌교수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2019.08.30

‘Startup America’로 연결된 미 통계청장의 한마디

세계경제의 기상도가 폭풍전야를 넘어 폭풍 속으로 들어섰다. 가랑비 예보라면 비닐우산 하나면 되겠지만 폭우와 우박에 곳에 따라 번개가 동반된다면 튼튼한 우산으로도 안된다. 외출을 자제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미국 발 경제 위기 한복판이던 2009년 1월 취임했다. 그 해 12월 미국 실업률은 10%를 기록하며 장기 침체 터널에 진입했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오바마 대통령은 무거운 마음으로 국회 앞에 나서야 했다. 이때 미국 통계청장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미국 경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게 된다. 내용은 “지난 20년간 미국의 역동적인 젊은이들이 40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지만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미국의 젊은이들이 역동적으로 창업에 매진해 40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더라면 실업률이 10%가 아니라 13%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암시였다. 다음날 국회 연설을 앞두고 있던 오바마는 연설 주제를 ‘Startup America’로 바꾸게 된다. 세계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가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창업에 걸림돌이 있다면 더 제거하고 기름을 더 붓겠다는 뜻이었다.

현재 미국의 기존 산업에서는 매월 18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만약 새로운 일자리가 18만 개 이상 창출되지 않으면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일자리 이슈는 인공지능과 스마트팩토리 보편화와 더불어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가 ‘상상력을 혁신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미국형 혁신성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Startup America라는 정책을 통해 민간기업의 체질 개선을 주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직후 ‘Remaking America’라는 슬로건 아래 ‘제조업 발전 국가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3년여의 준비를 거쳐 2012년 ‘제조업 르네상스’를 시작한다. 문제의식은 이랬다. ‘제조업을 잃는다는 것은 공장이나 일자리만을 잃는 것이 아니다. 가전 공장을 아시아에 보낼 때 전기차 배터리로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조업을 잃는다는 것은 과학과 기술, 심지어는 국가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인식에서 시작된 ‘제조업 르네상스’는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들을 다시 미국 국경 안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에서부터 스마트팩토리까지 실로 다양했다.

“후한 M&A로 젊은이 아이디어를 넉넉하게 대접하라”

오바마 정부가 이 ‘제조업 르네상스’와 함께 ‘양날의 날개’로 추진한 것이 ‘Startup America’였다. 간단한 상상력을 거대한 혁신으로 만드는 것을 잘하기 위해 우선 전 세계 젊은이들의 상상력이 미국으로 모여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오바마는 실리콘밸리에서 미국의 대표기업 CEO들을 만나 한 가지 요청을 한다. 후한 M&A를 통해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를 넉넉하게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100달러에 팔겠다는 아이디어를 110달러에 사주라는 것이었다. 애플, 구글을 비롯한 미국의 대기업들이 호응했다. 좋은 사업모델이나 특허가 제안되면 충분한 가격에 M&A를 함으로써 인도, 중국 등 전 세계의 좋은 아이디어가 미국을 향해 러시를 이루게 했다. 오바마의 제안에 화답한 미국의 CEO들은 전 세계에서 국적이나 인종 같은 것을 차별하지 않고 후하게 대접한 결과 이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좋은 도전 아이디어를 갖게 되면 곧바로 미국으로 달려가는 것이 공식화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매월 18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그 자리에 23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들어서고 있고 이를 통해 매년 0.7%씩 8년 연속 실업률을 개선하여 2015년 말 5%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오바마가 임기 8년을 마친 그날 평상의 실업률인 4.6%로 되돌려 놓았다.

정권이 바뀌어 트럼프 대통령이 배타적인 미국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은 디지털 혁신경제의 본산인 실리콘밸리에서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지난 30개월 사이에 또다시 0.3% 실업률을 개선하여 현재 3.6%까지 개선되어 미국 역사상 세 번째 3%대 진입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낙후 공단을 스타트업 허브로 변모시킨 싱가포르

최근 몇 년 간 세계 주요국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미국의 전략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4대 금융허브이자 MICE(기업회의, 관광, 컨벤션, 전시회) 산업으로 유명한 인구 560만의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기존 경제를 떠받드는 이 두 가지 산업에 최근 벤처 창업이 가세했다. 2014년 ‘스마트 네이션(Smart Nation)’을 국가 비전으로 발표하고, 금융 선진국답게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줄 벤처캐피털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매칭 펀드로 미국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의 벤처캐피털의 싱가포르 진출을 유도했다. 또한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무인 자율주행차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자신의 나라가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도록 한두 나라 중 한 곳이다. 다른 한 곳은 핀란드다. 싱가포르는 또 영국에 이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여 금융에 관련된 대부분의 규제를 없애 핀테크 산업이 무한으로 커져 나가고 있다. 1970년대 세워진 낙후된 공단인 에이어 라자 지역을 2011년 스타트업 허브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하여 25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엑셀러레이터 30여 곳을 불러들였다.(에이어 라자는 조선업 불황에 허덕이는 울산이 벤치마킹해야 할 좋은 사례다)

싱가포르 창업 전진기지 ‘블록 71’의 예비 창업자들 (출처: BLOCK71 Global Blog)

미국의 스타트업 아메리카(Startup America), 영국의 테크시티(Tech City UK), 프랑스의 프렌치테크(La French Tech), 싱가포르의 스마트네이션(Smart Nation) 등 주요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스타트업 허브 구축 전략들은 결국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인재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캐피탈 등 혁신자원을 자국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혁신적 창업인재와 자금을 어떻게 불러들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즉 세계는 현재 혁신자원 쟁탈전 중이라 할 수 있다.

이 혁신자원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의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의 주요 구성요소와 범위의 변화로 살펴보면 토지는 물리적인 영토가 아닌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한 디지털 영토로 변하였다. 노동도 하드파워가 강한 노동력 보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진 소프트파워가 강한 노동력이, 그리고 자본 역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벤처캐피탈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벨과 인텔은 연구원들을 왜 10분의 1로 줄였을까

이러한 변화에는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수만 명의 연구원을 자랑하던 벨연구소, 인텔 연구소도 지금은 수 천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 대신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달나라까지라도 가서 모셔오겠다는 개방형 혁신을 통해 혁신의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부 자원을 활용하여 성장하는 경향이 강한 삼성전자가 몇 년 전 자동차 부품 전문 업체로 잘 알려진 하만을 인수한 것은 새로운 성장을 위해 외부 혁신자원을 활용하는 획기적인 전략의 변화였다.

21세기 경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자원이 입력이고 제품이 출력이었던 산업 경제와는 다르다. 좋은 상상력을 투입하여 거대한 혁신을 만들어 내는 소프트파워 기반의 혁신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비록 작더라도 아직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업을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의 반지름을 단 1mm라도 늘리는 과정이다. 개업과 창업은 다르다. 영어로 표현하면 극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개업은 Business Opening, 즉 옆집 음식점이 잘 되니까 나도 차리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의 반지름을 넓히는 작업이 아니다. 창업은 Business Creation, 즉 반지름을 넓히는 작업이다. 그만큼 파이가 넓어진다는 의미다.

야후가 사실상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을 때 갓 태어난 구글은 창업 21년 만에 애플 다음가는 세계 2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구글을 혁신한 결정적인 한방은 구글 이스라엘 연구소에 근무하던 요엘 마르키라는 직원의 간단한 상상력에서 나온 ‘제안 검색(Google Suggest)’ 아이디어였다. 검색어의 첫 글자 하나만 인식되더라도 예상되는 검색어를 미리 제시해주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검색엔진으로 만드는 데는 불과 5개월이면 족했다. 우리나라의 네이버는 구글보다 한 살 많다. 불과 22살인데 현재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대한민국 KT와 SKT를 합한 액수에 해당한다. 그 출발선은 ‘지식인’이라는 간단한 상상력이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100명의 전문가가 10년에 걸쳐 백과사전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바로 그 순간 쓸모없게 되기 십상이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간편하게 지식을 올려서 나누는 ‘지식인’이라는 도구를 개방하여 손안의 도서관을 제공한 것이다. 이로써 네이버는 국민의 검색엔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기업가치도 혁신적으로 높아지게 된 것이다.

1, 2, 3차 산업혁명은 원료를 투입하여 제품을 만드는 경제였다면 4차 산업혁명은 간단한 상상력(Imagination)을 거대한 혁신(Innovation)으로 바꾸는 것이며 디지털 혁신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논리적 도구가 소프트웨어라면 물리적 도구는 3D 프린팅이다. 이를 위해 초중고교에 의무교육을 선포하였고 금년부터 시행 중이다.

“혁신자원엔 국경이 없다”

오바마가 남긴 마법의 숫자 10, 8, 6, 4를 통해 혁신성장의 힌트를 얻어야 할 것이다. 10%의 실업률을 불과 8년 동안 6% 개선하여 4%대에 진입시킨 ‘스타트업 아메리카’ 정책에 이미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우리 경제의 나가야 할 방향이 담겨있다. 그 출발선은 국경 없이 혁신자원을 끌어들여 상생하는 개방형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과 소프트파워의 강화다.

우리는 충분히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장점이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빅바이어(대기업), 동서양을 아우르는 한류,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등은 충분히 글로벌 혁신자원들이 우리나라에서 아이디어와 꿈을 펼치고 싶어 할 매력적인 스타트업 환경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소프트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늦지 않았다. 이제 스타트라인에 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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