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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미래다 / 03 / 인쇄술과 엔진의 사회, 산업사회] “인쇄술이 가져온 지식혁명, 엔진이 가져온 생산혁명” - 전 세계 1인당 평균소득 1800년 동안 50% 증가, 마지막 200년 동안 900% 증가

이명호 SD

2019.01.11

<여시재 e-핸드북>

디지털이 미래다 #03 인쇄술과 엔진의 사회, 산업사회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디지털의 개념과 역사(링크)
2. 변화의 동력, 지식 패러다임 변화(링크)
3. 인쇄술과 엔진의 사회 산업사회

4. 디지털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가
5. 인터넷, 대중의 시대를 열다
6. 지식의 미래, 인공지능 시대
7. 플랫폼 경제의 명암
8. 기업과 노동의 미래
9. 일과 오피스의 미래
10. 에필로그/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산업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사회”

산업사회는 활판 인쇄술이라는 지식기술과 증기기관이라는 엔진 범용기술이 만든 사회, 인쇄술과 엔진에 기반을 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마샬 맥루언이 산업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사회라고 했듯이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은 산업사회가 태동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문자는 오래전에 발명되었지만, 문자의 활용과 글쓰기는 사회활동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국가와 지배계급의 통치를 위한 법률과 행정 문서나 상거래의 장부로 사용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활판 인쇄술은 현대 이전의 다른 어떤 기술도 해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유럽을 혁신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 그리고 그 이후의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의 연원을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에서 찾을 수 있다.1)

구텐베르크는 금속으로 된 낱개 알파벳 자형의 조합으로 활판을 만들고 이를 포도주 양조업자의 포도 압축기(press)에 붙여 균일한 품질의 인쇄물을 찍어내는 방법을 발명했다. 이는 필사보다 생산 속도가 15배 이상 빨라 서적 생산성의 혁명을 불러왔다. 1500년대 중세에 이르기까지 책 1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경 전문가가 두 달 동안 손으로 옮겨적어야 했다. 모든 책은 필사라는 수작업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 오류나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필사본 책 1권의 가격은 현재 가격으로 오백만원에 달했다. 1450년경 활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과 책 속에 담긴 지식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텐베르크보다 80여 년 빠른 1377년에 고려에서 직지심체요철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 하지만 압축기가 부착되지 않은 금속 활판으로 구성되어 인쇄 속도와 생산성의 혁신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크기가 작고 이동이 용이했기 때문에 발명된 지 불과 50년 만인 1500년대 초에는 이미 독일의 60개 도시와 유럽 12개국에 인쇄기가 보급되었다.2)

인쇄술 없었으면 종교혁명도 르네상스도 없었다

인쇄기를 통해 책과 그 속에 담긴 지식은 표준화된 상품이 되었다.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은 성서였다. 국가 권력을 공유하는 소수의 성직자만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성경은 이들 성직자의 말에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해줬다. 그런데 라틴어로 된 성경을 마틴 루터(1483-1546년)가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각국어로 성경이 출판하면서 교회와 성직자들의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독점은 약화되었다. 결국 마틴 루터가 부패한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반박하는 호소문을 구텐베르크 인쇄기로 인쇄하여 독일 전역에 뿌리면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 종교 개혁가들의 주장을 담은 메시지들이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짐과 동시에 종교개혁 진행 상황을 뉴스로 알림으로써 인쇄술은 민중을 깨우치고 결집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유럽을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로 분열시키고 유럽 대륙 전체에 전쟁과 난민 사태를 점화했다.3) 결국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바탕으로 성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종교개혁은 중세 신정 일치라는 권력 기반을 뿌리에서 흔들었다.

마틴 루터

활판 인쇄술은 계속해서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 인쇄기가 보급된 후 불과 몇십 년 만에 연간 책 생산량이 수백 권에서 수백만 권으로 늘었고, 덕분에 낯설고도 새로운 사실과 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널리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일상적인 언어로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풍부한 시각 자료를 추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도제나 상점주인, 직원까지도 쉽게 습득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보편화됐고 글 읽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대중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이렇게 인쇄술은 지식이 공유되는 계층과 지리적 범위를 확대했다. 또한 인쇄술은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를 확장했으며, 콘텐츠 창작 분야에서 대중의 참여를 확대했다. 1500년에서 1530년 사이에 무역상, 점원, 장인, 기타 전문가, 설교자 등 다양한 사람이 약 4,000종에 이르는 팸플릿을 펴냈다. 또한 학자들은 팸플릿을 이용해 신속하게 새로운 발견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거나 경쟁자의 연구 결과를 반박할 수 있었다.4)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부터 생물학, 공학, 항해술, 의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늘어나고 지식이 발전하고 전파되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와 같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인류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풍부한 정보, 저렴한 유통, 급진적인 다양성과 광범위한 참여라는 새로운 표준을 정립했다.5) 나아가 중세시대 가족과 공동체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을 호기심과 욕망을 추구하는 근대적인 개인으로 탄생시켰다.

15세기 베네치아, 더 많은 혁신 위해 특허법 도입

인쇄술에 의해 촉발된 발견과 발명, 학문과 과학의 발전이 경제적인 번영으로 이어지기에는 시간과 제도가 필요했다. 특히 지식과 아이디어에 재산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특허제도는 인쇄술과 산업혁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1474년에 베네치아는 세계 최초로 공식적인 특허법안을 제정했다. 당시 법안 전문에는 “뛰어난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이 발견한 작품이나 기기를 보호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마련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천재성을 발휘하고,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유용성이 뛰어난 기기를 제작할 것이다”라고 특허법의 목적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16세기 중반에는 유럽 전역에 특허법이 도입되었다.6) 특허권을 비롯하여 저작권, 상표 등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제도들이 발전하였다. 특히 영국은 이러한 변화의 토대를 놓았는데, 1623년에 상당한 양의 특허를 발급하는 첫 국가가 되었고, 비싼 수수료를 받고 ‘새로운 발명 프로젝트’를 위협(Risk)으로부터 보호했다. 이후 미국의 특허법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특허를 보호했으며 그 결과 특허 출원이 급증했다.7)

또한 아이디어와 발명이 경제적인 번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動力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생산에 필요한 동력에 근본적인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가축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출생과 성장이라는 생물학적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단 기간에 노동력을 확충하는 것은 불가능 하였다. 인간과 가축 이외에 풍력과 수력을 이용하여 풍차와 수차로 동력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리적, 자연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바람이 잘 부는 지역, 강이나 수로가 있는 지역에서만 동력을 얻을 수 있었고 24시간 안정적으로 균일하게 동력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원재료와 동력이라는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지역은 더더욱 드물었다.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이와 같이 노동력의 제약을 일시에 해방시켰다. 증기기관은 1705년에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뉴커먼이 발명하였지만 제임스 와트가 개량 혁신했다. 1769년 특허를 얻은 증기기관이 1776년 상업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산업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와트의 특허를 보호하기 위하여 의회법으로 특허 기간을 1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해주었다.

와트 증기기관

19세기 담배 기계 한 대가 하루 12만 개비 생산

초기의 증기기관은 연료인 석탄이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되었지만, 증기기관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차가 등장하면서 석탄이 생산되지 않는 지역에도 증기기관을 설치할 수 있었다. 노동자가 많은 지역, 원료가 많은 지역, 소비자가 많은 지역이면 어디나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증기기관은 최초로 인간과 가축의 육체적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음과 동시에 빠른 시일 내에 제작하여 총 동력량을 늘릴 수 있는 범용성을 가진 동력기관이며 기술이었다.

초기에 증기기관은 집채만 했으며, 주로 공장 한 곳에 한 대가 설치되어 공장 안에 있는 모든 기계의 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전기로 동력이 바뀌며 각각의 기계에 필요한 동력(모터)을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바뀌며 작업 공정은 더욱 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수작업 노동은 노동자 자신이 주도적으로 노동을 하는 숙련 노동 방식이었으나 동력기관에 연결된 컨베이어 벨트 작업대는 노동자들이 분업화된 동일한 노동을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추어 반복하는 비숙련 노동으로 바꾸었다.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기법과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대량생산 시스템이라는 2차 산업혁명을 촉발시켰으며, 기술혁명의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상징이 되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미국의 철도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원료와 생산, 소비의 밸류체인은 철도망으로 통합되었고, 대량생산에 적합한 대규모 공장과 대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전신과 전화 등 통신 시설의 발달은 더 큰 규모의 기업, 더 넓은 범위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의 등장을 가져왔다.

한편 연속 공정 기계는 제품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1881년에 제임스 본색이 특허를 받은 권련(담배) 제조 기계는 한 대의 기계가 하루에 12만 개비를 생산했다. 당시 숙련된 수작업 노동자가 하루에 3,000개비를 만드는 수준이었다.8) 1800년부터 지난 200여 년 만에 인류는 인간의 2만 년 역사 전체보다 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다. 서기 1년에 약 2억3천만 명이었던 인구가 1800년에는 약 9억 명으로 증가하였을 뿐이지만, 1800년부터 2000년까지 2세기 만에 인구는 약 61억 명으로 약 7배 증가하였다. 1인당 평균소득은 서기 1년 약 400달러에서 1800년 약 600달러로 50% 증가한 것에 불과하였지만, 1820년 약 650달러에서 2000년 약 5,800달러로 약 9배 증가하였다. 인구의 증가와 1인당 산출량의 증가를 합쳐서 세계 경제활동은 1820년에서 2000년 사이 180년 동안 약 49배 증가하였다.9) 이와 같이 산업혁명은 대중들이 저렴하게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중세시대에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의 생활을 하던 대중들이 귀족들이나 누릴 수 있던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산업혁명은 최초로 대중이 상업적 상품의 주 생산자이며 소비자인 대번영의 시대를 가져왔다.

산업 사회의 범용기술은 증기기관, 엔진(내연기관, 모터)이다. 엔진 기술은 이후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기본 기술이 되고 있다. 생산 기계는 물론 소비 제품인 자동차, 세탁기, CD 음악 플레이어까지 모두 엔진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엔진 기술의 성능을 측정하는 것은 회전력이다. 한 번의 회전으로 얼마나 많은 힘을 내는가와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가로 엔진의 성능을 측정한다. 엔진은 움직이는 기술로 공간의 확장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생산하여 공간을 채우고, 빠르게 멀리까지 도달하면서 공간을 확대해 준다. 기차와 자동차는 원료 생산지와 소비지라는 공간의 확대를 가져왔다. 국민 국가라는 지역적 규모가 경제 공동체로 통합되는 기반을 제공했다. 그리고 더 많은 원료와 소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경쟁이 식민지 쟁탈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철도와 도로가 공간을 확장, 도시는 창조적 영감 제공

공간의 확장, 생산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산업사회는 분업과 분리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분업을 기반으로 하는 대량생산 시스템과 교통 시스템은 분리를 가속화시켰다. 직장(대규모 공단)과 주거지가 분리되고, 지역과 지역을 잇는 철도와 도로가 확장되고 기차와 자동차는 빨라지면서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출퇴근의 상대적인 시간이 줄어들면서 절대적인 거리는 더욱 길어졌다. 생산과 소비의 분리도 커졌다. 이전의 농업사회는 생산물이 인근 지역에서 소비가 되었는데 이제는 원료와 생산, 소비가 국가의 범위를 넘는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생산과 소비의 거리 만큼 생산과 소비는 익명화되면서 상호 필요에 의한 생산과 교환에서 상품으로서의 생산과 소비로 바뀌었다. 물론 익명화된 상품, 표준화된 상품이 기업의 명성과 브랜드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29년 대공황 전야 뉴욕

산업사회는 아울러 공동체와 개인의 분리를 가속화시켰다. 마을 공동체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던 개인은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사업가, 전문가, 노동자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새로운 개인으로 재탄생했다. 공동체의 보호에서 벗어나 개인은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도시는 다양한 지역과 출신의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게 하였고, 다양한 경험과 아이디어가 교류되면서 개인들에게 새로운 창조적 영감을 제공했다. 익명의 개인들은 도시라는 창조의 엔진 속에서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으로 도시의 역동성을 폭발시켰다. 도시는 더욱 산업과 경제의 중심이 되고,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점점 대도시로 규모를 키워갔다. 이와 같이 참여와 도전 정신, 자기표현, 개인의 성장과 같은 번영하는 개인의 삶은 근대 국가의 핵심이 되었다. 개인의 독창적인 지식과 정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의성에서 비롯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근대 경제의 활력을 제공하였다.10)

산업화와 더불어 크고 빠른 것이 좋은 것이 되었다. 공장은 더 커지고 빌딩은 더 높아졌다. 거대한 기계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연과 사회를 기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라는 시스템이 작동하듯이 사회는 계층구조를 반영하는 관료제를 받아들였다. 관료제는 더욱 효율적으로 조직을 관리하면서 기업과 국가 통치의 성공적인 모델로 정착하였다. 상업적 생산은 소비와 물질 만능을 부추겼다. 가전제품은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을 가져왔으며, 더 많은 상품의 구매와 소비를 이끌었다. 중세사회에서는 태생적으로 신분이 결정되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소유와 소비가 신분을 표시했다. 그 생산과 소비라는 소유의 정점에 자본가와 기업가가 있었다. 산업사회는 자본가와 기업가가 이룩하고 주인이 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기업가는 혁신을 주도하고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여 대중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이는 또한 전문가 집단의 성장을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학문과 과학기술의 발전, 법률과 의료 등 전문적인 서비스의 제공, 통치의 대리인으로 성장했다.

산업사회가 정착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욕망하는 개인의 소비와 기업가의 생산 활동을 보장하고 촉진시켜야 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귀족과 왕족 또는 신정과 봉건 세력의 통치권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자유와 평등은 산업사회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소유권은 생산과 소비의 양 측면에서 한정된 자원을 확보(독점)하고 자본 축적을 통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 법치는 자본과 지식 등의 생산수단을 보호하고 공정 경쟁을 통하여 지속적인 혁신이 일어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와 같은 가치와 제도는 산업사회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다.

500년 만의 변화, 엔진에서 디지털로

그러나 산업사회의 풍요의 이면에는 환경과 공동체의 파괴가 있었다.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스템에서 생산하고 소비할수록 자원은 고갈되고 자연환경은 파괴되었다. 특히 산업사회의 동력인 엔진에 제공되는 석탄과 석유 등의 원료 사용의 급증은 환경과 대기오염과 온난화로 이어지면서 자연재해 등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는 생물의 다양성 파괴라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위협만이 아니라 인류라는 생명체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엔진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가 준 풍요와 지속가능성의 위기 상황에서 디지털이라는 범용기술에 기반을 둔 디지털사회가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사회는 인류에게 또다시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인가? 이는 산업사회가 만든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디지털사회가 극복할 수 있는가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1) 숀 두브라박(Shawn DuBravac), <디지털은 운명이다(Digital Destiny)>, 아름드리미디어, 2017
2) 한국언론학회 엮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은유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3)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발견의 시대>, p. 24, 21세기북스, 2018
4)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발견의 시대>, p. 66, 21세기북스, 2018
5)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발견의 시대>, p. 33, 21세기북스, 2018
6)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발견의 시대>, p. 241, 21세기북스, 2018
7) 에드먼드 펠프스, <대번영의 조건>, p. 148, 열린책들, 2016
8) 앨프리드 챈들러, <보이는 손 1>,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9) 제프리. D삭스, 빈곤의 종말, p. 54~56, 21세기북스, 2008
10) 에드먼드 펠프스, <대번영의 조건>, p. 6, 열린책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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