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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인사이트] 재생에너지 거부하면 ‘기업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 RE100(재생 100%), 글로벌 무역의 ‘뉴 노멀’로 급부상

박승용 (효성 중공업연구소장)

2018.12.14

올해 삼성전자 영국 매장 앞에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포스터를 내걸었다. 뉴욕 매장에는 태양광 패널을 장착한 트럭을 세웠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작년 말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같은 시위를 벌였다. LG화학과 삼성SDI는 독일 BMW에게 전기차 배터리 납품을 하려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제품을 거래조건으로 요구받았다. LG화학은 폴란드 공장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했지만 결국 거래가 무산되었다. 삼성SDI는 해외 공장에서 사용하는 재생에너지로 대응하였다고 알려졌다. SK하이닉스, 네이버 등도 해외 고객이나 NGO들에게 재생에너지 활용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독일 등 세계 곳곳 사무실 앞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선언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그린피스 홈페이지)

RE100은 1980~90년대의 ISO에 해당

우리 사회 풍토에서는 생소하지만 기업들이 바로 이 순간 글로벌 거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를 생산에 사용하느냐 여부가 거래 성사 여부까지 결정하는 시대가 이미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까지 ‘강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문제일 뿐이다. 품질기준인 ISO는 1980년대에 소비자들에게 불량품을 팔지 말자는 차원의 캠페인 차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ISO 인증 여부가 그 자체로 ‘무역 조건’이 되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여야 한다는 ‘RE100’이 머지않은 시기에 ‘ISO’의 지위가 될 것이다.

기업들을 향한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는 2009년 그린피스의 ‘쿨 IT(Cool IT)’ 캠페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린피스는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실태를 대중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사무실 앞에서 지속적 시위를 벌였다. 기후변화에 개별 기업들 차원에서도 행동하라는 압박이었다. 그린피스는 2012년 ‘How Clean is Your Cloud?’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애플에 ‘Dirty Cloud’로 분류했다. 오명을 뒤집어쓴 애플은 본사 차원에서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캠페인은 그린피스를 넘어 여러 국제 환경단체들로 확산됐고 캠페인의 내용도 다양해졌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RE100 (Renewable Energy 100%)’이다. RE100은 2014년 다국적 비영리단체인 ‘The Climate Group’이 ‘Carbon Disclosure Project’와 파트너십을 맺고 뉴욕 기후주간(Climate Week)에서 최초로 소개했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라는 RE100은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구글, 애플, GM, IKEA 등이 참여를 선언했다. 참여 기업은 2015년 87개사였으나 현재는 155개 기업(2018년 11월 기준)으로 약 2배 늘었다. 지역별로는 유럽(77개)과 미국(53개) 소재의 기업 비중이 높으나, 2017년에 신규로 일본(Ricoh 등 3개 기업)과 싱가포르(DBS Bank)가 가입하는 등 아시아(22개) 기업의 참여가 본격화되고 있다.

2014~15년 초기 기업들의 참여 동기는 ‘압력에 대한 방어’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경제성에 기반한 ‘소싱 전략’과 밀접하게 결합되어가고 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2018년 1월)에서 RE100 참여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 재생에너지 경제성 향상을 참여 이유로 꼽았다.

블룸버그 “태양광 가격 8년 동안 72% 하락”

재생에너지는 생산 단가가 급속도로 하락 중이다. Bloomberg 추산에 따르면 대표적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가격이 2017년에 2009년 대비 72% 하락했다. 미국의 경우 2017년에 태양광 발전단가(MWh 기준)가 54달러이며, 육상풍력은 51달러를 기록했다. 화석연료 발전단가는 석탄 66달러와 가스 49달러이며, 원자력은 174달러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가격 경쟁력은 이미 기존 발전원에 근접했으며, 가격 하락 추세를 고려하면 추월은 시간문제다. 또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 같이 국제 정세에 따른 가격 변동이나 고갈 위험도 없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미국 통신사 T-mobile 같은 경우는 에너지 전환으로 향후 15년간 1억 달러의 에너지 비용 감축이 가능하다고 예상하였다.

재생에너지 가격하락으로 ‘재생에너지 100%’ 목표 달성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RE100의 이행 방법은 크게 보면 재생에너지를 직접 공급받거나 REC (Renewable Energy Certificate)와 같은 인증서를 구매하는 간접 확보 방식으로 구분된다. 사업 초기인 2015년에는 인증서 구매 비중이 59%로 높아, 기업들이 돈으로 RE100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전력 회사와 재생에너지 장기 공급계약을 맺는 PPA(Power Purchase Agreement) 비중이 2015년 3.3%에서 2017년 16%까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점진적 에너지 전환을 통해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받아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업사이드(Upside)’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 RE100 기업 목록

애플 구글 등,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서약서’ 요구

자신감을 얻은 RE100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자사의 공급망으로 확장하는 시도를 추진 중이다. RE100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는 1/3 이상의 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게 재생에너지 활용에 동참을 촉구한다고 답했다. 애플은 중국 협력업체들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3억 달러를 투자하는 ‘납품업체 재생에너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애플은 2018년에 협력업체 중 23개 업체에게 재생에너지 100% 전환 약속을 받았다고도 발표했다.

RE100의 여파는 비단 해외만이 아닌,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에게도 미치기 시작하였다. 최근 국회 입법검토서에서 나타났듯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 SDI, LG 화학 등이 이미 글로벌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한 제품의 납품을 요구 받고 있음이 밝혀졌다.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은 이제 글로벌 무역 규범에서 ‘뉴 노멀(New Normal)’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RE100은 거스를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준비는 너무 느리다. 사회적 관심도도 낮다. 이 상태로 몇 년만 더 지나면 국제 거래에서 우리 기업들이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RE100은 1980~90년대 ISO 처럼 이 시대의 ‘룰 메이커’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RE100의 주체인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최근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LG전자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현재는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 계획을 위주로 수립하는 초기 단계를 진행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들과 같이 에너지 목표 및 에너지믹스 방향성을 수립하고, 효과적 에너지 전환을 위해 조달 방식을 넘어 에너지 효율 향상 방안 등 다양한 전략들을 조합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업의 주도적 역할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

국내 전력시장 한전 독점구조가 근본적 문제

삼성전자가 올해 6월 발표한 재생에너지 100% 달성 계획에서 적용 대상을 인프라가 잘 갖춰진 미국, 유럽, 중국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고, 국내 사업장은 태양광 설비 확충 방안만을 마련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는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여 기업의 의지만으로는 이행이 쉽지 않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저변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한다면, 기업도 재생에너지 투자에 동참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하고 국가의 재정 부담도 완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기업의 재생에너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의 전력시장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국내는 한전을 통해서만 전력을 구매하는 구조이며, 사용된 전력이 재생에너지에서 공급되었는지 입증이 불가능하다. 민간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선별하여 직접 구매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국회에서 한국형 그린인증서 제도를 도입을 추진하고는 있으나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더불어 초기 RE100 기업들이 주로 활용한 REC 등의 인증서 사용방법도 현 전력시장 여건상 적용하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대규모(500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가 아닌 경우 원천적으로 REC의 발급이나 구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력시장에서 기업이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도록 유인하는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국내도 최근 RE100 기업들과 같이 재생에너지 확대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제도가 마련되어도 국내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낮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업들에게 비용을 가중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태양광 가격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과 비교해 아직 기술수준이 낮고 행정적 비용 등이 높아 발전 단가가 75%나 비싼 실정이다. 정부에서 적극적인 R&D 분야 투자를 통해 재생에너지 기술 및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국내 에너지 산업의 육성이 자연스럽게 기업들의 RE 100 가입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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