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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 공원까지 30분 對 6~7분, 서울시민과 뉴요커의 차이

이관호 (SD)

2018.09.13

이번 주에 고른 책은 방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건축사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입니다. 89p를 보면 재미있는 사진 두 장이 나옵니다. 하나는 고시원의 방이고 다른 하나는 교도소의 독방인데요. 비슷함을 넘어서 교도소가 더 나아 보이기까지 해서 수도 서울에서 산다는 것의 음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89p

그런데 공간의 부족함만 가지고 요즘 도시인들의 주거 트렌드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올해 1월 전셋집 이사를 계획하면서 이곳저곳 빌라를 둘러보았습니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20평 남짓한 빌라들은 다들 화장실이 두 개씩이더군요.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 책에 따르면 화장실은 ‘사적 공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사적 공간을 끊임없이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지어지는 고급 주택들은 방마다 따로 화장실과 샤워실을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사적 공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1인 가구가 계속 늘어가고 있는데 2020년에는 약 30%에 다다를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과거에도 집은 작았지만 대신 마당 또는 골목길 같은 외부공간을 이웃들과 공유하면서 살았다고요. 그래서 답답하거나 외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웃은 더 이상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불과 수십 년만의 변화입니다. 공유공간은 최대치가 가족 단위로 축소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인구의 60%는 골목길도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4인 가구가 주류였고 중산층은 대략 30평대 아파트에 살다보니, 거실 및 부엌 같은 가족 공간까지 포함해 1인당 약 20평가량을 사용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8평 이하의 원룸에서 홀로 거주하는 이들이 늘다 보니 예전보다 이용공간이 약 1/3 로 줄어들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원룸에 갇혀 살고 대신 SNS를 이용해서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겁니다. 공간이 없다보니 편하게 앉아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식사비 만큼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고 카페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혹시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보유한 국가라는 사실을요.

그런데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뉴요커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그다지 비참해보이지 않는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뉴욕은 센트럴파크나 브라이언트파크 등 각종 공원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도시라는 겁니다. 뉴요커들은 걸어서 공원들을 오가면서 삶의 여유를 즐긴다는 것이죠. 저자는 뉴욕과 비교해서 서울의 공원들이 서로 너무 떨어져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이를테면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서 브라이언트파크까지는 걸어서 6분이면 가고, 또 거기서 7분을 더 걸으면 32번가 근처의 헤럴드 스퀘어가 나오고, 또 거기서 몇 분만 더 걸으면 하이라인파크나 유니언스퀘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서울의 공원들은 너무 흩어져 있습니다. 서울의 도심 15km 내에 유명공원이 9개가 있는데 이들 공원 간 평균거리는 약 4km이고 공원 간 보행자 평균 이동시간은 대략 1시간이 넘습니다. 다시 말해 걸어서 공원 간 이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뉴욕과 서울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보행자 중심의 공원 네트워크. 집에서 걸어 나와 금방 공원에 다다를 수 있고 또 조금 더 걸으면 다른 공원에 도달하는 도시. 이야기만 들어도 답답한 가슴이 열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한편, 현재 서울 1인 청년 가구의 37%가 이른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2018.6.28. 한국경제신문). 지옥고는 원래는 고시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점차 반지하방이나 옥탑방까지 통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충분한 사적 공간을 제공해줄 수 없다면, 공원 네트워크라도 구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시원이 답답해서 나갔는데 나가서도 계속 답답하다면, 정말 행복은 멀어지는 거겠죠.

물론 짧은 시일 내에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런 비전을 시야에 넣고 있느냐 아니냐가 미래의 모습을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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