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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러시아 농업의 비상(飛上): ‘미운 오리새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원용 (인천대)

2018.02.27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농업 정책 (3) 러시아 - 러시아 농업의 비상(飛上): ‘미운 오리새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저자: 성원용 (인천대)
No.2017-070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농업 정책’입니다. 각국이 중시하는 농업정책의 우선 수위와 주요 현안에 대해 살펴봅니다. 빈곤, 식량 수급, 식품안전, 고부가가치 농업 개발 등 주요 이슈들에 대한 각국의 입장 중 주목할 만한 정책 및 논의를 알아볼 것입니다. 또한 신성장동력으로써 농업 육성을 둘러싼 각국의 정책들을 비교하고자 합니다.

불황의 역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EU의 경제제재와 유가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왔고, 최근 몇 년간 경제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2017년 상반기에 GDP가 1.7% 성장하였고, 하반기에도 이러한 성장기조가 이어질 것으로는 예측되지만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 경제기반의 취약성은 확실한 데 반해 대내외 상황은 불명확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다. 러시아 경제 전반의 ‘침체’상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해가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그렇다. 한마디로 이것은 ‘불황의 역설’이다. 과연 무엇이 러시아 농업에 그토록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일까? 도대체 러시아 농업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미운 오리새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소비에트 이래로 러시아에서 농업은 정부재정을 갉아먹는 ‘골칫덩어리’로 인식되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제정러시아 시기 최대 수출품목이 곡물이었고, 1880년대 미국이 유럽 곡물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을 먹여 살린 국가는 러시아였다는 자부심이 존재한다. 농경지가 세계의 10%를 넘는 영토의 규모를 고려할 때 러시아의 거대한 ‘농업 잠재력’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물론 역사적 실재와의 괴리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對유럽 농산물 수출규모가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정러시아 시기 곡물 수출은 국내수요를 충당하고도 남은 잉여농산물을 수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 대다수 농민의 빈곤과 궁핍화를 기반으로 국가가 인위적인 수요 억제와 ‘징발’ 과정을 통해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만일 러시아에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농업’이 러시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그 논거가 취약한 것이다.

소비에트 시기의 농업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1920~30년대 농촌에서는 대량 기아와 기근 사태가 발생했고, 직접생산자인 농민들은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소외되었으며, 적색개발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후 콜호즈(집단농장)와 소포즈(국영농장)는 낭비와 비효율, 낮은 노동생산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용어가 되었다.

한편, 1990년대 초 소연방 해체 이후 급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콜호즈와 소포즈를 해체하고 자영농을 육성하려는 농업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급진적인 농업개혁은 대다수 농민의 빈곤을 초래하였고, 농업생산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수입농산물 의존도가 급증함으로써 심각한 식량안보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때문에 러시아 농업 부문이 보여주는 최근의 뚜렷한 성과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년도인 2007년 실적과 비교할 때 2016년 러시아의 GDP는 8% 증가했다. 이를 산업별로 분리해서 살펴보면 공업은 5% 성장한 반면에 농업은 기록적인 35%의 성장을 시현한 것으로 나타난다. 러시아 학술원 회원인 A. G. 아간베기얀 박사는 지난 10여년에 걸쳐 러시아 농업 부문으로 이룬 GDP 성장은 4~5% 이고, 사실상 러시아 경제성장의 절반은 농업 덕분에 가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농업이야말로 현대 러시아 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산업이자 최근 경제위기로부터 그 어떤 심각한 부정적 영향도 받지 않는 유일한 산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세계 최대 밀수출국으로 부상

러시아 농업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사건은 2016년 러시아가 드디어 세계 최대 밀수출국의 정상 자리를 탈환했다는 것이다. 밀수출에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이토록 급격하게 변화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동시에 작동했다.

우선은 러시아의 기후조건이 매우 이상적이었다. 반면에 유럽의 경우에는 최악이었다. 50년 만에 찾아온, 평년의 약 두 배를 넘는 기록적인 강수량이 프랑스 곡물의 상품성을 떨어드렸고, 독일 남부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밀 파종면적의 증가가 둔화되었다. 아래 <그림 1>과 <그림 2>를 보면 작황 변화에 따라 러시아의 밀수출도 크게 변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성과의 원인을 모두 이상적인 기후조건에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8년 전부터 러시아의 밀수출은 캐나다에 육박하고 있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위기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된 루블화 평가절하도 곡물 수출 증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 유로화 등 외환결재체계에 있는 국제곡물시장에서 루블화 가치하락 이후 러시아 곡물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제고된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6년 러시아의 밀수출은 2천550만 톤으로 이것은 세계시장의 16%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여기에서 19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밀 생산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30%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순 비교하더라도 아직은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폭발적인 발전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러시아 농업의 파국적인 사태가 발생했던 1990년대와 비교한다면 분명 최근의 성과는 놀라운 진보인 것만은 틀림없다.

러시아 농업 부문의 재정구조도 개선되었다. 적자기업의 비중도 2010년 29.7%에서 2015년 18.7%로 하락했고(러시아 평균 28.1%), 전체 농업 부문의 재무성과도 2010년 당기순이익이 670억 루블에서 2015년 2,720억 루블로 급증했다. 1990년대 체제전환기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러시아 농업 부문이 밀레니엄시대에 들어서 다시금 황금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러시아 농업 부문에서 무슨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림 1] 세계 주요 국가의 밀생산 2009~2017년 (단위: 백만톤)
(출처: Foreign Agricultural Service, USDA.)
[그림 2] 세계 주요 국가의 밀수출 2009~2017년 (단위: 백만톤)
(출처: Foreign Agricultural Service, USDA.)

농업부문의 변화와 성과

일단 경제주체별로 농업생산조직의 위상과 역할 변화를 살펴보자. 러시아의 전체 농산물 생산에서 농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으며, 2007~16년간 생산 규모는 1.5배 증가했다. 자영농의 생산도 2배나 증가하는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이들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지 않는다. 같은 기간 소위 텃밭 등을 일구는 부업농의 농산물 생산 증대는 10%를 넘지 못했다. 1990년대 체제전환 혼란기에 ‘생존경제’를 떠받치던 부업농의 역할이 축소되고 대규모 기계화 영농에 기반을 둔 농기업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밀 생산 및 수출 증대와 함께 축산 부문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가금류의 생산이 거의 2배나 증가한 것이다. 곡물과 야채는 1.5배, 콩은 4배, 그리고 사탕무, 종자, 해바라기씨, 감자, 돼지고기 등은 25~30%대의 증대 실적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낙농 분야에서 우유 생산은 2007년 3,200만톤에서 2016년 3,070만톤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러시아 농업생산의 전반적인 개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농산물의 수입도 감소했다. 식량 및 농업원료의 수입이 2007년에는 276억 달러(전체 수입의 13.6%)였고, 2013년에는 433억 달러까지 증가했다가 2016년에는 다시 240억 달러로 떨어졌다. 국내 농산물의 생산 증대 덕분에 식료품 수입도 감소하였고, 그 결과 우유와 유제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서 식량안보독트린(2010. 2. 1)이 설정한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게 되었다.

[그림 3] 러시아 농식품 자급률 전망 (출처: European Commission, EU Agricultural Outlook:
Prospects for EU agricultural markets and income 2015-25, December 2015, p. 11.)

앞서 언급한대로 러시아 농업의 성장과 발전은 이를 견인하고 있는 대규모 농기업의 성과가 크게 개선된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별한 상황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첫째는 2006년 최저 수준이었던 농산물 가격의 상승세가 계속되었다. 2008~2016년간 농산물의 생산자가격은 61% 상승했다. 가격 상승이 생산 증대로 표출된 측면이 존재한다. 둘째,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맞선 EU와 미국 농산물 및 식료품 수입 금지 조치가 긍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특히 농산물과 식료품 등에서 수입대체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수입대체 기업에 대한 특혜 및 전략적 핵심기업에 대한 융자금 지원 등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농업생산 증대의 주요 동력으로서 농기업과 자영농의 역할이 증대된 반면에 2000~05년간 전체 농업생산 중 50%까지 그 위상이 증대되었던 부업농이 다시 40% 이하 수준으로 하락했다. 기계화 영농의 물적, 기술적 기반을 갖춘 경제주체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농업생산의 증대가 뒤따른 것이다. 한편 최근 5년간 경제 침체와 불황 속에서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한 농촌 주민들이 부업농 생산을 증대하고, 생산된 농산물의 유통을 촉진한 측면도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

우리가 최근 러시아 농업의 급속한 성장, 특히 밀 생산의 증가 및 수출 증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이 단지 상황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경작면적의 확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경작면적이 2011~2015년간 약 10% 미만 수준에서 확대된 반면, 생산량이 30% 이상으로 증대되었다는 것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표현하는 생산성 지표가 현저하게 개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최근 5년간 농업 부문의 투자 비중은 하락했다. 투자액은 고작 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고정자본 갱신투자율의 경우에도 경제 전체가 4.3%인 반면, 농업은 4%에 머물렀다. 이처럼 농업 부문에 대한 자본투자가 저조한 상황에서도 농업생산의 현저한 증대가 발생했다면, 이것은 투자 효율성의 향상을 의미한다. 러시아 경제 전문가는 투자 효율성이 약 20% 이상 증가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농업 부문의 노동생산성 향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러시아의 농업인구는 2007~15년간 10% 감소했지만(2007년 692만5천명, 2015년 626만4천명), 생산은 35% 증가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이 49% 증가했다.

러시아의 ‘농업혁명’은 계속될 것인가?

현재 러시아 농업 부문의 중대한 전략적 과제 중 하나는 역시 농산물 수출 증대이다. 단지 곡물 수출 증대만이 아니라 가금류, 돼지고기, 사탕무우 등 기타 농산물 생산을 증대함으로써 수입은 지속적으로 줄이고, 수출은 늘려나간다는 전략이다. 2025년에 이르면 농산물 수출은 400~500억 달러까지 확대되고, 수입은 100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의 일부 논자들은 對중국 곡물 및 곡물제품 수출길이 열리면 러시아의 밀수출에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곡물 대량 생산국인 중국은 1976년 곡물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현재 러-중 양자관계 발전 과정에서 이 금지 조항을 해제하는 사안을 논의하고 있다. 만일 러시아의 對중국 곡물 수출이 가능해지면 알타이,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지역이 중국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곡물 공급 루트로 부각될 전망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곡물제품(밀가루, 그로트, 마카로니 제품 등)의 대중국 수출도 합의할 것인지가 아직 쟁점사항으로 남아 있지만, 공급 루트의 다각화 현재 러시아 곡물 수출의 약 80%는 노보라시스크항을 통해 진행된다.

지난 수년간 러시아의 농업 성장은 루블화 평가절하, 금수조치, 수입가격의 상승이라는 특별한 조건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해소되고, 경제가 정상단계로 진입하면 추가이윤의 실현을 담보할 수 있었던 성장 요인들은 소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러시아 당국도 농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장기 과제를 추진해가고 있다. 재배면적의 확대, 현대적 기술과 장비의 활용, 화학비료의 사용 증가가 향후 수년간 곡물 생산 증대를 위한 핵심과제로 설정되었다.

한편, 경지면적의 확대가 원만하게 이루어져도 농업인력 부족 문제는 영원한 숙제이다. 특히 시베리아 극동과 같이 인구부족과 인구유출 문제를 격고 있는 지역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낙후된 물류 인프라의 개선 및 확충 등 대규모 자본투자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 과제 중 하나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생산자들의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 개선, 관료주의 극복, 농촌지역의 인프라, 교육, 연구 및 생활여건 개선과 농업의 현대화 및 수출입 제한 완화 등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과제의 총체적인 결과는 생산성 증대로 귀결될 것이다. 최근 USDA 보고서는 러시아의 종자 및 비료 등 생산비의 증가와 생산기술의 부족, 재정적 제약 등이 생산성 증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러시아는 이미 금수조치 시행 이전부터 다양한 보호무역조치를 통해 국내 생산 및 자급률 제고를 도모해왔다. 러시아 정부의 수입대체전략은 이미 농업 부문에서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농업 투입재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종자 생산 및 육종 개발에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의 농식품 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쇠고기, 돼지고기 등 축산물과 우유·유제품의 낮은 자급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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