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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러시아의 신안보이슈

장덕준 (국민대)

2017.12.05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신안보이슈 (4) 러시아 - 러시아의 신안보이슈
저자: 장덕준 (국민대)
No.2017-065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군축을 포함한 신안보이슈’입니다. 먼저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국방전략의 우선순위를 살펴봅니다. 이를 위해 각국의 국방전략과 무기 감축 및 첨단 무기 체제 도입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테러, 사이버 안보, 우주 안보와 같은 비전통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전략도 다룹니다.

변화하는 안보환경과 러시아의 새로운 군사.안보 전략

최근 수년간 전세계적으로 안보환경이 빠르게 변화해왔다. 핵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과 국제테러의 빈번한 발생은 여전히 국제안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남아 있다. 이에 더해 컴퓨터 해킹과 가짜뉴스의 전파 등을 통한 정보전과 선전선동 기술은 인명을 살상하지 않고서도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안보위협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드론, 전투 로봇 등 신무기의 개발은 전통적인 전쟁 개념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갈 수도 있고 적과 아군이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모른 채 분쟁의 한 가운데로 내몰릴 수도 있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최근 러시아연방이 내놓은 새로운 안보전략과 군사독트린에 나타난 러시아연방의 대내외 안보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입각한 군사.안보 전략의 방향을 살펴본다. 특히 급변하는 안보환경 속에서 러시아가 인식하고 있는 군사.안보 상의 도전과 위협요소들을 짚어 보고, 이러한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수년간 러시아가 추진해오고 있는 국방개혁의 주요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이어서 최근 수년 간 러시아의 주요 군사전략 개념으로 떠오른 ‘하이브리드 전쟁’의 개념과 그것의 적용 사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또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확산과 같은 새로운 안보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기존 무기의 현대화와 신무기 체제의 개발 등 안보역량 및 전력강화를 위한 러시아의 행보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새로운 안보이슈와 그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주는 함의를 간략히 짚어본다.

가장 최근에 나온 러시아의 안보개념과 그 전략은 지난 2014년 12월에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연방 군사독트린>(이하 <독트린>)과 2015년 12월에 공표된 <러시아연방 국가안보전략>(이하 <전략>)이다. <독트린>은 러시아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위협으로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팽창과 같은 지정학적인 변화를 들고 있다. 또한, <독트린>은 전략미사일 방어시스템의 구축과 배치 및 우주공간에서의 무기 배치는 글로벌 안정을 해치고 핵미사일 균형을 깨트리는 것으로서 러시아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요소로 적시하고 있다. 더불어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두 문건 모두 나토의 팽창과 미국 미사일방어체계(BMD)의 유럽배치 등 “외부적”인 군사위협 뿐만 아니라 러시아 사회에 해로운 정보와 가치를 주입하고 시민사회에 침투해 정치 및 사회불안을 조성하려는 외부세력의 틈입 시도를 “내부적”인 군사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략>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의 “헌정 파괴적인 쿠데타”를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그러한 서방의 입김이 국내로 침투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자국 안보전략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독트린>과 <개념>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사능 및 독성화학무기를 동원하는 국제테러, 마약 및 무기 밀거래를 수반하는 국제범죄, 인종갈등, 불법적인 국제이주 등 다양한 요소들을 러시아 안보에 대한 위협요소로 들고 있다. 한편으로 <개념>은 국가이익 확보를 위해 전략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무엇보다도 국제법과 평등, 상호존중, 내정불개입, 호혜적 협력, 그리고 글로벌 및 지역수준의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의 원칙 등에 입각한 안정되고 지속적인 국제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핵강대국으로서 러시아는 핵무기와 관련된 전략적 안정성도 중시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독트린>은 러시아가 국제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유엔과 기타 국제기구들과의 협력 하에 군비통제와 관련된 국제조약을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실전배치 핵탄두를 1,550기로 감축하는 내용으로 2010년에 체결된 미러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연장을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적 안정과 관련해 러시아는 최근 들어 핵무기의 상호 감축 등 군축을 통한 전략적 안정성보다도 미국이 유럽에 배치중인 미사일방어체계가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최근 푸틴의 러시아가 지난 1987년에 미소 간에 맺어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이 금지하고 있는 500km 사거리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과거의 군축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에서 그러한 러시아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푸틴의 집권 3기 이후에 러시아정부가 새로운 안보 위협요인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서방의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들이 러시아 국내의 비정부조직들과 연계해 정치와 사회의 안정성을 뒤흔들 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세력의 집권을 야기한 ‘색깔혁명’과 2010년 이후의 중동지여에서 확산된 민주화 운동, 그리고 2011년 12월 이후 러시아에서 일어난 반푸틴 시위사태 등의 배후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개입되어 있다고 믿는 크렘린측은 그러한 외부로부터의 영향력 침투가 전통적인 군사적 위협 못지않게 국가안보에 대한 심각한 도전요소로 인식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독트린>은 “정보전(information warfare)”이 국가안보와 군사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정 국가가 정보와 통신을 정치적,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대국의 주권과 영토적 완전성을 해치고 국제법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새로운 안보 환경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국방개혁

러시아는 그러한 안보개념과 전략 아래 군사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신뢰할만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다른 나라들의 압력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으므로 강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국가발전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그러한 관점에서 러시아는 푸틴의 집권 2기가 시작된 2004년부터 국방개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논의의 핵심은 구소련 시기로부터 지속되어온 대규모 병력 동원체제를 축소시켜 보다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 체제로 재편하는 한편, 무기체계의 현대화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국세청장을 지낸 민간인 출신으로서 2007년에 국방장관에 임명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는 국방개혁의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초기에는 군부의 저항으로 인해 본격적인 개혁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2008년 8월에 일어난 러시아-조지아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 군은 병력의 전개와 전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비대한 재래식 군 편제는 정보전과 국지전이 중요해진 21세기형 전투에서 신속한 병력투입과 효과적인 지원 및 육.해.공군 간의 통합작전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조지아와의 전쟁에서 드러난 러시아 군의 그러한 비효율적인 전투수행 능력이 국방개혁을 촉진시켰다. 그리하여 러시아 국방개혁은 군 규모의 슬림화, 효율적 작전 수행을 위한 상시대응군 체제를 정착시키는 동시에 지휘통제 체계와 무기체계의 현대화에 초점을 두었다.

우선, 전체 병력의 규모는 1백만명 이하로 축소될 예정이다. 국방개혁은 또한 징집병의 비율을 점차 줄이는 대신 계약병 숫자를 늘리는 한편, 2020년까지 장교 및 부사관의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35만 5천명에 이르던 장교의 숫자는 15만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국방개혁은 6개 군관구를 4개로 축소하고, 기존의 사단 위주의 대규모 병력동원 체제를 여단 중심으로 바꿈으로써 전투에서의 기동력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70%의 무기체계를 현대화하고 군사훈련과 교육시스템을 개선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특히 전략미사일부대는 2020년까지 보유무기를 100% 현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보유 미사일의 96%가 즉각 발사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공격용 핵미사일 증강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에 기존의 토폴-M(Тополь-М) 미사일을 개량한 신형 야르스(Ярс) 미사일 4개 연대를 포함, 신형 미사일 총 41기를 배치한 바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러시아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우주 공간 내의 무기 배치를 자국 안보에 대한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러한 우주공간으로부터의, 또는 그것을 경유하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2015년 8월에 대통령령으로 항공우주군을 창설했다. 항공우주군은 공군, 항공 및 미사일 방어부대, 우주부대 등 3개 요소로 구성되어 적의 항공우주공격에 대한 정찰 및 대응작전을 수행한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러시아 군은 공격 전력인 전략항공기 및 5세대 전투기와 방어 전력인 S-400, 이스칸데르 등 방공미사일 전력의 지속적인 증강을 해 나갈 계획이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의 구축을 계기로 항공 및 우주방위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음을 강조하고 러시아 군은 항공-우주 방위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언급했다.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러시아로서는 테러를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공권력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2006년 2월 푸틴은 대통령령을 통해 국가대테러위원회(Национальный Антитеррористический Комитет)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테러의 예방과 대응에 관련된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연방보안국(FSB) 국장이 이끄는 이 위원회에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관련각료들, 의회 지도부, 해외정보국장을 위시한 국가정보기관 책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소련 국가공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 내에 특수목적센터 A국(일명 알파그룹)이 설치되어 테러진압 작전을 수행한다. 알파그룹은 1995년 스타브로폴주 부덴노프스크 병원 인질테러사건과 2004년 북오세티아 공화국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테러사건에 투입되어 진압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2016년 7월에 발표된 테러방지법(일명 야로바야 법)은 무선통신 사업자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업자로 하여금 테러범죄의 사전포착을 위해 메신저 등 사이버상의 교신기록을 보관하고 정부당국의 요구에 따라 제출하도록 했다. 한편으로 이 법은 특정인이 테러범죄에 대한 정보를 알고도 알리지 않는 경우 불고지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권침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국방개혁은 지휘.통제 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정찰수단, 목표물 지정, 군대 및 무기의 통제에 대한 통합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러시아 군은 후술하게 될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비해 적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도 장거리에서 적의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는 비접적전(非接敵戰) 수행능력의 제고를 지향한다. 또한 러시아 군은 정보전에 대비해 기존의 전투부대에 더하여 적으로부터의 해킹과 사이버 공격에 대응함은 물론 적국의 정보에 접근하고 그들의 의사결정 구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작전을 전담하는, “과학부대(научный эскадрилья)”라는 명칭의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대는 대학과 민간 부문의 전문 인력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킹이나 컴퓨터와 관련된 범죄자 가운데서도 사이버 전문요원을 선발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라시모프 독트린: ‘하이브리드 전쟁’에의 대응방안

최근 들어 우리는 국가 간 전쟁이나 내전에서 무력 충돌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고 타격을 가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 양상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엄청난 파괴력과 인명의 대량살상능력을 지닌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전쟁에 더하여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해킹과 왜곡된 정보의 전파 등을 통해 상대방의 핵심정보를 취득하거나 의사결정 및 지휘통제 과정을 왜곡, 마비시키고 더 나아가 여론을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새로운 방식의 분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킹 전담 특수부대가 설치되는가 하면, 드론으로 상징되는 무인정찰 장비들과 로봇의 사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치공세와 경제제재를 통해 상대국을 압박함으로써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비군사적 방식의 전술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제 어느 국가이든 이제 선전포고도 없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빠져들 수도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어디까지가 전쟁이고 어디서부터가 평화인지 그 구분이 모호해지는 안보개념상의 아노미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바야흐로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전쟁과 분쟁의 양상을 반영해 2013년 2월 러시아군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게라시모프 독트린’으로 알려진, 하이브리드 전쟁 시대의 러시아 안보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게라시모프에 따르면 “전쟁은 더 이상 선전포고로 시작되지 않으며, 일단 시작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법과는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옛소련 지역에서 일어난 ‘색깔혁명’과 2010년경 시작된 ‘아랍의 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외부 세력의 침투에 의한 정보의 왜곡, 선전선동, 가짜뉴스의 유포, 여론의 조작 등의 결과 아군과 적군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 간의 분열과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멀쩡한 국가가 불과 수개월 안에 정치.사회적 대혼란과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장기간에 걸친 위기상황을 겪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전쟁과는 달리 ‘하이브리드 전쟁’은 폭발력이 강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두고 국내외의 특정 세력들에 의해 행해지는 정보왜곡과 선전선동이 물리적인 충돌과 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형태의 갈등 상황에서는 분쟁이나 전쟁의 주체가 불분명 할뿐만 아니라 그것의 시작과 끝, 그리고 분쟁의 당사자들끼리 대치하는 전선조차 불투명하다는 특징이 나타난다. 러시아의 분석가들은 냉전시기에 미국이 소련 국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전과 정보전을 펼치는 등 과거에도 하이브리드 전쟁의 요소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늘날에는 정보전의 중요성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지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푸틴 대통령도 2016년 6월 해외공관장회의 석상에서 러시아 외교관들에게 러시아의 국가이익 수호를 위해 해외의 독자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서방의 반러시아 선전.선동에 대처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게라시모프를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 인사들은 옛소련 지역과 아랍 지역의 연쇄적인 정변들이 서구의 개입과 영향력 발휘로 이루어졌다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게라시모프는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도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전략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2017년 2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은 처음으로 지능적이고 효과적인 선전전을 수행하는 러시아 정보병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껏 러시아가 비판해마지 않았던 서방의 하이브리드 전쟁, 즉 옛 소련국가들과 아랍국가들에서의 서방의 개입 (의혹)사례를 이제 러시아 스스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국제정치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의 병합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방 분쟁에서 하이브리드 전쟁 형태로 깊숙이 개입해왔으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병합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러시아의 선전선동 요원들은 현지 주민들의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는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컴퓨터 해킹이나 디도스(DDoS) 공격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기관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고 여론을 조작했을 뿐만 아니라 해킹을 통해 우크라이나 송전망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그러한 시도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동시에 자국의 사이버 공격능력을 시험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시각도 존재한다.

한편, 급변하는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게라시모프는 국방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한 국방과학 기술의 성과에 근거해 비접적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드론)나 전투 로봇 등 신무기를 선도적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러시아는 비교적 열세였던 무인기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인공지능내장 드론, 미사일탑재 드론 등 다양한 형태의 무인정찰기를 개발해 이 분야에서 미국, 중국 등과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 들었다. 2016년 러시아 군은 무인기 총 105세트를 배치해 모두 600세트 2,000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최근 들어 무인정찰기에 인공지능을 탑재해 스스로 작전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동화된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수류탄이나 소형 폭탄을 싣고 적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드론이 개발되어 실전에 사용되고 있다. 2017년 7월에는 수류탄을 탑재한 드론이 우크라이나 군 기지의 탄약고를 공격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월 툴라에 자리잡고 있는 SRMA라는 방위산업체는 그라드, 우라간, 스메르치 시스템 등과 같은 미사일에 탑재되어 50km 이상 떨어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드론의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실시해 다발로켓 시스템(MLRS)과 드론의 해외수출 전망을 높였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군사용 로봇의 연구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해 관련 국방부, 연방군산위원회, 경제 및 과학기술 관련부처 등 정부부처 간 정책조정을 강화시켜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군은 최근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서의 군사작전에서 군사용 로봇을 실전투입해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신안보 이슈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러시아는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맞춰 새로운 군사전략과 국방개혁을 추진해왔다. 옛 소련지역으로의 나토 확대와 미사일방어체계의 유럽배치 등 지정학적 요소를 주된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러시아 군은 항공우주군을 새로 설치하는 한편으로 이스칸데르 등 방공미사일과 야르스 등 공격용 전략핵미사일을 보강하고 있다. 최근 들어 러시아의 안보전략과 군사독트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외부(서방)로부터의 영향력이 러시아 국내에 침투되는 상황을 주요 안보위협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정보전”이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한 준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새로운 양상의 전쟁과 관련해 해킹부대의 육성, 첨단 드론의 개발, 그리고 전투용 로봇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새로운 안보 및 군사전략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러시아가 갖는 국제정치적 위상과 안보상황이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군사.안보와 관련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러시아는 외교정책, 국가안보 및 군사전략에 관한 중장기 비전과 실행계획을 작성하고 그것을 주기적으로 갱신, 발표함으로써 체계적이고도 일관된 군사.안보정책을 펼칠 수 있는 청사진을 잘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안보에 대한 러시아의 그러한 체계적인 접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안보정책의 큰 줄기마저도 판이하게 달라지는 대한민국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경제에도 차세대 전투기, 드론 등 신무기 분야의 연구개발(R&D)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모스크바가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해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사실이다. 북핵위기가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엄중한 안보상황을 생각할 때 안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단합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졌다. 그러한 각도에서 우리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 등 새로운 방법을 통한 정보전에 대비함과 동시에 드론과 같은 신무기를 동원하는 정보수집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방안, 대북정책, 사드배치 문제 등 핵심적 안보이슈와 관련해 제3국이나 특정 세력이 정책의 혼선과 국민여론의 분열을 노릴 목적으로 가짜 정보의 생성과 유포를 시도하고 여론조작을 자행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민하고 철저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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