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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푸틴 대통령의 정책이 가진 불가피성: 1990년대 경험과 러시아 국가주의 부활

안드레이 란코프

2017.09.22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 (4) 러시아 - 푸틴 대통령의 정책이 가진 불가피성: 1990년대 경험과 러시아 국가주의 부활
저자: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No.2017-049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입니다. 각국에서 진행하는 고립주의, 민족주의, 배타주의의의 양상들과 이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봅니다. 전 지구적 고립주의의 바람 속에서 이를 타개할 협력의 솔루션을 고민해봅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세계 어디에서나 부활하는 중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당선, 프랑스 르펜의 놀라운 약진 등은 민족주의가 돌아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는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푸틴 시대에 거의 국교(國敎)가 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부활은 유럽과 미국보다 러시아에서 20여년 일찍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이후, 러시아에서 민족주의 열풍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많은 외국 관찰자들은 민족주의 부활이 푸틴 대통령에 의해서 초래되었을 줄 알지만 사실상 푸틴은 이 분위기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푸틴과 그 측근들은 파도를 일으킬 힘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파도를 잘 탈 줄 아는 사람들일 뿐이다.

1990년대 러시아는 실망, 좌절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찬 나라가 되었다. 1980년대 말에 페레스트로이카, 즉 반공, 민주화 운동이 전개했을 때에 구 소련 국민 대부분은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 소련이 하루 아침에 미국이나 독일을 능가하는 선진국이 될 것을 굳게 믿었다. 80년대 말 당시 전 세계에서 80년대말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 국민만큼 시장경제의 마술을 믿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들의 희망대로 되지 못했다. 소련 연방국가의 해체와 중앙 계획 경제의 붕괴는 첫 단계에서 주민이 기대했던 ‘모스크바강(江) 경제 기적’보다 혼란, 사회 양극화, 폭력 범죄의 급증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과도기에 있는, 불가피하지만 일시적인 부작용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당시 구 소련 사람 대부분의 실망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타격이 된 것은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급락한 것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자기 나라의 국제적 영향력과 군사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공산당 시대에 받은 교육 때문에 이 경향이 보다 더 강해졌다. 그 때문에 러시아가 강대국다운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굴욕과 국치(國恥)로 봤다.

뿐만 아니라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가 된 구소련 가맹 공화국들이 소수 민족이 된 현지 러시아인들을 차별하고 러시아어 대신에 그들 자신의 민족언어를 촉진시키거나 러시아의 정책에 도전하기 시작하자, 이들 신흥국가에 대한 적대감도 커지고 있었다. 최근에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서방 국가의 주민 가운데 과거에 실시했던 식민지 정책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지만, 러시아에서 현재 이러한 역사 의식을 갖는 사람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러시아 국민 거의 모두 다 러시아가 식민지 정책을 실시한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제정 러시아 시대에도, 특히 소련 시대에도 러시아 민족이 소수 민족들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사심 없이 교육, 개발시켰다는 것을 진짜로 믿고 있다. 그 때문에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구소련 가맹국들에서 심각해진 러시아인 차별이나 러시아 국가의 정책에 도전하는 행위, 그리고 제정 러시아나 소련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러시아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조지아나 라트비아와 같은 신흥독립국가의 ‘배은망덕’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행위일 뿐이었다.

소련 해체가 야기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 대해서도 적대감이 고조하기 시작하였다. 각양각색의 음모론도 많아지고,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 자체가 공산당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보다는 러시아 국가 자체를 파괴하려는 미국 CIA이나 기타 ‘반러시아 세력’의 책략이라고 하는 주장이 자주 들리게 되었다.

매우 대표적인 사례는 고르바초프 전 총비서에 대한 여론이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에서 위대한 민주주의 운동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 국내에서 그만큼 인기가 없는 정치인이 없다. 2017년 2월 여론 조사를 보면, 고르바초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15%에 불과한 데 비해서 ‘모범적인 국가주의자’로 생각되는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37%였다. 같은 여론 조사를 좀더 살펴보면, 러시아 국민들이 제일 높게 평가하는 국가 지도자들은 국가주의가 강한 스탈린, 푸틴, 브레즈네프이다. 반대로, 민주화나 국가를 약화시키는 정책을 시도했던 고르바초프, 옐친, 그리고 흐루쇼프 등은 제일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필자는 러시아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면 여론조사를 참고할 필요도 없다. 러시아의 분위기를 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개인의 정치참여를 보호하는 리더보다, 국가를 강조할 수 있는 리더를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러시아에서는 강대한 국가 부활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사실상 친서방 민주 정치인으로 알려진 옐친 대통령도 이 새로운 분위기를 잘 느꼈고, 이것을 이용하려고 시도하였다. 러시아가 미국과 나토에 도전하기 시작했을 때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1990년대 말 부터이다. 당시에 푸틴은 수많은 공무원 중에 하나에 불과했지만 옐친은 러시아의 국내외 정책을 결정한 사람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분위기 변화를 1990년대부터 느끼게 되었다.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 필자는 추리소설이나 첩보소설과 같은 ‘싸구려 소설’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1995년을 전후하여 러시아 대중소설에서 나오는 ‘나쁜 주인공’이 바뀌기 시작한 것을 실감했다. 80년대 말부터 95년 즈음까지 주인공이 열심히 싸우고 결국 이겼던 ‘악당들’은 공산당 간부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었지만 ’95-96년 이후에는 소련시대처럼 CIA 간첩들이나 서방 사람들이 다시 악당들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판매량을 중요시하는 대중소설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속내를 잘 알아야 파산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 변화는 여론 조사보다 그리고 옐친의 반미 행동보다 좀더 빨리 러시아 국민의 마음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옐친을 대체한 푸틴은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잘 알았다. 정보기관 출신이라는 자신의 배경 때문에 당연하게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 대해 희망보다는 불신감이 많을 수밖에 없는 푸틴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치 노선을 더욱 열심히 추진하였다. 이것은 정말 성공의 길이 되었다. 이러한 정치 때문에 푸틴은 러시아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얻는 데 성공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란군에 대한 후원 덕분에 푸틴 지지율은 전례 없는 86% 수준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의 러시아 분위기를 보면, 국가주의 파도는 푸틴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러시아에서 어떤 정치인이라도 푸틴과 비슷한 정책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려는 세력들은 지금 그의 대외 정책을 비판한다. 하지만 그들이 만약 여당이 되다면, 강대국의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서민들의 사고 방식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러시아 반정부, 민주화 운동의 거물로 볼 수 있는 나발니의 발언을 보면, 민족주의에 대한 비난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크림반도 합병도 간접적으로 지지했다.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나발니는 국가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현재의 러시아에서 정치인의 권력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서방에 대한 의심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러시아 정치에서 상수(常數)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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