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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한국의 전략은 ②] 美 워싱턴 사교계에 ‘한국’은 없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2020.12.02

이스라엘과 일본의 미국 민심을 파고드는 외교 전략 배워야
미국인의 ‘속물성’과 ‘선량함’ 모두 공략할 수 있어야

‘트럼프 4년’으로 미국은 리더십 실추와 내부 분열이라는 큰 상처를 입었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구호로 내세운 조 바이든 당선인의 책상에는 당장 코로나19 종식과 경제 회복의 시급한 과제와 함께 미국 리더십을 회복시키고 분열을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놓이게 됐다. 바이든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바이든 시대 미국 외교안보정책과 북미관계, 미중 대립의 판도와 통상 정책 등 주요 분야에서 예상되는 변화와 한국의 대응 방안을 점검해봤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가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한 상황을 분석한데 이어 두 번째 순서로 한국의 대미 외교 전략이 직면한 과제와 개선 방안에 대해 제언한다.

<글 싣는 순서>
1. 미국 정세 분석
2. 외교 전략
3. 미중 갈등
4. 북미 관계
5. 통상 정책



1912년 일본이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다지며 워싱턴DC에 3천 그루의 벚나무를 기증한 후 매년 봄에 워싱턴 벚꽃축제가 열린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행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한국에서는 누가 새로운 행정부 인사와 더 가까운지를 소개하는 인맥 대결이 정관계와 언론에서 벌어지곤 한다. 주요 인사들과 찍은 사진이나 안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다소 서글픈 내용까지도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서 진지하게 주요 뉴스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되었다. 한반도에 미치는 미국 정부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쏟는 관심만큼 새롭게 등장할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의 네트워크에도 신경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국 특유의 인맥 과시 문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가 무력화 한 기존 정관계 네트워크
바이든 당선으로 민주당 주류 인사들

트럼프 행정부 등장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통적인 공화당이나 민주당 주류가 아닌 정부의 등장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정치인, 외교관, 학자, 언론인, 사업가들과 가까웠던 인사들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단아였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들의 지지자들에게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미국 교외 지역에서는 일자리를 잃고 소외된 사람들이 기존 워싱턴의 엘리트 정치, 즉 주류 엘리트가 불리는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 전문가들이 자신들을 방치했다는 분노가 깊었다. 트럼프는 이 같은 분노를 기반으로 기존 워싱턴 정치와의 결별, 월가의 돈을 받고 꼭두각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민중이나 서민과 직접 소통하는 이른바 ‘잭슨주의’의 연장선에 있던 대통령이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떤 유명한 재벌 출신 인사가 “나는 내 자산이 충분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선거 자금을 받지 않고 내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기업과 주류 엘리트들이 아닌 서민들을 위한 공약만을 지켜나가겠다”라고 선언했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게 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국가들의 기존 미국 엘리트들과의 네트워크를 무력화시켰고, 워싱턴 DC의 싱크탱크가 자산으로 삼던 미국 정관계 네트워크망과 재정 지원도 중단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각 국가들의 네트워크 기반이 작동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고, 다시 각국의 정관계 학계 언론계 사업계에서는 민주당의 주류 인사들의 복권과 이들과의 네트워크 과시에 전념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개별적인 인연들이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개별적·파편적 인연 의존하는
한국 대미 외교의 한계

미국의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서글프지만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 정관계 주요 인사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즉 국익을 위해 미국 내 지한파·친한파 인사들을 육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당파를 초월한 전 국민적 지지가 존재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사대나 미국의 정책만을 따르고 숭배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의 소통을 위해, 또 한국이 주도하는 정책과 전략에 대한 미국의 이해와 미국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필요하기에 우리는 매번 미국 행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미국 행정부 내의 지한파들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연 4년마다 이렇게 계속 조직적이거나 시스템화되어 있지 않은 개별 인사들과의 파편적인 인연들에 대해 의존하는 것이 선진국 수준인 대한민국의 대미 외교 전략일지 이제는 점검이 필요하다.

‘선량한’ 미국과 ‘속물적’ 미국
양면을 모두 공략하는 전략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과 탈냉전 기간, 미국은 세계를 자유주의적 질서로 이끌어 나간 글로벌 리더 국가였다. 물론 미국 리더십의 의도와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미국식 제국주의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의 영향력과 미국이 구축해놓은 유엔-IMF-World Bank-달러 본위 체제 바탕에 세계 무역과 질서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의 조합으로 미국을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선량한’ 미국으로 미국의 태도와 시각을 인식하는 것이다. 즉 애플-아마존-맥도날드-할리우드-빌보드-미군-CIA로 이어지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최강대국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미국의 위기에 대한 논쟁을 제외하고), 미국은 최강대국으로 세계 질서를 바라본다는 관점이다. 반대는 ‘속물적’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은 군산복합체를 바탕으로 끝없는 전쟁과 동맹국에 대한 무기 판매, 유리한 시장 확보 등 경제적 이익의 팽창으로만 대외정책을 운영해왔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선량한’ 미국을 대할 때의 대미 외교 전략은 미국이 중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논리로 미국의 세계 질서를 강화하는 동맹국으로써 다가서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속물적인’ 미국을 대할 때의 외교 전략은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에 기여하고, 경제적 이익(로비, 무기 판매 등)에 기여하는 비즈니스 관계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양면의 모습이 있듯이 미국도 양면의 모습이 모두 존재한다.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돕고, 독재국가의 민주주의 인권을 개선하려는 ‘선량한’ 리더 미국의 모습과 지정학적 패권과 경제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속물적인’ 미국의 모습 모두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량한’ 미국과 ‘속물적인’ 미국의 모습 모두를 염두에 두고 양국의 이익과 동맹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즉, 미국과 협상을 하고 의제를 논할 때 ‘선량한’ 미국이 강조하는 명분과 ‘속물적인’ 미국이 요구하는 실리를 모두 제공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한 쪽을 경시하고 접근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선량한’ 미국만을 공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속물적’ 미국 설득할 실익 안 보여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이에 대한 대미 소통 전략을 평가해 볼 수 있다. 지난 수 년 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명분에 흡족해하는 ‘선량한’ 미국만 상정하고 대미 설득과 논리 전개를 한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미국을 찾아가서 ‘북미 비핵화 협상을 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남북이 교류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얻을 수 있고, 동북아 다자무역을 통해 북한이 국제경제에 편입한다’는 논리를 미국에게 펼친다고 하자. 이러한 논리 과정에 한국과 북한은 직접적인 실익이 많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선량한’ 미국이 아닌 ‘속물적인’ 미국에게 이러한 논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익은 무엇인가?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인을 직접 공격한다는 위협이 제거된다는 정도 이외에 미국에게는 안보적 이익도, 경제적 이익도, 지정학적 이익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의 군사·경제적 팽창을 견제하는 동맹을 강화하려는 시기에, 오히려 북한의 위협 제거는 주한미군과 유엔사 등 존재 기반을 상실하게 하는 것 이외에 도대체 미국에게 현재 상태보다 어떠한 실익을 가져다주는지 ‘속물적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보이지가 않는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성사된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 모습 (출처: 스트레이츠타임스)

‘독재 북한 왕조’와의 국교정상화
미국인 설득 명분 약해

미국인들에게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반도 평화라는 명분은 있지만 오히려 북한의 인권 탄압과 독재를 해결해야 한다는 명분은 해소되지 않는다. 실익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한반도의 평화라는 대의명분을 지지하는 세계평화시민운동 진보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을 제외한다면, 다수의 미국인들에게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과 북한의 독재를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논리는 인권을 탄압하던 독재국가 ‘악마’인 ‘북한의 왕조’를 인정하고 정상 수교를 하게 되는 명분조차 약한 논리가 된다.

3억 명 미국인 마음 얻을
대미 소통 정책 부족해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명확하게 와닿는 실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자유보다는 먹고 살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인권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과 동시에 핵 무장을 한 북한이 중국에게 밀착하는 것보다 비핵화한 북한이 중국보다 한국과 미국에게 오는 것이 중국 견제 동맹에 지정학적이고 안보적인 이익이 된다는 논리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차가운 냉소와 의구심은 지속될 것이다. 더욱이 지난 수 년 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설득의 대상도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일부 참모들만을 대상으로 협소하게 진행되었다고 보았을 때, 3억 명의 미국인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마음과 표를 얻기 위한 대미소통정책은 수차례 싱크탱크의 세미나를 제외하고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지속되려면 ‘선량한’ 미국이 악마를 용서하고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는 명분과 함께, ‘속물적인’ 미국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하여 지정학적 안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로 수정 발전되어야 한다. 또한 설득의 대상도 행정부 수뇌부 소수가 아니라 지속적인 정책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하여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통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비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만이 아니라 한미 간 모든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미 외교 전략과 소통 방식에 대해 이제는 중견국 한국으로써 검토해야 할 시기이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IPAC(미국 이스라엘 공공 문제 위원회)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IPAC는 미국 정계, 산업, 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출처: EPA)

“홀로코스트 재발 안 된다”
미국인에 사명감과 역사의식 형성

오바마 2기를 앞두고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열하던 시기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지역 방송에서 중서부 시골에 사는 한 백인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어느 후보를 찍을 것이냐, 후보 결정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량해 보이는 할머니는 미트 롬니를 뽑겠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유태인도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 중에 유태인도 없고, 이스라엘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은 미국이 지켜야 하는 국가인데, 오바마는 이란과 중동 국가들과 협상을 하는 등 이스라엘을 위기와 전쟁에 빠뜨리고 있다며 롬니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유태인도 아니고, 가족 친구 중에 유태인도 없으며, 이스라엘을 가본 적도 없는 미국 중서부의 시골 할머니가 왜 이스라엘의 안보를 이토록 걱정하는 것일까? 이러한 사례는 미국인들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은 당연한 현상이다. 미국인들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관, 세계관, 동료애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정서적 유대감과 일체감은 우연히 홀로코스트 영화 한 편이나, 미국 정치인들이 유대계 로비단체에서 선거자금을 받아와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으로 미국을 향한 노력을 펼쳤다.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태인들은 미국인들이 마음속에 다시는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국민적 정서감과 역사의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인위적(Artificial)’으로 전략적인 노력을 폈다.

이스라엘의 대미 외교 전략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내 돈 많은 유태인들이 미국 정치인들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하는 수준의 전략 그 이상이다. 시카고 대학 존 미어샤이머 교수와 하버드 대학 스티픈 월트의 ‘이스라엘 로비 (Israel Lobby)’라는 책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계 로비단체들의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영향에 대하여 최초로 공개적인 담론을 제공했다. 해당 책의 발간 전 초록 논문은 유태계의 영향력을 두려워해서 어떤 출판사도 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를 게재해 준 ‘London Review of Books’의 편집장은 이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수 년 간 암살 시도에 시달리기도 했다.

문화 매체와 민간 교류 활용
미국민 생활에 스며드는 전략

이 같은 이스라엘의 상층부 로비는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상층부 로비만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가 역사적 교훈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다큐멘터리 등 모든 문화적 매체를 활용했다. 미국의 모든 지역 마을에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만들었고, 미국의 교과서에도 홀로코스트 내용을 반영했다. 미국의 초중고 학생들이 박물관을 견학하도록 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매 도시와 학교들 간의 친선 교류를 지원하고 이끌었다.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와 이스라엘의 외무부 장관, 이스라엘 총리는 일 년에 수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 워싱턴 DC에 와서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 이들은 미국 의원들과의 포럼에 참여하고 함께 식사하는 등의 교류를 이어갔다. 또 미국의 주요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출연해 이스라엘의 입장과 시각을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전달해 왔다. 상층부에 대한 로비뿐만 아니라 미국민들 모두에게 스며들 수 있게 미국인들의 역사와 생활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스라엘의 생존 전략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서적 유대감을 동일시화 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우연이 아니다. 노력과 전략의 결과인 것이다.

일본과 사우디도 전방위 대미 외교
한국은 어디에?

일본의 대미 외교 전략도 유명하다. 워싱턴 DC의 벚꽃들을 보며, 일본 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일본연구를 하는 수많은 미국 학자들을 보며, 일본의 스시, 기모노, 영화, 만화, 대중음악들에 우호적이고 매력적인 감정을 느끼는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일본이 돈이 많아서 그렇다고 언제까지 좌시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 십 년 간 미국 의회와 학계 등에 수백억을 사용하고, 미국의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켜 수십 조를 미국에서 받는 전략을 활용해왔다. 미국 워싱턴 DC의 의원실과 선거자금 바자회, 출판기념회, 지역구 행사에 수많은 나라의 국익을 대변하는 합법적인 로비스트 단체들과 해당 국가의 외교관들, 언론인들, 학자들, 해당 국가에 우호적인 미국인 학자들, 사업가들이 365일 해당 국가들을 위해서 교류하고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만든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슬프지만 현재까지 한국과 한국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주요 사교 행사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인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및 미국 주요 공화당 민주당 상원 하원 행사 만찬 자리와 사교 모임에 지속적으로 초대를 받는다. 그들은 항상 필자에게 국익을 위해 일하는 한국인들은 다 어디에 있냐는 질문과 함께 초대장을 보낸다. 모든 외교는 공식 석상에서 문서에 서명하기 전에 형성되고 협상이 이루어지고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의 외교 사교계에 한국은 없다. 한국의 국익도 외면받는 현실이 지금 우리의 현주소이다.

교포사회와 한국 석좌 중심 행사
큰 소통 효과 기대 어려워

지금까지 한국의 대미 외교 전략은 미국 내 한국 교포 사회, 미국 대학 내 일부 한국학 센터, 일부 소수의 워싱턴 DC의 미국 싱크탱크 한국 석좌 중심의 학술 세미나 정도로 제한되었다. 이곳에 참석하는 청중들의 대부분은 최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일부 미국 학부생, 대학원생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에서 파견 간 한국인 교환교수들, 특파원들, 교포 1세와 2세들,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 외교관 출신들, 한국계와 결혼한 이들, 한국 유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다. 그러나 이미 이들은 한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굳어졌고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청중으로 모은 행사만을 반복한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소통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국의 주미대사들과 외교관들도 이러한 행사들, 한국학 센터나 싱크탱크 한국 석좌 세미나나 교포 초대 행사에서만 축사를 하거나, 후원을 하고, 참관하는 일들만 반복해오고 있다.

주요 시사프로그램 적극 출연해야

이제는 중견국 한국도 이스라엘, 일본과 견줄 수 있는 대미 외교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제한된 예산이더라도 대상 청중을 더욱 다양화해야 한다. 한국을 잘 모르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특히 정책 공공외교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여론 주도층이 시청하는 주요 시사프로들에 한국의 외교관들과 학자들, 정관계 인사들이 출연해서 한국의 정책과 국익을 소개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오랫동안 거의 전무했다. 너무나 높아 보이는 벽이었고, 영어나 문화에 대한 어색함도 큰 제약요소였다. 그나마 최근 K-방역으로 강경화 장관의 인터뷰가 몇 번 있었고, 정치적 견해가 굳어진 싱크탱크의 교포 학자들 출연이 전부였던 것이다.

미국 여론주도층이 시청하는 주요 시사프로그램 (미국 뉴스 시청률 순위와 영향력을 참고로 필자가 직접 작성)

시청률이 높은 미국의 상위 10개 시사 뉴스프로그램, 일요 아침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의 국익과 정책에 대하여 논의해야 한다. 초청되지 않기 때문에 출연을 하기 위해서 광고도 게재하고 전략적으로 노력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사프로그램에 매주 이스라엘의 총리, 대사, 장관들,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의 외교관, 전문가들이 지역 정세와 국가의 입장에 대하여 끊임없이 출연해서 미국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지식인층이 주로 보는 일간지 (진보 (The New York Times, The Washington Post), 보수 (The Wall Street Journal) 등)와 주간지 (진보 (The Nation, The New Republic, The New Yorker 등), 보수 (Weekly Standard, The National Review), 중도 (The Economist, Newweek, The Time) 등) 등에도 연례 행사가 아니라 수시로 한국의 외교관, 학자 등의 정책 공공 외교 차원의 글이 게재되고, 게재가 될 수 있도록 광고 등 후원을 통해 이들을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가끔 연례행사로 장관, 대통령의 글을 게재하고 큰 업적이나 되는 듯이 홍보를 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의 정책과 국익에 대하여 매주 혹은 매월 수시로 글이 게재되고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해야 한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글도 계속 게재해서 담론의 어젠다에 포함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주요 사교클럽의 네트워크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감 쌓아야

미국 내 주요 사교클럽도 외교적인 사안들이 결정되고 의사소통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이곳들에서 지한파 인사들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도 사람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모든 정책과 외교적 결정은 이미 ‘트랙 1 회의’ 전에 사적인 공간에서 결정되고 협의된다. 중국과 러시아 등에만 회식과 사적 연대를 강조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사적인 인연과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작 단계이다. 이는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로비의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 유대감과 친밀감 (Cultural Amity), 즉 우리는 한 편이고 같은 방향을 지향한다는 정서적 유대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엘리트 중심의 사교 클럽 (Cosmos Club), 정치적 사교 클럽 (Capitol Club), 군 장교 중심 사교 클럽 (Army and Navy Club) 등이 있다. 한국식으로 골프 접대와 단란주점 유흥접대가 아닌 출판기념회, 기금 마련 행사 등 다양한 행사들이 이루어진다. 필자가 지인들과 미국 의원 관계자들에게 수시로 초대받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다음 장소 등에 당연히 ‘한국’은 없고, 일본, 이스라엘은 있다. 모든 외교적 주요 정책 결정들은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사무실의 공적인 공간과 함께 사적인 공간에서 돈만이 아니라 정서적 유대감, 친밀감을 확인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결정된다. 미국의 정책 결정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국익과 경제적 이익은 물론, 이를 둘러싼 정책 결정자들 (국회의원, 공무원, 군인)과 이해관계자들 (사업가, 언론인, 시민단체 등)의 상호교차 속에서 변형되고 발전되어 최종안이 확정된다. 미국의 대통령이 백악관 사무실에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공무원들이 올린 보고서에 국익만을 고려해서 서명을 한다고 하는 영화나 사극 수준의 상상력으로 미국에 한국의 국익을 관철하고 투영시킬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사교클럽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필자가 직접 작성)

골프 치고 사진 찍기로
유대감 안 생겨
상호이익과 공동의 지향점 추구

한미 국회의원 간의 친밀감을 쌓는 사적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도 ‘늘공(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무직 공무원)’이 있고, 미국에서는 선거로 집권한 ‘어공’들의 영향력이 한국보다 더욱 강하다. 이들 집권세력이자 동시에 의사결정의 최상위 집단은 백악관 국무회의 참석자들과 미국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이다. 잠깐 방문해서 식사하고 차 마시고 사진 찍는 수준에서는 정서적 유대감이 생길 수가 없다. 함께 상호 이익이 되는 사업을 하고, 철학에 맞는 공동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기적으로 대북사업에 관련된 일을 한국 정부가 고민할 때도 미국의 지역구 의원들과 해당 지역 기업들이 함께 들어가면, 대북 정책의 대미 협상에도 훨씬 힘이 실린다. 필자에게 대북 부동산 투자 사업에 흥미를 보인 미국 사업가들과 의원들도 많았다. 한미 의원 간 소통과 네트워크는 축구나 골프를 통해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대북 문제가 아니더라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경제적 실익의 형태 혹은 정치적 지향점에 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종전선언을 지지한 51명의 의원들의 지역구는 다음과 같다.

종전선언 서명 51명 미국 하원의원 지역구 (미국 의회를 참고해 필자가 직접 작성)

19개 주의 의원들은 풀뿌리 평화운동에서 종전선언에 서명했지만, 장차 한미 의원 간 네트워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의 유대감을 지닌 이들이다. 모두 51명 전원 공교롭게 민주당이긴 하지만, 이들과 함께 추가로 지역 일자리가 필요한 중서부-남부 지역구 의원들에게 한국 그린 뉴딜 기업의 사업을 연계해서 지한파 의원을 확장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다음이 2020년 11월 29일 현재까지 종전선언에 서명한 51명 의원들과 지역구이다.

종전선언 법안에 서명한 하원의원 (미국 의회를 참고해 필자가 직접 작성)

한국과 미국의 지자체들과 시민단체, 초중고등학교 간의 자매결연과 친선교류, 학생들의 에세이 경진대회 등 수많은 교류들도 근원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정관계 엘리트들 간의 교류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나 지자체들 간의 소규모라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교류함으로써 문화적 친밀감,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미국의 경제 지원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교류하는 일방 지원이 아닌 상호 간 유대 강화의 교류를 확장하면서, 이를 독려하는 정부의 예산, 법률 지원과 캠페인도 필요한 시기이다.

누가 당선되든
미국 정관계에 지한파 자리 잡도록

한국인들이 바라보는 ‘미국’을 벗어나 미국인들이 살아가는 ‘미국’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한국인들의 관점에서 미국에게 한국인들의 이야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을 고려해야 한다. 그들이 바라고 이해하는 관점에서 우리의 국익과 전략을 극대화하는 중견국 대한민국의 시대가 왔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마다 한국에 누가 친한 관계인지 찾는 것과 같은 후진국형 촌극을 마무리하고, 누가 집권을 하든 평소에 지한파가 장악을 하고 있는 미국 정관계를 만들 시기가 되었다.

핵심 포지션에 지한파 인사 앉히는 능력
선진국형 대미 외교 전략 짜야

우리와 평소에 교류하던 이들을 주한 미국 대사로 발령 나게 하고, 한미연합사령관으로 지명되게 하고, 미국 국무부 장관과 아태차관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상하원 외교위원장에 지명되게 하는 것이 선진국형 대미 외교이다. 누가 되는지 노심초사하고 친한 이가 될 것을 기도하는 수준의 국가에서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자리에 지명되게 하는 선진국형 대미 외교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초당적이고 기업과 시민사회, 전문가 그룹이 합심하는 대한민국이 될 시기가 온 것이다. 주한 미국 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은 물론 민주당 공화당 누가 집권하더라도 이제 한국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인사에 우리의 사람이 지명되게 하고, 한미 간 정서적 유대감을 미국과 영국, 미국과 일본, 미국과 이스라엘 정도로 격상시키는 한미 동맹의 전략적 격상을 준비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 간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은 물론 정서적 유대감과 일체감, 문화적 친밀감으로 하나가 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필자 김영준은 한반도 안보와 국방, 군사 문제 전문가이다.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로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미국 국방부 싱크탱크 Foreign Military Studies Office(FMSO) 국제선임연구원이자 한미 연합사령관 전략자문단 위원으로 미국 정부 및 상원과 하원, 미군 등 한반도 문제 등을 자문하고 있다. 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며 청와대, 국방부, 외교부 등 국내 주요 정부부처 등에도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외교부 후원 한국비확산원자력 저널 편집장이다. 주요 저서로 Origins of the North Korean Garrison State(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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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