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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②] 롯폰기 힐스는 어떻게 도쿄의 랜드마크로 재탄생했나

정리: 김중배 (여시재 정책위원)

2020.10.16

[모리빌딩 출신 박종현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사 초청 세미나]

- 일본 3대 디벨로퍼 ‘모리빌딩’에서 배우는 도시재생 성공사례
- 민간이 기획부터 주도한다... 공공성과 창의성의 유기적 협력
- 대도시는 ‘종합력’, 지방도시는 ‘개성력’... “버릴 건 버리는 차별화”

쇠락한 도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일본 롯폰기 힐스는 낙후된 지역이 도쿄의 랜드마크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다. 그 변신 과정을 이끈 주역이 일본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모리빌딩’이다. 모리빌딩뿐 아니라 미츠이와 미츠비시 등 일본의 3대 ‘디벨로퍼(Developer)’ 모두 미다스의 손처럼 쇠퇴한 지역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꿔 놓는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역시 빠른 도시화 이후 구도심의 재생 수요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책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은 길을 잃은 채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디벨로퍼의 노하우를 한국에 접목해 볼 수 있을까. 모리빌딩에서 일했던 박종현 현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사로부터 생생한 도시재생의 경험과 시사점을 들어봤다.

cf. 디벨로퍼(Developer)
기획과 설계, 시공, 마케팅, 관리 운영 전과정에 걸쳐 부동산 개발을 행하는 사업자(주체)를 말한다. 종합적인 기획력을 갖고 부동산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롯본기 힐스 모습 (출처: 롯본기 힐스 홈페이지)

나를 소중히 하는 시대의 키워드
도시재생에도 반영해야

디벨로퍼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요체는 개발 패러다임의 변화다. 더 이상 양적인 공급 우선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살고 싶은 곳, 일하고 싶은 곳, 쇼핑하고 싶은 곳을 찾는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즉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본은 개개인이 갖고 있는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이 시대의 키워드는 도시재생에도 반영돼야 한다.

사람, 상품, 돈과 정보는 함께 움직인다. 사람들이 도시의 자력(磁力)에 이끌려 모이고 그 집적된 에너지가 다시 사람을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모리빌딩의 개발 철학이다.

모리빌딩은 도시 평가의 총체적 기반 하에 명확한 개발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 속도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롯폰기 힐스의 재개발 성과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발 이후 애초 구상을 실현하는 운영까지 책임지면서 고유의 복합타운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었다.

“미친 리더의 집념이 롯폰기 힐스를 일궈냈다”

모리빌딩은 민간사업자로서 롯폰기 힐스 개발을 주도했다. ‘시행사’ 하면 우리는 흔히 획일적인 개발과 분양을 통한 즉각적인 이익 환수에 집착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디벨로퍼로서 모리빌딩은 이와 달랐다고 한다.

<모리빌딩의 특징>
1. 디벨로퍼의 이단아(Dreamer)
2. ‘마을 조성(まちづくり)’의 사업화
3. 타운브랜드인 ‘힐스(Hills)’의 창출

개발을 주도한 고(故) 모리 미노루 전 모리빌딩 회장은 상부엔 녹지를 최대한 확보하는 초고층 빌딩, 다수의 편의시설은 지하화하는 ‘직주근접’의 콤팩트시티(도시 중심부에 주거와 상업지역을 밀집시켜 교통수단 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하는 도시 형태)를 지향했다. 인근의 전통 타운인 아자부주반 지역과 개발을 연계하였고, 토지 수용에만 14년이 걸렸음에도 서두르지 않고 설득을 통한 개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원주민들이 100% 재입주한 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원주민들이 부유한 지주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재개발 상황과는 달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콤팩트시티는 각 공간을 개성 있게 차별화한 ‘도시 속 도시’를 지향한다. 문화 육성을 테마로 한 롯폰기 힐스의 중심인 모리빌딩 49~54층(아카데미 힐스, 롯폰기 힐스 클럽, 모리미술관 등)에는 이 같은 전략시설들이 모여 있다.

롯본기 힐스의 상업지구 - 메트로햇, 케야키자카 등 (출처: 롯본기 힐스 홈페이지)

우리에게 특히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개발 후 운영의 역할이다. 모리빌딩은 롯폰기 힐스를 건설한 뒤에도 생활 잡지 간행과 도시 육성 프로그램 등을 통해 브랜드 관리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힐스 라이프 매거진 (출처: 롯본기 힐스 홈페이지) - “마음이 열린 사람들 모여라” 생활 잡지를 통한 지역 정체성 육성

모리빌딩의 ‘힐스’ 브랜드는 각각 추구하는 콘셉트를 명확히 하는 특징을 갖는다. 롯폰기 힐스는 ‘문화’, 아크힐스는 ‘생활’, 토라노몬힐스는 ‘비즈니스’를 주요 지향점으로 삼았다. (토라노몬힐스의 경우 도쿄도가 시행자였지만, 기획 초기부터 모리빌딩을 끌어들였고, 이후 모리빌딩이 재개발 자산의 보유와 운영 책임까지 이어받는 등 성공적인 민관 제휴의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브랜드 가치 창출은 곧 사람들이 모이는 기반이 되었고, 수익 창출과 연결되었다. 롯폰기 힐스 방문객은 2003년 이후 15년간 매년 4천만 명 이상, 도합 6억 명에 이른다.

일본 3대 디벨로퍼
“개발(하드)과 운영(소프트)의 균형 추구”

일본 내에서 도시재생의 성공은 모리빌딩에 국한돼있지 않다. 미츠이부동산, 미츠비시지쇼는 모리빌딩과 함께 일본의 3대 디벨로퍼로 불리며 도쿄의 도심을 비롯한 각종 재생·재개발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주요 디벨로퍼 비교(2018년 기준)

연 매출 1.9조 엔에 이르는 미츠이는 일본 최대 디벨로퍼이며, 도쿄 히비야 등 미드타운 브랜드를 조성하고 있다.

미츠이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전통적인 도심 지역인 니혼바시 개발이다. 표어로 내세우는 ‘코레도(COREDO)’는 과거 에도의 도심을 되살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추후 수도고속도로 정비 사업 이후의 청사진도 고민하고 있다.

대재벌 계열인 미츠비시는 도쿄역 인근인 마루노우치 지역의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다이마루유(大丸有)’ 브랜드를 내세운다. 종합적인 도시재생 계획에 입각해 장기 개발을 추진하기는 매한가지다. 현재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차, 2009년부터 2018년까지 2차 개발 계획을 마친 상태다. 도쿄역 앞의 상징과 같은 마루노우치, 신마루노우치 빌딩 등을 우선 건립하고 이후 면을 연결하여 순차적으로 개발을 확장해가고 있다.

개발 목표 수립 위해서는
도시의 정확한 위상부터 파악해야

도시재생에 앞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위상 파악과 평가는 필수다. 국제 경쟁력 차원에서 도시가 보완해야 할 약점을 파악해 개발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모리빌딩의 싱크탱크인 모리재단은 미츠비시와 함께 매년 도시 종합력 지수(Global Power City Index)를 발표한다. 분야별로 국제적 전문가그룹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 작업위원회, 이를 검수하는 평가위원회로 구성해 객관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수는 경제와 연구·개발, 문화·교류, 거주, 환경, 교통·엑세스 등 6개 항목으로 도시를 평가한다. 2018년 시작된 지수 산정은 최초엔 40개 도시에서 출발, 현재 44개 도시를 대상으로 하며, 아시아에서는 서울을 포함한 13개 도시가 대상이다.

2018년 종합순위 TOP 10(6개 분야 70가지 지표로 산출) (출처: The Mori Memorial Foundation 홈페이지)
경제, 연구/개발, 문화/교류, 환경, 교통/엑세스 등 6대 지표별 순위(2019) (출처: The Mori Memorial Foundation 홈페이지)

지방 도시는 팔방미인 되기보다는 개성 강조해야

지방 도시 또는 거점 개발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도심 재개발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서울이나 도쿄 같은 대도시의 경우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방도시는 모든 것을 잘하는 팔방미인이 되기보다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특화된 강점을 살리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즉 ‘개성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디벨로퍼들과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이 같은 지역창생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도시특성평가(JPC): 6분야별, 83지표로 산출 (출처: The Mori Memorial Foundation 홈페이지)

도시특성평가는 일본 전국의 72개 도시, 도쿄도 23구를 대상으로 한다. 먼저 핵심 지역을 살리지 못하면 그 외 지역도 살아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도쿄 내에서도 치요다구, 미나토구, 추오구는 어떤 강점을 지니는지 지수화를 통해 명확히 하고 있다.

공공성과 민간사업자 창의성 이끌어내는 유기적 협력 필요

일본 디벨로퍼들은 개발의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여하며, 개발 이후에도 자산의 보유와 운영까지 종합적으로 책임지는 형태로 기획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개발의 성공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관이 주도하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민간사업자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추구하는 사업의 목표, 구현하려는 공공성을 명확히 하되, 민간사업자의 창의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유기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 돼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일본 도시재생의 중점 포인트>
* 핵이 되는 자원/콘텐츠의 발견과 추출
* 의욕 있는 인재 육성과 지원 체제 구축
* 직주근접의 콤팩트시티화와 효율적 관리
* 정보통신, 로봇 등 기술의 활용
* 도쿄와 지방도시 연계를 통한 체계적 홍보


<박종현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사와의 Q&A>

Q. 도시재생 사업에 있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면은 무엇일까?

A. 위기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우리 도시재생 사업에 있어선 출발점에서 문제의식, 또 절차에 대한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우리가 10여 년 넘게 공회전하는 건 ‘시간’과 ‘평가’에 대한 조급함 때문일 수 있다. 우선 그러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종합적인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성공 사례를 만들지 못하면 이상은 이상으로 끝날 것이다. “도시는 이래야 한다”는 진정성을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롯폰기 힐스 개발은 도전적인 한 민간 디벨로퍼의 노력이 잘 구현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모리 전 회장은 당장의 수익성보다 끊임없는 도전을 추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속도와 성과를 중시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효율과 가시적 성과 때문에 주민과 민간의 요구를 경시하면 길을 잃을 수 있다. 조금 늦더라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관리와 기획의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Q. 일본의 디벨로퍼와 같은 모델을 국내에 키울 수 있을까.

A. 국내에도 여러 민간 건설사가 디벨로퍼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사업자가 수익 자체보다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민관, 관계 주체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앉아서 지역에 대한 공통의 주제를 놓고 논의를 심도 깊게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성과를 선도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곧 발 빠르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리빌딩이 국내에 진출했을 때 큰 꿈을 갖고 여러 제안을 했지만, 스스로 시행주체가 아니라 컨설팅을 맡다 보니 제안이 수용되지 않는 등 (한국 시행주체와의) 논의 과정이 수월하진 않았다.

정부가 우선 공공성을 고민해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가이드라인 제시 없이 민간에 의존하고 나서 민간이 수익성만 추구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 보니 여러 갈등을 빚게 되는 것이다.

Q. 우리 지방도시는 일본보다 훨씬 열악하다. 구체적인 개발의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A. 한국과 일본은 제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방 쇠퇴가 빨라지고 있다. 어떻게 꺼져가는 불씨를 살릴 것이냐에 대해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각 지역의 활동가 등 지방에서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보고 활동하는 분들이 중심이 돼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다. 지켜야 할 핵심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살기 위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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