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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R&D 정책, 바이오 경제 시대를 향해 있는가

이동우(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2020.09.04 1773

- 생물 소재가 2030년 바이오경제 견인할 것

필자 이동우 교수는 극한미생물 대사 및 단백질 생화학 분야 전문가이다. 연세대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2004년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 조지아대 및 펜실베니아대 박사후 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경북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미생물 유전체 기반 마이크로바이옴, 생체에너지학, 단백질 진화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생명과학단 전문위원, ISO TC 34(식품) 미생물 분과 전문위원, 포스트게놈 다부처 유전체사업 융합연구 분과위원을 맡고 있다.

생물다양성 보존 지역
지구 지표 면적의 2.3% 불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가장 큰 덕목은 다양성에 있다. 모든 생명체의 공통점은 삶의 근간을 지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더불어 사는 삶이란 코로나를 해결할 백신의 개발 및 공공의료 서비스를 공유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관계를 정립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으로 이런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지난 200년간 계속된 지구온난화는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킨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물 다양성이 보존된 34개의 지역은 지구 전체 지표 면적의 2.3% 내외에 불과하다(아래 그림 참조). 이는 46억 년 동안 끊임없는 진화의 산물로 자연이 이뤄놓은 생물 다양성이 인간의 무분별한(또는 부지불식간의) 활동에 의해 처절히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터전도 동시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빨간 색깔로 표시된 지역이 생명다양성이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다. 전 지표 면적의 2.3%에 불과하다. 나머지 97.7%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생명다양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반도가 여기에 포함된다.
(출처: https://www.thecattlesite.com, 참고문헌: Biodiversity Hotspots (2011) Zachos and Habel Ed. Springer)

미국의 생명체 유전체 해독
인류 과학사 신기원

30여 년 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선진국들은 생명체의 유전체 해독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유전체학연구소 ‘TIGR(현 J.Craig Venter Research Institute)’이 세계 최초로 생명체의 유전체를 해독했다. 이후 인간, 모델동물 및 식물, 병원성 미생물, 산업미생물 등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체 정보가 해독되었다. 이러한 유전체 정보는 미국의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라는 기관을 중심으로 통합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DNA 해독은 물론 이들의 유전체 정보를 보관하고 유전체 자원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 당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유전체 프로젝트는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 하에 진행됐다. 결국 인류 과학사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생명체의 유전체 지도를 통해 인류가 겪고 있는 난치병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지구 생태계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탐색 및 보존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인류 생존의 위협요소를 과학적 접근 방식을 빌어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유전체 정보의 획득 속도도 더뎠으며, 얻어진 유전체 정보를 통해 뜻하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정보의 양도 연구 비용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2004년 말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방법이 보급되면서 유전체 해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유전체 정보가 축적되기 시작하여 2020년 8월 현재 22만여 종의 유전체가 해독되었다. 특히 2012년에는 데스크탑 형태의 저가형 NGS 장비가 보급되어 유전체 정보에 대한 일반 연구자들의 접근성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이 덕분에 기술 혁신 및 글로벌 협업 연구를 통해 인류가 직면하게 될 여러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반 데이터를 쌓아가게 된다. 이 사례는 세계과학계가 공조하는 대표적인 예다.

先導적 R&D가
다음 세대 운명 가른다

당시 천문학적인 R&D 투자 및 그 성과물의 파급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만약 현실과 타협해 현안 해결에 몰두한 나머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유전체 연구의 R&D 투자를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단편적으로만 봐도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생명다양성 백과사전, 생명체의 환경적응 진화, 다재내성 병원균에 의한 팬데믹 발생과 진화 및 전파 과정 역학조사, 수퍼박테리아에 대응하는 신규 항생제 개발 등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들을 이루기 위해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이 없었다면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재해, 글로벌 팬데믹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대응전략 수립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21세기에 중세시대 흑사병 팬데믹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실로 시대를 통찰하여 미래비전을 갖고 선도적으로 나아가는 R&D 정책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네오르네상스”
핵심 R&D 분야는 생명체의 유전체 해독

더 나아가 미 국립보건원(NIH)은 2007년부터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HMP)를 진행했다. 인간과 지구상에 공존하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상호 관계의 이해가 인류의 생존에 핵심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EU에서는 ‘MetaHIT 프로젝트’를 통해 유럽인의 분변 내 미생물 분석을 통한 인체 장내 미생물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인체의 다양한 기관에 분포하는 미생물의 조성을 분석하고 이들의 변화가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난치병 치료의 혁신적인 방안을 마련하고자 도전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균총(菌叢·집단을 이루고 있는 세균이나 미생물) 분석부터 인종, 연령별, 성별 등에 따른 균총의 색인화 작업을 통해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도모하는 빅데이터 기반의 소위‘네오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cf. 마이크로바이옴
인체에 서식하는 미생물(microbe)’와 ‘생태계(biome)’를 합친 말로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과 그 유전정보를 뜻한다.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의 수는 인체 세포수 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유전자 수는 100배 이상 많다. 미생물을 빼놓고 인간 유전자를 논할 수 없다.

바이오 소재는 미래산업의 핵심 요소
자칫하면 ‘바이오 격차’ 늪에 빠져

2030년 경에는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경제성장을 이끌 ‘바이오 경제(Bioeconomy)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이오 경제란 바이오 기술이 고령화 대비, 질병 극복 등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풍요롭고 안전한 먹거리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여 인류의 복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그 배경에는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는 식량 및 에너지 고갈, 환경파괴에 따른 기후변화, 각종 감염병의 글로벌 팬데믹 등과 같은 난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성장 중심 경제활동을 대폭 줄이고 지구 생태계의 재순환을 가능케 하는 바이오 소재 기반의 산업이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아래 그림 참조).

바이오 소재는 식량, 의약품 및 산업용 물질의 공급 원천이다. 이것을 확보하느냐 여부가 바이오 경제의 ‘바이오 격차(genetic divide)’를 유발하여 산업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생물자원 확보는 차세대 국가 성장 동력에 필수적이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바이오소재의 경제적 가치는 그리 크게 평가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생물자원으로 발생하는 이익의 공평한 공유’실현을 위한 각국의 생물자원 주권을 인정하는 ‘나고야 의정서(ABS)’가 발효되어 바이오 소재의 확보 및 선점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바이오경제의 미래전략 (출처: https://www.microbiomesupport.eu/food-2030-and-the-bioeconomy/350-2/)

cf. 나고야의정서
생물자원을 활용해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지침을 담은 국제 협약.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다.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국가(주로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주로 개발도상국)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하며 거기서 발생한 이익은 상호 합의된 계약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

한국은 바이오 원료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국가들은 나고야 의정서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로 말미암아 자국의 천연물 기반 바이오소재 사용 제약에 따른 자국화 및 대체 생산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바이오 원료 또한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생물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의 경우 화장품, 식품 및 의약품 원료의 80% 이상을 해외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유용한 바이오소재의 국가자원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 방안이 필요하다.

한편 자원 독립화 관점에서 추가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는 범용 원료(나고야의정서 보호 자원에서 제외)를 출발 물질로 유용 성분(소재)을 제조하는 시스템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대체 기술의 적극적 개발이다. 현재까지는 국내 시스템 생물학 기술의 주요 관심사는 소품종 대량생산에 유리한 산업소재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 식품, 화장품, 헬스케어 분야에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는 기업의 기초 및 응용기술 개발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산·학 연계 R&D 지원의 확대가 매우 요긴할 것이다.

다음 세대에 남겨지고 쓰일
R&D 정책이 필요

세계 각국은 글로벌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7월 한국형 뉴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이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을 넘어서 범국가적 협력 및 연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보건 의료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 지속가능한 인류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위한 혁신적인 R&D 정책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다만, 부의 창출 방식이 바뀌고 있는 지금 핵심 R&D 기술 개발 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그 큰 방향은 ‘수퍼 인텔리전스’ 미래사회를 향한 대응전략과 궤를 같이 해야 한다.

최근에는 기존 산업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면서 급속한 산업 구조 개편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 및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로‘혁신의 속도’가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미래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조망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자체의 발전을 견인하는 돌파구 역할을 하는 미래유망기술의 선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래 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핵심적인 기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즉, 기술 산업의 자체적인 진보와 발전에 근거하여 향후 등장할 혁신적인 기술,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를 창출할 핵심적인 기술을 탐색 및 발굴해야 한다.

국가 주도 톱 다운 R&D로는 이제 한계
다원화, 민간주도 R&D 확대해야

해외 선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R&D 정책의 기본 틀은 Top-down 방식이다. 정부가 주로 최상위 정책인‘과학기술기본계획’을 제시하여 비전 및 전략을 주도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부처에서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수립 및 추진전략을 설정하게 된다. 결국 정부의 정책 비전 및 전략에 부합하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목적과 관련된 사업만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는 추격형 R&D에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급변하는 미래사회 대응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국가 R&D 정책 및 운영방식의 획일화 탈피를 위해 정부 차원이 아닌 개별 부처들에 의한 다원화된 과학기술정책 추진, 민간 주도형 R&D 확대, 연구자 중심의 R&D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

만약, 기존의 Top-down 방식의 정책 연구가 효율성 측면에서 구조적인 재편이 당장 어렵다면 최소한 산업적 아웃풋(output)의 속도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는 충분한 기획 과정을 거쳐 선별된 기술에 대해 중장기적인 투자와 지식 공유가 되는 방향으로 기획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고 글로벌 경쟁력 있는 국가 R&D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시장의 다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부 정책 연구는 품목 중심이 아닌 플랫폼 기술 중심으로 보다 빠르게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100년을 지속시킬 기술
환경과 공존하려는 R&D 정책 절실

정부 R&D 예산 규모는 매년 증가하여 올해 20조 원을 돌파했다. 작년 일본발 소부장 위기를 겪은 뒤 증가 추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현재 적정 R&D 예산 규모 및 실효성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미래 제조업의 경쟁력을 선점할 수 있는 혁신적인 R&D 전략을 위해서는 의사결정 체계가 매우 유연하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매우 효율적인 전략 및 조직이 필요하다. 특히, 미래 인류의 생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식량안보, 탄소순환 바이오 경제, 건강하고 행복한 삶 등을 위한 R&D 정책은 짧게는 한 세대, 길게는 백 년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술, 우리 주변 환경과 공존하려는 의식과 격조가 깃든 생명과학 R&D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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