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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COVID-19: 글로벌미래대화 ⑤] ‘G0’시대의 글로벌 리더십과 미국의 역할 -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왕선택 (여시재 정책위원·전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2020.08.20

미 민주당의 대표적 전략가이자 ‘소프트파워’를 창시한 석학 조지프 나이가 바라본 외교와 도덕성
동맹없는 평화주의는 부도덕한 결과 낳을수도
정치지도자에게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요구돼

여시재 글로벌 미래대화는 COVID-19 위기 속 새로운 국제 질서를 전망하고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고자 기획된 해외 석학과의 연속 온라인 세미나다. 여시재는 지난 5월 ‘COVID-19 이후의 뉴노멀’을 주제로 한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석좌교수와의 대담을 시작으로 ‘COVID-19 이후 국제질서와 미중관계’, ‘한-영 COVID-19 대응 경험의 공유’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채텀하우스, UN SDSN, 영국 의회 등과 함께 토론을 이어왔다.

2020년 한 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 삶에서 예견하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녀야 하는 개인 차원의 변화는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전염병 확산에 대해 국제 사회는 여전히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 중국, 유럽 국가 등 선진국이나 강대국으로 알려졌던 나라들이 오히려 코로나 19 대응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코로나19는 글로벌 리더십의 공백 또는 실종을 전면적으로 노출 시켰다. 미중간의 갈등은 무역분쟁을 넘어 글로벌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명확하게 진단하고 보완할 점을 규명하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중요하기도 하고 시급하기도 하다. 재단법인 여시재는 그간 글로벌 미래대화를 통해 세계적인 석학들이 바라보는 국제질서 전망을 공유해 왔다. 지난 13일에는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염재호 여시재 이사(전 고려대 총장)과의 대담을 통해 두 석학이 바라보는 G0 시대의 국제질서와 미국의 역할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 전략가가 바라본 도덕성의 외교

나이 교수는 국제정치의 상호의존론을 주창하였으며 ‘국제분쟁의 이해’(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라는 국제정치학의 세계적 필독서를 집필한 국제정치학자이다. ‘소프트 파워’의 주창자로 유명한 나이 교수는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부차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가정보회의 의장과 국방부 차관보를 담당한 대표적인 민주당의 외교정책통이다. 국방차관보이던 1995년에는 통칭「나이·이니셔티브」로 불리는 「동아시아 전략 보고(EASR)」를 작성하여 냉전 후 미국의 극동 안보 구상을 설계하기도 했다. 이러한 나이 교수는 올해 초 ‘Do Morals Matter?’를 출간했다. 미국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친 ‘도덕성’ 개념의 재발견을 통해 국제 리더십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반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 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진행한 인터넷 화상 대담 형식의 웨비나에 참여한 나이 교수는 도덕성이 단지 이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국가 이익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앞으로 국제 리더십에서 중시해야 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나이 교수는 외교에서 국가 이익만 중요하고 도덕성은 관심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강조했다. 좁은 의미에서 국가 이익은 자국만 생각하게 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국가 이익은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도덕성을 중시하는 것은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14명의 미국대통령 도덕성 평가, 그중 트럼프가 꼴찌

나이 교수는 1941년 이후 미국 대통령 14명을 대상으로 주요 정책을 수행하면서 도덕성에 관심을 갖고 반영했는지를 비교 조사했다. 그 결과 도덕성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전개한 대통령은 국제 리더십을 보였고, 국제 사회 협력을 유도하면서 미국 입장에서도 넓은 의미의 국가 이익을 확대했다고 본다. 도덕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현실주의나 협소한 국익 개념에 매몰된 대통령은 국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미국의 이익 확대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나이 교수는 조사 대상 대통령 14명 가운데 모범적인 사례로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33대 해리 트루먼,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41대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꼽으면서 이들을 상위 25%로 분류했다. 하위 25%에 해당하는 대통령으로는 36대 린든 존슨, 37대 리처드 닉슨, 43대 조지 W. 부시, 그리고 45대인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나이 교수는 도덕성을 무시하고 편협한 국가 이익 개념에 근거해 잘못된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역대 대통령의 비교를 통해 나이 교수는 지도자가 어떤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역사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나이 교수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도덕성에 대한 관심이 결여된 결과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이 역사의 저점을 지나고 있다고 탄식했다.

나이 교수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 당시에 보여준 고민과 정책 결정을 중요한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중공군 개입으로 어려움을 겪던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중공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20기 이상의 원자폭탄 사용을 건의했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 사용으로 대규모의 민간인이 희생되는 상황에 고민하면서 결국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의사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선한 의도만큼 정책의 수단이나 결과도 선해야

나이 교수는 도덕성과 관련한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평가하면서 의도만 중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도 외에도 정책 수단이나 결과 등 세 가지가 모두 좋아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관심사로 국제 리더십 공백에 대해 나이 교수는 기후 문제나 전염병 문제 등 어느 나라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 있기 때문에 국제 협력은 도덕적인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국제 협력을 주도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물론 한국이나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나이 교수는 경제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고, 민주주의 확립에도 성공했다고 호평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방역에서 국가적 역량을 과시하면서 모범 국가로 떠올랐다면서 한국도 국제 협력의 주요 참가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관계에 대해 나이 교수는 미국은 중국을 협력적 경쟁 국가로 규정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국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중국이 결코 자유주의 국가가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항행의 자유 등 자유주의 국가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지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되고, 그럴 경우 미국은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나 전염병 대응 등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과도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협의의 국가 이익 개념에 매몰된다면 중국과 경쟁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광의의 국가 이익 개념, 특히 도덕성 요소도 고려한다면 중국과도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에서 도덕성을 고민한다면 한일 관계는 가장 민감한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염재호 이사는 한일관계를 둘러싼 도덕성의 문제를 화두로 제시했다. 한국의 경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기 때문에 한국이 도덕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로 인해 일본과 어떤 타협을 하거나 이런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고 타협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염 이사는 분석했다. 현재 한일관계 같은 경우에는 도덕성의 과거, 역사에 기반한 도덕성에 너무 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굉장히 지금 경색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이 교수는 도덕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의도와 수단, 결과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며 현재의 일본을 부도덕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결과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1910년 이후 일본이 부도덕한 행동을 했지만 지금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이 일본을 대하면서 과거 지향적으로 대응한다면 당장에는 기분이 좋겠지만 분노가 확대될 뿐 결과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의 일본은 악마가 아니라면서 한국과 일본과 협력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동맹은 보험과 같은 것, 동맹없는 평화주의는 부도덕한 결과를 낳을지도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사이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한국의 방책이 무엇인지를 묻는 청중 질문이 있었다. 나이 교수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에 끼여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반응을보이지 않고, 오히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있다는 점을 어려운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런 경우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거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면서 안보 차원에서 미국이 좋은 협력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있어 미국과의 동맹은 보험과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나이 교수는 한국이 미국과 군사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방책이라고 해서 중국과 관계를 끊는 것으로 이해하는 발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경제적 번영을 위해 중국과 교류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남북 관계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대응을 선호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나이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다만 도덕성을 중시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지만, 싸울 생각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상대방이 이를 악용하고 평화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교에서 도덕성 평가는 의도는 물론 수단과 결과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면서 군사적 대비 태세를 먼저 해제하고 동맹도 없이 평화주의에 입각한 외교를 한다면 그 결과는 부도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연 평화주의에 호응할 의지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지도자에게는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요구돼야

염재호 이사는 나이 교수가 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 교육적인 부분을 강조한 점이 흥미로왔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염 이사는 리더십의 도덕성과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질문하였다. 나이 교수는 정치적인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의사결정권자로서의 역할에 더해 교육자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정치지도자라면 국민들에게 세계는 어떻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어떠한 행동을 취했을 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여러 사안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그는 부언했다. 나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 하고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 다른 쪽을 적으로 만들어 내고 다른 나라를 적으로 설정하여 지지를 끌어내는 값싼 방법이라고 단언했다.

외교가에서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은 흔하게 보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에서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됐던 많은 요소를 재검토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그런 차원에서 나이 교수의 도덕성 강조는 시의적절한 것이고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나이 교수의 도덕성 논의는 특히 의도와 수단, 결과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국가 이익을 분리하면서 도덕성중시를 광의의 국가 이익 개념으로 포함하는 것도 탁월한 접근법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교수의 도덕성 개념을 잘 수용하고 발전시켜서 조그만 이익에 눈이 멀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기에게도 부메랑이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 동시통역 ver. [여시재 글로벌 미래대화] ‘GO’ 시대의 국제 질서와 미국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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