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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미·러·사우디 ‘원유 치킨게임’은 왜?

이대식(여시재 도시솔루션실장)

2020.04.08 670

미·러·사우디 ‘원유 치킨게임’ 배경엔 석유산업에 대한 종말론적 위기감

1985년 사우디 4배 증산, 소련 200억 달러 손실로 체제 와해의 길에 들어서

2014~2016년 치킨게임, 베네수엘라가 최대 희생자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사우디와 러시아- 셰일혁명 수혜 5년 후 끝나는 미국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출처: AP)


2020년 3월 국제 원유시장에서 다시 치킨게임이 시작되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로 하락했다. 감산 협상이 시작되고는 있지만 최악의 경우 한자리 숫자까지 내려간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2014년 6월 시작되어 2016년 2월에 끝난 치킨게임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19개월간 지속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미국 간의 3자 대결은 결국 미국 셰일오일 생산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비(非) OPEC이 저유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감산에 합의했다. 한때 2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유가는 70달러대까지 상승했다. 망할 줄 알았던 미국 셰일오일 생산자들은 구조조정과 생산성 혁신에 성공한 뒤 더 높은 가격경쟁력으로 강력한 게임 체인저로 등장했다.

2017년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등극했다. 같은 해부터 ‘OPEC+(OPEC+비 OPEC, 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가 실제로 감산에 들어갔지만 유가는 그 후 지금까지 3년 동안 배럴당 60달러 전후의 박스권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수요 부진도 있었지만 미국의 증산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의 시장점유율만 올라갔다. 2016년 하루 884만 배럴을 생산해 59만 배럴을 수출했던 미국은 2019년 하루 1,220만 배럴을 생산해 세계 43개국에 298만 배럴을 수출했다.

3년 넘게 참아온 러시아와 사우디의 반격

2020년 초 3년 넘게 참아온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반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 셰일업자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미 셰일오일 산업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8달러였으나 지금은 46달러로 떨어진 상태다. 이번 치킨게임에서도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진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다. 상위 50개 기업의 현재 손익분기점 범위는 19달러에서 46달러다. 쉐브론의 텍사스주 델라웨어 분지가 18.9달러로 가장 낮고 이글포드 분지의 BP와 데본사의 BH 지역이 28.7달러다. 유가 20~30달러대를 버틸 기업이 이미 존재한다. 중동 산유국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30달러, 사우디아라비아는 25달러다. 미국의 적극적인 감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봐도 이번에도 2016년과 같이 OPEC+가 다시 감산에 합의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이번에도 지난 치킨게임과 같은 양상으로 끝이 난다면 사우디와 러시아는 왜 뻔한 게임을 반복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우디와 러시아에는 세계 어느 국가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장 손에 쉽게 잡히는 가설이 있다. 이전 치킨게임에서 미국에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누군가가 시장에서 심각하게 도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직전 치킨게임 기간 약 9천만 배럴/일인 세계 원유시장에서 평균 공급초과량은 약 140만 배럴/일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 수준의 마이너 생산국을 하나만 시장에서 제거해도 다시 안정된 유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미국이 제 살을 깎는 치킨게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 텍사스주 셰일오일 생산광구 현장

이번 치킨게임 희생자는 이란과 가이아나가 될 듯

그동안 글로벌 메이저 산유국들은 간헐적인 치킨게임으로 주요 경쟁자들이나 신규 경쟁자들을 무력화시키면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해 왔다. 1985년 9월 13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6개월간 생산량을 4배로 늘렸고 이로 인해 무려 200억 달러의 손실을 본 소련은 본격적인 체제 와해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동시에 그해 9월 유가 자율화 방침을 선언하며 오펙에 도전장을 내민 신규 산유국 영국도 꼬리를 내려야 했다.

2014년에 시작된 치킨게임의 최대 희생자는 베네수엘라였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 국가인 베네수엘라는 주로 다른 원유의 정제 공정에 투입되는 고유황 중유를 생산하며 미국의 세 번째 원유 공급국이었다. 한마디로 주로 중유를 수출하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쟁자다. 그런데 현재 생산량의 대부분이 가격 경쟁력이 약한 오리노코지대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치킨게임의 희생자로 매우 적합하다. 한때 340만 배럴/일이었던 생산량이 지난 치킨게임으로 100만 배럴대로 하락한 뒤 지금까지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제재까지 추가되면서 상당 기간 국제 원유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치킨게임에도 희생자 후보군이 어김없이 존재한다. 첫째는 이란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거의 유일하게 저유황 경유를 생산한다. 같은 경유 기반인 미국 셰일 오일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다. 2012년 370만 배럴/일 수준이었던 생산량이 핵 관련 제재로 2014년 300만 배럴/일 수준으로 감소했었다. 2015년 7월 핵합의에 이은 제재 완화로 늘어나기 시작한 생산량은 2017년 말 470만 배럴/일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재가동한 이후 이란은 심각한 피해를 봤다. 원유 생산량이 1988년 이후 최저치인 215만 배럴/일(2019년 10월)까지 줄어들었다. 이번 치킨게임은 이란에게 치명적인 내상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남미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다. 미국의 엑손모빌이 2015년 인구 80만 명의 이 소국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했다. 올해부터 생산이 시작된다. 2020년 12만 배럴, 2025년에는 75만 배럴 이상이 시장으로 나올 것이다. 여기에 브라질, 캐나다, 노르웨이까지 가담하여 2020년 100만 배럴 정도가 추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국제 유가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한 양이다. 1단계 개발비용이 44억 달러에 이르는 가이아나 유전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6달러로 추정된다. 20~30달러대 유가는 생산 초기의 가이아나에게 큰 부담이다. 그동안 국제 원유시장에서 이라크,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등이 사라지듯 가이아나도 같은 운명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30년 만에 일어났던 치킨게임, 이번엔 4년 만에 일어나

그러나 2020년 치킨게임이 몇몇 희생양을 만들고 이전 치킨게임과 같은 양상으로 끝날 수 있다는 가정이 맞을지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적어도 다음의 다섯 가지 사실이 현재의 치킨게임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첫째 치킨게임의 주기가 현저히 짧아졌다. 1985년 이후 주목할 만한 치킨게임은 2014~2016년까지 없었다. 이번 치킨게임은 2016년 이후 겨우 4년 만에 일어났다. 석유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이렇게 단기간에 치킨게임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1998년 신흥국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가 급락이 있었으나 일시적인 수요 부진이 원인이었지 시장 영향력을 둘러싼 치킨게임은 아니었다.

둘째 이번 치킨게임이 국제 유가의 장기적인 하향 추세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1985년 치킨게임은 장기적인 상향 추세의 서막에서 일어났다. 그 후로 2008년까지 국제유가는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따라서 1985년 치킨게임은 마치 장기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반도체 시장에서 수율 혁신에 의한 시장의 구조조정과 유사했다. 한마디로 치킨게임은 수익의 비약적인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국제 유가는 간헐적인 급락을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0년 치킨게임도 유가의 장기 하락 추세를 다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치킨게임 이후 유가의 반등폭은 이전보다 더 작아질 수 있다.

국제 유가 추세(빨간 직선은 추세선) (출처: https://kr.tradingview.com/chart)

셋째 러시아는 코로나가 오기 이전에 이미 더 이상 원유 감산의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산을 시작한 2017년과 2018년 2년간은 수출량 변동과 관계없이 수출액은 꾸준히 늘어났다. 감산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 충분했다. 그러나 2019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수출액이 전년 대비 약 80억 달러 감소했다. 감산 효과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러시아 정부는 더 이상 2015년 이전 수준으로 원유 수출액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원유 수익의 임계점을 확인한 것이다. 글로벌 원유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때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했다.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코로나로 인한 세계 경제와 석유 수요의 변화를 더 잘 관찰하려면 추가 감산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러시아는 원유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사우디는 그 시간을 주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인한 수요의 급격한 감소는 점유율 확보 전쟁을 앞당겼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 동향(출처: 러시아 통계청)

사우디를 향한 IMF의 경고

넷째 치킨 전쟁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월 6일 IMF는 사우디의 장래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 IMF는 ‘걸프 지역에서 석유의 미래와 재정 지속가능성’이라는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 수요는 2040년경 혹은 그보다 훨씬 일찍 정점에 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금융 자산은 15년 이내에 고갈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은 ‘그들의 국부펀드를, 미래에 이 펀드를 쓸 필요가 생기지 않도록, 20년 뒤가 아니라 바로 지금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라는 가라앉는 배를 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는 새 배로 갈아타기 위해 지금 당장 쓸 현금이 필요하다. 20~30년을 바라보는 시장의 장기적인 구조조정보다는 단기간 현금 장사에 매진해야 하는 입장이다. 빈살만 왕세자의 탈석유 신성장 계획인 ‘비전 2030’의 목표 시점은 이제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2016년부터 아람코 상장을 준비했다. 유가상승으로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 감산을 시도했으나 몇 년 간 기대한 만큼의 유가상승이 없었다. 결국 2019년 12월 보유자산의 5%에 해당하는 부분을 상장할 계획이었으나 그보다 낮은 1.5%만 내놓았다. 그것도 해외시장이 아니라 국내 시장에 상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기업 전체 가치도 예상보다 낮은 2,500조원 정도로 평가되는데 그쳤다. 글로벌 자산 메이저로부터는 외면을 받았다. 이후 빈살만 왕세자는 감산으로 인한 유가상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치킨게임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탈석유 정책을 선언한 데다 최근 헌법까지 바꾸며 장기집권 의지를 다지는 푸틴 대통령에게 당장 현금이 급하다. 버틸 돈은 있지만 개혁할 돈은 부족하다.

글로벌 석유 수요 전망(단위: 백만 배럴 / day) (출처: The Future of Oil and Fiscal Sustainability in the GCC Region / IMF)

금융 자산 동향(단위: %/GDP) (출처: The Future of Oil and Fiscal Sustainability in the GCC Region / IMF)


다섯째 미국 정부가 지난 치킨게임과 달리 개입 의사를 밝힌 것이다. 기존에 미국 정부는 철저히 시장 원칙에 따라 민간 셰일 업체들의 대응에 상황을 맡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럼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중재에 나섰다. 그 효과가 있든 없든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 중에 하나는 미국 셰일오일의 가격경쟁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제 겨우 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공급 증가세로 미국산 원유의 가격이 낮지만, 곧 원유 수출 인프라가 완성되고 적체 물량이 해소되면 싼 가격이라는 장점이 없어진다. 또한 2025년을 전후로 주요 유전의 생산 감소, 생산비 증가 등으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은 정점(920만 배럴)에 도달한 후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이 짧은 기간 내에 가격경쟁력을 살려 점유율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위의 다섯 가지 사실은 이번 치킨게임의 양상과 결과가 종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유가의 장기적인 하락세와 맞물려 잦아진 치킨게임은 시장의 단순 구조조정 그 이상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그리고 미국 모두 이 상황을 2014년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핵심은 석유 산업에 대한 종말론적인 위기의식이다. 20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을 지낸 야마니는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석기 시대가 끝난 것이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석유 시대의 종말도 석유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는 석유 시장 뉴노멀 시대의 신호탄

석탄은 여전히 주요한 발전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사양산업임을 부정하지 않으며 어느 나라도 국가의 미래를 석탄산업에 걸지 않는다. 이제 석유가 석탄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장기적인 글로벌 저성장에 의한 수요 감소가 해소된다고 해서 석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콘드라티예프의 장기 주기론에 따르면 저성장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 혁신이다. 그런데 다가오는 기술 혁신의 핵심은 탈석유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가운데 기존 산유국 중 제대로 된 정부를 갖춘 국가라면 모두 ‘탈석유’를 선언하고 체질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마치 새로운 배를 사야 하는 선주가 현금 마련을 위해 아직은 꽤 오랫동안 쓸만한 헌 배를 경매에 붙일 준비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치킨게임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앞으로 치킨게임은 더 자주 발생하고 유가의 하락 추세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석유 시장 뉴노멀 시대의 신호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석유 산업 내 구조조정이 아니라 전체 산업 내에서 에너지 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비산유국도 달라진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치킨게임 뒤의 유가상승을 노린 투자에 보다 신중할 시기다. 무엇보다 정유산업에서 석유화학산업으로 중심 이동을 확실히 준비해야 한다. 한국의 정유공장은 원유를 2~3개월 선구매하여 비축한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재고평가 손실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수요 감소로 정제마진도 감소할 것이다. 특히 환경 제재로 인한 벙커씨유 수요 감소 등으로 중유에 대한 수요가 먼저 줄어들 것이다. 경유의 비중을 늘리는 고도화, 나아가 교통 부문이 아니라 화학제품 생산의 비중을 늘리는 체질 개선이 준비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도 ‘탈석유’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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