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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거버넌스 ① / 일본] “사회 안정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뿌리 깊은 시스템” ‘일본 코로나 수수께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황세희 (여시재 미래디자인실장)

2020.03.27

필자 황세희 실장은 연세대(학사·석사)를 마치고 일본 게이오대에서 2012년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전문가다. 전공분야는 일본 외교, 미일 동맹, 동아시아 안전보장, 해양 안전보장이다. 박사과정을 밟던 기간에 일본 중의원에서 학생 스탭으로 3년간 일했다. 또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일본 해양정책연구재단 리서치 펠로우, 게이오대학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다. 게이오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올림픽 취소 아닌 연기에 안도한 일본 사회

일본 정부가 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처음 인정한 것은 캐나다가 처음으로 선수단을 보내지 않겠다고 밝힌 지난 3월 23일이었다. 아베 총리는 그 이전까지 “완전한 형태로 개최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완전한 형태의 개최를 위해 연기하는 방안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날 IOC에 1년 연기를 공식 제안했다. 성화가 그리스에서 일본에 도착한 닷새 후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완전한 형태의 개최’라는 말은 연기를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연기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뒤 일본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안도’였다. 총리 관저도 아베 총리 임기인 2021년 9월까지는 개최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한 듯하다. 다시 말하면 완전 취소를 우려했던 듯하고, 이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으로서 ‘완전한 형태의 개최’를 반복적으로 말했다고 볼 수도 있다.

25일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연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 (출처: EPA 연합뉴스)

코로나와의 싸움은 이제부터?
갑작스런 위기 상황의 도래

바로 이때까지 코로나19에 대한 일본 정부와 사회의 대응은 올림픽 연기라는 국가적 이슈에 밀려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올림픽 개최의 장애요인으로 취급되던 코로나19에 대한 정보 공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감염 확산 상황, 대응 체계 등에 대한 안내 등은 인터넷 포탈의 메인을 차지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는 국내 확진자 현황을 보도하기는 했지만 해외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과 한국을 넘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확진자 상황과 양성 판정을 받은 해외 유명인의 소식은 발 빠르게 전해왔으나 국내 확진자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일본 사회는 올림픽 개최가 연기되고 나서야 바이러스로 시선을 돌리는 듯하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연기가 확정된 25일 당일 밤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감염 폭발의 중대국면’을 맞이했다며 재택근무와 주말 외출 자제 등을 요청했다. 같은 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 내 감염 폭발에 대비해 개정된 ‘신형인플루엔자대책 특별조치법’에 근거한 정부대책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스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바이러스에 완전히 승리한 상황에서 올림픽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26일에는 급기야 아베 총리가 특별조치법에 따른 정부대책본부 설치를 직접 지시했다. 감염 확산 상황을 보아가며 ‘긴급사태 선언’을 실행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전날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나고 특히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음을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과연 확진자 증가는우연한 일일까?

그러나 과연 확진자가 갑자기 증가한 것일까? 고이케 도지사가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소집한 25일 당시 도쿄도의 확진자 수는 212명이었다. 하루 새 41명이 늘었다는 급격한 증가세가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도쿄도 인구와 280만 명에 이르는 수도권 통학 및 통근 인구를 생각하면 확진자 수는 놀라울 정도로 적다.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최근 며칠 새 매일 100명 가까이 늘고는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놀라울 만한 수치이다.

독일의 한 언론은 이러한 일본의 코로나 현황을 ‘수수께끼’라고 하기도 했다. 검사 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비판이 있다는 비판과, 확진이 확실시되는 환자들에게만 한정해서 진행하는 검사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의견을 동시에 소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인들의 치사율이 낮은 것을 일본인들의 철저한 마스크 사용, 위생 습관 등을 원인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바이러스 확산에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는 분석은 일찍부터 제기되어왔다. 국가적 중대사, 혹은 정권의 최대 이벤트에 국민 개개인의 건강에 대한 보호는 한발 물러서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국면들은 여기저기서 눈에 보였다. 올림픽 개최 연기에 맞물려 급작스런 상황 인식의 변화와 단호한 대처를 강조하는 정부 관료들의 모습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없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바이러스 성공은 세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 운이 다하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일본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한국이 3월 27일 기준으로 36만 명이 넘는 검사를 했는데 일본은 단 2만 5000명에 대한 검사만 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봉쇄도 검사도 하지 않았는데도 코로나가 세계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진행 중이라며 “그들이 올바른 일을 했거나,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무엇이 맞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감염병 전문가 말을 인용했다.

위협을 배제하고 격리하는 일본 시스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부터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은 외부로부터의 감염원을 차단하는 이른바 ‘미즈기와(水際) 정책’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700명 이상의 확진자를 발생시킨 크루즈선 사태이다. 36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선내에서 격리되어 있는 동안 일본정부는 방역조치를 능동적으로 취하기보다는 확진자 현황을 확인하는 ‘문자 그대로의 관찰’에 전념했다. 그 사이 국내외에서는 소극적인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한 비난이 커졌다. 일본 정부는 크루즈선 감염자 수를 국내 확진자 통계에 포함시키는 것조차 거부하였다. 각국 정부가 자국 승객을 구출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웠고 일본 정부는 순차적으로 승객을 하선시켰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하선한 자국민의 2주 격리를 실시한 것에 비해 일본 정부는 별도의 추가 격리도 진행하지 않았다. 크루즈선 사태는 일본에 ‘도래한’ 외부 위협으로 다루어졌으며 실제로 이 배에 승선했던 일본인 승객과 승무원에 대한 보호는 취약했다. 이들의 감염 상황은 현재도 확진자 통계에서 별도로 구분되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제공하는 실시간 국내 감염자 정보 지도.
국내확진자 추이와 지역별 확진자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감염경로를 비롯한 감염자 정보는 비식별정보 처리되어 있다. (출처: 후생노동성)

일본 정부의 이런 대책의 바탕에 흐르는 것은 ‘분리’와 ‘배제’로 요약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사회가 개인 보다 중시되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3월 19일 후생노동성의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 전문가 회의가 발표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의 상황 분석 · 제언’은 이러한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준다. 전문가 회의 보고서는 현시점에서 ‘사회 · 경제 기능에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감염 확대 방지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하는’ 지금까지의 방침을 계속해 갈 필요가 있다고 확인하였다. 이를 위한 기본 전략은 1. 클러스터(환자집단)의 조기 발견과 조기 대응, 2. 환자 조기 진단 및 중증자에 대한 집중 치료 내실화와 의료제공체제의 확보, 3. 시민의 행동 변화 수용이었다.

사회가 불안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 역할

일견 전문가가 아니어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조치를 굳이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의 의도는 ‘사회 · 경제 기능에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합치했음을 확인한다는 점에 있다. 바이러스 확산이 사회 불안 요소로 성장하지 않도록 국민 전반을 설득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역할임을 보고서는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확실한 유증상자에 한정된 검사, 확진자 정보의 최소한의 제공이 당연시된다. 국민들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아야 하고 확진자에 대한 선별은 조용하게 진행된다.

정부 홈페이지에도 자세한 정보는 ‘비식별정보’로 분류

바이러스 사태 초기부터 한국에서는 민간이 개발한 코로나 맵이 널리 사용되었다.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정확한 동선이 공개되고 이를 통해 자신이 확진자와 접촉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신속한 검사와 확진자 현황 파악에도 이러한 정보 공개는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한국과 같은 수준의 세밀한 코로나 맵, 지자체의 동선 공개는 제공되지 않는다. 후생노동성과 각 지자체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아도 어느 지역의 누가, 어떻게 감염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제공되고 자세한 것은 비식별정보로 처리되어 있다. 일본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도쿄 치요다구의 홈페이지에서는 이러한 정보제공의 기준을 가늠하는 자료가 공개되어 있다. ‘(치요다) 구내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발생 공개 기준에 대하여’라는 자료에 의하면 ‘감염자 특정에 의한 편견, 차별, 사업자 등의 소문 피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 보호를 충분히 배려하여’ 공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한 기준으로 1. 구민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경우, 2. 사업자가 독자적으로 공표함으로써 구민에 대한 불안을 불식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하여 치요다구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중앙정부, 혹은 지자체가 판단하여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확진자와 접촉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요원하다. 감염 위협은 일상생활에서 표면화되지 않는다.

₁ 千代田区「区内における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患者発生の
公表目安について」(출처: 千代田区

‘힘내라 일본!’에 매몰되었던 후쿠시마 사태와
올림픽에 파묻힌 코로나 사태

이러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동일본대지진 이후를 상기시킨다. 동일본대지진은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세 가지 대형 재난이 겹친 전무후무한 대재난이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상정되지 않은’ 사고였다. 토호쿠(東北) 지방의 원자력 발전에 의존해 왔던 수도권 경제 기반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반경 20km 권내를 경계 구역, 20km 이상의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을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해 10만 명 이상의 주민을 대피시켰다. 사고로 인해 고향과 가족을 잃고 강제 이주를 하게 된 후쿠시마 어린이들이 ‘방사능을 옮긴다’ 등과 같은 따돌림을 당한 일이 종종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재난은 일본 전체의 재난으로 곧바로 치환되었다. ‘힘내라 일본! 힘내라 토호쿠!(ガンバレ日本! ガンバレ東北!)’라는 구호와 함께 일본 사회 전체의 부흥과 재생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었다. 사고 초기 ‘세슘 137’의 확산 정보 등이 공개되었으나 노출 피해에 대한 정보나 방사능 확산 상황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곤경에 처한 토호쿠 지방 사람들을 돕기 위해 후쿠시마 농산물, 수산물을 구입하자는 캠페인이 진행되는 사이 방사능 확산 정보는 서서히 잊혀 갔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상황은 빠르게 일본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다. 거주지를 잃은 이재민들의 존재는 해마다 돌아오는 동일본대지진의 기념일 즈음의 언론 보도를 통해 가끔 다뤄질 뿐이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인디펜던트지가 게재했던
힘내라 일본, 힘내라 토호쿠 광고

개개인은 사회 안정 위해 불편 감수

위협요인이 사회 불안을 초래하는 것을 가능한 한 저지하는 위기관리 시스템은 후쿠시마 사태와 현재의 코로나 사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위협은 사회 내부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분리되었고 표면화되지 않는다. 강 건너의,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불처럼 위협은 저 너머 어딘가에 있으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그저 정부와 미디어가 판단하고 선별한 정보를 통해 어렴풋한 윤곽을 감지하고 각자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가 정부와 원전 산업, 그리고 언론의 공생 속에 일본 재생에 초점을 맞추어 수습된 것처럼, 사상 초유의 올림픽 개최 연기라는 ‘국가적 곤경’(사실은 아베 정권의 곤경에 가까운)에 직면하여 코로나 확산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었다. 국민 개개인의 안전은 사회 안정을 위해 ‘다소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암묵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코로나 대응은 전후 체제의 진정한 탈각을 시험할 계기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는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犠牲のシステム 福島・沖縄)’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전후 일본의 국책(國策)이었던 원전 정책에 숨어 있는 ‘희생’의 실체를 폭로했다고 비판했다.이어 후쿠시마가 전후 일본 헌법과 미일 안보체제 속에 희생을 강요당해온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와 동일한 상황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다카하시는 원자력 발전과 미일 안보체제를 각각 ‘희생의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나아가 전후 일본 국가 자체를 ‘희생의 시스템’으로 파악하려 하였다. 전후 체제의 탈각을 외치는 아베 정권이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해 일부 집단을 희생시키는 전후 체제의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코로나 사태는 확인 시켜 준다.

高橋哲哉. 2012. 犠牲のシステム 福島・沖縄. 集英社

아베 총리의 정치적 목표 ‘전후 체제 탈피’를 진정으로 이루고 싶다면 사회시스템 전면 전환 필요

히로히토 천황이 포츠담선언의 무조건 수락을 선언한 것은 1945년 8월 15일이다. 그러나 바로 전날인 8월 14일까지도 일본 신문의 1면 기사는 소련군과 격전을 치르고 오키나와에서 연합국의 함선 3척을 침몰시킨 잠수 부대의 활약을 전하고 있었다. 신문과 방송에 의지하여 전쟁 상황을 파악하던 일본 본토의 대다수 국민에게 전쟁은 아직 저 너머의 위험이었다. 하루아침에 무조건 항복이라는 급변이 일어나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사회 안정을 위해 정보는 선별적으로 제공되었고 때로는 조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 국민은 모든 것이 국체(國體) 보호와 전시 체제라는 특수한 상황 하의 위기 대응이었다고 ‘납득’을 강요당했다. 본격적인 코로나 대응에 나서기 시작한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탈피할 것인가? 아베 정권이 진정한 전후 체제의 탈각을 실현하고 싶다면 일본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사회 안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21세기에도 유효할지, 일본 사회는 코로나 대응을 통해 전후 체제의 진정한 탈각을 시험해 볼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1945년 8월 14일 아사히 신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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