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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대화 / 과학사회학자 윤정로] “의학·과학 중심 범국가위원회 만들어 코로나 사태 대처해나가야”

이명호 (디지털플랫폼팀장) · 강동균 (SD)

2020.03.26

“전문지식이 신뢰받는 풍토 만들지 못하면 사회 전체 불행”


‘과학(기술)사회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을 파고들어가는 분야다. 바이러스가 사회 시스템 전체를 흔들어놓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역학(疫學)이나 병리학 뿐만 아니라 의료시스템, 이를 지원하는 생산체계, 나아가 가치사슬 전반과 사회의 공론 형성 과정, 거버넌스 문제까지 넓고 깊게 파장을 형성하고 있다. 과학기술 사회학자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윤정로 UNIST(울산과학기술원) 석좌교수(전 KAIST 교수)는 한국 과학기술사회학 개척자다. 30년 넘게 이 분야에서만 연구를 거듭해왔다. 윤 교수는 1991년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한국과학재단 이사, KT 이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한국사회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민간위원장과 (재)여시재 이사를 맡고 있다.

윤 교수를 만나 코로나19 사태의 의미, 우리 사회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디서 출구를 찾아야 하는지 들었다.

“코로나 사태,
사회구조적 문제로 봐야”

Q. 코로나 사태가 과학과 경제의 문제를 넘어 거버넌스 일반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지혜를 찾아야 할 듯하다. 문명사적으로 볼 때 어느 시야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직 진행 중인 사태라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전염병이 창궐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100년 넘게 유럽,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창궐하면서,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1918년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추정치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망자가 5,000만 명에 이른다고 하고,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수백만 명이 감염돼서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1968년 홍콩 독감으로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까이는 2009년의 신종플루 유행 시 전 세계 사망자가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우리나라에서도 260여명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이런 전염병 사태가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는 사례마다 다른 것 같다. 흑사병은 유럽의 중세 사회가 붕괴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독감의 경우에는 치료약과 백신이 개발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유아와 노인에게 매년 무료 백신 접종의 혜택을 주고 있다. 기원 전(BC)과 후(AD)처럼 앞으로 ‘코로나 전’과 ‘코로나 후’로 시대 구분의 기준이 바뀔 거라는 우스개 같은 얘기도 있지만, 아직은 때이른 평가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한 처리는 방역이나 치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봐야만 한다.

“바이러스 사태는
만들어진 위험”

Q. 바이러스 팬데믹이 뉴노멀, 또는 포스트노멀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것을 과학사회학적 관점에서 평가해달라.

‘포스트노멀’이란 말의 뜻은 이렇다.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이 불확실하고 그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에 논란이 있지만, 그 이슈에 중대한 위험과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긴급히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과학을 표현하기 위해서 나온 용어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0년대부터 현대사회의 특징을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파악한 사회이론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나와서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고, 현대사회의 위험은 자연재해보다는 발전한 과학기술을 적용해서 생기는, 소위 ‘만들어진 (manufactured) 위험’의 성격을 띤다고 본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는 만들어진 위험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연적, 기술적, 사회적 요인이 연결된 복합적인 형태의 위험으로 볼 수 있다. 당장 각국의 발병자 수와 치명률은 국가 간 경제교류와 보건의료시스템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리고 최근의 경향은 신종 바이러스 유행이 계속 출현하고 있고, 단순하게 봐도 세계화에 따라 그 확산 속도와 범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바이러스 전염은 현대 글로벌 위험사회에 상존하고 포스트노멀 상황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지식 없이는
좋은 판단 못 내려”

Q. 이번 사태의 파장이 클 텐데, 국내적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사회경제 전반에 대한 총체적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다. 다만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는 사회적 의사결정에 있어 전문적 지식에 기반한 판단에 대한 권위와 신뢰가 확보되어야 한다. 서구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도 최근 과학기술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소위 비전문가들도 일상생활의 경험에 입각하거나 또는 전문가급의 지식과 정보를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듯이 전문적 지식 없이는 정확하고 좋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판단이 존중되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에서 의료계와 과학기술계의 신뢰받는 전문가, 관련 산업계, 정치권(여당과 야당),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인사들로 포괄적인 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재난 발생 시에 사회적 약자나 외국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풍조를 막는 관용과 포용의 문화를 길러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세 유럽의 흑사병 유행에서는 유태인이나 거지들, 일본의 관동대지진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받던 한국인들이 우물에 독을 뿌린다는 등의 루머와 함께 집단 폭행과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미 여러 곳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인들이 무고하게 배척과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세 번째는 이번 대구와 경북에서처럼 위기 속에서도 평화롭게 질서가 유지되고 공익을 위해서 협력하는 시민정신이 너무 소중하고, 이 소중한 자산이 계속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 이번 사태에 직면해서 총기 구입이 급증하는 현상과 대조적이다.

“국가지도자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전문가 판단할 능력은 있어야”

Q. 우리나라 정부 관료, 정책결정권자 중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학기술에 대한 인터뷰를 할 때 꼭 받는 질문이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정책결정에 과학기술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도자에게 더 중요한 자질은 합당한 전문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지도층의 과학기술 전문가 부족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대만의 지도층이 이공계 전공이라는 사례를 든다. 이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기간 중에 대학이 폐쇄되었다가 문화혁명이 끝나고 대학을 다시 열었을 때 이공계 학과를 먼저 열었다. 대만은 민주화 이전에 유능한 학생들이 의대와 이공계에 몰렸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최근의 대만 지도자들은 변호사 출신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이공계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WEF(세계경제포럼) 의장인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는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저술가 제레미 리프킨은 토목공학 박사이다. 또 위르겐 하버마스, ‘제3의 길’을 제시한 앤서니 기든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처럼 기라성 같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유전자 조작, 기후변화 등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다.

“과학기술 文解力은
이미 시민들의 기본 소양”

Q. 국민들 생각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이슈,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광우병 사태, 원자력 발전, 최근의 코로나19 등은 과학기술 상식,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과학적 사고가 왜 중요해지고 있다고 보는가?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효과와 사회적 파급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셨듯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이 과학기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경제는 물론 과학기술이 위력을 발휘하지 않는 부문을 찾기 어렵다. 일반 사회구성원들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 문해력(literacy)이 권리와 의무 행사에 필요하고 문맹(illiteracy)으로 인해서 사회적 불이익을 당했던 것처럼,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소통 능력(computer literacy)과 컴맹(computer illiteracy)이 대비된다. 앞으로는 컴퓨터를 넘어서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사고방식이 시민권을 행사하는 데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 될 것으로 본다. ‘과학기술 시민권(science and technology citizenship)’이라는 용어가 이미 쓰이고 있다. 이것은 과학기술 관련 이슈에서도 시민들의 참여와 민주주의 이념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과학기술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사결정을 위해 과학기술 문해력이 시민들의 기본 소양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고 본다.

“불확실성 높을수록
투명한 정보 소통 중요”

Q.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객관적 상황을 두고도 진영화되는 흐름이 심각하다. 심지어 전문가(또는 전문가 집단)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나?

이렇게 위험과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에서는 믿을 수 있는 정보의 소통이 투명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통계자료가 공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투명성과 신뢰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관련 메시지는 정치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제공하는 것이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의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얘기한 정부 차원의 위원회가 정보를 검토하고 공신력이 있는 하나의 목소리로 일관성 있게 발표해 주면 좋겠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측면까지
통합적으로 교육해야”

Q. 유전자 연구 등 과학기술의 명암, 과학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기술이 얼마나 위험하다고 보는가?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높았던 2000년, 미국에서 발간되는 월간 웹진 ‘와이어드(Wired)’에 “왜 우리는 미래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글이 실렸다. 이 잡지도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고, 필자도 현대 컴퓨터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라는 빌 조이(Bill Joy)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업자로 CTO를 맡았던 사람이다. 21세기의 새로운 기술로 꼽은 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기술은 위험성이 엄청나게 증폭되고 통제 불가능하게 돼서 인간이 절멸되는 경지에 이를 가능성이 다분하고, 이렇게 위험한 과학기술 개발에는 제동을 걸어 포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 볼 수는 없고, 질문한 대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모두에게 많은 혜택은 주되 재앙을 몰고 오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빌 조이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전문가를 비롯해서 현대인 모두가 매일매일 일어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생활방식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에 수반되는 위험과 의미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학자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해서 보다 포괄적으로, 성찰하는 자세와 장치를 제도화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나 역시 이런 입장에서 활동을 해왔다. 구체적인 방안까지 거론할 수는 없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측면까지 통합적으로 다루는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과학기술도
인류에 기여할만한 수준 되었다”

Q.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가 과학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과학기술 연구역량이 문화 수준의 지표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다 보면 노벨상을 탈 수도 있겠지만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타기 위해 연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수상자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노벨상에 집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기초과학 분야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신속하고 간단명료한 성과가 나지 않는 투자를 요구한다. 설문조사를 보면 시민들은 과학기술의 연구성과에 대해서 과학자들 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성급한 기대에 성급하게 부응하려다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 과학 연구도 인류 사회에 기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궁핍한 시대에 자랐던 우리 세대는 결연하지만 쫓기듯이 일을 했던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즐거움을 갖고 관심을 추구한다. 과학을 특별한 소수만 하는 학문이라고 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연구분야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이렇게 되면 노벨상이 더 가까워질 것이다.

“연구 윤리는 과학 수준 높이는 보호장치
선배 연구자들부터 생각 바꿔야”

Q. 우리나라의 연구 윤리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가?

서울대 오세정 총장과 몇 년 전에 노벨상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노벨상은 독창성과 기여도를 정확히 추적 발굴해서 수상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표절이나 이름 끼워 넣기 등을 위시해서 연구 윤리 위반 문제가 자주 사회적 이슈가 되는데, 연구 윤리는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과학과 학문의 발전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지원받는 상황에서, 윤리기준에 어긋나는 연구활동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또한 공정한 성과 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연구자들의 동기부여나 여러 연구자들 간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연구결과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연구 윤리는 지난 10여 년이라는 단기간에 국제적인 수준의 제도를 갖추고 상당히 내실도 다졌다. 그러나 앞으로의 수준 제고를 위해서는 실제로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 특히 지도적인 연구자들이 연구 윤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한다. 연구 윤리 규정이 연구의 자유와 연구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쓸데없이 성가신 방해물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보호장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학생들과 젊은 세대 연구자들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연구 윤리 규정은 훈련 과정의 초기에 연구실에서 습득하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선배 과학자들의 관심이 중요한 이유이다.

Q.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과학자의 역할이 더 늘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1980년대에 발표된 각국의 여성과학자 조사자료를 보면, 한국의 경우에는 표본 수가 너무 적어서 분석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여성과학자에 대한 통계자료가 없었다. 숫자가 적으니 통계의 필요성조차 없었는지 모르겠다. 1990년 말부터 여성과학기술자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고 분야도 다양해지고 여러 분야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총선 때마다 주요 정당의 비례대표로 여성과학자들이 포함되고 있고, 2016년에는 여당의 비례대표 1번이라는 상징성을 띤 자리에 지명되기도 했다. 이렇게 된 데는 우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 노력이 있었고, ‘이공계 기피’ 현상과 맞물리면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여성은 과학기술 분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고 본다. 제도적으로는 어느 정도 정비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이 소외되기 쉬운 직장 문화에는 개선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고, 무엇보다도 출산과 자녀 양육 부담에 대한 배려가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실리콘밸리가
전부는 아냐”

Q. 작년 10월부터 새로 구성된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산학협력이 잘 안된다고 비판하면서 실리콘밸리를 바라보라고 한다. 최근 산학협력에서 창업과 기술이전을 강조하는 게 세계적 조류이긴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서도 기술이전과 창업의 대부분은 생의학과 IT 분야가 차지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정보제공이나 기술 자문, 인력 소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산학협력 활동이 이루어져 왔다. 작년부터 위원회에서 중점을 둔 분야는 인력양성이었다. ‘어떤 인력을 배출할 것인가?’에 대해 수요자인 산업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기업이나 산업계의 요구만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채용하고자 하는 기업, 그리고 산업의 지형은 바뀌지 않는가? 사람에게 일생 중요한 자질과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해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으면, 학교와 기업에서 대응하는 게 수월해질 것 같다. 산학연 협력을 위해서 정부 각 부처별로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용어나 지원체계에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있어서, 이런 부분을 조정해서 범부처적으로 적용하려는 작업을 준비하고 산업계 현장 중심의 정보교환과 산학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총리가 바뀌고 코로나 돌발사태로 더 이상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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