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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사이트 / 에너지 변동 / 이란 사태] 미국은 이란 공격을 통해 무엇을 노리나? - 20년 전 브레진스키, “중-러-이란 동맹이 미국에 가장 큰 위협”

김연규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0.01.14

중∙이란, 5개월 전 2800억 달러 투자 합의

(위)지난 6일 솔레이마니 피살 후 열린 장례식 모습 (출처: 연합뉴스)
(아래)7일 이란 혁명수비대 측의 이라크 내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 장면 (출처: AFP)

에너지 문제를 빼고는
이란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미-이란 충돌 사태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솔레이마니 피살로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가는 듯하더니 이란에 의한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인 격추로 이란 내 반미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 과정에서 이란이 미군 기지에 보복 공격을 감행하면서도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직·간접 메시지를 미국 측에 보낸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이 사태가 갖는 복잡성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태가 어디까지 번지고,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빼놓지 말아야 할 지점이 하나 있다. ‘에너지’다. 최근 10여 년간 미-이란 사이에 벌어진 일의 배경엔 에너지 변동 문제, 더 나아가 미-중 미-러 갈등이 깔려 있다. 모든 것을 에너지로 설명하려는 ‘에너지 결정론’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에너지를 빼놓고는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
2000년대 들어 도전 본격화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독립을 이룬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정치·군사적으로 점차 후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반면 중국은 중동산 석유의 최대 바이어로 등장하면서 이 지역에서 갖는 군사-전략적 영향력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때의 분석 및 예측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오일파동과 2000년대 고(高) 유가 에너지 위기 때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던 ‘3대 기반’이 있었다. 아시아 제조업 기지와 걸프 에너지 기지의 결합, 달러-석유 결제 체제 (Petro-Dollar) 유지 또는 강화, 미국 해군의 물류 운송로 통제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자면 미국이 이 3대 기반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통적인 전략과 비슷한 처방들을 2020년에도 사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왜 그럴까? 정답은 없다. 최근 20여 년 안팎의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봄으로써 윤곽을 드러내보고자 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美 국가안보보좌관과 그의 대표 저서
『거대한 체스판』(2000)

20년 전 브레진스키의 전망
“‘중-러-이란 동맹’이 미국엔 가장 위협”

그전에 먼저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2000년에 낸 ‘거대한 체스판’이다. 이 책은 브레진스키가 그의 후손들이 살아갈 미국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썼다. 브레진스키는 여기서 미국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이 피해야 할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로 ‘중국-러시아-이란 동맹이 형성되는 일’을 들었다. 즉 반패권 동맹이다. 미국은 지금 이 생각에 기반해 체스판을 움직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2007년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총사령관이었던
웨슬리 클라크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며 미 정부의 중동 국가 공격 계획 등에 대해 공개
증언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 출처: 유튜브 FORA.tv)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실은 화폐전쟁이었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와 자원민족주의, 에너지 고갈 전망 등으로, 한정된 에너지를 둘러싼 국가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었다. 1980~90년대 대폭 줄었던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 적자 폭이 2000년대 들어 다시 증가하면서 달러 가치가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이란·이라크·리비아 등 원유 수출국들은 이로 인한 석유 수출 수익 감소에 대한 대안으로 유로화와 기타 화폐 중심의 석유 거래를 추진했다. 석유-달러 결제 체제를 통해 구축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2000년대 초반 이런 일들이 있었다. 2003년 미국이 2번째 이라크 전쟁을 실행하기 직전 해인 2002년, 이라크 정부는 석유 수출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로 전환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2005년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하게 된 이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란에 석유 거래소를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리비아는 아프리카의 석유 수출국들과 함께 새로운 석유 결제 체제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런 움직임이 미국의 ‘전쟁 선택’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나토 사령관 출신인 웨슬리 클라크 (Wesley Clark)의 증언(2007년)을 포함해 다수의 연구들은 2000년대 중동에서의 미국의 걸프 전쟁은 중동 국가들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을 둘러싼 전쟁이 아니라 화폐(currency)를 두고 실제로 군사력을 동원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최초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중동 주둔 미군 2007년 25만 명으로 피크
지금은 1만 5000명대

‘페트로-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은 최근 수년간에도 이어졌다. 2015년 1월 이란은 석유 결제 통화로서 달러 이탈을 선언하고 대체 화폐로 러시아 루블과 위안화를 지정했다. 2015년 러시아도 중국에 대한 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위안화는 아직 국제적으로 완전히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위안화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대금 지불에만 쓰일 수 있었다. 2017년 9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은 “달러의 횡포(tyranny of the dollar)에서 벗어나겠다”며 베네수엘라의 원유 가격을 위안화로 공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베네수엘라의 이런 행보는 달러화가 위안화 대비 가치가 떨어져 가치 저장과 거래 수단으로서의 매력을 잃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때인 2015년 7월 14일 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중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ermanent Members of UN Security Council) 5개국과 독일(이른바 P5+1)은 이란과 ‘이란 핵합의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이하 “JCPOA”)’를 체결했다. 이란은 국제사회가 제기한 핵 개발 의혹 해소를 위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등을 수용하고, 그 대신 미국과 EU 등은 이란의 핵의혹을 이유로 이란에 부과하였던 경제제재를 해제하거나 유예하여 주기로 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중동 에너지에 대한 절실함이 약화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걸프 지역에서 미군 병력의 상당수를 철수하였다. 1990년대~2000년대 걸프 지역 뿐 아니라 북부 중동까지 지배하던 미국이 중동에 올인하던 정책을 바꾸었던 것이다. 2007년 모로코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배치된 미군은 최고 25만 명이었지만 이젠 1만 5000명대로 줄었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트럼프 미 대통령 (출처: WP)

미국의 對 사우디
1100억 달러 무기 수출의 의미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의 에너지 독립이 중동에서의 미국의 후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합의로 미국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가 트럼프 집권 이후 우선적으로 복원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4개월 만인 2017년 5월 20~21일 사우디를 방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과 약 11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를 수출하기로 합의하고 서명했다. 이어 트럼프 정부는 이란 핵합의 이후 완화했던 對이란 경제·금융 제재를 복원하게 된다. 2019년 5월 22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봉쇄 방침을 발표하고, 이 결정은 이란 정권의 돈줄인 원유 수출을 완전히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이탈리아·대만 등은 이란산 석유를 대체할 공급선을 찾기 시작했고 미국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8월 베이징에서 회담을 진행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출처: 중국 외교부)

이란産 석유 둘러싸고
미·중 갈등 표면화

이란産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 반발했다. 2019년 8월 3일 뉴욕타임즈는 2019년 5월 이후 수개월 동안 이란의 원유 탱커들이 중국 해안으로 향한 증거들을 추적한 결과를 보도했다. 2019년 9월 미국은 이란 제재를 위반한 중국 기업과 중국인을 제재 대상으로 새로 지정하면서 미국과 중국간에 이란産 석유 수입을 둘러싼 대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트럼프의 이란 제재 복귀 이전인 2016년 중국과 이란은 4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이란 석유시설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합의한 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몇 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이란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가 실현되는 것을 봉쇄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라크와 리비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걸프 전쟁 상황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 미국-중국-이란 간에 현재 전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란 석유와 가스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중국의 에너지 부족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달러 패권에 미치는 영향이다. 중국과 이란의 석유 거래는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마저 여기에 동조한다면 이는 더욱 미국을 위협하는 일이다. 미국이 이란産 석유 불법 수입을 이유로 중국 선박과 금융회사를 제재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2019년 8월 중국 외교부장 왕이의 이란 방문이었다. 왕이 부장은 2016년에 합의했던 4000억 달러 중 일부인 2800억 달러를 우선 실행하기로 이란 측과 합의했다.

사우디 유전 피폭 계기로
미군 16년 만에 사우디 주둔

2019년 9월 14일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의 아브카이크 석유 탈황시설과 쿠라이스의 유전이 여러 대의 무인기 공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였다. 이 대형 화재로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석유 시설 가동이 중단됐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줄어들었다. 미국은 이란을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의 주체로 지목하고 공격이 예멘 쪽에서 비롯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란이 국제 원유 공급망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2019년 10월 11일 미 국방부는 사우디 핵심 석유시설이 피폭된 데 대한 후속 조처로 미군 병력 2천800명과 사드 1개 포대, 패트리엇 미사일 2개 포대, 공중조기경보기 1대 등 대공 방어에 초점을 맞춘 전력을 사우디에 배치하기로 했다. 미군이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3년 이래 16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 중부 사령부(CENTCOM)는 호르무즈 해협 등에서 감시와 안전을 증대하기 위한 다국적 해상훈련(Operation Sentinel)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석유-위안화 결제’ 시도
러시아는 받아들이고 사우디는 거부

미국으로서는 이란 석유 가스의 중국 수출도 차단해야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産 석유의 중국 수출도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갈등을 증폭하는 방법을 쓰면서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 능력도 약화시키는 방법을 미국은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분쟁화와 해군력을 이용한 운송로에 대한 장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석유시설 파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예상외로 중국이다. 2018년 가을 이후 미국의 이란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의 풍선효과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중국 수출 급증으로 나타났다. 2017년 말까지만 해도 중국으로의 제1위 석유 수출국은 러시아였다. 당시만 해도 미국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위안화 석유 결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은 위안화 결제를 채택한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우선 추진하였다. 결과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중국으로의 원유 수출은 100만 배럴을 넘지 못했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복원되고 동시에 미중 무역 분쟁도 표면화되기 시작한 2018년 8월∼2019년 7월 사이 중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수입은 하루 약 92만 배럴)에서 180만 배럴로 급증하였다. 같은 기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미국 수출은 16만 배럴에 그쳐 급감했다.

2019년 5월 이란 제재 복귀로 호르무즈해협과 페르시아만의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 정부의 강력한 이란 원유 수출 제로화 정책이 현실화되면서 미국의 원유 수출과 한국의 미국 원유 수입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란의 원유 수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 반사효과로 미국의 원유 수출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2019년 5월 한 달간 하루 평균 300만 배럴 이상을 유지했다. 전 세계 원유의 21%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의 지정학 리스크 증가로 이 지역을 운항하는 선박들의 보험료와 선박 운임이 크게 올라 선박 크기에 따라 5~10%에 달하는 할증료가 붙었기 때문에 각국 수입업자들이 원유 수입처를 미국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 에이브러험 링컨함 (출처: AFP)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 문제
미·중 사이 딜레마 구조적 딜레마

미국 원유 수출 증가는 또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조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2019년 4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 그리고 이 기업의 지분을 50% 이상 가진 기업과 거래하는 어떤 개인이나 기업도 처벌하겠다는 조치를 내렸다. 사실상 원유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이런 조치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이 대폭 줄어들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10년 전 하루 350만 배럴이던 것이 지금은 100만 배럴이 채 안 될 정도로 감소했다.

세계 원유 교역구조 측면에서, 미국은 자국 내 셰일 석유 등의 생산량을 늘리면서 사우디 등 중동산 원유의 수입을 줄이고 있다. 반면 중국은 국내 원유 생산이 정체되고 해외 원유 수입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란 등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 호주 및 인도와 공조체계를 강화하면서 인도양 패권을 장악하고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 등지에서 이란産 원유 수송에 대한 검색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호르무즈 해협 공동 방위에 파병을 요청하고 있어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 정세를 포함한 향후 국제 에너지 질서의 향배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중동 지역의 미국 군사력을 다시 강화하고 이란을 봉쇄하는 미국의 전략이 중단기 어떠한 파장을 가져올지 면밀히 검토하여 우리의 이익을 지켜나가기 위한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우리로서는 큰 딜레마적 상황에 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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