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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사이트/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역할 3] 정부가 공공성으로 무장한 혁신가 집단이 되어야

작성자 : 김은환(작가∙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2019.11.18 조회수 : 2965

[여시재 인사이트/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역할 3]

정부가 공공성으로 무장한 혁신가 집단이 되어야

- ‘정부 역할’ 점점 커지는데 그걸 감당할 공무원은 없다 



김은환(작가·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사진 출처: 중앙일보)


<들어가는 글>

축구를 회화에 비유해 보자. 반듯한 직사각형 구장은 캔버스, 저마다 개성을 지닌 선수들은 다양한 컬러의 물감, 그리고 선수들을 이끌고 다니는 공은 물감을 칠하는 붓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누구인가? 바로 심판이다. 심판은 단순히 반칙을 적발하고 페널티를 부과하는 감시자가 아니다. 심판은 게임 전체를 이끌고 연출한다. 과열된 경기를 식히고 느슨한 흐름을 다시 조이며 …. 감독이 한 팀의 리더라면 심판은 경쟁하는 두 팀이 빚어내는 예측불가의 드라마를 이끄는 리더다.

이 비유는 경제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기업의 CEO들이 산업의 주역 같지만 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경쟁하는 어지러운 시장의 상호작용을 조율하는 것은 정부다. 보수 진영은 작은 정부를, 진보진영은 큰 정부를 지향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진짜 이슈는 정부의 크기가 아니다. 크기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다. 

혼돈과 혁신의 시기, 정치 양극화 시대에 정부의 역할을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

1. 정치 양극화 시대의 경제정책 - 정책 융합이 답이다(링크)

2. 혁신을 위한 기업정책 - 네트워크와 조직의 경제학(링크)

3. 앙트르프러너 국가, 정부는 지원자가 아니라 선수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A Country is Not a Company)>에서 국가와 회사를 단호하게 구분했다. 크루그먼은 국가의 관리가 복잡성과 책임감에서 회사와는 비교될 수 없다고 본다. 대개의 경우 한 나라의 국민은 한 기업의 구성원보다 훨씬 더 많을뿐더러 모범 시민부터 범죄자까지 극히 다양하다. 국가는 회사와 달리 형편이 어렵다고 국민들을 솎아내서 나라 밖으로 추방할 수 없다. 그건 국가가 아니다. 


성과라는 측면에서도 국가는 회사와 비교할 수 없다. 오늘날 주주 중심 패러다임 하에서 회사의 성적표는 돈으로 표시되는 경영 성과, 구체적으로는 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으로 표시된다. 이것 하나면 모든 것이 커버된다. 심지어 단기 이익이 장기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 해도 단기 이익만으로도 CEO나 CFO의 임기는 연장된다. 그러나 국가는 어느 하나, 이를테면 1인당 GDP에 올인할 수 없다. 지니계수, 실업률, 경제활동참가율, 평균수명, 가계부채, 더 나아가 출산율과 자살률 등등 만만치 않은 지표들이 버티고 있다. GDP가 좋으면 어느 정도 커버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만 올인했다가 소득과 자산양극화가 심화되면 사회의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회사원과 공무원은 역할과 업무가 다르다.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가 간명한 만큼, 회사원은 경주마처럼 목표를 향해 돌진해도 되지만, 공무원은 전후좌우를 따져가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속도와 혁신은 민간이, 안정과 균형은 공공이 담당한다는 이분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공무원은 회사원이 아니다


회사원과 공무원은 성과 관리에서도 차이가 난다. 척도가 명확한 회사원에게는 강한 성과주의 보상을 적용할 수 있지만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기업의 성과급을 도입한 것은 이런 면에서 무리하다. 모든 동기부여를 ‘당근과 채찍’으로만 알고 있는 단선적인 사고방식은 공무원을 회사원 취급한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원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성격이 원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얘기다.


리더십 전문가 수전 파울러는 동기부여에 관한 저서에서 "당근으로 채찍질하지 말라"고 했다. 공정성이 의심스런 차별적 보상은 당근이 아니라 부당한 채찍이 된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최소한 성과 개념 자체가 복잡한 공무원 사회에는 설득력이 있다. 


"기부 노동 가설"이란 것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공무원의 급여는 대기업 회사원 보다 낮다. 기부 노동 가설은 이 차이를 생산성 격차가 아니라, 공무원이 노동의 일부를 사회적 대의의 추구나 타인에 대한 봉사로부터 얻는 보람과 교환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군다나 금전적 보상 차이로 공무원을 독려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가설이 과연 타당할까. 아마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급여 외에 갖는 권위, 복리후생과 기타 수익,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정년 보장과 연금 등의 혜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 가설은 사실 명제라기보다는 당위 명제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크루그먼의 말처럼 국가는 회사가 아니고 따라서 공무원은 회사원이 아니어야 한다. 공무원은 금전적 이득보다는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효율이라는 단선적 가치보다는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균형 감각을 갖춰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건 중의 하나다. 금전적 욕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무원 사회가 균형감각을 잃고 권위만을 행사하게 된다면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 십상이다.



‘특허괴물’이 된 대기업과 법무∙회계법인


이 대목에서 ‘기업은 혁신, 정부는 안정’이라는 이분법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하다. 혁신은 기업의 전담 영역이 아니다. 이윤동기에만 의존해서는 혁신이 진행될 수 없다(2편 참조). 혁신 초기에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지식을 최대한 공유하고 상호 교류해서 융합을 촉진해야 한다. 만약 이를 기업 경쟁에만 전적으로 맡긴다면 혁신의 흐름은 막혀버리고 만다. 


지식은 그 자체로도 주요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넘침(spillover) 효과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혁신은 공공재다. 지식이 재산권의 장벽에 막히지 않고 아무 대가 없이 자유롭게 흐를 때 혁신의 동력이 생긴다. 오늘날 문제 되고 있는 일부 대기업과 법무∙회계 법인의 횡포는 ‘특허괴물’이라고 불리는 시스템 때문이다. 그 장벽 앞에 서면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혁신의 에너지들이 사장되고 만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혁신에서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 효과다. 그것이 있어야 스필오버도 맞아떨어진다. 정부는 혁신의 문제를 시장과 기업에 가볍게 일임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저변의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정부도 ‘선수’

‘공공 앙트러프러너’가 필요하다


혁신은 특히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도 이 게임에 참여하는 선수라는 것이다. 정부는 심판도, 코치도, 협회 임원도 아니다. 정부도 등번호를 달고 그라운드를 달려야 한다.


혁신의 종주국 미국의 산업사에서 정부의 역할은 눈부셨다. 미국 정부는 소련이 위성 발사 성공으로 앞서 나갈 때,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다. 60년대가 가기 전에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은 세계에 대한 약속이었으며 이를 완수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은 경이로운 것이었다(달 착륙에 성공한 것은 1969년 7월 20일이다). 실리콘밸리나 최근의 보스턴 생명공학 생태계 구축의 배경에는 정부가 있었다. NASA나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 사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뿐인가. 싱가포르, 이스라엘, 네델란드 등 대표적인 혁신 국가들에서는 민간과 기업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되 이를 이끌어가는 정부의 역할이 주효했다. 정부는 민간기업에게 일을 맡기고 성과를 체크하는 감독자가 아니라, 앞장서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이끄는 헌신적인 ‘주장’이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초입 단계다. 이 시점에서 정부와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앙트러프러너는 민간에만 있지 않다. ‘공공의 앙트러프러너’가 필요하다.



열정을 불러일으킬 

내적 동기부여가 필요


공무원은 어떻게 해서 그처럼 열정적이 될 수 있을까.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면 무엇이 동기부여의 묘약이 되는가.


이것은 정부만의 고민이 아니다. 기업 경영에서도 보너스, 승진 등 외적 보상만으로는 동기부여에 충분치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회사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더욱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내생적 동기부여다. 이것은 외적 보상이 아닌 내면의 욕구를 중시한다. 타인과의 공감에 기초한 협력 욕구, 자아실현과 보다 차원 높은 가치의 추구 등이 그 예다.


마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사람의 욕구는 생존과 안전의 추구에서 소속감, 자존감을 넘어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으로 상승한다. 내생적 동기부여의 핵심은 자아실현이다. 이것은 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당히 잘하는 회사(good company) 라면 돈에 이끌리는 인재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회사(great company)가 되려면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자아실현이라는 내면의 요구에 의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인재다. 회사원도 그렇다면 공무원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공무원은? 

안전욕구로의 퇴행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마슬로우의 욕구 단계에서 자아실현 욕구로 상승해야 할 공무원들은 지금 생존과 안전 욕구 단계로 퇴행하고 있다.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민간 부문의 고용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공무원은 평생직장의 유일무이한 섬이 되었다. 안전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높은 차원의 욕구는 의미가 없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는 원초적인 욕구만이 남았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여가 낮아도 공무원이 되려는 이유는 일의 보람 때문이 아니라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국가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열정과 의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공무원의 열정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중대한 요인이 있다. 공무원 조직의 리더는 대통령을 위시한 선출직이 담당한다. 행정부가 집행할 법을 제/개정하는 것도 선출직 의원들의 조직인 의회다. 정치 리더가 방향을 설정하고 공무원이 이를 집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부의 근본 구조다.


그런데 관료제의 효율성은 목표의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 정권이 임기마다 바뀌는 민주 사회는 그 방향이 정권에 따라 흔들린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인 관료제는 과거 중국이나 비잔틴의 왕조 체제에서 구현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유구한 전통이 정책 기조의 안정성을 보장했던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 정부라도 정파 간 정책이 상호 수렴하고 극단적인 정권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이 매도되고 정책의 근간과 이념이 뒤집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정책은 정권의 임기를 훨씬 넘어서는 긴 숙성 기간을 갖는다. 단기적으로 기조가 뒤바뀌는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정책 추진이 불가능하다. 특정 정권의 기조에 호응했다가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 난처한 입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복지부동이 위험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애초에 공무원이 된 이유가 안전 추구였다면, 이것이 합리적인 처세다.



고용 보장이라는 방어벽에 갇혀 변화를 등진 ‘갈라파고스’


안전 욕구에 의해 깊이 묻혀버린 내생적 동기부여를 되살릴 수 있을까. 일 자체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관행의 극복과 혁신의 추구로 이어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자기결정성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람은 자신이 대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을 때 새로운 시도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흙장난이나 레고 조립에 몰입하는 것은 흙이나 레고가 아이의 뜻대로 변형,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멋진 장난감이라도 조작이 불가능하면 금방 흥미를 잃게 된다.


지금의 공무원 조직은 경직될 대로 경직된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 문화에 갇혀 있다. 관행과 내부 규범이 구성원을 짓누르고 변화를 시도해보겠다는 의욕 자체를 무력화한다. 수많은 청년들이 고용보장의 섬에 오르려고 힘겹게 경쟁하는 와중에도 이러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공직을 떠나는 소수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안전 욕구가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작은 목소리’다.


기술과 전략의 변화는 세상을 더욱더 변화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유니콘, 데카콘으로 산업 판도를 뒤바꾼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결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공무원 조직은 변화에 등진 섬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내외부 간의 격차는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  



공무원이 회사원 보다

더 과감한 혁신가가 되어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무원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을 바꿔가야 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은 위험 회피와 현상 유지의 상징이 아니라, 기업보다도 더욱 과감한 혁신가여야 한다. 또한 공무원은 감독자, 심판관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스스로 실무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 능력보다는 전문 능력이다. 현재의 순환보직 체제에서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키워가기는 어렵다. 공무원들은 이론적 기반과 현장 경험을 결합한 현실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춰야 한다. 


도전정신과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공공의 앙트러프러너가 앞으로 공무원의 이미지이자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공무원 상과는 너무나 달라 보일지도 모른다. 한 번에 이런 변화를 일으킬 묘수는 없다. 다만 약한 고리를 발견하여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이것이 축적되어 변화의 임계치를 넘어서기를 기다려야 한다.



공무원 사회 바꾸기 위해선

채용제도에 타격 가할 필요


‘채용-훈련-활용-퇴직’이라는 경력 시스템의 전반적 재조정이 필요하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우선 채용에서부터 단서를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 시험이라는 경로는 동결, 더 나아가 점차 축소하면서 경력자 채용 채널을 서서히 늘여갈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 형태의 임시 조직, 임시 채용도 나쁘지 않다. 이들이 공무원 사회의 본령을 건드리지 못하고 겉돌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본령에 타격을 주기 위해 ‘물방울이 바위 뚫기’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을 발굴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외부 인력을 받아들이는 시도를 지속해야 한다.


사회경험과 현장 대응력을 갖춘 공무원이 많아져야 한다. 몇 년을 공무원 수험서에만 매달린 사람이 앙트러프러너가 될 수는 없다. 공무원 시험제도를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대학을 다닐 필요는 없지만 경력과 현장 경험 요건은 강화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없어 일을 못한다고?

진실은 일할 사람이 없는 것


현재 ‘큰 정부’는 만악의 근원이다. 공무원을 늘이자는 모든 주장은 무책임하고 사악한 것으로 지탄받는다. 이러한 맹목적 포비아의 타겟이 됨으로써 정부 기능 강화에 관련된 중요하고 시급한 이슈들이 아예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복잡화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부의 기능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단순히 공무원 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공공재의 질과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필요하면 신규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비현실적인 얘기를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 신규 인력이 없는데 어떻게 신규 업무가 일어나고 혁신이 일어나겠는가. 지금 구조로는 어렵다. 기존 공무원은 인력 부족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다. 어느 기관장은 새로운 업무가 필요해서 인력 요청을 했더니 1년이 지난 뒤 정원이 없어서 안된다는 담당 부처의 답변을 듣고 좌절했다고 한다. 그러면 기존 인력 내에서 업무를 조정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는 그런 얘기가 오히려 비현실적일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투입돼야 업무가 생기고 무능자를 가려낼 수 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젊은 아르바이트생에게 특정 업무를 맡겼더니 기존 공무원들이 몇 개월 할 일을 불과 하루, 이틀에 끝내버렸다는 얘기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람이 없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으로 핑계다. 정확히 말하면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규모의 적정 증가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되, 이 증가분을 공무원 시험의 합격 정원 증가가 아닌 다양한 방법의 경력직 채용 및 계약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가치 업무가 아닌 프로젝트 리더나 핵심 인력으로서 경력직 충원을 추진한다. 이런 접근이 단단한 공무원 조직에 진정한 타격을 주기 어렵고, 또한 이러한 불완전한 고용형태로 역량 있는 인력을 확보할 수 없는 등 많은 어려움이 예견된다. 하지만 단번에 모든 문제를 말끔히 풀어줄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급한 공공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현실에서 검증된 인재를, 공무원 시험이라는 외길 경로와는 다른 경로로 공무원 조직에 접근시키는 것, 이것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 다양한 전략전술이 계속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Paul R. Krugman, 2009, A Country is Not a Company, Harvard Business Press

수전 파울러(Susan Fowler), 박영준 옮김, 2015, <최고의 리더는 사람에 집중한다(Why Motivating People Doesn’t Work … and What Does)>, 가나출판사

Jed DeVaro, Nan Maxwell, Hodaka Morita, 2015, "Compensation and Intrinsic Motivation in Nonprofit and For-Profit Organizations", CEI Working Paper Series, Center for Economic Institutions, Institute of Economic Research, Hitotsubashi University

Fred Block, Matthew R. Keller, 2016, State of Innovation: the U.S. government's role in technology development, Routledge

S. N. Eisenstadt, 1959, "Bureaucracy, Bureaucratization, and Debureaucratization", Science Quarterly, Vol. 4, No. 3

Tom Christensen, Per Lægreid, Paul G. Roness, Kjell Arne Røvik, 2007, Organization Theory and the Public Sector - Instrument, culture and myth, Routledge

Herbert L. Petri, John M. Govern, 2013, Motivation Theory - Research and Application, Wadsworth

김태유, 신문주, 2009, <정부의 유전자를 변화시켜라>, 삼성경제연구소

유튜브, [전직공무원시점] ep05. 공무원을 그만둔 솔직한 이유(2019.10.11.), https://www.youtube.com/watch?v=GX37Zexyh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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