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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터뷰] “일본 보다 중국에 멱 잡히면 안 돼, 핵심 전략 기기는 국산화해야”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우리는 거부하는 DNA, 고비마다 치고 나갈 힘 있다”

작성자 : 이윤서, 이한결 2019.08.10 조회수 : 7256

“일본 보다 중국에 멱 잡히면 안 돼, 핵심 전략 기기는 국산화해야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우리는 거부하는 DNA, 고비마다 치고 나갈 힘 있다” 




고단했던 산업화 60년, 길면서도 짧았던 이 나라 산업화의 여정이 중대한 고비에 처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 (재)여시재 이사장은 연초 올 한 해에 대해 “전환기적 고통,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 그대로의 상황이다. 이 이사장은 당시 여시재 인터뷰에서 “1997년이 유동성과 기업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사회 전체가 문제”라며 “경기변동 상의 위기, 구조적 위기, 3차 산업에서 4차 산업으로 넘어가는 산업 혁명적 위기가 중첩되어 있고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겹친 대전환기적 위기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전 사회적 워크아웃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지금, 여기에 한일 관계가 더해졌다. 한일 관계는 거의 10년 전부터 ‘복합골절 상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삐그덕거렸다. 그게 강제 징용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경제와 군사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60년 동안 구축된 ‘한-일 벨류 체인’에도 근본적 동요가 시작됐다. 

연초 인터뷰에서 7개월 여가 지난 시점에 다시 이 전 부총리의 얘기를 들었다. 이 전 부총리는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이고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를 맡았다. 이후에도 세계 산업과 금융의 흐름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살펴온, 국내 몇 되지 않는 국가 전략가다. 



<한일 관계>


“日의 ‘경제 무기화’, 해서는 안 될 일 했다”

- 현재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경분리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사단이 난다. 일본이 징용자 문제를 들어 경제를 무기화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국가와 국가 간에는 분쟁을 그대로 놓아둘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징용자 문제 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쪽 잘못도 있다. 사법부는 그렇게(징용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하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 판결 결과를 국내화(化)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로 가버리기 전에 관리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너무 오래 방치한 느낌이 있다. 물론 피해자가 생존해 있기 때문에 여러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에 대한 배상은 우리가 할게, 너희는 책임 느끼고 할 바를 다 하라’, 이렇게 당당하게 가는 방법은 없었을까?”

“국가와 국가 간에는 극단적 선택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출구는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지난 2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각의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


- 일본 쪽의 조치가 지나치게 비대칭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문제가 커졌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3개 품목의 경우도 실제 수출을 막을지 봐야 한다. 1개 품목에 대해 승인을 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고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할 얘기는 당당하게 하되 감정을 이 이상 에스컬레이트 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질 낮은 민족주의로 반일감정을 부추기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자주독립국가 국민으로서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침착함과 당당하고 쿨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린 이미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日은 언젠가 중국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생각”


- 최근 아베 총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만난 한국 정치인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이 ‘한국은 중국 편이냐, 일본 편이냐’ 식의 얘기를 한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언젠가는 한번 담판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 중국 편에 설 것인지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 기업인, 관료, 학자들과 함께 컨퍼런스를 몇 개월 한 일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말)는 일-한 우방과 평화주의다, 혼네(진짜 속마음)는 중국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또 DNA 얘기도 하더라. ‘한국은 통일신라 때부터 줄곧 중국의 속국 아니었느냐, 일본은 독립국을 유지해왔다, 거기서 오는 국가의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일본인들의 속마음에는 앞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가의 존립이 가능하겠느냐와 관련된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다.”


- 일본인들 중에는 ‘센카쿠 이전의 일본과 센카쿠 이후 일본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이 준 사회적 충격이 워낙 컸다는 것이다(센카쿠 분쟁은 2010년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의 충돌에서 비롯된 중-일의 영토 분쟁이다)

“그럴 것이다. 일본은 베이직 니즈, 즉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다. 그래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생명선으로 여긴다. 센카쿠는 절대 양보할 수 없고 독도와 쿠릴열도 남방 4개 섬(일본 입장에서 북방 4개 섬)에 대해서는 침을 계속 발라 놓는 것이다. 일본이 사할린에서 오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가지려는 이유는 제2의 보급선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미국이 (중-일 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참여하겠지만 그전에는 안 한다고 본다. 그래서 1차 대결에서는 독자적으로 대항할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한국을 향해 해양국가로 남을래, 대륙의 부분으로 갈래라고 묻는 거다. 일본은 베트남 버마 몽골 같은 나라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한국 하나만 가지고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소비에트 시절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이 방치하지 않을 것”


-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변화가 이번에 올 것으로 보는가

“한국과 일본은 그 벨류체인에서 중요한 고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한·일 간 출구 없는 싸움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현재 시도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의 분산(分散)’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일 서플라이 체인에 차질이 오면 결국 장기적으로 미국에 이롭지 않다.”


- 금융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은

“그건 아닐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때 일본이 가장 먼저 돈을 빼 갔다. 미국은 일본에 한국을 직접 지원하지 말라고 했다. 모든 것은 IMF와 IBRD를 통해서 하라고 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일본이 금융 쪽 액션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정체성은 관계의 균형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것이 부족”


- 소재 산업의 독립 얘기가 정부와 산업계 전반에서 나온다

“그것은 일본 관계를 떠나서 중국을 바라보고 해야 한다. 중국에 멱을 잡히면 안 된다. 유통이나 백화점 같은 것은 몰라도 핵심 전략적 기기와 원자재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재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력 있는 기업,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키워야 한다. 대-중-소 기업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책략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산업구조를 전면 재구축하는 기회로 삼자는 얘기들이 나온다

“쉽지 않은 얘기다. 핵심 부품을 키우려면 독일과 일본밖에 없다. 독일로 나가든지 일본 지원을 받든지 해야 하는데 이제 일본의 지원은 받기 어렵게 됐다. 기초기술을 이제부터 키우려면, 그것도 중국과 경쟁해가면서 가려면 길이 멀다. 기초 기술은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재원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 전환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핵심 기업, 미 일 중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업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키우는 방법이 빠르다.”         


- 산업 문제 외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큰 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농담인데 우리가 떼놈 왜놈 미국놈 그러잖나. 그것은 굉장히 방어적인 관점에서 너희들에게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정체성엔 균형이 필요하다.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관계의 균형이 중요하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춘추시대에는 작은 나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전국시대엔 못 살아남는다. 나름의 책략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본 책략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그런 문제에 대한 뚜렷한 고민이나 인식이 없을 수밖에 없다. 친일로 갔다가 반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밑바닥에서는 일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중국과 우리 사이에 이뤄진 관계보다 훨씬 긴밀하고 복층적일 것이다. 문화 사회적 분야까지 포함해서 애증이 다 얽히면서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쌓여온 관계다. 그 관계 자체를 받아들이고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거기에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과도하게 부가시키면 마찰이 일어난다. 

우리나라 젊은 학생 중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1년짜리 워킹 비자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게임, 관광 등 사방에 있다. 일본 사람들이 지금까지 부담 없이 한국 사람들을 받은 이유가 문화적 유사성도 있지만 생산성 문제, 동남아 보다 뛰어나다는 현실적 측면이 겹쳐서 그런 거다. 이런 것이 하나의 축적이다. 한일 관계의 축적에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불리할 게 없고 저쪽이 뛰어나게 우월할 게 없다고 본다. 단지 경제적인 크기로 보면 저 지역이 크고 우리가 작지만 얽힌 끈이 잡아당기는 관계는 큰 차이가 없다. 그것이 한 줄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짧은 줄이 수없이 얽힌 거다. 이 현실을 보아야 한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게 일본 덕분?

그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안 된다”


- 일본 쪽에서는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게 일본 덕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럼 영국 사람은 미국에게 인정하라고 해야 하는가.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중국에 시비 걸면 안 된다. 일본도 중국이 일대일로 받아들여라 하면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역사는 부침과 흐름 속에서 주고받으면서 이뤄지는 거다. 로마의 가치를 얘기할 때 그리스 사람들이 ‘로마에 가치가 어디 있느냐, 모두 그리스에서 간 것이지’라고 하고, 그러면 이집트 사람들은 ‘그리스 문명은 원래 이집트 것이다’고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논리의 유희에 불과하다. 역사는 수없이 많은 관계가 중첩되어서 현재에 이른 것인데 그걸 갖고서 하나하나 행위에 의미와 가치판단을 하고 옳다 그르다, 너를 도왔다 아니다 하는 것은 40년간 살아온 부부가 앉아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건 내 덕분이다 하는 것과 똑같지 않나. 의미 없는 얘기다.”


- 산케이신문 구로다 같은 사람이 그 얘기를 했고 일본 우익 쪽 사람들 머릿속엔 그 생각이 뿌리 깊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이 백년의 수치를 풀자고 하는데 그것을 구로다식으로 표현하면 한국이 일본에 백년의 수치를 풀어야 하는 거다. 일본의 수혜가 아니라 우리가 일본 때문에 당한 고난과 수치를 풀기 위해서 우리가 굴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우리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다. 우리 자신이 중국 변방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까 예전 고대에 가진 우리의 독자성을 상실하고 중국 의존적 사고체계를 가졌다는 거다. 그러다가 별안간에 근대화되면서 서구적 사고 체계를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서구 체계를 받아들이는데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거지. 일본이 백제 때 우리나라를 통해서 중국 문물을 가져가고 그랬듯이 하나의 흐름이고 과정인 것이다. 그걸 은혜를 주고받았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안된다. 한없이 올라가면 옛날에 원시인이 모든 혜택을 준 게 되지 않겠나.”  



<산업 60년>


“추격 경제인 한국경제

더 이상 추격할 게 없어진 상황”


- 이사장님은 연초 올 한 해에 대해 ‘대전환기’라고 했다. 어둠이 깊어야 거기서 아스라한 빛이 나온다고 했다.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요인들이 겹쳤다. 세계적인 의미에서 유럽에서 시작한 대량 생산체제로서의 산업화, 그것이 거의 끝에 왔다. 우리가 산업화에 올라타서 성장해온 방식, 그것도 끝이다. 또 기존의 대량 생산방식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떠나 중국이나 동남아, 인도나 이런 데로 옮겨갔다. 영국이나 유럽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로 온 게 모래알처럼 빠져서 다른 나라로 가는 상황이 겹쳐있다.

또 산업화가 가져온 사회적 생활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1차, 2차 거쳐 서비스산업으로 가는데 돌아보니 별안간 서비스산업을 할 게 별로 없어졌다. 생산성 낮은 영세 자영업자만 있다.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 플랫폼 경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몰려오고 있다. 그게 아니라도 어려운데 겹쳐서 몰려왔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전환기적인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 문제는 여기에 하나를 더 이야기할 수 있다. 보통 우리 경제를 추격 경제, 패스트 팔로우어라고 하는데 더 이상 추격할 게 없어진 상황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데는 원천적인 기술도 있고 기초 부품, 시설도 있는데 우리는 없다.”





“우리에겐 중간 단계의 고민이 없었다”


- 왜 그런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그렇다. 시장 수요가 너무 빨리 우리한테 들이닥쳤기 때문에 우리는 파이널 터칭, 마지막 생산에 바빴다. 자동차도 늦게 시작해서 바로 따라 하지, 배도 바로 따라 하지, 비행기도 만들지, 다 따라가려니까 생산에만 바빴다. 이러다 보니 하나씩 하나씩 도전을 받으면서 문제를 풀어서 온 경제가 아니고 그냥 점프한 경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중간 단계 고민의 과정이 없었다. 일부는 베어링을 만든다든지 중간 과정에 매달린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우린 산업 생산의 마지막 피니시 터치, 마지막 단계의 수요가 컸기 때문에 뒤따라 하기 바빴다.”  



“한 중 일은 상명하복 문화

그것이 성공 이끌었지만 지금은 부담”


- 그것으로 성공한 것 아닌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만약 우리가 6·25를 겪지 않았다면, 미군이 들어와 산업문명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일본의 바로 옆에 있어서 그 일본이 넘쳐흐르는 생산 수요를 감당 못해서 우리나라로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을 보자면, 중국 인도가 산업화를 같이 시작했는데 중국은 성공적으로 빨리 진행되고 인도는 늦게 진행되는 요인이 있을 거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이 소위 국가주의적인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다. 상명하복식 문화이고 질서를 유지하는 문화다. 대량생산체제와 잘 맞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성공했는데 앞에 말한 대로 대전환기의 끝으로 들어오니까 그런 것들이 부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산업화에는 단계마다 과정이 있다. 나쁜 의미로는 단계마다 기득권이 생기고 때가 낀다. 그 때를 씻어 내면서 가야 한다. 이건 경제사회적 의미로 사회적 비용, 거래비용을 일으킨다. 우린 그런 과정이 없었다. 이게 부담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선발자의 축적을 못 가졌고 후발자의 이익도 크게 갖지 못했다.”


-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너무 앓는 소리 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소리 할지 몰라도 그것이 사실이다. 하나 좋은 점은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끝에 4차 새로운 경제 체제가 열려서 바로 거기로 넘어갈 수 있는 후발자의 이익은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를 운영해온 경험도 있다.”

“정운찬 선생이 쓴 얘기인데 전 세계에 5천만 이상의 인구를 갖고 1만 불 이상의 경제사회 시스템을 움직이는 나라가 몇 개 안된다. 중국은 아무리 선진 경제라고 해도 후진 체제다. 스스로 돌아가는 체제가 하나도 없다. 국가가 박정희 체제처럼 국가 동원 체제로 돌아가는 거지. 메커니즘과 마켓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아시아에는 일본, 우리밖에 없다. 이런 경제 운용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 있는 반면 그 장점이 4차 산업으로 넘어가는 데선 걸림돌이 된다.” 

“미국에선 공유차가 쉽게 가는데 우리는 쏘카, 타다의 문제가 생겼다. 왜 그러냐면 미국, 일본에선 단계별로 기득권들이 해결되면서 넘어왔는데 우리는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왔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이 동시에 몰려와 한 줄로 섰기 때문에, 말하자면 모든 산업이 기득권 체제로 되어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때 전부 걸림돌이 되는 거다. 그런 게 지금의 우리 상황의 어려움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교착 사회라 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움직일 수 없게 꽉 막힌 사회다. 재벌만의 문제가 아니다. 큰 이해관계와 작은 이해관계, 생산자와 소비자,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엉켜있다. 예를 들면 쌀 직불금제, 그런 것을 쉽게 고칠 수 있겠냐는 거다. 일본은 메이지 이후 백수십 년 동안 과정 과정마다 해결하면서 넘어왔다. 우리는 몇십 년에 걸쳐 한꺼번에 와서 각자 밥그릇이 되어버렸다. 쉽게 말하면 아주 초현대와 전근대가 겹쳐서 엉킨 거다.”



“기업이 R&D 실험하듯

정부도 정책 실험 주저하지 말아야”


-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여시재가 ‘방아쇠를 당기자’고 하는 것 아닌가. 몇 군데를 뚫어 보자는 거다. 과거와 현재에 매달려서는 어떤 완벽한 방안을 갖고 문제를 풀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기업들이 끊임없이 R&D 투자를 하고 LAB을 만들어서 실패해가면서 실험하는 것처럼 국가 사회도 작은 단위부터 정책실험을 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뉴타운 정책을 했다가 실패했다. 그것이 실패라면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수요 부족과 같은 실패 요인을 들여다보고 다른 뉴타운을 해봐야 하는 거다. 그러나 우리는 피드백을 안 했고 리뷰를 안 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행정전산화를 시작하면서 대학생 알바를 썼다. 우리 행정전산화가 세계에서 제일 잘 됐는데 그런 바탕이 있었다. 가정주부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정부가 시킨 일이 있다. 그것을 통해서 IT 변화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그것이 지금의 삼성이나 통신기기 쪽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끊임없이 새로운 소통을 요구하게 되니까. 이런 것이 방아쇠일 수 있다. 플랫폼 경제, 빅데이터 이런 일에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실험이 상승적 변화가 일어나는 긍정적 작용을 하는가 하면 뉴타운의 경우 부정적 작용을 했기 때문에 그 다음에 재개발이 안 일어나는 거다. 재개발 하나도 못하고 기껏 과거를 과거로 대체하는 재건축만 하는 거다. 현상 유지적 정책만 가능한 것이지.” 

“우리한테 좋은 점은 엄청난 예비 인력을 가졌다는 거다. 좌파적 표현으로는 산업예비군이다. 엄청난 지식노동자 예비인력을 활용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잠재력이나 경험이 축적되어 있고 5천만의 커다란 국가 사회 경제 시스템을 가동한 경험도 있다.” 



“노태우 때 북방 정책이 경제 지평 넓혀

그것이 우리를 수십 년 먹여 살렸다 


“박정희 시대는 국가 명령 시대였다. 국가가 특혜 라이선스를 나누어줬다. 압축 성장이다. 전두환 때 비로소 다양성과 시장이란 개념이 들어왔다. 컬러 티비가 들어오고 복수의 플레이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엔 항공사도 하나 아니었나. 하나로도 넘친다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복수의 플레이어가 생기면서 자연히 경쟁이 생기고 시장논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 북방 정책이란 걸 통해서 경제의 물리적 지평이 넓어졌다. 노태우 정권이 무능하다고 하는데 노태우 정권의 경제적 지평의 확대가 우리를 몇십 년 먹여 살렸다. 중국도 편안하게 올라타서 먹고살지 않았는가. 김영삼 대통령도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세계화라는 큰 경험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실패의 축적, 경험과 축적을 가졌다. DJ에 와서 처음으로 국가 재원을 사회정책에 쓰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시스템에 쌓인 때를 로드맵을 만들어서 벗겨보자고 했다. 재정운영 2030도 만들고, 로드맵도 100여 개도 만들었는데 거의 손을 못 댔다. 너무 서둘렀고 광범위하게 벌렸다. 선택과 집중을 해서 몇 가지 성공사례를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MB 이후에는 불행하게도 박정희 체제를 흉내 냈다고 할까, 답습했다고 할까, 거기서부터 사회가 불가피하게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해결할 체제 자체가 준비가 안됐다. 이런 축적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 실패, 성공의 경험도 있고 커다란 시스템을 움직인 힘도 있고 해서 이것을 어떻게 잘 관리 운영할 것이냐에 따라서 우리 미래가 열리기도 하고 못 열리기도 할 것이다.” 

“제가 연초에 각자도생이란 단어를 썼는데 사람들이 전부 깜짝 놀라고 불안해했다. 그러나 내 뜻은 변화가 크면 위에서부터 체계적인 접근보다 각자 해결하는 게 제일 코스트(비용)가 적게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존 배낭을 메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하자, 이 표현을 좋아한다. 국가가 뭘 준비하고 방법을 찾고 하는, 어떤 것은 신산업이 되고 어떤 것은 구산업이 되고 하는 것보다 각기 뭔가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거다. 지금 시대는 정부가 바로 답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전환기적 고통이 끝날 때까지는 각자도생 각오를 갖고 생존 배낭을 메고 미지의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 얘기를 하는 거다.”




“재벌 비판하면서 나도 재벌 되겠다고 나서는 강인한 DNA가 우리의 힘”


- 그래도 우리 산업화의 역사를 보면 성공의 역사로 볼 수 있지 않나

“지금 보면 성공한 것 같지만 단계 단계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 실패가 쌓여 생산력의 변화로 연결된 것이다. 그래서 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시험을 해 보자고 얘기하는 거다.”


- 다른 나라를 보면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계속적인 낭비만 이뤄지고 그게 부패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바뀌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나

“우리 민족은 2000년 동안 평생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도생 체제에서 살았다. 조선 5백 년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국가가 먹여 살려주지 않았다. 일본 봉건 영주 제도처럼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순종적 DNA라고 한다면, 우리는 거부하는 DNA, 그래서 단계마다 치고 나갈 힘이 생겼다 이거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방직공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인정 안 하고 나도 벌자고 덤비지 않나. 한쪽으로는 재벌체제를 비판하면서 나도 재벌 되겠다고 뛴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몇백만 명이 죽어가는 속에서 나온 강한 DNA다.”



“변화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중요”


- 그런 DNA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렇게 봐도 될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여시재가 방아쇠를 당기자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 방아쇠 당기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어디선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국민들의 생각에서 끌어와야 한다. 타다 문제만 해도 정부와 공무원이 앉아서 풀려고 하지 말고 컨테스트를 해보자는 거다. 30~40개 동아리에 1000만 원씩 줘서 해결방안을 마련하게 하고 그 경쟁에서 이긴 동아리에 한 2억 원 주겠다는 식으로 사회적 논의를 부치면 지금 정부가 한 것보다 훨씬 좋은 방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1만 개 동아리에 1000만 원씩 주면 많은 사회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렇게 해도 1000억이면 된다. 사회적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옛날부터 주장한 것인데, 우리 국민들이 사우디 이런 데서 돈 벌어 왔듯이 국민적 에너지를 쏟을 일을 찾자는 거다.”


- 연초 인터뷰 때 정부의 산업정책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 노동, 시민사회가 각기 분야에서 이 대전환기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정부가 할 건 크게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기존에 축적된 기업 중에서 지속가능한 걸 찾아서 지원하는 일이다. 이것은 산업정책이라기 보다 기업 정책이다. 아닌 건 죽도록 놓아두고, 그 경우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회사가 볼 베어링을 잘 만든다면 지금까지는 현대나 삼성의 계열사 협력사로 했는데 이젠 글로벌 경쟁의 개체로 크게 바꿔주자, 그 노력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동남아 고급 수요 팽창에 대비해야”


또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동남아 수요에 대비하는 일이다. 동남아 쪽 소득구조가 높아지면 거기에 따라 고급 소비 수요가 팽창할 것이다. 이것은 농업과 수산업 분야에서도 나온다. 그것을 우리가 해낼 수 있다. 정부가 물꼬를 터야 한다. 과거에 했던 융자 방식 보다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투자방식으로 돈을 모아서 한다든지, 기존 틀을 바꿔서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국민이 전환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비상 배낭을 채워줘야 한다. 채워주되 그냥 앉아서 비상 배낭이나 까먹을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에게 채워줘야 한다. 그런 정책을 써야 한다. 몇 만 개 동아리에 1000만 원씩 주자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그것을 놓고 감사원이 무엇에 썼는지 일일이 보고서 써라 하면 안 된다. 프랑스에선 과거 64체제 때 드골이 학생 수당을 줬다. 독일은 입학을 까다롭게 하되 등록금을 거의 안 내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공부하는 대가를 가치로 계산해서 돈을 주는 거다. 기초소득이다 뭐다 하면 공짜 같아서 듣기 거북해진다. 주는 방식을 고민하면 된다. 노인들이 모여서 마을 소하천을 정비해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면 돈을 준다든지. 그렇게 하면 운동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정부가 할 역할이 있다.”



“미국식 ‘내셔널 프로젝트’ 해보자”


“세 번째는 정부의 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국가 프로젝트가 있어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면서 수없이 많은 수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미국은 나사 프로젝트를 아직도 진행한다.” 

“오바마가 ‘브레인 프로젝트’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 보스턴 등지에 바이오 생태계로 연결됐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재향군인들을 흡수하기 위해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했는데 하나가 고속도로 프로젝트, 하나는 대학교육 프로젝트였다. 그때 일으킨 교육이 대학을 키우고 나사로 연결됐다. 세계 브레인의 80%가 미국으로 몰리는데 그 계기가 그때 만들어진 거다. 시니어 부시가 만든 것이 수퍼 하이웨이인데 이게 와이파이로 갔다. 이런 프로젝트가 수없이 많은 걸 일으키고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서플라이 체인을 길게 만들면서 부가가치를 높게 만들어줬다. 생산 라인이 길어지고 생산 활동과 사람의 활동이 다양해지고, 어느 다양성으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도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는 거다.” 

“도시재생 사업이 중요한 것이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앞서 얘기한 동남아 수요와도 관련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가 만들어지면 여기저기서 따라가게 되고 외국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 게 하나의 내셔널 프로젝트가 되는 거다.” 




“기업 승계 불가능해지는 시기 온다”


- 기업들이 지난 60년 동안 성장해오면서 상속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세습 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장도 금융전문가가 아니라도 정부와 마음만 맞으면 할 수 있었다. 기업도 빠른 속도로 크다 보니, 부품 개발 고민도 없이 파이널 터치만 하면서 컸으니까 누구에게나 맡겨도 됐다. 그 누구나가 3세 4세들이었다. 전문경영인 시장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요즘 보면 오너들이 경영 때려치우고 부동산 음식점 하는 친구들 나오지 않나. 자기가 기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환기에는 거버넌스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온다. 예를 들어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가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도 그런 체제가 올 것이다. 일본도 10년 전 JAL에 전문경영인(이나모로 가즈오)이 들어가고 나서야 달라지지 않았는가. 그런 과정이 전환기적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올 수밖에 없다. 렌트(地代) 비즈니스는 승계가 된다. 하지만 렌트 자체가 없어지는데 어떻게 승계가 되겠나. 더군다나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승계를 하겠나?”


-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아직도 오너의 기업 내 영향력이 과도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실패가 나오는 것이다. 아마 당분간 M&A가 활발해질 것이다. 안되면 팔고 빠지겠다는 오너들이 나올 것이다. 이걸 부정적으로 볼 건지, 긍정적으로 볼 것인지 나로서는 잘 판단이 안되지만 고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회사가 잘못돼도 돈 빼돌리고 책임 안 지고 회사 팔고 빠져나오는 일이 많았다. 여기에 소셜 캐피탈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대전환기에는 거버넌스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을 융합하려 했던 알렉산더가 죽자 페르시아는 격렬한 혈투 끝에 세 쪽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전환기는 하나의 거버넌스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물론이다. 내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얘기하긴 했지만 이번 대전환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가능성은 아주 많다. 우리는 위기를 거치면서 단단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져 왔다. 수백 년 동안 중국에 굴종까지 해가면서 생존해왔다. 우리가 준비하는 데는 약할지는 몰라도 한번 위기가 오면 대응이 상당히 빠르다. 나는 거기에 우리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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