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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지금] “지금대로라면 모든 게 불법” “실험도 하지 말라고 한다” - 여시재 ‘미래산업’ 5차 토론회, “스마트시티를 최고 수출 상품으로”

양보라, 이윤서

2019.06.25

산업혁명은 새로운 도시를 탄생시켰다. 1차 산업혁명은 면직 산업의 중심도시 리버풀을, 2차 산업혁명은 자동차 중심도시 디트로이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리버풀은 2차 산업혁명과 동시에 기울었고 디트로이트는 IT 3차 산업혁명의 태풍을 맞아 러스트벨트가 되었다. 1980년대 시작된 IT 혁명은 러스트벨트를 딛고 실리콘밸리와 헬싱키 같은 스타트업 도시들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4차 디지털 혁명의 대표 도시는 어디가 될 것인가? 만약 디지털 기술과 교통-의료-교육-일자리가 결합된 스마트 대표 도시를 한국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한국 정부는 2018년 1월 스마트시티 기본계획을 확정한 뒤 세종시 5-1 생활권과 부산 에코델타시티를 시범도시로 선정했다. 2021년이면 입주가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잘만 하면 도시 전체, 도시를 움직이는 시스템 전체를 통째로 수출하는 길을 열 수 있다. 과연 제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재)여시재는 황희 국회의원, 매일경제신문,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과 함께 지난 6월 19일 ‘스마트시티가 미래상품’을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여시재가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연중 토론회 ‘대전환의 시대, 산업의 방아쇠를 당기자’ 5차 토론회였다. 대통령직속 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갑성 연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세종 스마트시티를 책임지고 있는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과 손지우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했다. 강태영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훈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부원장, 유인상 LG CNS 스마트시티사업추진단장, 정진호 다쏘시스템코리아 상무, 황희 국회의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핵심 토론 내용을 정리했다.

“스마트시티는 역사의 필연이다”

스마트시티 전문가인 손지우 SK증권 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이 스마트시티라는 새로운 도시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때”라고 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과 이에 따른 소비 감소와 공급과잉, 그리고 생산성 하락이 겹치는 시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토마 피게티를 인용,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 지수가 1929년 대공황 직전 시기와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다. 또 2016년 기준 세계 평균 산업 생산성도 1908년 이후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다. 100년 만에 소득불평등 최고, 생산성 최저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수치들로 볼 때 새로운 산업혁명이 불가피하며, 마침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산업혁명 때마다 주축 산업이 이동하고 이 이동에 따라 새로운 도시를 탄생시켰다며 지금이야말로 그런 시기라고 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디지털 혁명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자동차와 스마트홈을 거쳐 스마트시티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스마트시티의 출현이야말로 역사의 필연이라는 것이다.

“스마트시티 실험 성공 여부가 경제성장 향방 좌우할 것”

지금 대부분의 주요 국가와 기업들이 디지털 혁명의 결집체 스마트시티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단순히 이윤을 남기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여시재 이광재 원장은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만들 듯, 인간 생활에 최적화된 새로운 도시를 창조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해당한다”고 했다.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쇼 CES(Consumer Electronic Show)는 임박한 미래 기술의 향배를 보여주는 자리다. 이 CES의 핵심 키워드는 2014년 이후 매년 ‘자동차’였다. 그냥 자동차가 아니라 IoT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자율주행차였다. 이것이 2018년 ‘스마트시티의 미래’로 바뀌었다. 소비자, 다시 말하면 시민들 입장에서도 스마트시티는 이제 임박한 미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국가나 도시 단위에서 스마트시티 구축 실험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은 유럽이다. 바르셀로나, 헬싱키, 암스테르담 3개 도시는 성공한 스마트시티 모델로 꼽힌다. 중국은 500개 도시에서 실험을 시작했고 아세안은 26개 시범 도시를 선정했다. 미국에선 구글, MS 등 초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폐항만과 사막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사우디는 서울의 44배 면적 사막에 5000억 달러를 들여 미래 첨단 기술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해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이 ‘네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사우디 왕세자가 26일 서울에 와 대통령과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도 이 프로젝트와 무관치 않다. 그 한가운데 한국도 있다.

세종 국가시범도시 마스터플래너를 맡고 있는 정재승 원장은 “한국은 50년간 도시를 가장 많이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만들어온 나라”라며 “IT 인프라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훌륭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세종과 부산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해결하고 레퍼런스를 잘 축적하면 스마트시티야말로 최고의 차세대 수출상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역 국회의원 중 스마트시티 관련 학위를 가진 유일한 사람인 황희 의원도 “대한민국은 도시 개발을 통해 성장한 대표 국가”라며 “결국 어떻게 스마트시티를 만드느냐가 새로운 경제성장의 방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과 부산 에코델타시티 개념도 (사진: 이데일리)
캐나다 폐역항만과 미국 애리조나 사막지대 (자료: 손지우 SK증권 연구위원)

“대한민국은 스마트시티 실험실이자 제작실”
“모든 걸 가장 먼저 시도하고 있는 나라”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시티 모델은 ‘브라운 필드’와 ‘그린필드’로 나뉜다. 현존하는 도시에 디지털 기술을 집어넣어 스마트시티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브라운필드’라면, 허허벌판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그린필드’ 방식이다. 유럽의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헬싱키가 브라운필드라면 한국의 세종과 부산, 사우디의 NEOM, 미국의 기업도시들은 그린필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정재승 원장은 “세계 추세는 완전히 ‘그린필드(새로운 도시)’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무엇이 스마트시티인지는 IoT 개수에 달려 있지 않다”며 “시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황희 의원도 “대부분의 나라가 기성 도시에 서비스와 테크놀로지를 접목시키거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운용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스마트시티라 하는데 한국은 다르다”며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의 공간에 건설 중인 세종과 부산은 그야말로 세계 최초의 스마트시티 연구실이자 제작실”이라고 했다.

부산 에코델라시티와 세종 5-1구역을 잘 마무리하면 세계 최초의 그린필드 스마트시티가 된다는 얘기다. LG CNS 유인상 단장은 우리의 경우 도시의 성장단계에 따라 부산과 세종 같은 신규 건설, 도시별 맞춤형 서비스 개발, 민간 주도 등으로 일단 방향은 잘 잡았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도시를 만들고 운용하는 노하우 자체가 대단한 수출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잠재력 측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실험도 하지 말라고?”

참석자들은 그러나 세종과 부산에서는 현장과 제도 사이에 큰 괴리가 발생하고 있어 세계 최초의 실험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제는 기존 도시의 메커니즘과의 충돌, 그리고 ‘규제’라는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손지우 연구위원은 구글과 MS가 폐항만과 사막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마저도 인근 주민들의 반대 등에 부딪혀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LG CNS 유인상 단장은 “최근 12명의 전문가가 모여 토론했는데 그 결론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매년 10조 원씩 모두 50조 원을 도시재생에 쏟아붓고 있는데 그 가운에 스마트시티형이 불과 10% 정도라며 이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정재승 원장은 “현재로서는 많은 것들이 불법”이라며 “시범도시 안에서만큼은 규제를 바꿔 해보자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만 개별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권한이 없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문제 발생 시 감사를 받을 수밖에 없고 감사를 2~4년 유예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문책을 당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김갑성 위원장도 “직주(직장과 주거) 분리로 인해 생기는 교통문제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시에서 실험을 해야 하는데 실험을 하지 말라고 한다”며 “실험하지 말라고 하면 국가 시범도시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세종과 부산 시범도시에 특별한 도시 지위 줘야”

참석자들은 국가 시범 스마트시티의 성공을 위해서는 실무 공무원들까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규제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과감하게 실험하고 그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그 자체가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정부도 1개 부처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처가 협력하는 단일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또 시범도시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스마트특별시’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해서 교통, 보안, 의료, 생태 등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또 대통령 직속 특위에 집행권까지 주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황희 의원은 이 모든 문제들을 담아 법안을 준비 중이라며 9월 중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 예정이라고 했다.

<손지우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발제 핵심 내용>

-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 브렛시트의 저변에 있는 공통점은 빈부격차
- 실제 빈부격차는 100년만의 최대치
- 빈부격차는 경제성장 저해의 근본 원인
- 노동생산성도 100년만의 최저치
- 빈부격차 확대와 노동생산성 하락이 겹칠 때 새로운 산업혁명 발생.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
- 세계 최대 가전쇼 CES의 핵심주제는 2014년 이후 4년 연속 자율주행차, 2018년에 스마스시티로 교체
- 산업혁명 때 마다 늘 새로운 국가와 도시가 등장. 1차 때는 영국과 리버풀, 2차 때는 미국과 디트로이트. 리버풀과 디트로이트는 산업혁명이 1세기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간 뒤에 쇠퇴
- 그러면 지금은?

손지우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발제 영상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세종 국가시범도시 마스터플래너) 발제 영상

여시재는 우리 산업이 전환기적 상황에 처했다고 보고 연초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미래산업위원회’를 구성해 10여차례 사전 세미나를 해왔다. 그 내용을 토대로 앞으로 7차 토론회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여시재 미래산업위원회>
위원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위원: 정재승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윤종록 가천대 석좌교수(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 김윤식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총괄전무,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교수, 이광재 여시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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