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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지금] ‘에너지 지정학’ 보고서 1|변화하는 ‘미국 주도 에너지 패권 질서’ 동북아에 기회인가, 위기인가 - 중동의 전략적 가치 하락, 동북아 패권 구도 재편 이미 시작됐다

작성자 : 김연규(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2019.05.03 조회수 : 3458





1974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리아 전쟁,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전략…’. 최근 일어나고 있는 국제정치 대사건들의 저변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에너지’다. 중동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미국의 셰일혁명, 러시아의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이 갖는 의미를 꿰뚫지 못하면  국제 정치와 군사적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 땅이 없다. 에너지 쟁투가 있는 곳에 전쟁이 있었다. 지금 중동의 질서가 변하고 있고 동북아의 파고가 높아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기술전쟁의 이면에는 더 큰 질서의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미국은 1950년대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동 걸프지역을 장악, 에너지 패권을 유지해왔다. 1975년 미-사우디 간 ‘페트로-달러 협약’으로 완성됐다. 걸프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에너지기지’는 일본-한국-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상품-제조업기지’와 함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2대 기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연간 500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군사비를 투입했고 동북아 3국과 걸프 국가들은 미국 국채를 사들여 부담을 분담했다. 소련의 붕괴는 이런 가치사슬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켰다.

이 가치 사슬 속에서 한-중-일 동북아 3국에선 에너지 수요의 75%를 걸프에 의존하는 기형적 에너지 수급구조, 딜레마적 상황에 빠졌다. 동시베리아와 몽골에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이 존재함에도 개발 진척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국제 에너지 협력체제’를 구축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러시아 동시베리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그리고 몽골의 전력을 한국과 중국, 일본에 공급하게 될 경우 이 지역에도 ‘에너지 안전보장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진전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몇가지 중대한 변수가 발생하고 있다. 먼저 중동질서 재편성이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급을 넘어 수출국가가 된 미국에게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졌다. 그 틈을 러시아와 중국이 파고들고 있다. 지금 중동 지역은 미국 단독 지배에서 러시아, 유럽, 중국 등을 포함하는 다자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둘째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재부상이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해군력의 60%를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셋째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의 부상이다. 이 세가지 요소가 얽히면서 세계 에너지 질서가 급격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동북아, 특히 한국에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이는 이 나라와 한반도의 미래를 끌고 나가는 데 핵심적 요소다. (재) 여시재와 한양대 김연규 교수는 작년부터 이 문제를 공동연구해왔다. 이번에 보고서 ‘21세기 에너지 지정학과 동북아 에너지 협력’이 완성돼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1편 ‘20세기 에너지 지정학과 동북아 에너지 딜레마’는 현재의 미국 주도 에너지 패권 구조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2편 ‘21세기 에너지지정학과 신에너지공급체계’는 2010년 이후 본격화 하고 있는 패권질서 변화 움직임과 에너지 문제를 다룬다. 3편 ‘21세기 동북아 에너지 협력의 이슈들’은 구조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에너지 메이저 회사들과 각국의 움직임을 다룬다.


(게재 순서)

<1> 20세기 에너지지정학과 동북아 에너지 딜레마 

<2> 21세기 에너지지정학과 신에너지공급체계 

<3> 21세기 동북아 에너지 협력의 이슈들       


(필자)

김연규 교수는 국제 석유정치 문제 등에 국내외 학술지에 70여편의 논문과 보고서를 발표한 에너지 자원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다. 미 퍼듀大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워싱턴의 에너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미 에너지 태스크포스’ 등 여러 연구단체를 운영중이다.  작년 7월까지 산업통산자원부 ‘해외자원개발혁신TF’ 가스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보고서 1편> 20세기 에너지지정학과 동북아 에너지 딜레마

Ⅰ 서론
 1. 20세기 미국주도 에너지공급체계와 가치사슬 구조
 
□ 아시아 국가들은 21세기의 이 지역의 평화와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서 아시아의 번영과 에너지의 미래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점.

 □ 20세기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던 세계경제와 아시아 경제는 독특한 에너지공급체계와 가치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20세기의 이러한 에너지공급체계와 가치사슬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였다. 미국이 주도해온 이러한 독특한 에너지 세계체제는 주로 중동의 걸프 지역 국가들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에 기반했고, 상업적으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오일 메이저 기업들이 기술과 가격체계를 지배하고 운송과 물류는 미국 해군력에 의존했던 체제였다. 

 □ 지난 반세기 동안 에너지와 물자 운송을 위한 글로벌 해운산업도 파나마운하와 수에즈운하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과 동남아의 해상 수송로의 안전한 통과를 위해 미국은 항공모함 2척을 상주시키는 등 엄청난 군사비를 지출했다. 매년 5000억 달러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중동이라는 정치적 불안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해서 미국 주도 무역 루트를 통해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액과 맞먹는 비용을 지불했다.

 □ 이러한 고비용의 에너지와 글로벌 공급체계와 가치사슬은 미국 세계 패권 차원에서 미국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순기능의 효과를 가져왔다. 19세기 말 이후 동방정책을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과 함께 남진 정책을 통해 한반도 부동항(不凍港)을 기반으로 태평양 해양무역을 도모하려던 러시아를 대륙에 가둬 성공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었다. 

 □ 1970년대 미국은 고유가로 인한 달러위기와 미국패권에 대한 소련의 도전을 브레진스키와 키신저 등의 미국적 지정학적 전략에 기반해 걸프지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에너지동맹 결속강화와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벗어날 수 있었다. 1970년대∼2000년대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게 될 때까지 미국은 중국을 제조업기지로서 활용하면서 태평양 무역루트에 종속시키는 한편 중국 공장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는 미국 주도 중동-아시아 에너지무역 루트에 가둬놓는데 성공하였다 (Woodward, 2018).

 □ 이렇게 해서 아시아 지역, 특히 韓·中·日 3국의 동북아 지역의 20세기 수출위주의 경제성장과 제조업 가동이 당시 글로벌 에너지 지정학과 수급구도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대량의 에너지 수입의존을 특정 중동지역에 의존하게 되었던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되게 되었다.

 □ 1970년대 이후 40년 동안의 중국과 아시아의 선진국을 위한 저렴한 제조업 기지화와 걸프지역의 에너지기지화는 40년 동안 미국패권을 끌어가던 2개의 기둥이었다. 실물부문의 이러한 세계에너지와 상품공급체계의 가치사슬 구조로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속에서도 달러 패권을 유지하고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미국의 적자를 채권매입으로 부담하도록 하면서 고부가가치의 서비스 산업과 새로운 기술 혁신 R&D에 치중할 수 있었다. 1960년대 경제부상 황금기를 구가하고 1970년대 미국패권 도전 전망이 제시되던 일본은 미국의존적인 에너지와 상품교역체계 의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980년대 이후 장기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 20세기 세계에너지공급체계 속에서 아시아는 대규모 에너지자원 보유국인 러시아와 몽골의 경우에도 동북아지역에 공급하기 위한 에너지자원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국가 간의 에너지수송망 인프라 건설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즉, 동북아지역은 유럽, 북미, 중남미지역과 같이 역내 국가 간의 에너지 교역과 협력을 활성화하여 달성할 수 있는 역내 에너지안보 역량의 확충과 에너지시장의 효율성 제고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유럽 쪽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아시아 쪽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은 동맥경화 현상처럼 낙후되어 넓은 영토의 러시아가 반쪽짜리 국가로 남게 되었다. 아시아 대륙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되어 해양무역 세력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콜더 2013).


 2. 20세기 에너지 지정학과 공급체계 와해
 □ 20세기의 미국 주도 패권구도는 2010년대 들어오면서 몇 가지 장기간의 구조적 추세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고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의 미국 주도 에너지 공급체계와 가치사슬에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 첫째, 2017년 현재 중국이 미국경제력의 7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미국의 단순 제조업기지로서 태평양 무역루트에 갇혀있고 미국해군이 통제하는 중동-아시아 에너지무역 공급체계에 종속되는 것을 거부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미국의 학자인 켄트 콜더가 말한 ‘21세기 유라시아 대륙주의’가 기존 해양주의에 새로운 대항마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콜더 2013). 걸프지역의 중동이 이미 아시아의 에너지수요를 담당하기에는 역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중국, 일본, 한국의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면서 동북아 3국이 중동의 공급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대륙 에너지 연계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극동, 태평양의 부동항만 개발과 함께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한중일 동북아 3국으로 석유, 가스, 전력을 수출하려는 동북아와 태평양 진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 둘째, 역설적으로 20세기 미국주도 에너지 공급체계를 와해시키는 가장 주도적인 동력은 미국 자체에서 온다.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메이건 오설리반 교수도 주장한 바와 같이 셰일혁명으로 미국의 에너지자립 전망이 현실화되면서 중동의 에너지기지로서의 가치가 상쇄되고 있다 (O’Sullivan 2017). 2차대전이 진행중이던 1945년 지중해에 정박 중이던 미국의 항공모함 선상에서 루즈벨트 미국대통령과 사우디 왕 사이에 맺어진 협약으로 시작된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의 특별한 관계는 1974년 ‘페트로달러’ 협약으로 본격적으로 밀월관계로 접어들었으며 1979년 이란이 극단이슬람국가화하면서 미국의 걸프국가 위주의 중동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걸프만지역 카타르에 미국의 제5함대가 자리하고 3만명 이상의 지상군이 다수 국가에 주둔하게 된 반면, 이란, 이라크, 리비아, 이집트 등 북부중동 국가들에 대해서는 주로 러시아의 세력 침투를 막기 위해 석유 가스 생산을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테러세력 등과의 전쟁을 주로 수행하게 되었다. 21세기 미국의 패권은 중국의 패권도전을 직면해 중국=제조업기지, 사우디아라비아 및 걸프만=에너지기지 라는 과거의 지정학 공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지정학 전략들을 도출해내고 있는 과정이다. 

 □ 셋째, 20세기 에너지지정학과 공급체계를 주도하던 화석연료로서의 원유에서 벗어나 21세기 에너지지정학이 가스와 재생에너지혁명에 의해 새롭게 씌여지고 있다. 원유지정학을 주도하던 주된 플레이어는 소비자로서 미국, 생산기지로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지역 중동, 협력체로서는 생산자 카르텔인 석유수출국 기구(OPEC)와 소비자 카르텔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있었다. 가스의 주된 소비지는 세계 소비의 60 퍼센트를 차지하는 韓·中·日 3국의 동북아 지역이고 파이프라인 가스공급은 러시아, 액화천연가스 공급은 걸프지역의 카타르이다. 독일과 아랍에미레이트는 2010년 재생에너지기수를 창립하여 화석연료기구인 IEA에서 독립하여 재생에너지 협력 국제기구를 창립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3. 21세기 에너지 지정학과 공급체계의 새로운 특징들
 □ 21세기 아시아에서는 동남아 국가들이 고속성장의 경로에 접어들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소비를 주도하고 동남아 국가들과 연계를 위한 지정학과 지경학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 최근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왔다. ‘간헐성’의 문제가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주변국과의 국가 간 전력망 연계를 필요로 한다. 주변국과의 전력망이 연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은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생산하는 전력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럽의 경우 국가 간 통합된 전력망을 이용하여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일정 부분 해소하고 있다. 

 □ 21세기 한중일 동북아 3국은 동북아 전력망 연계, 가스관, 철도 연결 등을 통해 에너지부족, 미세먼지 감축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러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에너지로 연결해 경제공동체 구축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동북아 국가들이 역외 지역에 의존하지 않고 역내 에너지를 이용해 자주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 

 □ 본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시장변동과 신기후체제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국제에너지질서와 동북아 에너지 협력의 새로운 도전과제와 향후 추진방향을 조명하는 것이다. 



Ⅱ. 20세기 에너지 지정학과 
    동북아 에너지 딜레마

 1. 20세기 중동 지정학

 □ 냉전 기간 중동의 지정학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되었다. 

 □ 북부중동과 일부 북아프리카(이집트, 리비아, 알제리)를 포함하는 소위 ‘시아 초승달 지대’ (Shia Crescent)와 걸프지역이다. 두 개의 축에서의 20세기 강대국간 지정학은 상당히 다르게 진행되었다. 시아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바레인 등 초승달 형태의 지역은 20세기초 오스만 튀르크 제국 붕괴와 함께 영국 프랑스가 선제적으로 지배한 지역이었다. 


<그림 1> 20세기 중동 지정학 두 개의 축

 출처: 장지영, 이란 '초승달 벨트' 뜨니.. 사우디·이스라엘 '적과의 동침' 국민일보. 2017.11.21


 □ 1916년 5월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군 주축인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여 비밀리에 이 지역을 분할하는 협상을 벌였다. '사이크스-피코 협정' (Sykes–Picot Agreement)으로 알려진 비밀협약에 의해 수니파가 살던 알레포가 시아파의 분파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와 묶였고, 수니파 중심 도시 이라크의 모술도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한 나라가 되는 등 이란과 이라크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강대국 이해에 따라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부족성이 강한 아랍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은 전혀 고려없이 국경선을 긋는 결과를 가져왔다 (강훈상 2015).

 □ 영국, 프랑스와 함께 同지역에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을 형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또 하나의 국가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위세가 약해지기 시작한 18세기부터 부단히 발칸지역과 지중해, 북부중동으로의 세력 침투를 시도했으나 터키가 도움을 요청한 영국, 프랑스의 협공에 막혀 실패했다 (김연규 2019). 

 □ 18세기∽20세기 흑해 지중해 중동의 지정학의 특징은 쇠락하던 터키가 서구유럽 국가들과 협력하여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며 이러한 구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영국 프랑스 대신 미국과 나토로 그 역할이 대체되었다는 점일 뿐이다. 

 □ 1차 대전에 러시아가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터키해협 통과권과 이스탄불 지배였다. 러시아 지리적 특징을 고려해 볼 때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흑해에서 터키해협을 통과해 지중해로 나와 시리아를 통해 중동으로 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선은 첫 번째 관문으로서의 터키의 보스포러스, 다다넬스 해협 (Bosphorus and Dardanelles Straits)을 지배해야 했다. 1952년 터키가 나토에 가입하여 이후 본격적인 러시아 억제를 위한 터키와 나토협력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김연규 2019).

<러시아와 중동지정학의 역사적, 전략적 맥락>

1453년 5월 29일은 당시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오늘의 이스탄불)이 오토만 제국에 함락된 날이다. 역사적으로 터키제국의 오늘날의 이스탄불 지배는 중세의 종말과 유럽에서의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기도 하였으며 최초로 이슬람 국가가 기독교 국가를 무너뜨림으로써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 대륙에 걸쳐 오토만 제국의 지배가 공고화 되고 이후 수백년 동안 유럽의 지도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유일한 해협 출구인 이스탄불은 오늘날의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발칸반도와 남유럽, 동유럽을 지배하던 터키제국에게는 군사적으로 뿐 아니라 무역의 핵심 요충지였다. 터키의 당시 확장으로 군사 경제적으로 가장 위축된 국가는 러시아였다. 지리적으로 부동항 출구가 사방에 막혀있던 러시아로서는 흑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가 절실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러시아 해군을 강화해 본격적으로 러시아를 해양국가로 강화한 지도자가 1672-1725년 기간 재임했던 피터대제(Peter the Great)였다. 18세기부터 터키제국의 위세는 하락하기 시작하였으며 러시아의 흑해로의 남하정책이 본격화하였으며 20세기까지 약 300년동안 러시아와 터키는 13번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13번의 전쟁 가운데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가장 중요한 전쟁은 2차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캐터린 女帝下 1783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가져온 전쟁과 두 번째는 1853-1856년 크림전쟁이었다. 첫 번째 전쟁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최초로 흑해함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터키제국과 전쟁을 수행한 해군력은 발틱해에서 흑해까지 이동한 함대에 의존한 것이었다. 이제는 별도로 흑해에 자체 함대를 갖게 되었으며 흑해의 다른 항구인 노보로시스크와 아조프해, 케르치 해협등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캐터린 여제의 지시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 인물이 고레고리 포템킨 장군 (Gregory Potemkin) 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전쟁의 성과는 크림반도와 흑해 지배에 머물렀고 이스탄불과 지중해 출구를 위한 보스포러스 해협 통과권은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두 번째 전쟁을 1853년에 시작했지만 터키제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러시아는 터키,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공세에 3년만에 패하게 된다.
 □ 흑해는 나토와 터키의 협공으로 막혔지만 러시아는 이란,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 지중해 북부중동 국가들과 1950-60년대 무기수출과 사회주의 수출 등 여러 방면에서 러시아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화 하는 데 성공하였다.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 이후 영국이 이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러시아 세력 확장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집트가 러시아인들의 최대 여행지였으며 아스완댐이 러시아에서 건설해 준 점을 상기해 보면 당시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아직 미국이 영국을 완전히 대체하여 이 지역으로 확장한 것은 아니었다. 

 □ 한편 미국의 중동 세력 확장의 중심축은 처음부터 걸프지역이었다. 2차대전이 진행중이던 1945년 지중해에 정박 중이던 미국의 항공모함 선상에서 루즈벨트 미국대통령과 사우디 왕 사이에 맺어진 협약으로 시작된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의 특별한 관계는 1974년 ‘페트로달러’ 협약으로 본격적으로 밀월관계로 접어들었으며 1979년 이란이 극단이슬람국가화하면서 미국의 걸프국가 위주의 중동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 미국의 부상과 함께 1970년대 초 이집트의 친소련 지도자 가말 나세르(Gamal Nasser)가 실각하고 친미 지도자 안와르 알 사다트 (Anwar al-Sadat)가 집권하면서 소련의 이집트 중심의 지중해 전략은 시리아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1980년 10월 체결된 소련-시리아 친선조약 (The Soviet-Syrian Treaty of Friendship and Cooperation)을 필두로 경제와 군사분야 협력이 긴밀하게 유지되었는데 특히 소련은 약 7,000명의 군사 분야 무기 기술자 등을 파견했으며, 시리아 엘리트들의 소련유학이 붐을 이루었다. 아직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리아에는 러시아인들이 수십만명이 거주하는 유일한 중동국가 가운데 한 곳이다. 

 □ 1967년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과의 욤-키푸르 전쟁이 발생하였다. 소련 해군은 지중해와 북동부 지역에서의 세력 변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지중해 함대 (the Mediterranean Eskadra)를 창설하고 지중해 지역으로 급파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지중해 해군 작전에 필수적인 시설이 시리아의 타투스(Tartus) 해군기지와 라타키아 (Latakia) 공군기지였다.

 □ 걸프지역 국가들은 종파적으로 수니파로서 미국을 등에 없고 세계의 에너지수출 중심지로 부상하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심이 되어 시아 초승달 지역에서 벌어지는 주요 수니-시아파 내전에 수니 테러리스트들을 보내 종파간 전쟁의 주요한 당사자로서 이러한 수니 세력들은 시아 초승달 지역을 통과해 러시아의 이슬람 지역인 체첸과 중국의 신장 지역에까지 이어져서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결프지역 중심의 중동지배 전략을 사우디아라비아가 충실히 지원한 결과가 되었다. 1979∼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당시에도 소련과 친소련 정부와 대항해 싸우던 무자히딘 반군세력의 주축이 되었던 세력도 사우디아라비아가 보낸 수니 테러리스트들이었던 것이다.
 
<그림 2> 중동 수니파 시아파 분포

출처: The Muslim Times, ‘The Sunni vs. Shia schism, and why it matters 1,300 years later.’ January 8, 2016. (검색: https://themuslimtimes.info/2016/01/08/the-sunni-vs-shia-schism-and-why-it-matters-1300-years-later/)


 □ 러시아인구의 11%는 이슬람으로 특히 체첸, 다게스탄, 바쉬코르토스탄 등의 지역에 거주하는데 러시아정부에 대항하여 테러를 감행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러한 러시아의 테러리스트들을 이념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해 온 국가도 사우디아라비아였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석유수출 1위 지위와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 수출 1위라는 지위가 미국을 등에 업고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란과 이라크는 더 큰 매장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항상 전쟁이 일어나는 국가가 된 것이다.

 □ 걸프만지역 카타르에는 미국의 제5함대가 자리하고 4만 5천명 이상의 지상군이 다수 국가에 주둔하게 된 반면, 이란, 이라크, 리비아, 이집트 등 북부중동 국가들에 대해서는 주로 러시아의 세력 침투를 막기 위해 석유 가스 생산을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테러세력 등과의 전쟁을 주로 수행하게 되었다. 


 2. 20세기 에너지지정학과 해군력 경쟁

 □ 1970년대 소련 흑해함대의 부활로 다시 나토와 러시아의 해군경쟁이 촉발되었다. 소련은 원래 대륙국가로서 바다보다는 육지가 더 중요한 국가였다. 소련 해군은 해안과 연안 방어를 위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1960년대 쿠바미사일 위기와 이집트 수에즈운하 위기에서 소련해군의 무력함이 드러나면서 大洋 작전을 위한 해군력강화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한다. 

 □ 1970년대 소련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과 함께 북해와 발틱·흑해·태평양의 4개 함대 강화를 통해 북해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진출해 양대 해양 제해권 장악을 목표로 하였다. 당시 소련은 베트남 전쟁 실패와 국제유가와 달러 위기 등에 처한 미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해군력 경쟁을 촉발해 1980년대 초 4개 함대의 총 톤수가 766만톤을 기록해 466만톤인 미국의 1.5배가 넘었고 함정숫자가 1,500대에 달해 419척인 미 해군의 세배가 넘었다. 특히 소련이 자랑하던 전략 원자력 잠수함(원잠)도 80척에 달하고 모든 잠수함을 합치면 300척, 구축함도 74척이었다. 특히 북해와 태평양함대의 실질적인 주력은 잠수함 전대로 최근 북한이 개발했다고 알려진 탄도미사일(SLBM) 원잠인 SSBN, 잠수함 1척으로 항공모함 전단을 상대하기 위해 창설된 공격원잠 SSGN으로 구성되었다. 

 □ 소련 해군이 갖추지 못했던 유일한 전략자산이 항공모함이었다. 미 해군은 총 11척의 항공모함과 항모전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의 전반적인 양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의 패권경쟁이 결국 미국의 우세로 결론이 난 것은 결국 1890년대 이래 미국이 항공모함을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 대서양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해양패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소련해군의 대서양과 태평양 진출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이다. 

 □ 냉전이 붕괴되고 러시아 함정 숫자는 150여척으로 급감하였으며 전략 원잠 숫자도 13척으로추락하였다. 미국도 미국해군과 맞먹는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지상전 중심의 이라크戰 아프가니스탄戰을 수행하는 사이 해군력의 축소가 불가피했다. 함정 숫자도 250여 척으로 줄었으며 항모 숫자도 감축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미-소 패권전쟁의 각축장이었던 대서양을 관장하던 미국 해군 제2함대의 축소가 가장 두드러졌다. 오바마 정부下 제2함대는 마침내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 미국이 전 세계에 펼쳐진 태평양 사령부(USPACOM), 중동 및 중앙아시아 일대를 다루는 중부사령부(USCENTCOM), 유럽과 러시아 일대를 다루는 유럽사령부(USEUCOM), 아프리카 사령부(USAFRICOM), 북미지역을 총괄하는 북부사령부(USNORTHCOM), 중남미를 관할하는 남부사령부(USSOUTHCOM) 가운데 태평양 사령부(USPACOM) 산하에는 제7함대와 제3함대가 소속되어 있다.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인근과 중국, 러시아 극동, 캄차카 반도 이서지역 서태평양 담당 함대가 제7함대이다. 제3함대는 괌을 기반으로 동태평양을 관할한다. 러시아도 전반적 축소 가운데에도 블라디보스톡을 母港으로 하는 극동함대 (태평양함대: Pacific Fleet: Тихоокеанский флот)에는 가장 많은 전략자산을 배치해 놓았다. 마찬가지로 냉전이후에도 미국은 일본의 요코스카港을 모항으로 하는 제7함대에 60여척의 함정과 350여척의 항공기, 6만명의 해군과 해병대 요원을 배치해 러시아의 태평양으로의 남진을 차단하였다. 


3. 20세기 동북아 에너지 딜레마와 협력의 모색

 □ 동북아 국가 간의 에너지 협력에 대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논의는 주로 러시아, 몽골 등의 원유, 석탄, 가스 등을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주요 소비 국가들이 공동 개발하고 에너지 수송망 인프라 건설 등을 통해 역내 공동 에너지 수급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동북아 역내 에너지 협력은 아시아, 특히 동북아 국가들은 냉전기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당시 글로벌 에너지 지정학과 수급구도의 특성상 불가피한 대량의 에너지 수입의존을 특정 중동지역에 의존하게 되었던 기형적인 이 지역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 체제를 개편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다. 

 □ 동북아는 에너지자원의 매장 분포와 역내 각국의 에너지수급구조의 차이를 감안할 때 지역 에너지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동북아에는 중국, 한국, 일본의 3대 에너지 수입국과 2개의 거대한 에너지 생산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특히, 러시아의 엄청나게 부존되어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을 개발하여 한국과 일본, 중국에 공급할 경우, 이 지역의 에너지안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역내 에너지교역과 에너지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동북아지역에 부존되어 있는 에너지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공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의 에너지 수입국은 동북아보다 다른 지역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동북아의 국가 간 에너지교역은 아직 빈약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는 동북아 보다는 주로 유럽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에너지를 수출하고 있다. 

 □ 러시아와 몽골 등의 에너지 생산 및 수출국과 한국, 중국, 일본 등 에너지 소비 및 수입국간에 에너지교역 증대와 협력과 관련된 많은 논의와 협상이 진행되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양자간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일부는 다자간 정부 및 기업들과의 협력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 에너지협력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 석유, 가스, 석탄 및 전력 부문의 상류, 중류 및 하류 부문의 협력 강화: 동북아의 역내 에너지교역을 촉진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및 전력망과 같은 에너지 공급 인프라 구축 (<표 1> 참조).
  ● 동북아 역내 국가간 에너지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자간 에너지협의체의 구성 
  ● 역내 국가 간의 정보 공유, 정책 대화, 에너지 분야에서의 상호 이해 증진 등 다자간 차원에서의 정책 협력 촉진을 위한 네트워크의 구성. 





 □ 본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가설은 그 동안 러시아, 몽고 등의 역내 잠재 석탄, 원유, 가스 수출국과 한국, 중국, 일본 등과의 에너지 협력에 치중되어 있던 그동안의 전통적인 동북아에너지 협력 논의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미국의 셰일혁명과 이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시장변동, 그리고 글로벌 기후변화 협상의 진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협력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1990년대-2000년대 동안의 동북아 에너지협력 (동북아 에너지 협력 1.0) 과 비교할 때 2010년대의 동북아 에너지 협력 (동북아 에너지협력 2.0)은 훨씬 더 복잡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 동북아 에너지 협력 1.0에서 가정하고 있던 에너지안보 (energy security)의 개념은  주로 전통적인 개념에 입각한 것으로 공급안보, 주로 원유공급 안보에 치중해 있으며,1) 
역내 국가들이 순수입국으로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 지역의 에너지안보는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2) 글로벌 에너지 시장 수준에서도 1990년대 저유가를 거쳐 1999년이후 2000년대 고유가 체제하 국제유가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에너지기구 (IEA) 중심의 회원국의 석유비축 협력과 석유정보 투명성강화 등이 강조되었다. 동북아 지역 차원에서는 부족한 원유공급을 선제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역내소비국들은 에너지 문제를 군사 전략의 문제로 간주하고 이로 인해 에너지로 인한 역내 국가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차원의 협력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로 간주되었다.3) 당시 원유안보 불안에 대처한 지역 차원의 대응능력으로 강조된 것이 역내 국가간 원유 공동비축시설 구축과 운용이었다. 특히 중국의 원유수요가 급증하여 국제원유시장의 교란 요인으로 등장한 것에 주목하면서 중국의 수요급증으로 인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원유 및 석유제품의 수급불균형이 확대되고 '아시안 프리미엄(원유 도입 고가격 구조)'이 심화되는 현상에 우려를 표명하였다.4)
 
□ 동북아 지역의 중국의 수요급증으로 인한 원유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중일 3국의 협력과제는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시베리아 횡단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문제였다. 동시베리아 유전 개발 및 파이프라인 건설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합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동북아시아 국가의 중동에 대한 원유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인프라 구축에 있어 지역국가간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 구미지역에 비해 현저히 성숙하지 못한 아시아의 석유시장을 새로이 정비하고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구주, 미주, 아시아 시장에 이어 제4의 동북아시아 석유시장을 창설을 위해 소비국의 결속과 협상력을 제고하고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소비국의 정부, 민간, 기업 등이 결속하여 다양한 채널에서 산유국과 조정에 나서는 지역협력이 매우 절실했다. 

□ 2000년대 고유가 시대에 진행되던 한국, 중국, 일본 3국사이의 동북아지역에서의 논의의 상당부분은 중동에 75% 정도 원유 가스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동북아 3국이 근거리에 막대한 개발되지 않은 원유 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로의 공급원 다변화에 집중되었다.5)
 
□ 동북아지역에서 지역차원의 에너지협력 사업은 다수의 역내 국가 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에너지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간 에너지협력체 구성이 요구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동북아 에너지 협력을 위한 다자간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그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2005년 한국정부의 주도로 구성된‘동북아에너지협력정부간협의체(ICMECNA: Intergovernmental Collaborative Mechanism for Energ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와 UNDP 지원 하에 구성된 Greater Tumen Initiavie (GTI) 내에 Energy Board가 동북아지역에서 구성되어 있는 다자간 에너지협의체이며, 그 기능은 정부 간 에너지관련 정책대화, 공동연구 수행  등에 국한되어 있어, 적극적인 지역에너지협력체의 역할이 아직은 제한적이다. 

□ ‘동북아에너지협력정부간협의체’는 한국이 주도하여 UNESCAP의 협력 하에 2005년 11월에 출범한 동북아 지역의 에너지협력을 위한 정부간 협의체이다.6) 이 협의체는 동북아지역의 에너지안보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위하여 역내 에너지공급원의 개발 및 교역을 촉진하고 정보교류 및 정책협력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다자간 에너지 협력 메커니즘으로 태동하였다. 이 협의체의 공식 회원국은 한국, 러시아, 몽골, 북한, 등 4개국이며, 중국도 옵서버 자격으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7) 이 기구의 조직은 각국의 에너지 담당부서 국장급 관료들의‘고위당국자회의(SOC: Senior Official Committee)’와 전문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실무그룹 (Working group)이 있었며, 협의체 사무국은 UNESCAP이 맡았다. 2개의 실무그룹이 설립되어 운영되었는데, 2005년에 결성된 ‘에너지계획 및 정책 실무그룹 (WG-EPP: Working Group for Energy Planning & Policy)은 한국의 의장국이었으며, 2009년에 러시아가 제안하여 의장국인 석탄실무그룹(Working Group on Coal)이 있었다. 이 협의체의 운영은 실무그룹(Working Group)별 공동연구 수행과 Workshop 및 연례회의 개최, 고위당국자회의(SOC) 및 정부․기업간 대화(GBD, Government-Business Dialogue)를 연 1회 개최하여, 정부 및 전문가 간의 정보교류, 공동보고서 작성 등이 수행되었다. 이 협의체는 2015년  SOC 회의에서 정부간 협의체를 해체하고 연구기관 간의 협력 네트워크의 성격을 가지는 ’동북아에너지포럼‘으로 재구성되었다. 

□ GTI는 유엔개발계획 (UNDP)의 지원하에 1995년 설립된 동북아지역의 경제협력을 위한 협의체이며,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GTI는 무역 촉진, 교통, 환경, 관광, 에너지, 등 5개 분야의 이사회(Board)로 구성되어 이 분야와 관련된 동북아 역내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이사회 (Energy Board)는 2009년에 설립되어 있으며,  민간부문 전문 지식과 자원을 포함하면서 정책 연구 및 정보교류, 등의 사업을 다음의 목표 하에 추진하고 있다. 
 ● 에너지 정책 조정 및 협력 강화
 ● 역내 에너지 교역 및 투자를 위한 비물리적 장벽의 감축
 ● GTI 회원국 간의 에너지 정보 교환 촉진

1) Mikkal E. Herberg, “Introduction,” Mikkal E. Herberg, Ed. Energy Security and the Asia-Pacific: Course Reader(Washington DC: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2014).
2) 
류지철, 이문배 『동북아 다자간 에너지협력의 제도기반 조성 연구』에너지경제 연구원, 2003.8.
3) Mikkal E. Herberg, “Introduction,” Mikkal E. Herberg, Ed. Energy Security and the Asia-Pacific: Course Reader(Washington DC: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2014),p .6.
4) 
김현진,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신국제질서: 전망과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 2004. 10. 1.
5) 
Ibid., p. 142.
6) 
이 협의체의 결성은 2005년 11월에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개최되어 한국, 러시아, 몽골, 북한, 중국이 참석한 제1차 고위당국자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 ‘Ulaanbaatar Statement'에 기초하였다. 
7) 
일본은 북한과의 외교문제 등으로 아직 불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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