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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무인기 개발 ① ] 창업 13년만에 100억달러 가치 중국 드론기업 DJI, 기술 먼저 개발하고도 완전히 밀린 한국 드론 산업 -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나

작성자 : 안오성(항공우주연구원 항공기획실장) 2019.03.15 조회수 : 5392

우리 정부가 1년에 지원하는 국가 R&D 예산이 20조원이다. 적재적소, 적기투입, 잘만 하면 미래를 이끌어갈 기초기술과 당장의 먹거리가 될 산업기술을 만들어내는 여름날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현장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제 전면적으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편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곳에 얼마나 투입할 것인가를 놓고 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기술과 산업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연구개발 사업이 성공해도 산업화의 꽃이 피어나지 못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이곳저곳서 열리는 정책 토론회들도 미세조정을 위해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 R&D 현장 일선에 서 있는 항공우주연구원 안오성 항공기획실장이 세 번에 걸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번에 ‘국가 R&D 시스템 전면 개편할 때가 되었다’를 보내왔다.  


창업 13년만에 100억달러 가치 중국 드론기업 DJI, 기술 먼저 개발하고도 완전히 밀린 한국 드론 산업 -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나



안오성 / 항공우주연구원 항공기획실장

(출연연과학기술협의회 총연합회 정책연구소장)



드론은 원래 항공 분야에서 무인기의 애칭 정도였으나 최근 5년 사이 갑작스레 대중화된 용어이다. 중국의 드론 기업 DJI는 개인취미용 드론을 보급하는데 성공한 뒤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이어오면서 중국발 혁신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드론이라는 용어는 무인기의 애칭 정도가 아니라 미래혁신을 의미하는 개념어로 확장되고 있다. 무인잠수정을 의미하는 ‘수중드론’, 자율주행 로봇을 의미하는 ‘육상드론’으로 쓰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DJI의 드론은 초기에는 ‘대륙의 실수’로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이 중국발 혁신이 더 이상 모방이 아니며 글로벌 혁신의 선도 대열에 있음을 보여줬다. 놀라운 것은 DJI가 보급용 드론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한 뒤 전세계 여러 경쟁기업들이 보급용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70%의 시장점유율에서 후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그 모든 성장하는 시장이 중국의 입으로 흡수되고 있다. 

저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DJI는 창사 이래 R&D 인력을 25% 안팎(3000명 수준)으로 유지하며 시장 격차를 더 벌려나갔다. 지금도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으며, 고가형 드론을 주력상품으로 하여 세계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사진 : DJI)



창업 13년만에 현대차 절반 육박한 중국 드론 기업 DJI 


2006년 청년 왕타오가 창업한 DJI의 기업가치는 현재 100억 달러를 넘어 현대자동차의 절반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매출 대비 과장된 가치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연구개발 투자에 있어서 만큼은 DJI가 현대자동차 못지않다. 연구자의 규모면에서 DJI는 현대자동차의 엔진관련 연구자(2500명 수준) 보다 앞서고 있다. 이러한 연구역량을 기반으로 5~6개월 마다 새로운 기능과 성능이 향상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1위 기업의 지위에 오른 것이 단순히 중국 내수시장이라는 거대한 배경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DJI 한 기업의 파생효과도 상당하다. 20명으로 시작한 DJI가 단 10년 만에 12000명을 고용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세계 2위 드론 업체인 프랑스 패럿은 전체 직원 840명 중 1/3이 넘는 290명을 감원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세계 3위 업체인 3DR은 2018년도 1월 개인취미용 드론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동안, DJI를 중심으로 형성된 선전 지역의 드론 생태계를 기반으로 신생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세계 드론 시장의 90% 이상을 중국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한 사람의 창업가가 이룬 혁신이 이제 중국이라는 국가 내부에서는 ‘기술낙수효과’와 ‘혁신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3D 프린터,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로 주목 받고 있는 드론 산업에서 중국이 앞서가고 있는 이유와 우리나라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DJI가 부상하면서 우리 정부는 전방위적인 대책을 구상하고 지원해 왔으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제는 우리가 취한 조치와 전략을 성찰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항우연, DJI 등장 1년 전 틸트로이트형 무인기 개발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먼저 쓰려고 하지 않아 


성찰의 지평을 역사적 맥락으로까지 확장해 보면 질문은 심각해진다. DJI가 세계시장 무대에 등장하기 1년 전인 2012년에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세계 2번째로 헬리콥터와 프로펠러 항공기의 원리를 결합한 틸트로터형 무인항공기를 자체개발하여 비행시험에 성공했다. 미국과 UAE, 중국 등에서 주목하여 투자와 공동개발 의사를 밝혔다. 우리 무인기 기술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용 무인기를 필두로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았던 한국의 무인기는 이후 산업화에 있어서 상당한 고전을 겪었다. 군사용 뿐 아니라 산불 감시와 교통 현황 확인, 태풍과 해일 관측 등 용도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먼저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현장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가능성과 성공 사례들이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전략과 산업전략을 잘 결합하면 이전과 다른 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드론 산업 전략과 성과의 명암을 통해서 성찰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국가혁신전략의 다양한 난맥상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전략적 난맥상은 4가지 측면에서 진단할 수 있다. 핵심부품 중심 투자전략의 한계, 공공수요중심 지원의 한계, 경쟁전략의 한계, 기술중심 지원의 한계 등이다.

드론 관련한 핵심부품으로는 소형센서, 배터리, 고성능 모터, 고성능 영상촬영시스템 외의 다양한 탑재 임무장비(라이다, 레이더, 적외선 카메라 등)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영역에서 국내 선도기업들은 예외 없이 국가의 드론 산업 육성지원사업에서 상당한 수혜를 받았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의 지원 덕분에 여러 기업이 기술개발을 했지만, 다 고만고만하다. 우리도 지원을 받아 이 부품을 개발했고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임을 자부하지만, 사업성은 없다고 판단된다. 중국 부품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비슷한 제품을 개발한 국내 다른 업체도 여럿이다.” 특정 기업만의 의견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토로 뒤에 대안을 물으면 다음 2가지 답변이 나온다. “공공수요를 만들어 달라, 아니면 차라리 대기업이라도 들어오든지 해서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하나의 방향성을 갖게 해 달라.”



정부 드론 R&D, 전략도 방향성도 없었다


지난 5년간 드론과 관련하여 여러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R&D 사업이 발주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연구개발 전문인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국가가 초기수요를 만들어 준다는 취지에 충실한 것은 좋지만, 수요 제기 기관마다 조금씩 다 다른 사양 덕에 그나마 절대규모를 만들지 못해 드론 산업에 별 도움이 못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부품별 연구 지원과 수요 창출이 오히려 시장을 파편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공공수요가 혁신을 단계별로 유인하는 전략은 선진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부구매획득 정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한 차량배기가스 제한이 좋은 사례이다. 앞으로 10~20년 동안 단계적으로 어떤 기술규제를 도입할 것인지를 예고하고 시장의 기술혁신을 유인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일정 수준의 성능 사양과 경쟁력을 갖추면 정부가 구매를 보장하는’ 공공구매사양의 선제적 공표로 기술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기술규제와 우선구매 두 가지 방식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획득 시점에 이르러서야 구매를 공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업들만 입찰에 응하고 그것도 최저가로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공공수요나 공공 기술규제 예고로 기술혁신의 경쟁을 유인하는 전략이 아니라 저가 입찰과 날림 입찰 경쟁을 유도할 뿐인 것이다. ‘선정’의 경쟁만 존재할 뿐, 선정 이전 단계에 혁신경쟁을 유인하는 전략도, 선정 이후에 다음 단계의 지표를 바라보는 혁신경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필자가 직접 체험하였다. 4년 전 공간정보·측량용 드론의 공공구매 사업의 현장경쟁 시험평가 위원으로 참여했었다. 평가 기준과 절차는 모두 완벽했다. 실제 비행을 통해 요구되는 기능시험을 종합 평가하는 것이므로 이의제기가 있을 수도 없는 완벽한 ‘이의 제기 차단’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가 있었다. 수요 공고와 경쟁 시험 평가 계획을 짧게 잡아 양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글로벌 기업들에게만 유리할 수 있었다. 기술력이 충분한데도 짧은 평가 일정에 맞출 수 없는 국내 일부 기업들에게는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졸속으로 획득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발생했다. 해당 공공기관이 엄격하게 해둔 일부 부대조건에 어떤 기업도 맞추지 못했다. 결국 시간을 번 기술력 있는 특정 국내기업이 최고 성능을 기반으로 선정됐다.  해당 모델은 이제 더 진화하여 해외 수출까지 확장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스토리의 결과만 보고 정부의 공공구매가 해외 판매로 이어진 성공 사례라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와 정반대다. 전략이 없었는데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인상적인 현장 사례들마저 전략과 정책의 진화를 위한 피드백으로 선순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기술 개발이 해외로 나갔다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아


기술 중심 지원은 기초과학과 장기적 정부투자를 선호하는 학계에서 강조하는 전략이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기술 중심 투자전략은 시장의 수용성에 따라 성패가 나뉜다. 기초기술에 대한 시장의 수용성은 미국이 다르고 중국이 다르고 한국이 다르다. 일률적으로 접근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특히 시장 수용성이 높은 선도기술이라 하더라도 그 기술의 수용하는 곳이 국내 기업인가 아닌가, 또는 국내 기업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떤 합의와 전제조건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미국에 비해 혁신생태계의 자원이 열세인 국가, 중국에 비해 정부 지원이 덜 직접적이거나 부족한 국가에서는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된다. 최근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에서 개발한 촉매 기반 화학플랜트 신공정 기술이 국내의 발달된 산업생태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흡수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꽃을 피워 역설적으로 해외 플랜트의 경쟁력을 높여주었던 것이 좋은 사례다. 이런 사례를 정밀 분석해야 한다.

혁신 자원에 있어서 미국의 1/10 수준에 불과한 독일이 첨단제조업에서 미국을 제치고 지속적인 글로벌 1위의 유지하는 비결도 바로 이 질문에서 파생된다. 기초연구를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독일 대학에서는 응용연구를 강조하기 때문에 졸업생들이 높은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산업체에 고용된다. 국가 주도의 R&D 지원전략은 산업전략과의 결합성 및 선도성을 높이기 위해 4개 대형 연구회로의 권한이 위임된다. 그리고 민간기업과 국가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형태의 혁신연구를 공공연구기관이 수행하도록 하는 PPP(Public-Private Partnership)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드론기술과 같은 추격기술의 경우에는, 국가주도의 혁신전략이 산업전략과 결합되기 더욱 어렵다. 미국과 유럽의 2, 3위 기업들이 빠른 기술개발과 추격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 것이 좋은 사례이다. DJI가 막대한 기술개발 투자에 기반한 혁신의 속도로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오히려 더 벌린 것이다. 추격형 기술개발의 경우에는 미래잠재성이 아니라 사업성에 대한 면밀한 사전 검토와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은 선도기술을 선호하는 현재의 국가 R&D 시스템이 담아내기 어렵다. 기술의 선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시장의 공백기술, 산업이 필요로 한 기술과 접목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특정 기업의 기술수요와 매칭된 경우에는 공공 투자로서의 공공성이 축소되고, 민간의 혁신투자 유인력을 잃어버리는 딜레마에 다시 빠진다. 



민간 기업이 국가연구소와 국가 R&D 예산 놓고 경쟁하는 상황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선도국에서 활용하는 정책 중에 ‘Association(협회) 중심 투자지원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이 전략은 국내에서는 산학연 협력 전략이라고 알려진 것과 유사하지만 실상은 차이가 크다. 해외의 Association 전략은 해당 산업부분, 기술부문에 속한 연구소들이 합의한 기술전략에 국가가 투자지원을 한다는 의미이다. 독일 연구소 프라운호퍼가 국가 혁신체제에서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기반도 바로 이것이다. 프라운호퍼는 독일 혁신생태계 내에서 국가가 투자한 공공엔지니어링 컴퍼니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민간의 기술을 도용하여 자기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호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연구개발 사업이 종료되기 전에 서둘러 특허와 논문 및 기술이전 실적을 내는 것도 오히려 금지하고 기술이전 전문조직이 특허의 시기와 전략을 자체 조율한다. 또한 산업계와 합의된 선행기술 개발이면 국가는 자동적으로 매칭 투자하여 프라운호퍼가 국가 투자기관으로서의 분명한 공공임무 정체성을 갖고서 다양한 기업들의 기술 니즈를 파악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산학연 전략은 어떠한가? 이러한 제도적 기반 없이 “산학연 협력 실적을 평가에 반영한다”는 정도에 그치는 실정이다. 그래도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필자는 20여년 간 항공기 개발에 종사해온 출연연 연구자로서 DJI의 도약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산학연 협력에 기반한 역전의 전략을 찾아보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 바가 있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지원하는 융합클러스터 사업이 발판이 되었다. 그러나 연합모임 지원사업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버넌스의 문제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소집된 모임에서 교과서적으로 모임의 의도와 기대를 사명감에 의지하여 발언했다. 그런데 산업체 중견 간부들이 한결 같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항우연과 우리는 국가 연구과제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기술니즈를 항우연과 공유할 수 있는가?”

‘대륙의 실수’에서 중국발 혁신의 아이콘이 된 DJI 사례와 다르게, 우리나라 국가주도 R&D 전략이 신산업 성장의 모태가 되기 어려운 난맥상을 네 가지 차원에서 짚어 보았다. 아무리 선진화된 제도와 시스템이라도 사람의 열정과 전문성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제도와 시스템이 열악한 상황에서 개인의 열정과 전문성이 발휘되는 데는 한계가 크다. 드론 관련 투자에만 해당하지 않고 전 분야에 해당되는 얘기다. 

이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현장의 난맥상을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라운호퍼 사례가 작동하는 분권형 위임형 국가연구기관 운영철학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프라운호퍼형 실적만 기대하고 요구했던 정책사례를 좋은 성찰의 계기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모방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 기반 한 전략적 사유와 권한위임 필요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형 혁신국가로의 전환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상상과 접근방식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혁신 투자 방식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해외 사례의 단순한 인용으로, ‘기승전-정부투자 확대’, ‘경제성 및 시장 성장성 00%’등의 논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DJI라는 기업을 일으킨 26세 청년 한 사람이 10년도 안된 세월에 현대자동차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동안, 매년 20조나 되는 국가 R&D 예산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 가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안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간단하지도 않다. 다만 깊이 들여다보고 공론화 하는 것이 우선이다. 

경로전환의 시기에는 깊이 들여다 본 리더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로 문제를 정의하고 자기 언어로 대안을 제시하고 다양한 반론에 공개 토론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두터운 보고서와 절차에 포획된 현재의 정책 논의의 장, 전문가를 동원하지만 숙의적 토론이 배제된 채 행사로 마무리 되는 현재의 논의 체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개혁은 고통스런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대가를 다 같이 공감하고 치를 수 있는 인식과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그 실천보다 더욱 어려운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러한 위험 수용형 리더십은 정부의 위험회피형, 단기책임중심형 국정운영 철학과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장기적 국가혁신을 선도하는 의사결정은 전문가 사회에 위임되어야 한다. 그 의사결정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운영과 의사결정 과정은 투명하고 숙의적이어야 한다. 역량 있는 리더십을 전문가 시스템 내에서 육성하고 선발하는 자기 진화적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이제는 투자의 양적 규모를 늘리는 정책 담론이나, 어떤 종목에 투자할 것인가 하는 관료 중심의 사업위주 담론은 멈춰야 한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 것인가? 어떻게 미션 중심으로 위임과 분권형의 혁신전략을 운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시장의 혁신 속도는 그만큼 거세고, 계획중심의 국가기술혁신전략과 관료중심의 개입전략은 그만큼 위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축적의 시간’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 혁신 속도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축적의 시간’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선도국의 혁신 속도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축적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 위에서 활약할 역량 있는 개인들의 모험과 도전을 수용하고 유인할 자율과 위임 지향의 정책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공급위주의 혁신 정책이 아니라 기술수요자 중심의 Association에서 발원한 혁신전략에 국가가 지원하는 체제로의 전향적 전환과 운영 전략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축적의 시간과 자원이 투입되어도 결실을 맺기는 어렵다. 글로벌 기업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가 몰고 오는 핵심 메시지는 성장의 가능성 보다는 위기의 경고이다. 이전의 혁신 방정식의 미세 조정으로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위기의 경고이다. 최근 5년간 전방위로 투자한 드론 부문의 국가 투자가 보여주는 한계와 그 지원의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절감하는 한계는 바로 이점을 웅변해 주고 있다. 

국가기술투자전략의 전향적인 전환과 혁신이 가장 급선무이다. 산업전략과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공공부분의 기술혁신이 관건이다. 국가 R&D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구도를 마련해야 한다. 미션중심으로 감사와 견제, 보상과 재도약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관건이다.



정부와 관료는 항상 옳다는 신화가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변화, 시스템의 전환은 지난한 도전일 것이다. 무엇보다 장기적 안목 위에서 단계적 개혁과 질적 도약을 추진할 구심력과 지속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현장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양태는, 정부·관료는 항상 옳다는 신화에 지배되고 있고 또 거대한 체제의 변화라는 의제는 내실 있게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반복된 실패의 양상을 치열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거나, 그것을 자기 언어로 문제정의를 하고서 소통을 중재하는 리더십이 부재하니 새로운 위기의식과 성찰이 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시스템 개혁과 개별주체들의 의식의 변화가 공진하며 진화할 기회가 사장되고 있다. 연구개발사업이 성공해도 산업화의 꽃은 피어나지 못하고 있는 줄 잘 알면서도 그 진단과 대안은 피상적이다.

보다 근원적인 함정은, 이러한 실패의 진단과 대안의 반복된 피상성이 어떤 우월한 인텔리전스나 전략의 공급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순진한 상상이다. 그런 상상으로 수많은 정책 토론회가 의미 없는 공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존의 국가기술투자 전략의 미세 조정(평가체제, 기획체제 등의 개선)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한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방향성부터 확고히 하는 것, 그리고 그 방향성 조차 조금씩 잠식해 버리고 마는 ‘기존 경로 의존성’을 경계하는 인식이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의미없는 개혁으로 미래세대에 짐을 전가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의지’, 즉 공공정책 리더십에 있어서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기본기를 요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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