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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덩샤오핑의 사상을 시진핑에게 전달하는 학자의 ‘중국론’ - 장웨이웨이 「중국은 문명형 국가다」

유진석

2019.01.31

중국은 우리에게 숙명이다. 미국이 지난 수십 년 숙명이었던 것처럼, 중국은 한국에 수천 년 숙명이었고 수십년간의 단절을 거쳐 단숨에 또다시 숙명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점점 그렇게 될 것이다. 중국을 알지 못하면 우리 운명이 어그러질 수 있다. 중국을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숙명이다.

장 웨이웨이의 「중국은 문명형 국가다」는 그 제목에서부터 中華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중화의 변방에서 고난을 겪어온 한민족 입장에선 우선 거부감부터 일어난다. 그러나 끝까지 읽기를 바란다. 중국, 특히 덩샤오핑에서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중국 공산당 주류의 생각을 읽는데는 이만한 책이 없을 듯하다.

덩샤오핑 영어 통역사 출신
인터넷서 장웨이웨이 저서 수억 회 조회

장 웨이웨이(1957년생) 소개부터 해야 할 듯하다. 상하이 출신으로 3년간 노동자 생활을 한 뒤 푸단대를 거쳐 제네바대에 유학했다. 국제관계로 학위를 마친 뒤 제네바국제관계대 교수를 지냈다. 1980년대와 90년대엔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 영어 통역이었다. 덩샤오핑의 공개되지 않은 생각과 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덩샤오핑의 생각을 역대 중국 최고지도부, 특히 시진핑으로 연결하는 학자가 장 웨이웨이다. 그는 2011년 「중국이 뒤흔들다-문명형 국가의 부상」을 냈다. 이 책은 중국에서 1백만 권 이상이 팔리고 수많은 출판상을 휩쓸었다. 그 해 9월 당시 국가부주석이던 시진핑은 중국을 방문한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죌릭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현대 중국을 알려거든, 내 생각을 알고 싶거든 이 책을 읽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시진핑이 이 책을 전달한 사람은 죌릭 뿐만이 아니었다 한다. 장 웨이웨이는 2014년 후속편 「중국이 앞지르다」를 냈다. 그리고 2017년에 연작 시리즈의 종합판으로 낸 책이 작년 말 성균중국연구소가 번역한 「중국은 문명형 국가다」이다.

그의 저술들은 중국 인터넷에서 수억 회의 조회를 기록했다. 주류 정계와 사상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희옥 “중국 뿌리 이해하는 결정판”

중국 내 그의 위상에 비하면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철저한 관변학자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중국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공산당 정권 이데올로그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미국과 유럽 쪽에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중국 양회가 열리면 CNN, 뉴욕타임스가 그를 찾아간다. 그의 말과 생각에서 공산당 지도부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성균중국연구소 이희옥 소장은 “중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오늘날 중국의 뿌리를 이해하는 결정판”이라고 한다.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장 웨이웨이는 ‘문명형 국가’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그 핵심만 간추리면 이렇다. 황화,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로마 문명 가운데 수천 년을 흘러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대국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문명이 중국이라는 것이다. 저자 표현을 빌리면 ‘500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온 위대한 문명과 초대형 근대국가가 중첩된 나라가 중국’이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 도입된 관료제가 수천 년 끊이지 않아 왔으며, 대일통(大一統)의 뿌리가 현대 중국의 오족(한족-만족-몽족-회족-장족) 공화주의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근원이 중국 문명과 중국인의 정체성 속에 각인돼 있다는 것이 저자 주장이다.

“선거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저자는 유럽 문명의 뿌리라는 그리스 문명은 그 정수가 유럽이 아니라 이슬람과 동방을 통해 전해졌으며 이것을 근-현대 유럽으로 연결한 것은 후대 유럽 학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심지어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도 이탈리아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흡수한 중국 문명 덕분이었다고 한다. 볼테르, 데카르트, 디드로 등 근대 유럽 계몽학파 주요 사상가 가운데 중국 문명을 극찬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헤겔과 몽테스키외 정도가 예외였으며, 특히 헤겔에 대해서는 독일 게르만 민족주의 부흥에 봉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심지어 ‘자유방임’ 개념도 노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선거 민주주의가 움직일 수 있는 진리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일 뿐이며 그에 비하면 중국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고 한다. ‘현명한 사람을 발탁하고 그 중에서 유능한 사람을 진급(選賢任能)시키는 중국의 시스템이야말로 민생을 돌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런데도 서구 제일주의에 빠진 학자들은 ‘서구의 민주 대 중국의 전제’라는 각인을 씌우지만 이것은 그들의 시각일 뿐이며, 이를 ‘나쁜 정치 대 좋은 정치’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1980년대 덩샤오핑이 “중국이 정치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보다 더욱 높고 더욱 진실한 민주를 창조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전한다. 저자는 “최근 몇 년간 중국 정치는 빠르게 진보했지만 미국은 빠르게 퇴보했다”라며 “서구 담론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는 종교법정도 종교전쟁도 없었다”

장 웨이웨이는 서구에 비해 중국이 우월하다며 그 증거를 수없이 든다. 연자방아, 주철, 아치형 다리, 활, 심층수 추출기술, 수로 갑문 같은 것 외에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종교와 관련된 것이다. 그는 유럽이 로마제국 해체와 함께 암흑시대에 들어간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한 기독교 신학이 통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도 분서갱유나 문자옥 같은 전근대적 억압이 적지 않았지만 “(중국에는) 종족 멸절이나 종교 법정이 없었으며 수천 년 이어져온 종교전쟁도 없었다”고 한다. 중국은 유교 도교 불교가 어우러졌고 “다원적 문화와 민족이 화이부동한 통일국가를 이뤄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만 중국이 아편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세계정세에 어둡고 외부에 문을 닫아걸면서 100여 년 쇠락의 시기가 왔으나 이제 드디어 ‘문명형 국가 중국’의 재부흥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문명형 국가는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 폐쇄성, 배타성, 군사적 공격성이 아니라 대일통을 중심으로 한 포용적 세계라고 한다.

장 웨이웨이는 이렇게 이어간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보기 드문 내부의 차이성과 복잡성을 갖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왕성한 인력자원과 최대의 글로벌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과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지리적 이점과 아울러 자신의 유구한 역사 전승과 독립된 사상체계를 갖추고 있고 무궁무진한 문화 자원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중국 발전 모델의 특징이 ‘학습+혁신+교육받은 거대인구’로부터 생겨난 ‘규모효과+중국과 세계에 대한 영향’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성공하면 곧 세계 최고가 된다는 말이다. 또 경제 제도 측면에서 중국이 실행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시장경제를 통해 자원 배분의 최적화를 추구하고 사회주의를 통해 거시적 안정과 사회의 공평 정의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의 결합이며 계획과 시장의 결합, 국유경제와 민영경제의 결합으로 이는 서구모델, 특히 미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진핑 ‘중국夢의 뿌리’가 이 책에 있다

결론은 이렇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 제도와 담론이라는 것이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문명의 변환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도 상대적인 것일 뿐이며 중국에는 중국만의 문명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중국 공산당 정권이 이것을 포기했다면 현대 중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결국 중국에는 중국의 길이 있으며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이른바 ‘중국몽(夢)’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소 황당할 때도 있다. 책을 읽고 있다가 장 웨이웨이에 공감하거나 그와 논쟁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다. 표현과 서술이 매우 단도직입적이어서 읽는 재미도 꽤 있다. 장 웨이웨이의 주장이 허튼소리만은 아니며 시진핑이 내세우는 ‘중국몽’의 뿌리가 여기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진핑이 공감하고 감동받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세계은행 총재에게 추천했을 리가 없다.

판단은 독자 몫이다. 그러나 무궁무진한 논쟁거리가 들어 있는 책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많이 읽고 활발한 토론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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