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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인사이트] 북한도 메이지유신을 만든 ‘이와쿠라 사절단’이 필요하다

이광재 (여시재 원장)

2018.12.21

북한의 개혁 개방은 동북아의 미래에도 직결

북 비핵화가 교착 국면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숱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을 어떻게든 비핵화와 경제개방의 길로 유도하는 것은 시대적 여망에 해당한다. 북 비핵화는 동북아 70년 냉전의 판도를 대전환시켜 지역 집단안보체제 구축으로 가는 열쇠다. 북한이 향후 진행할 국가 건설의 결과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 나아가 동북아의 미래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한 쪽에선 협상을, 다른 한쪽에선 비핵화 이후 준비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북은 경제발전을 위한 인재, 안목, 경험이 모두 부족하다. 개발계획 수립과 실행 전 과정에 외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북한 스스로 어떤 국가 모델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북의 고민과 외부의 지원은 모두 한반도 전체를 염두에 둔 ‘네이션 빌딩’으로 수렴될 수 있어야 한다.

한 국가가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데에는 경제 자문과 조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정책에 에른하르트 당시 독일 총리의 조언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게 차관 지원을 거절당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차관 지원과 함께 경제 성장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에른하르트 총리이다. 전후 독일을 재건해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에른하르트 총리는 고속도로와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고 중화학 공업을 추진할 것 등을 조언했다고 한다. 농업국가 한국이 중화학 공업 중심의 산업국가로 변모하는 데에 그의 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들어선다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과 국제기구들이 경제자문을 자처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의 귀재라고 알려진 짐 로저스는 최근 금강산관광개발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민간기업 아난티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어 주목받았다. 평소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던 로저스는 향후 북한 투자의 자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모습(출처: ytn)

북한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할 안목을 길러야

북한이 어떤 성장모델을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개성공단 모델에서부터 베트남, 심천, 싱가포르, 나아가 디지털 혁신 국가인 에스토니아까지 거론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 스스로가 자기 운명을 개척할 기회와 안목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여시재 초청 강연에서 에스토니아의 경험을 설명한 바 있다. 소련에서 독립했을 당시, 신생국가 에스토니아는 IMF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성장모델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받았다. 에스토니아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서구 중심 모델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는 후발 국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혁신이라는 국가 성장 전략을 채택했고 디지털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북한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여전히 경험이 부족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개성공단 건설이 난항에 부딪힌 적이 있다. 계속되는 협의에도 불구하고 공단 부지조차 매일 변경되는 등 사업에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개성공단 건설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담당 공무원의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실태 파악을 위한 토론 끝에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북한에게는 개혁개방은 물론이고 경제 특구의 경험은 물론 개념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는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진척이 없었던 것이다. 즉시 담당자들로 하여금 북한 관료들을 데리고 전 세계 주요경제특구와 공단을 함께 시찰하도록 지시하였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들이 추진할 미래를 설계할 식견을 심어주려 하였다. 이후 한국토지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개성공단 건설을 주도하고 관련 법을 제정해가며 개성공단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해 북한의 경제개발 의지는 한층 강해졌다. 이미 24개의 경제특구를 지정해 놓고 있다. 비핵화 이후 경제특구 비전을 북한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메이지 정부의 신사 유람단이 근대 국가 일본을 설계

북한의 성공적인 개방과 국제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선진 세계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면 ‘북한판 신사유람단’까지 구상해야 한다. 네덜란드계 미국인 선교사 벨벡은 일본 메이지정부에 해외사절단 파견을 제안했다. 이에 일본정부는 일본판 신사유람단인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와쿠라 도모미(당시 외무성장관)를 특명전권대사로 한 이와쿠라 사절단은 총 107명의 인원이 1년 10개월에 걸쳐 미국과 유럽, 총 12개 국가를 순회했다. 부특명전권대사로 오쿠보 도시미치(당시 대장성 장관), 기도 다카요시(당시 참의), 이토 히로부미 (당시 공업운수 장관)가 참여하는 등, 메이지 정부의 현직을 담당하는 핵심인물들이 이 여정에 함께 했다.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외국을 돌며 문물을 습득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들의 해외체류기간 동안 국정을 담당할 ‘부재중 정부’를 대신 세울 정도로 당시 일본은 이들의 해외 유람을 전폭 지원했다. 평균 나이 32세, 대부분이 사무라이 계급 출신이던 이 사절단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서양국가들의 정치, 산업, 과학 등 서구문명의 첨단을 견학하였다. 사절단은 귀국 직후 ‘부재중 정부’의 중심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제기한 정한론(征韓論)을 꺾고 일본 부국강병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와쿠라 사절단. 가운데 상투머리 주인공이 이와쿠라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여정은 귀국 후 사절단 일원이던 구메 구니타케가 편수하여 구미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로 기록되었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서구국가들의 정치, 법률, 산업, 과학기술에 대한 방대한 기록과 평가를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메이지 정부는 근대국가 일본을 설계했다. 영국의 입헌 군주제를 참고하여 1989년 메이지 헌법을 선포하고 전통적인 천황제를 입헌군주제로 안착시켰다. 특명전권대사 이와쿠라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시카고, 워싱턴 등의 철도를 시찰하다가 충격을 받고 상투를 잘랐다. ‘철도국가 일본’은 이때 시작됐다. 영국의 경우 런던, 리버풀, 맨체스터 등지의 53개 공장을 시찰하였다. 영국의 공장 시찰은 석탄과 철강을 동력으로 한 공업정책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미국의 보통교육제도가 광대한 영토 개척을 뒷받침하였다고 평가했다.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소국의 자주정신과 애국심 교육에 주목하기도 했다. 1890년 10월 30일 천황 명의로 공포된 「교육칙어(敎育勅語)」는 이러한 영향의 산물이었다.

당시 사절단이 사용한 경비는 50만 달러, 당시 환율로 50만엔(현재 환율로100억 엔)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중의 국가 예산이 5,773만엔이었다고 하니 100여명 남짓한 이들의 해외 출장 경비로 국가 예산의 1%를 썼다는 말이 된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도 변장을 하고 유럽을 배웠다. 네덜란드에서 직접 배를 만들며 조선기술을 배웠다. 그 결과 유럽으로 향하는 ‘창’ 페테르부르크를 세우면서 근대 러시아를 만들었다.

지식 습득을 희망하는 북한 엘리트들

북한 역시 이러한 외부 세계의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북한의 6개 대학 총장단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UBC)대학을 방문했다. UBC 산하에 운영 중인 ‘지식교류협력 프로그램(Canada-DPRK Knowledge Partnership Program, KPP)’ 초청으로 방문한 이들은 대학 간 교류를 모색하였다. 지난 8년간 46명의 북한 엘리트들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이 중에는 산림 전문가, 수질 전문가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학술 교류는 제재 대상이 아닌 만큼, 비핵화 이후의 북한 설계를 위해 앞으로 더욱 확대 되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이 세계 곳곳에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북한이 비핵화로, 개방화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을 통한 도약 가능성에 주목해야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지적 교류는 남북한 교류에 있어서도 새로운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북한을 4차 산업혁명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교통, 의료, 교육 등 사회 기반시설이 낙후되고 미비한 북한은 스마트 시티 실험을 실시하기에 적합하다. 산업화된 기존 도시들에서는 원격 의료, 원격 교육, 자율주행차를 실험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 구글의 스마트 시티 실험이 캐나다 토론토의 폐항구를 이용하거나 암호화폐 백만장자인 제프리 번스가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에 블록체인 시티를 세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북한에 전 세계 스마트 시티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시범도시를 만들고 전 세계 기업들이 참가한다면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은 한국, 동북아 모두에게 기회가 될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습득할수록 통일 비용은 감소

이런 생각을 정리해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발표한 일이 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북한 관리들이 크게 공감한다고 했다. 그들은 그동안 북한은 “경제이론을 책으로만 익혀왔을 뿐 현실을 볼 기회가 적었다”고 말했다. “책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고 들어야 깊이 배운다”고 했다. “국제사회가, 특히 한국이 국제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북한은 엘리트 중심 사회다. 개혁개방을 이끌 엘리트들이 세계를 알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습득하는 것은 통일비용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한 시혜 혹은 퍼주기가 아닌 한반도와 동북아가 윈윈(Win-Win)하기 위한 길이다.


<참고>
1. [여시재는 지금]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말하는 디지털 국가 혁신
2. “제제 공조와 함께 인센티브 국제 공조도 필요하다”- 2018 여시재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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