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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미래다 / 02 / 변화의 동력, 지식패러다임의 변화] “활판인쇄 → 디지털, 600년만의 文明전환”

이명호 (디지털사회 PM)

2018.12.20

<여시재 e-핸드북>

디지털이 미래다 #02 변화의 동력, 지식패러다임의 변화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디지털의 개념과 역사(링크)
2. 변화의 동력, 지식 패러다임 변화

3. 인쇄술과 엔진의 사회 산업사회
4. 디지털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가
5. 인터넷, 대중의 시대를 열다
6. 지식의 미래, 인공지능 시대
7. 플랫폼 경제의 명암
8. 기업과 노동의 미래
9. 일과 오피스의 미래
10. 에필로그/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사회의 변화를 어떤 프레임에서 볼 것인가?

필자는 경영학의 그루이며 지식경제론을 제시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역사를 한 문장으로 분석한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다”1)라는 명제를 사회 변화를 분석하는 틀의 기초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럼 이러한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인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Media, 매체)라고 보았다. 그는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며 “미디어에 의한 인간의 확장은 정신적, 사회적 복합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2)고 하였다. 맥루언은 미디어의 범주를 일반적인 통념인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만이 아니라 바퀴와 옷, 주택, 무기, 자동화 등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artifacts)을 미디어의 범주에 넣었다. 그에 따르면 바퀴는 발의 확장이고 옷은 피부의 확장이며 라디오는 귀의 확장이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좁은 의미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변화 즉, 말에서부터 문자, 필사, 인쇄, 통신,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사회 변화를 촉진하고 사회의 성격을 규정했다.

“산업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사회”

그런 의미에서 맥루언은 “산업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사회”라고 하였다. 구텐베르크가 1450년 활판인쇄기를 발명한 후 책 인쇄의 기계화는 모든 기계화의 원형으로 작용하였다. 활판인쇄술 덕분에 최초로 균일한 재현이 가능한 생산품이 만들어졌다. 활판인쇄기는 최초의 조립라인 대량생산 공정인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활판인쇄기 이전의 필사본 책은 사람이 손으로 옮겨 쓰는 과정의 실수 등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책이 나올 수 없었다. 활판인쇄기는 표준화된 공산품 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또 활판인쇄술은 읽고 쓰는 능력을 널리 퍼지게 만들었다. 이는 생산 과정과 판매 과정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교육에서 도시 계획, 그리고 산업주의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다른 모든 삶의 영역들을 바꾸어 놓았다. 인쇄술은 인간을 전통적인 문화 지형(cultural matrix)로부터 분리시키며, 그와 함께 개인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려 국가와 산업 강국이라는 거대한 복합체를 만드는 법을 보여 주었다고 맥루언은 주장한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변화, 특히 지식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미디어의 변화는 그 시대의 사회, 문명을 규정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말에서부터 문자, 필사, 인쇄, 통신,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그 시대의 문명과 불과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변화와 발달의 순서는 곧 문명의 순서다.

원래 인간의 언어(말)는 여럿이 협력하여 동물을 몰고 사냥하기 위한, 창과 도끼를 사용하는 몸과 함께 생산 도구의 일부였다. 말이 미치는 범위는 씨족을 넘을 수 없었으며 수렵채집의 씨족사회는 말(언어)을 기반으로 한 사회였다. 말은 머릿속의 기억으로만 저장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통해서만 먼 거리로 전달되고 세대를 넘어 전달될 수 있었다. 말은 지식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에서 수사학과 논리학만이 학문으로 인정받고 토론과 웅변이 지도자의 중요한 능력이었듯이 말은 오랜 기간 동안 지식의 도구였다. 그러나 말은 실시간 협력과 정확성 및 즉시성이 있지만 시공간을 넘어 온전하게 저장(기록)되고 전달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림 1. 지식기술의 발달과 인류 역사 (참조 재구성: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2015))

기억을 남기는 방법은 기록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기호를 만들고 문자를 발명하면서 사람들의 협력 규모는 커지게 된다. 교환과 상거래에 대한 기록으로 문자가 발명되었지만, 농업과 함께 기록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사냥은 몇 시간의 생산 활동으로 충분하였지만, 농사는 1년의 생산 활동이다. 또한 농지는 사냥터보다 소유 개념이 강하다. 경지의 면적, 수확량 등을 관리하고 기록할 필요성이 커졌으며, 계절의 변화와 작물의 변화 등 천문지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였다. 문자와 기록은 농업과 농업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지식 수단이었다. 경작지를 넓혀나가면서 집단의 규모도 커졌으며 대규모의 수로와 저수지 등을 만들 수 있는 부족 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기록된 글은 또한 지켜야 할 규율을 의미했다. 말은 나오는 순간부터 전달과 기억 과정에 노이즈(왜곡이나 오해)가 발생하지만, 글(Text)은 변하지 않는 따라야 할 율법이 되었다. 다른 씨족 공동체가 뭉쳐 부족을 이루려면 규칙과 율법이 있어야 했다. 성문화된 율법은 부족 국가의 안정성을 유지시켜주는 질서를 제공하였다. 글을 아는 학자들은 관료가 될 수 있었으며, 관료들은 국가 질서의 유지자이면서 지식의 생산자가 되었다. 그러나 1500년대 중세에 이르기까지 글과 책은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쓰는 필사를 통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은 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필사본은 여전히 옮겨 적는 과정에서 오류(왜곡)가 발생할 수 있었다. 현재와 같은 책 1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경사 1명이 두 달 꼬박 옮겨 적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책 1권의 가격은 현재 가격으로 오백만원에 달했다. 활판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지식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 대중의 시대 연 디지털

이와 같이 커뮤니케이션 도구, 즉 지식 도구와 그 당시의 생산 도구와 생산 방식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하고 있다. 말은 창과 도끼를 들고 사냥을 위한 동물 몰이 작전을 짜고 협력하는데 중요한 지식 기술이었다. 계절의 변화와 작물의 특성에 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한 농업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기록의 중요성이 커졌고, 문자와 필사는 농업을 위한 지식 기술로 발전하였다. 활판인쇄술은 표준화된 상품 생산방식의 모델이 됨과 동시에 지식의 확산을 가져왔고, 발명과 발견으로 이어져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구성된 디지털 기술은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과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하였다.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접할 수 있는 지식 대중의 시대를 열었다. IoT(사물인터넷), Big Data,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정보와 지식의 생산과 처리자를 인간에서 기계로 확대시키면서 지식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이시다 히데타카는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2017)에서 “인간은 도구를 만듦으로써 대상과의 관계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선취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인간의 시간, 인간의 공간인 인공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3) 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기술과 매체는 당시의 주요 도구와 생산 방식, 생산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도구와 생산 방식, 생산 공간을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범용기술은 지식 기술과 같이 인간의 사회 구성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렵채집 문명 시대에는 창과 도끼를 만드는 범용기술과 말(대화)이라는 지식 기술이 수렵채집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기반이 되었다. 농업문명 시대에는 쟁기를 만드는 범용기술과 문자(필사)가 농업 국가의 틀을 유지시켜주었다. 산업문명은 증기기관(엔진)이라는 범용기술이 모든 기계의 동력원을 제공하는 대량생산 공장제 시스템을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인쇄술은 관료에 의해 유지되는 더 넓은 국민국가라는 통치 체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디지털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 활용이라는 새로운 지식 기술로 등장하고, 디지털이 범용기술로서 생산의 자동화와 지식 산업(콘텐츠, 문화, 서비스 산업 등)이라는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식대중의 확대는 국가 권력에의 참여로 이어지며, 통치구조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산업문명과 다른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을 이끌 것이다.

그림 2.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지식 - 기술시스템의 구성 (저자 작성)

필자는 이와 같이 사회 변화를 지식기술과 범용기술의 프레임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기술과 매체를 이용한 지식의 창출, 전파, 활용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지식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지식기술과 범용기술의 조합을 줄여서 지식-기술 시스템이라고 약칭하고자 한다. 필자는 사회변화의 핵심에는 지식기술과 범용기술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범용기술과 지식기술은 도구와 생산 방식, 생산 공간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기술과 범용기술은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인 인간, 개인과 조직(집단, 공동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즉, 지식기술과 범용기술을 사용하여 인간(개인과 조직)은 도구(사물), 생산(프로세스), 공간의 측면에서 새롭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구성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와 같은 분석 프레임을 통해 산업사회의 지식기술과 범용기술이 어떻게 산업사회를 촉발시키고 완성하였는가를 분석하면서, 산업사회의 성격과 한계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1) Peter Drucker, , 1993
2)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민음사, 2002
3) 이시다 히데타카,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 사회평론, 2017, p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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