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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인류는 매년 5개월의 자연을 더 소비하고 있다

임두리 (지속가능성 PM)

2018.11.29

세계 인구가 10억 명이 되는 데는 20만 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65억 명이 증가하여 현재의 75억 명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00년에 불과하다. UN은 2050년에는 98억, 2100년에는 112억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증가하는 인구가 지구를 위협하는가. 인구의 증가 속도가 식량 생산 속도를 초월해 재앙이 올 것이라는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나 폴 에를리히(Paul Ehrlich)의 경고가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인구 과잉으로 인한 토지이용 변화, 자원 고갈, 폐기물 배출에 따른 환경오염이 지구 생태계에 미칠 파국을 우려한다.

UNEP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수용 능력(carrying capacity)에 관한 65개의 서로 다른 연구 중 절반에 해당하는 33개의 연구가 지구의 수용 인원을 80억 명 또는 그 이하라고 보고 있다. 지구가 이미 수용 한계에 도달했거나 늦어도 향후 5년 안에 이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나머지 절반의 연구 역시 지구가 지탱할 수 있는 인구의 상한선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 미래의 인구 증가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 인구 준다 해도 금세기 내 생태위기 해소 불가능

동일한 조건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경우 자원이 덜 소비되고 오염이 줄어들어 생태계에 대한 압력이 완화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호주 생태학자 코리 브래드 쇼(Corey Bradshaw) 교수와 배리 브룩(Barry Brook) 교수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도 이번 세기 안에 지속불가능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2100년까지의 인구 변화 전망에 대해 여러 시나리오 분석을 시도한다. 세계전쟁, 전염병, 대재앙 및 기후변화로 인한 영아 사망률 급증, 산아제한 제도의 도입 등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경우도 들어 있다. 그 결과 수십억 명이 사망하는 대재앙, 전지구적인 1자녀 정책 도입과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 조차 2100년의 인구는 50억 명에서 100억 명 수준을 유지한다.

인구 관성(demographic momentum)은 그만큼 강력하다. 전쟁이나 재앙이 아닌 윤리적인 해법, 즉 개발도상국 여성의 교육기회 확대와 지위 향상 등을 통한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감소하는 경우도 기대해볼 수 있으나, 그 효과는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 그 다음 다음 세대까지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인구 감소를 우리가 가진 생태 위기의 대안으로 보는 데는 다른 문제도 있다.

향후 10년 안에 세계 3분의 2를 넘는 지역에서 출산율은 1인당 2인 이하로 감소한다. 하지만 2050년까지 증가하는 인구의 절반은 인도, 나이지리아, 콩고,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등 단 9개 국가에 집중된다. 과잉 인구에 대한 문제 제기가 현재의 생태위기를 초래한 선진국이 아니라 더딘 성장과 빈곤으로 고통받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일부 국가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지구에 동일한 수준의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태발자국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탄소배출을 보자. 인구 규모 1위인 중국의 소득 하위 50% 사람(약 6억 명)이 배출하는 탄소는 미국의 가장 부유한 10% 사람(약 3000만 명) 배출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2020년 중반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의 소득 하위 50% 인구의 1인당 탄소 배출은 미국 소득 하위 50% 인구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현재의 인간이 맞닥뜨린 생태적 위기의 근본 원인을 소비의 규모가 아닌 인구의 규모로 설명하는 것이 불충분할 뿐 아니라 불공평한 이유다.

인구는 문제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지구의 제한된 수용능력을 고려할 때 증가하는 인구는 분명 중요한 문제다. 어떤 개발도상국들에는 빈곤 감소, 여성 인권 강화와 같은 그 자체로 중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구를 안정화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효과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이와 같은 조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 생태계에 대한 압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위기가 즉각적이고 신속한 행동을 요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누적된 경제활동으로 현재의 위기를 야기한 이들이 인구 과잉을 생태적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인구 감소를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실제 문제 해결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한 채, 그들 자신의 역사적, 현실적 책임을 가리고 지속가능성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인구성장률은 0.4%, 합계출산율은 1.05명(2017년)에 불과하다. 지난 2분기부터는 합계출산율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1인당 탄소 배출은 세계 1인당 평균 배출의 3배에 달하고, OECD 평균보다도 높다. 생태발자국, 다시 말해 자연자원과 생태계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국토 생태계 재생능력의 8배가 넘는다. ‘지구 용량 초과의 날(Overshot Day)’라는 개념을 고안한 ‘Global Footprint Network(GFN)’에 따르면 올해 인류가 지구가 준 한 해 분량의 생태 자원을 모두 사용한 날은 8월 1일이었다. 매년 5개월 치의 생태계 용량을 초과소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모든 인류가 한국인과 같은 삶의 방식을 취할 경우 이 날짜는 4월 16일까지 앞당겨진다.

우리는 현재의 생태적 위기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과잉인구 때문이 아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욕망하고 소비하는 우리 자신의 생활양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더 진지하고 절박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설령 내일 당장 세계의 인구가 안정화되더라도 우리가 현재와 같은 삶을 고집한다면 인류도, 인류의 삶을 지탱하는 지구 생태계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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