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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北이 美 영향력 아래 들어갈 때 中의 선택은? - 中은 北美가 적당히 갈등하고 적당히 대화하는 ‘현상유지’ 원할 것

윤경우 (국민대 중국학부 교수)

2018.11.01

최근 한반도 정세에는 1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길은 아직 멀다. 특히 북미 양자의 틀과 한국 정부의 역할만으로 성공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여전히 독특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 시점에서 중국의 對한반도 정책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과거 행태 분석을 통한 추론 밖에 없다. 북이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자주 군사적 도발과 위기 조성을 하게 됨에 따라 중국에서는 북중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한 미국의 한반도 군사적 개입 지속과 영향력 확대가 중국에게 전략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에게 북한은 전략적으로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고 미국과 직접 대치하는 상황을 피하게 하는 완충지역으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북한 정권 붕괴이다. 북 붕괴나 전란과 같은 급변 사태로 대규모 난민이 국경을 넘어 오고 미국이 주둔하는 친미 성향의 통일 한반도를 마주하는 상황을 중국은 원치 않는다. 따라서 그동안 중국은 한반도 분단 상황의 변화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전략을 추구해왔다.

거듭되는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북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북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제재와 압력에 반대했다. 특히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공급 만큼은 거의 한 중단한 적이 없다. 중국은 북한과의 국경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하며 밀무역이 성행하는 것도 사실상 방조해왔다. 그 결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11년 70% 선이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90% 이상으로 높아졌다. 중국이 대북제재의 구멍 역할을 하는 바람에 북한이 핵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2017년 11월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 직후 중국의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과 신속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참도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경고와 압박에 불과하다.

美, ‘북미협상 방해말라’ 中에 경고

최근 미국은 구체적인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 배후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역갈등과 북핵문제의 연동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미국은 중국에 미중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내세웠다. 미국이 무역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이 예전만큼 미국을 돕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는 중국이 비핵화 협상 국면에 개입하여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즉 북미 협상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또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하여 미국을 상대로 한 무역전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시도를 차단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길어짐에 따라 미중 간 전략 게임 양상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 협상은 미국의 ‘선 비핵화 후 경제제재 완화’, 북한의 ‘비핵화 단계에 따른 경제제재 완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며 예상과 달리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소외되거나 주변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지와 한미 연합훈련 중지(쌍중단-雙中斷)’와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 병행 추진(쌍궤병행-雙軌竝行)’이라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제안에도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져 중국은 완충지대를 잃게 되고 동아시아 안보지형도 중국에 상당히 불리한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에게 최악이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중국의 선택은 결국 한반도의 현상 유지일 수 밖에 없다. 우선순위를 북한 정권의 안정에 두고 있는 중국이 제시한 중재안은 더 이상의 북미관계 악화를 막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중재안은 사실상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에 찬성하고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는데 무게의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수용 가능한 대안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피로감을 주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고 항상 두둔하기도 어렵고 북한에 마냥 끌려 다니는 것도 골치 아프다. 중국은 북미관계가 가까워져 북한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로 넘어가는 정도까지 진전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북한의 지나친 위기조성과 과도한 군사적 도발로 북미 대결이 심화되어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동맹이 강화되거나 미국의 한반도 군사개입이 정당화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북한 통치 권력의 최대, 최우선 목표는 권력의 유지이다. 그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북한은 절대 중국이 원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중국 입장에서는 북미가 적당히 갈등하고 적당히 대화하는 상황, 즉 평화를 유지하되 북·미 관계 정상화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갈등하되 미국의 군사적 개입 정도까지는 아닌 중간정도가 가장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의 간극은 크다. 중국이 기대하는 바와 같이 미국이나 북한이 움직일 가능성이 적고, 중국이 그러한 상황을 유도해낼 능력도 회의적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 중국에게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통제가 불능한 긴장고조나 상황악화로 치달을 수 있다. 비핵화와 평화 정착은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합치될 때만 가능하다.

중국에 최악은 남이 북을 흡수하는 상황

중국 입장에서는 결국 최악의 상황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경우일 것이다. 중국은 이 경우에 미군이 더는 남한에 주둔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에게 최대 걸림돌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주한미군 주둔을 허용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한국에서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목소리가 한반도의 대세 여론화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략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중 간에 한반도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현재의 경쟁이 어떻게 귀결될지도 불확실하다. 북한은 아마도 미국이나 중국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하여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미·중 양국은 이러한 북한을 자국에 우호적인 상대로 확보하여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변수는 많다. 당장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가 그 종속변수로 엮인다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언급함에 따라 북미 협상의 장기화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의 무역갈등까지 심화되고 장기화될 경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양국의 공조가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중국이 미국의 무역 압박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부정적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에 따라 미중 양국이 한반도에 대한 개입 수준을 경쟁적으로 높이게 되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도 함께 올라가 비핵화 목표는 더욱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는 항상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과 전략적 판단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변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시 친미화된 북한 또는 한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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