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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35억원 VS 2700만원 - 서구의 공동체주의와 유교의 ‘화(和)’

작성자 : 이관호 2018.10.26 조회수 : 961

 가을이면 저를 포함한 세계 야구팬들의 시선이 분주해집니다. 그런데 KBO리그에서 뛰는 300명이 넘는 선수들 가운데 최고연봉은 누가 받고 있을까요?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의 올해 연봉은 35억 5천만원으로 최저연봉 2천 7백만원의 130배가 넘습니다. 오늘은 신간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가 전하는 인사이트로 이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 이론을 중국과 서양의 유교 연구자들이 논평한 것에 대해 샌델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서양과 유교의 접점을 찾는 노력인 셈입니다. 샌델은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NBA의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마이클 조던이 그토록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신간에는 샌델의 그런 관점이 어떤 인간관에 입각한 것인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복숭아씨와 양파가 등장하는데요. 복숭아는 과실 부분이 딱딱하거나 물컹하거나 또는 썩거나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씨는 그대로입니다. 한편 양파는 계속 껍질을 벗겨내면 남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나’를 복숭아의 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 환경을 떠나 독립적인 자아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양파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벗겨내면 남아있는 실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딸, 남편과 아내, 부모, 친구, 선생과 제자와 같은 역할들을 벗겨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천문학적인 연봉을 자랑하는 스타가 그 수입이 오직 자신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복숭아씨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양파와 같이 주변 겹겹이 싸인 환경이 곧 자신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수입이 자신의 능력만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은 물론 복숭아씨 자아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월에 따라 집착하는 대상, 증오하는 대상이 바뀌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지 복숭아씨와 같이 고정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관점에서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의 원자화된 인간관을 비판했습니다. 복숭아씨와 같은 인간에게는 역사도 나의 역할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가족도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나의 자유, 소유, 권리만을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 인간관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샌델의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관계와 역할을 벗어나서 개인을 상상하는 것은, 인격이 완전히 결여된 개인, 도덕적 깊이가 완전히 결여된 개인을 상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내 선택이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역사 속에서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1군에서 뛴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실력의 선수이며 KBO리그는 그런 300여명의 선수들이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이대호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업자들 중 가장 뛰어난 구성원이긴 하지만, 여하튼 130배 이상의 능력을 갖춘 선수는 아닙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말이겠지만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합니다.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잘난, 혹은 덜 잘난 구성원들 모두가 사회라는 그라운드를 구성하고 뛰고 있습니다. 누군가 받는 고액 연봉과 지위도 그의 절대적 능력이나 가치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샌델은 유교의 ‘화(和)’ 개념에 주목합니다. 그는 “중국 전통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조화가 사회적 삶의 제 1덕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조화’가 ‘정의’보다 더 고차원적인 덕목이라는 주장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샌델은 칸트와 롤스 식의 ‘자유롭고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 개념을 비판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비록 몇 가지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상당한 측면에서 유가 전통과 유사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람직한 삶과 사회의 모습을 설정하지 않고서는 정의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립적으로 보장하는 것만으로 정의를 획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지지하는 다원주의가 유교의 조화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여시재가 추구하는 동서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탐색은 이와 같은 연구의 과정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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