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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GDP는 죄가 없다, 다만 문제는 많다 - 다이앤 코일 「GDP 사용설명서」

이우정

2018.10.12

지난주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화폐로 환산한 자료를 내놓았다. 1인당(대부분은 여성) 하루 평균 2시간 15분씩 일해서 연간 710만여 원(2014년)의 가치를 생산한다는 내용이다. 2014년 기준 최저임금의 약 2배 수준이며, 우리 GDP의 무려 24%를 차지한다.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계산해 국가승인 통계로 내놓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보다 1년여 전인 작년 4월 서울에서 ‘GDP를 넘어: 경제적 웰빙 측정의 경험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 자리에서 “GDP가 환경의 훼손, 소득과 부의 분포, 국민의 삶의 질 변화 등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GDP가 포착하지 못하는 삶의 질도 균형 있게 측정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의 발언과 통계청의 가사노동 통계 작성 사이에 직접적 지시-실행 관계가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정부 차원에서 GDP의 한계를 인식하고 보완 통계를 연구 중인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UN도 이미 무급 가사노동에 대한 통계 작성을 권고한 바 있고, 프랑스 일본 등이 관련 통계 작성을 진행 중인 것도 같은 흐름일 것이다.

다이앤 코일의 ‘GDP 사용설명서(GDP: A Brief but Affectionate History)’는 몇 달 전 샀다가 책꽂이에 묵혀 두고 있었다. 이 책을 꺼내 든 것은 통계청이 GDP에 포함되지 않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측정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교수인 코일이 2014년에 낸 이 책은 원제에 ‘A Brief’가 들어간 것처럼 200여페이지 분량의 소책자에 가깝다. GDP라는 개념의 탄생에서부터 발전 과정, 한계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해서 쉽게 읽힌다. GDP는 원래 미국이 2차 대전 때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생산력의 총량을 계산하기 위해 만들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수요 관리를 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 효용성이 인정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핵심 지표가 되었다. 미 경제분석국은 2000년 GDP를 ‘20세기 최고 발명품 중 하나’라고 했다. 이 발명품의 개념 발전에 이바지한 여러 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것뿐이라면 OECD 총재와 전 영국은행 총재가 필독서로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제에 들어가 있는 ‘History’는 어떤 역사인가? 이 히스토리는 GDP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리스 같은 나라가 국채를 더 발행하기 위해 GDP 수치를 조작하는 과정 같은 생생한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영국은 1970년대 IMF로부터 긴급 융자를 받았다. 그러나 몇 년 뒤 통계자료 수정 결과 긴급융자를 받을 정도로 경제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가나에서는 하루 사이에 GDP가 60% 증가한 일도 있었다. 국제정치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거칠고 동물적이다.

GDP는 정치 수단이 됐다. GDP가 0.1% 올라가면 정권이 연장되고 0.2% 떨어지면 정권이 교체되는 것처럼. GDP의 정치적 성격은 어떤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GDP 수치는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에 제공하는 국제원조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GDP엔 한계가 많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어떤 남자가 이혼해서 가사도우미를 쓰면 이 가사도우미에게 주는 월급은 GDP에 포함된다. 이 남자가 그 도우미와 결혼하게 되면 도우미가 제공하는 가사노동은 무급이 되어 GDP에서 제외된다.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학생이 학원에 가는 대신 유튜브로 무료강좌를 들으면 학습 효용이 높아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 효용성과는 관계없이 GDP는 감소한다. GDP는 복지 효용이나 환경, 삶의 일관성 같은 것을 재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혁신을 측정하는 데도 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지적된 것만 20가지 가까이 된다고 한다.

2008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행복은 GDP 순이 아니”라며 새로운 경제지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 위원회에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몇 사람을 초빙했다. 그들은 2년 후 ‘GDP는 틀렸다(Mismeasuring our lives)’라는 보고서를 냈다. 사르코지는 이 보고서 발간사에 “GDP는 상승하는데 사람들의 생활은 왜 더 어려워지나”라고 했다. 스티글리츠는 “세계 경제를 개혁할 새로운 경제지표가 필요하다”고 했다.

코일이 그 4년 후 낸 ‘GDP 사용설명서’가 스티글리츠에 대한 대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논의를 이어가는 것인 것만은 분명하다. 코일은 GDP의 효용을 긍정한다. 미시 경제지수의 총합 GDP야말로 국가 재정정책의 핵심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절대시해서도 안된다고 한다. 생산활동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삶의 질 변화와 같은 사회발전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경제, 공유경제가 확산시키고 있는 다양한 거래를 포착하는 데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일은 더 이상의 비슷한 지표는 필요 없다고 한다. 이미 (GDP 같은) 좋은 지표들이 있고 그 지표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개념과 세부 사항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길을 가기 보다 21세기 경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를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급속한 기술발전이 GDP 계측의 문제를 해결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표명하고 있다.

코일의 책을 읽은 후의 생각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GDP는 죄가 없다, 다만 문제는 많다’, 이 한마디다. 그 어간 어딘가에서 앞으로 많은 지적 탐색과 논쟁, 반박이 나올 것 같다. 새로운 노벨상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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