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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루스 디프리스 「문명과 식량」, 문명은 ‘밥’을 위한 투쟁, 그러나 자연의 보복은 반복된다

최지은 (SD)

2018.09.21

세상은 온갖 음식으로 가득합니다. 누군가 곱창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방송되면, 곱창집의 웨이팅 리스트가 한없이 길어집니다. 맛 칼럼니스트, 먹방, ‘푸드스타그램’까지, 저를 포함해(!) 사람들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루스 디프리스의 ‘문명과 식량’(눌와)은 식량의 문명사라 할만합니다. 식량이 인간의 문명을 변동시키는 중요한 기제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디프리스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엮어 흥미롭게 전달합니다.

기원전 1000년 페르시아인들은 카나트(Qanat)라는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카나트는 계곡물 상류의 지표에 굴을 뚫어 물이 지하를 따라 건조지역으로 흘러가게 만든 일종의 수로입니다. 페르시아 같은 건조지대에서는 물이 지표를 따라 흐르면 저지대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립니다. 이걸 막기 위한 발명이 카나트였던 것입니다. 식량 증산에 큰 역할을 했겠죠? 하버(Fritz Haber)와 보슈(Carl Bosch)는 공기로부터 질소를 뽑아내 화학비료를 만들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중국 농부들은 도시의 골칫거리인 인분을 수거해 비료로 사용했습니다. 모두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한 분투였습니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혹은 운이 좋아서 자연을 ‘성공적’으로 변형했고 좁은 땅에서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인류 문명의 진보 그 자체라는 것이죠.

그러나 디프리스는 여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식량을 확보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계속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디프리스는 ‘바퀴(ratchet)’와 ‘도끼(hatchet)’라는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합니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인류가 굴리던 ‘성장의 바퀴’가 한 번씩 인구증가, 질병, 가뭄, 생태계 파괴 같은 도끼를 얻어맞습니다. 생태계의 역습, 인간의 과속을 늦추기 위한 자연의 브레이크인 것이죠. 디프리스는 인류 역사에 그간의 성장을 한 번에 꺾어버리는 도끼가 늘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서양인에게는 익숙한 <아일랜드 대기근>이 대표적입니다. 18~20세기 유럽 인구를 증가시킨 원동력 중 하나는 열량이 높고 비타민이 풍부한 감자였습니다. 감자는 저장하기도 쉽고 다른 작물이 있어도 잘 자라며 무엇보다 같은 열량을 얻는데 밀이나 보리보다 땅도 덜 필요로 합니다. 게다가 종자를 따로 살 필요도 없고 키우기도 쉽습니다. 그렇다 보니 농민들은 당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럼퍼(lumper)’ 감자를 계속 잔뜩 심었습니다. 유전적으로 같은 감자가 자라는 밭들이 쭉 붙어있는 형상이었죠. 자 이제 도끼가 내려칩니다. 진균에서 시작된 감자역병이 1845년 아일랜드를 덮쳤을 때 내성을 가진 유전물질이 없던 럼퍼 감자는 모두 썩어버렸죠. 이 밭 저 밭 역병이 퍼졌고, 감자를 원동력 삼아 늘어났던 아일랜드 인구는 기근과 질병의 도끼를 맞습니다. 결국 아일랜드인 백만 명이 죽고, 또 다른 백만 명은 먹을거리를 찾아 조국을 떠나게 됩니다. (물론 떠난 이들 중에 케네디(Kennedy) 가문과 같이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하버-보슈의 질소비료가 굴리던 성장의 바퀴도 도끼를 맞습니다. 질소비료는 곡물 생산량과 더불어 가축사육량을 대폭 늘려놓습니다. 덕분에 “21세기 초 10명 중 4명이 질소비료가 없었다면 생산되지 못했을 농산물을 주식으로” 먹게 되고 전 지구적으로 인구가 증가합니다. 그러나 질소라는 양분이 넘쳐흘러 강과 호수, 바다로 흘러가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부영양화로 호수와 바다에 번식한 조류는 산소를 먹어치우고 해양생물을 죽입니다. 이미 동중국해와 흑해 등 세계 곳곳에서 데드존(dead zone)이 발견되는 것을 볼 때 “질소비료 사용 증대에 따른 환경오염”이라는 도끼가 내려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죠.

우리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너무 먹어서 문제고, 부영양화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도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생선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히 ‘인간과 식량의 역사’에 불과할까요? 사실 이 책의 백미는 인간이 ‘도시에 사는 새로운 종’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한 데에 있습니다.

2007년 5월 드디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되었습니다. 도시인의 식단은 농부의 식단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가공도 많이 되고요. 점점 더 많은 사람―더 정확하게는 도시인―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음식에 대해 더 큰 열망을 키웁니다. 디프리스는 “안정적인 기후, 행성의 재순환 시스템, 다양한 생물의 향연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닭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소고기를 1kg 생산하는데 곡물이 각각 2~3kg, 4~5kg, 7~8kg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나 돼지의 사료인 대두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이 개간되는 현상은 먹거리가 지속가능성 문제와 어떻게 연계되어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여기에 원산지에서 도시까지 식품을 운송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까지 고려한다면, 도시인들이 먹는 행위 그 자체로 지속불가능성을 야기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와 도시인을 성장시켰던 성장의 바퀴를 내려칠 다음 도끼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인류의 창의성을 언급하며 희망에 찬 결론을 내립니다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씁쓸한 뒷맛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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