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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지금] 300년 된 정치시스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임선우

2018.08.30

삼권분립과 대의제 민주주의, 정당정치와 다수결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정치시스템은 나이가 무려 300살이다. 17~18세기에 구축돼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지 오래다. 300년을 지탱해왔다는 것은 대중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하는 시스템으로는 그 자체로 신뢰도가 높고 자기 보수 능력도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정치 혐오와 정당의 퇴조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입법 행정 사법을 가리지 않고 국가와 행정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의구심이 사람들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다. 미국에선 1950년대 이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부 신뢰도가 NGO의 절반도 안되는 24%에 불과하다. 대의제에 대한 저항과 직접민주주의 요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라 볼 수 없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정치 거버넌스가 이미 낡은 것 아닌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 중심에 디지털 기술의 변화가 있다. 현재의 기술 변화는 20세기 중후반 1차 IT 혁명 때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광범위하다. 여시재는 ‘디지털 시대 사회시스템의 변화’라는 주제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13일엔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가 발제하고 여러 전문가들이 정치와 거버넌스의 미래에 대해 토론했다.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

1.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15세기 구텐베르그의 기계 인쇄술이 중세 공동체의 경계선을 허물고 민족국가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디지털은 국가간 언어와 문자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디지털 바벨탑, 다시 한 언어를 쓰는 인류가 등장할 수 있다.

2. 국가 권력이 분산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와, 분권화다. 디지털 코드에 공동체의 규범과 약속이 탑재되면 새로운 법체계가 가능해진다. 정부 기능도 상당 부분 블록체인 기반 운영체제로 가능해진다.

3. 정당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대의제는 다수 주민의 의사를 물어볼 수 없는 300년 전의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정당은 대의제의 쌍생아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정당을 거치지 않고도 조작과 위변조가 불가능한 정치적 신뢰 체계 구축이 가능하다. 대중은 언제, 어디서든 직접 투표를 할 수 있다.

4. 관료제는 붕괴할 것이다
국가는 국민에 관한 정보를 독점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였다. 그러나 이제 얼마든지 분산 가능하다. 이는 100여년간 국가를 지배해온 관료제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개인이 준수해야 할 법률은 IoT(사물인터넷)와 블록체인 기술에 내재화될 것이다.

5.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등장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 따라 독립된 자율적 공동체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등장이다. 미래 도시국가 구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

6. 새로운 거버넌스를 모색해야 한다
기술발전으로 국가의 권력이 개인에 이양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질문은 끝없이 확대돼 국가의 해체 가능성에까지 이를 것이다. 자율적 거버넌스 구축에 적정한 공동체는 가능할 것인가, 그 공동체의 적정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의견들이 제기됐다.

1. ‘사람’의 요소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알고리즘을 결정하는 것도 사람이다.

2. 디지털화에 따라 민족 국가들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기본인 국방과 치안까지 대체 가능한가. 또 디지털화는 국가 간에 매우 불균형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가가 사라지겠는가.

3. 관료제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계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데이터를 독점한 극소수에게 힘이 집중될 것이다.

4. 디지털화에 따른 여러 부작용을 드러내고 해결을 촉발하는 것은 결국 국가일 것이다.

5. 제도나 문화는 관성이 심하다. 회피할 수 없는 쇼크가 있기 전에는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거버넌스, 기술과 사회, 법과 제도라는 영역들의 융합연구가 필요하다. 미래 도시거버넌스에 대한 선제적 설계도 필수적이다. 여시재는 향후 이런 분야에 대한 가설을 좀더 정밀하게 가다듬고 종합 연구를 통해 그 결과물을 공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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