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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인사이트] 정치엘리트 양성과정 ① 미국 - 대학생 정치조직과 거대 규모 후원조직이 핵심

황세희

2018.08.17

정치 격변기다. 전세계적 현상이다. ‘정치는 이런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전복과 도전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한국은 그 전면에 서 있다. 탄핵과 촛불집회라는 대중운동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나아가 지금 벌어지는 특수 활동비 논란이 상징하듯 정치기득권이 전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디지털 혁명으로 국가 또는 정부, 거버넌스의 개념과 역할에 큰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아직 정답은 없지만 그 길로 가지 않으면 도태할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도 지금까지 겪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시기에 여시재는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치 엘리트 양성이라는 어젠다를 사회에 제안해보기로 했다. 포럼, 워크숍, 리포트 등 다양한 방식이 될 것이다. 먼저 미국 중국 독일 싱가포르 등 4개국의 정치엘리트 양성 시스템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미국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학생 정치조직과 거대 규모 후원조직이 핵심

미국의 정치 지원조직으로 대표적인 것은 코크 인더스트리의 찰스 코크, 데이비드 코크(Charles G. and David H. Koch)를 중심으로 한 코크 네트워크(Koch Network) 다. 석유와 천연가스, 비료 등을 생산하는 코크 인더스트리의 코크 형제는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에 공동 8위로 랭크된 바 있다. 두 사람의 자산을 합치면 세계 1위가 된다. 이들은 자유지상주의를 내세우며 공화당과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배타적 이민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

지난 7월 30일 코크 네트워크의 대표 조직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Prosperity, AFP)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찬성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코크 형제를 “나쁜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코크 네트워크는 AFP로 대표되는 정치인 후원, 카토 인스티튜트(Cato Institute) 등 싱크탱크와 연계한 정책 개발, 코크 세미나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자유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보수시민운동인 티파티가 돌풍을 일으킨 데에도 코크 네트워크의 막강한 자금이 동원되었다. 이번에 불거진 트럼프와 코크 형제의 갈등은 자신들의 보수적 이념에 대치되는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한 공화당 주류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은 차치하고라도 코크 네트워크가 미국 정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의회, 싱크탱크, 유권자 조직 등을 통해 확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양대 정당 체계가 확립된 미국에서는 정당과 싱크탱크, 공공대학원 등를 통해 정치 지도자를 양성해 왔다. 여시재가 개최하고 있는 각국의 정치지도자 양성 시스템 비교 세미나에서 미국 사례를 발제한 김준석 동국대 교수는 미국의 정치지도자를 양성하는 경로로서 코크 네트워크와 함께 각 정당 대학생회, 싱크탱크를 들었다.

이 중 상대적으로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공화당 대학생회(A527 organization)의 경우, 1500여 개 대학에 지부를 두고 25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대 대통령이었던 캘빌 쿨리지(Calvin Coolidge)를 비롯하여 폴 라이언(Paul Ryan) 연방하원 의장, W. 부시 대통령의 캠페인 전략가였던 칼 로브(Karl Rove),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 전략가였던 로저 스톤(Roger Stone), 유명 로비스트인 잭 아브라모프(Jack Abramoff)등이 대학생회 출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도 공화당 대학생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대학생회 조직은 정치 이념의 변화에 따라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화당 대학생회가 지도자 양성 과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현장 대표(Field Representatives, FR)라는 존재에 있다. 공화당 대학생 위원회를 관리하는 FR 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당이 지원자 중 모집해 지역별로 활동한다. 유급이다. 정치에 꿈이 있는 젊은 청년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많은 정치인들이 FR을 경험한 후 싱크탱크 연구원, 공화당 당직자, 연방의회 의원 보좌관, 상하원 의원 경로를 거쳤다.

민주당 대학생회는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지원조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베트남전 반대 이후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캠퍼스 강연, 이슈 투쟁, 유권자 등록과 투표 독려 운동 등을 벌인다.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 등 정치 지도자를 여럿 배출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 측에서는 청년위원회의 역할이 크다. 미국 내 가장 큰 전국적 청년조직이다. 지금은 민주당에서 법적으로 분리된 독립조직이기는 하지만 민주당 전당대회에 3명의 대표를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 정치단체와 연합하여 청년 유권자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직접적 대중설득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특정 정당의 대학생회를 선택하게 될 경우 평생 가는 경우가 많지만 정치적 성장 과정에서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화당 대학생회 출신이고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민주당 대학생회 출신이다.

이 밖에 미국에서는 보수계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젊은 보수주의자를 의회와 정부에 진출시키기 위해 젊은 지도자 프로그램(Young Leaders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민주당 계열에서는 미국진보연구소(Center for American Progress: CAP)의 ‘캠퍼스 진보(Campus Progress)’ 프로그램 이 전국 대학생 지지자, 캠퍼스 언론을 상대로 한 풀뿌리 이슈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전국 200여개 대학의 공공정책대학원을 통한 인재 양성도 활성화되어 있다. 대표적인 기관인 하버드 케네디 스쿨은 공적 가치(Public Values)를 위해 일하는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35년 알렉시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찬미한 이래, 미국의 의회 민주주의는 많은 찬사와 함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트럼프라는 이단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경로가 존재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념과 가치에 기반하여 국가와 사회를 고민하는 지도자를 키워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코크 형제와 트럼프 대통령의 마찰은 집권 여당 내에서도 이념과 원칙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가 변화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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