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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J가 해봤습니다] 뇌 게임하면서 치매 진단하는 세상 열린다

문희철

2017.11.15

여시재-카이스트-중앙일보는 <난제위원회>를 구성하고 ‘인류 10대 난제’를 선정했습니다. 선정된 난제는 핵융합발전, 암 극복, 뇌의 비밀, 우주 개발 등 인류가 풀고자 하고 풀어야 하고 난제들입니다. <난제위원회>는 중앙일보 창간특집 기획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를 통해 끊임없이 난제에 도전하며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인류의 현장을 찾고, 한국의 위기와 도전을 점검합니다.


<중앙일보 난제위원회 프로젝트> 시리즈 순서
①핵융합발전
②암 정복
③줄기세포 치료
④뇌의 비밀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 ④뇌의 비밀
KIST 뇌파 치매테스트 경험해보니
눈 움직임 토대로 뇌 기능 분석
빅데이터 기반 치매 확률 추정
시각적 자극, 뇌파와 연동해 움직여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18일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중증 치매 환자 의료비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치매 치료에 1인 평균 2033만원(2015년 기준·간접비 포함)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상황을 고려한 정책이다.

치매는 한 번 발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또 치매는 현재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다. 흔히 치매 치료로 알려진 의료행위는 치매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수준이다. 초기 단계에서 치매를 진단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고려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게임처럼 간단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치매를 진단할 수 있는 뇌파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요즘 자꾸 기억력이 감퇴하고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기는 본지 기자는 KIST 뇌과학연구동(L7)에 방문해 치매 진단 테스트에 응시했다.

첫 번째 테스트는 공간지각력·공간기억력을 평가하는 레이도형테스트(Rey-figure Test)다. 태블릿PC 상에서 원·선·네모·세모 등 복합적인 도형으로 구성된 그림을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테스트다.

이때 실험용 고글 같은 장비(EyeTracker)를 착용하는데, 눈동자가 바라보는 위치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바라보는 곳이 어디 인지 분석하는 장비다. 눈동자가 뇌와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눈동자로 뇌의 활성화 부위를 추정하기 위해서다. 본지 기자가 도형의 특정 장소를 얼마나 바라봤는지는 실험 직후 모니터에서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레이도형테스트

정상인이 레이도형테스트를 진행할 때 시각의 움직임을 추적한 결과. [사진: KIST]
뇌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레이도형테스트를 진행할 때 시각의 움직임을 추적한 결과. [사진: KIST]
뇌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레이도형테스트를 진행할 때 시각의 움직임을 추적한 결과. [사진: KIST]

생각보다 간단한 테스트인데 도형을 다소 삐뚤게 그린 것 같아서 치매로 진단받을까봐 살짝 긴장했다. 이에 대해 배애님 KIST 치매DTC융합연구단장은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나는 평가 항목이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이 평가를 통해 치매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는 집중력과 기억력 등 2가지다.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건 뇌가 정상적으로 동작한다는 의미다. 치매 환자는 도형의 모양을 파악하기 위해서 집중하려고 해도 제대로 집중을 못하고 여백을 오랜 시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도형의 형태를 제대로 기억했는지도 중요하다. 그림을 그릴 때 눈(동영상에서 주황색 원)이 도형을 응시한 뒤 그리고자 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횟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기억력 이상을 의심할 수 있다. 뇌의 특정 기능이 제역할을 못하면 이동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진다.

김도현 KIST 치매DCT융합연구단 박사후연구원은 “뇌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된 경우, 도형의 생김새를 기억하지 못해서 최대한 시야를 이동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려도 보니 도형 바로 옆에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클로징 이펙트(closing effect)’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진단이 가능한 배경은 빅데이터다.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여러 번 수행한 결과 치매 환자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을 찾았다. 따라서 실험자가 이와 비슷한 형태로 눈동자를 움직인다면 치매일 확률이 높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음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에서 개발하고 미국 벤처기업 카그니오닉스가 판매하는 뇌파 모니터링 헤드셋을 착용했다. 일반적인 뇌파측정기기가 주로 두피에 젤을 바르는 식으로 뇌파를 측정하는데 비해, 이 장비는 별다른 세팅을 하지 않고 헬멧처럼 단순히 착용만 해도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다. 가격은 대당 4000만원~5000만원에 달한다.

헤드셋 안쪽에는 뇌 안에서 지각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64개의 센서가 달려있다. 얼핏 보면 센서가 다소 날카롭게 보이지만 실제 착용해보니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뇌파를 보다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턱받이 등으로 머리와 헤드셋을 완전히 밀착해야 한다. 착용 후 상단에 나열한 7개의 단추를 일일이 돌려서 고정해야 하고, PC 모니터 등 출력 장비를 점검하기까지 5분가량이 걸렸다.

헤드셋을 착용하자 기자의 뇌에서 나오는 뇌파를 복잡한 파동의 모양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이거나 턱을 깨물면 모니터상 파동이 급격히 달라진다. 눈을 감으면 그래프는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리며 안정된다. 뇌피질의 특정 영역(후두부)에서 특정 파형(알파파)이 급격히 많이 나온다는 뜻이다. 실험 도중 전혀 졸리지 않았더라도 눈만 감으면 휴식·이완상태에서 발생하는 뇌파가 급격히 많이 나온다는 의미다. 수험생 시절 잠깐 눈만 감고 있으려고 했다가 잠들어버려 낭패였던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시각관련인지기능검사 측정 시 뇌파의 움직임. [사진: KIST]

모니터 우측하단에는 헤드셋이 뇌파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가 표시된다. 64개의 전극 중 녹색 불빛이 들어오는 곳은 뇌파가 잘 측정되는 곳이고, 연두색은 측정 신호가 약한 곳이다. 빨간색은 뇌파가 거의 측정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뇌파 모니터링 헤드셋과 함께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HTC가 제조한 가상현실체험기기(VR)를 착용하고 치매진단 ‘게임’을 했다. 게임은 2종류다. 첫째, 시각관련인지기능검사(Vision-related Cognitive Function Test)다.

VR기기를 착용하자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흰색·파란색 줄무늬 배경이 떠올랐다. 배경이 움직이는 상황에서 정중앙을 찾는 게임이다. 배경은 때론 가만히 있고 때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뇌 양쪽 반구가 대칭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균형감각을 일부러 교란하기 위해서다.

마우스 패드를 조작하면 빨간 선 위의 포인터가 좌우로 움직인다. 이때 가장 정중앙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왼쪽 버튼을 누르면 된다. 본지 기자 경험상 정중앙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고 헷갈렸다. 게임은 30차례 이뤄지는데 치매 환자들은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난 지점을 중간지점이라고 생각해서 클릭한다고 한다. 시각 관련 뇌 기능이 손상돼 배경의 움직임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따라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나덕렬 KIST 공동연구원(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뇌 인지기능이 손상된 경도인지장애·치매 환자가 지나치게 중앙점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버튼을 클릭하는 현상을 발견해 알츠하이머 국제학술지(Alzheimer Disease and Associated Disorders) 등에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동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본지 기자. 문희철 기자.

마지막 게임은 무선점키네마토그램(Random Dot Kinematogram)이다. VR기기 화면상에 다수의 미세한 점들이 나타나는데, 점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점의 대체적인 이동방향을 가려내는 게임이다. 이때 점들은 꼭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일부는 9시 방향으로, 일부는 4시 방향으로 움직이는 등 랜덤하게 움직인다.

전체적인 흐름이 주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으면 왼쪽 버튼,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으면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면 된다. 정답을 맞출 수록 난도가 점점 높아진다. 최고 난도에 도달하면 점들이 거의 절반씩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서 제대로 파악을 못 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선점키네마토그램검사 측정 시 뇌파의 움직임. [사진: KIST]

게임을 하면서 뇌파를 측정하는 이유는 시각적 자극이 시·공간인지능력을 유발하는 뇌파와 연동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좌우를 판단하는 행위는 단순한 의사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뇌 시간 피질·전두엽 피질 등 수많은 뇌의 영역이 활성화한다. 반면 치매 환자들은 게임을 해도 이런 영역의 연결성이 부족하거나 활성화 정도가 높지 않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이번 연구 책임자인 최지현 KIST 치매DTC융합연구단 계산인지시스템뇌과학연구실 책임연구원은 “각각의 실험은 특정 뇌 기능의 손상을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일 뿐, 치매 여부를 정확히 진단 내릴 수 없다”며 “다만 비교적 간단한 게임을 통해 뇌 인지기능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의사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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