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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고]인민해방군, 중국 국가핵심이익 수호의 한 축: 역사적 사명과 강군 건설의 필요성

작성자 : 관리자 2017.10.16 조회수 : 3183

제목: 인민해방군, 중국 국가핵심이익 수호의 한 축: 역사적 사명과 강군 건설의 필요성

매체: 성균차이나브리프(성균중국연구소), 제5권 제4호, 2017년(통권 45호)  



‘국가주권, 안보, 발전이익 수호’(維護國家主權, 安全, 發展利益维护)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을 맞아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념식 연설에서 제시한 인민해방군의 역사적 공적이자 핵심 임무이다. ‘국가핵심이익’(國家核心利益, national core interests) 수호를 인민해방군의 90년 동안의 주요 업적으로 재평가하고, 중국 특색의 강군 건설이 필요한 이유로 설명한 것이다.


현재 중국은 ‘중국의 꿈’(中國夢)으로 대변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가목표의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를 위해서 ‘두 개의 백년’(兩個一百年)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분투 목표’(奮鬪目標)를 제시하였다. 중국 공산당 건당 100주년(2020년)에 소강사회의 전면적 완성을 거쳐 신중국 건국 100주년(2049년)에 ‘부강하고, 민주적이고, 문명적이며, 조화로운’(富强, 民主, 文明, 和諧)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완성하겠다는 포부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국가핵심이익 규정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국가이익 간의 ‘선후’(先後)와 ‘경중’(輕重)을 확실히 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마지노선’을 밝힘으로써 대외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대외관계 규칙을 만들고 있다.


시진핑이 연설에서 세 번이나 ‘국가주권, 안보, 발전이익 수호’, 즉 국가핵심이익을 거론 한 것도 향후 인민해방군의 궁극적 역할 또한 이상의 국가목표 달성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국가핵심이익 정책의 주요 특징 


우선, 중국은 국가핵심이익 개념을 지속적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부상이 논쟁이 되기 시작한 1990년대를 기점으로 국가이익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더욱 세분화 시켜 미국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에 해당하는 국가핵심이익까지 규정하게 된다. 국가핵심이익(혹은 ‘핵심이익’) 개념이 중국 지도층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시점은 2003년이다. 2003년 1월 19일 미국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Colin Powell)과의 회담 자리에서 외교부장 탕자쉬안(唐家璇)이 대만 문제를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규정한 것이 시초이다. 하지만, 중국의 ‘핵심이익’ 개념이 주목을 받게 되는 시점은 2009년이다.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2009년 7월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U.S.-China 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 회의석상에서 핵심이익을 규정하고, 그 해 11월 북경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자는 문구가 삽입이 되면서부터이다.


주요 지도층에 의해 개별적으로 사용되었던 국가핵심이익 개념은 2011년 9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에서 발표한 『중국의 평화발전(中國的平和發展)』 백서를 통해 공식화된다. 중국은 백서를 통해 국가핵심이익을 ‘국가주권’(國家主權), ‘국가안보’(國家安全), ‘영토완정’(領土完整), ‘국가통일’(國家統一),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정치제도와 사회의 전반적 안정’(中國憲法確立的國家政治制度和社會大局穩定), 그리고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기본보장’(經濟社會可持續發展的基本保障) 등 여섯 가지로 규정하였다. 이로 인해 중국 국가이익은 핵심이익과 비(非)핵심이익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 등 최고지도층의 연설과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 이 개념에 권위를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2000년 1월 1일에서 2016년 10월 27일 기간의 인민일보에 대한 내용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2008년까지 ‘국가이익’이 거론된 편수는 1,156편으로 209편에서만 거론된 ‘핵심이익’(‘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주로 사용됨)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2009년부터는 비슷한 수준에서 거론되고 있다. 집권시기별로 살펴보면 시진핑 집권 시기 국가핵심이익 개념은 더욱 강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후진타오 집권 10년 동안 국가이익(1,684편)과 핵심이익(1,025편)의 빈도수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에 반해, 시진핑 집권 3년 10개월 동안의 빈도수는(국가이익: 752편; 핵심이익: 700편) 큰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시진핑 집권 시기 ‘국가핵심이익’의 사용빈도수는 더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후진타오와 달리 시진핑은 국가핵심이익을 ‘국가주권, 안보, 발전이익’으로 재규정하였으며, 그의 관련 발언은 높은 비율로 인용되고 있다. 상기 기간 연평균 23%의 비율로 인용이 되고 있으며, 2014년에는 그 비율이 42%에 달했다. 즉, 시진핑 집권 시기에 들어 중국의 ‘국가핵심이익’은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정치 개념이 되었다.


둘째, 중국은 쟁점이 있는 국제적 이슈를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국가핵심이익의 외연을 확대시키고 있다. 상기 기간 인민일보에 대한 내용분석 결과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004년 ‘대만’문제가 처음 거론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1년에는 12개 포괄적 주제(『백서』에 제시된 여섯 가지 구성 요소)와 이슈가 검색되었고, 2016년에는 19개로까지 증가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연평균 3개의 주제와 이슈가 추가된 것이다. 집권시기별 특징을 살펴보면 ‘국가주권’, ‘국가안보’, ‘영토완정’, ‘국가통일’ 관련 이슈들이 꾸준히 거론되는 상황에서 후진타오 집권 2기 때부터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 정치제도와 사회의 전반적 안정’ 관련 이슈들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시진핑 집권 시기에 들어서는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기본보장’ 관련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포괄적 주제별 구체적 이슈의 외연확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국가주권’ 국가핵심이익에 속하는 이슈에는 ‘티베트’, ‘마카오’, ‘신장’ 그리고 ‘홍콩’ 문제 등이 있다. 이중 ‘티베트’ 문제는 2008년 처음으로 거론된 이래 2016년까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마카오’와 ‘신장’ 문제는 2009년을 기점으로, ‘홍콩’ 문제는 2012년부터 거론이 되고 있다. ② ‘국가안보’ 관련 이슈에는 ‘영공안보’(2011년)와 ‘한반도’(2016년) 문제 등이 거론되었다. ③ ‘영토완정’ 국가핵심이익에 속하는 이슈에는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동중국해’, ‘해양권익’, 그리고 ‘변경권익’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 ‘변경권익’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양영토주권 및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슈들로 2010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다. ④ ‘국가통일’과 관련된 대표적인 이슈로는 ‘대만’문제가 있다. ‘대만’ 문제는 2004년 처음 거론된 이래 2011년과 2012년을 제외하고 매년 꾸준히 그리고 높은 빈도수(총 30회)로 제기되고 있다. ⑤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정치제도와 사회의 전반적 안정’과 관련된 이슈는 2009년을 기점으로 거론이 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민족단결’, ‘핵심가치관’, ‘대중문화’, ‘파룬궁’, ‘이데올로기’ 문제 등이 있다. ⑥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기본보장’과 관련 이슈는 ‘토지’(2011년) 이슈를 제외하고는 모두 2013년부터 제기되고 있다. 주요 관련 이슈로 ‘중대형 국유기업의 핵심 상업기밀’, ‘데이터 주권’, ‘인민복지’, ‘정보강역’ 등이 있다.


셋째, 중국은 국가핵심이익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가핵심이익이 중국 스스로가 설정한 최상위급 국가이익이자 ‘마지노선’인 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최근 10년 국가핵심이익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각종 분쟁에 중국이 경제보복을 포함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한 것도 이러한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다. 중국은 경제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그리고 이슈의 성질과 상관없이 정치적 이익이 경제적 손실보다 크다고 판단할 경우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였다. 중국의 경제보복 패턴에서 한 가지 눈 여겨 볼 특징은 정치·외교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을 경우, 그리고 분쟁국가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중국은 경제보복을 장기화하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 문제를 둘러싸고 노르웨이 간에 발생한 분쟁에서 노르웨이의 공식적인 사과와 태도 변화가 없자 중국은 2014년까지 연어를 포함한 중국으로의 어류 수출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였다. 심지어 양국 간의 관계정상화는 이보다 2년이 더 걸린 2016년 12월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인민해방군의 주요 임무로 국가핵심이익 수호가 강조되는 이유와 시사점

 

중국은 국가핵심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으며, 절제가 있는(有理有據有節)’ 투쟁을 해야 하고, 군사적 투쟁을 정치·경제·외교적 투쟁과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으며, 절제가 있다’는 표현은 1940년 3월 11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제시한 항일통일전선(抗日統一戰線)의 3대 원칙이자, 신중국 건국 이후 중국이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특징이다. 이는 중국이 국가핵심이익 관련 이슈를 둘러싸고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무력사용(use of force)만을 고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국가핵심이익을 수호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안에 따라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국가핵심이익 수호를 위해 인민해방군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즉, 인민해방군은 군사적 투쟁이라는 국가핵심이익 수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인민해방군은 정치 · 경제 · 외교적 투쟁과 긴밀히 연계하여 국가핵심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임무 또한 맡고 있다. 국가핵심이익 수호의 행위자로써 다른 행위자와 유기적으로 전략을 실행시킬 수 있는 지(智)와 체(体)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새로운 형세하의 강군목표, 시대와 함께 전진하는 혁신적인 군사 전략’(在新形勢下的强軍目標, 與時俱進創新軍事戰略指導)이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강군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무력투쟁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중국은 1949년 이후 매우 빈번히 국가 간 군사적 분쟁에 연루되어 왔고, 국제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력을 사용하여 왔다. 냉전 기간 연평균 2.81회 국가 간 군사 분쟁에 연루되었고, 냉전이 종식된 후 10년 동안에도 연평균 3회로 그 횟수는 줄지 않았다. 또한, 1949년 이후 23곳의 영토 분쟁 지역에서 여섯 번이나 무력을 사용한 전례도 가지고 있다. 즉, ‘무력 사용’은 분쟁 해결과정에서 중국이 언제나 쥐고 있는 옵션 중 하나였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향후 중국이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그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국가핵심이익 개념의 도입으로 무력 사용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구실’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 국가핵심이익 정책의 ‘자기 지각이론’(self-perception theory)적 특징이다. 남·동중국해와 사드배치 이슈에 대한 태도 변화에서 대표적으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자국의 비타협적인 태도와 공세적인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특정 이슈를, 특히 현안을 국가핵심이익 관련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핵심이익의 규정으로 인해 중국의 태도와 정책이 더욱 강경해진다는 점이다. 강경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인지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기고문 링크 : http://sics.skku.edu/mai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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