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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일본형 배외주의’의 특징과 현황

김효진

2017.09.22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 (3) 일본 - ‘일본형 배외주의’의 특징과 현황
저자: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No.2017-048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입니다. 각국에서 진행하는 고립주의, 민족주의, 배타주의의의 양상들과 이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봅니다. 전 지구적 고립주의의 바람 속에서 이를 타개할 협력의 솔루션을 고민해봅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프랑스의 극우 정당 대두, 독일의 난민 문제 등 서구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타자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에 동반된 폭력과 비방 등의 현상은 일반적으로 배외주의적 현상으로 인식된다. 이때 배외주의(chauvinism, xenophobia)란 국가는 국민만의 것이며, 외국출신(으로 보이는) 집단은 국민국가에 위협이라고 보는 이데올로기(Mudde 2007:19)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서구의 반이민자, 반무슬림 정서가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떠할까? 일본 내의 배외주의적 흐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혐한(嫌韓)·혐중(嫌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2000년대 이후 일본정부의 성향이나 위안부·역사인식 문제 등 한일관계 쟁점을 둘러싸고 일본사회는 ‘우경화’(또는 ‘보수화’)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주로 ‘혐한’이라는 한일관계의 맥락 위에서 논의되어 왔다. 이때 혐한은 ‘한국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 대한민국, 북한, 재일코리안과 그 문화-를 혐오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렇게 ‘혐한’을 대표격으로 하는 일본의 배외주의를 서구의 배외주의를 분석하는 시각으로만 살펴보는 것은 일본의 상황이 지닌 독특한 성격을 간과하기 쉽다. 무엇보다 서구의 반이민자, 반무슬림 정서에 근본적인 것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혐오인데, 일본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혐오의 대상인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중국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이민자 집단에 비해 외모의 유사성을 비롯하여 일본어 능력 및 일본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력 등에서 소위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에 속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된 히구치 나오토(樋口直人)의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재특회, 왜 재일 코리안을 배척하는가』에서 전개하는 ‘일본형 배외주의’에 대한 논의에 기반하여 1) 일본의 배외주의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2) ‘일본형 배외주의’의 특성을 살피고 이것이 서구의 배외주의와 어떤 차이를 갖는지에 대해 살핀다. 이를 통해 서구라면 ‘모범적 소수자’로 분류될 재일조선·한국인을 주된 타겟으로 삼는 ‘혐한’이 일본형 배외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이유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3) ‘일본형 배외주의’에 대한 현재 일본사회의 움직임과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일본의 배외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일본사회에서 ‘애국’을 내세운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는 과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제국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어 왔다. 이로 인해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교육현장에서는 학교 행사시에 국가인 기미가요 및 일장기 게양 등이 교사들에 의해 거부되거나 유명무실화되었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내셔널리즘은 정치 및 종교와 분리되어 <일본인론><일본문화론> 등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독특한 측면을 강조하는 문화내셔널리즘(cultural nationalism)의 형태로 나타났다. (요시노 2001) 이로 인해 실제 1980년대까지 일본사회에서 ‘애국’, 혹은 ‘내셔널리즘’은 극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용어로 간주되었으며, 전전으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일부 우익세력만이 천황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애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의 부활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 우익을 모두 배외주의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우익이 중시하는 것이 1)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에 대한 절대적 충성 및 2)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였기 때문이다.(히구치 30쪽) 물론 우익은 기본적으로 배외주의에 친화적이며, 일본정부 또한 지속적으로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일본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내부의 소수자에 대해 배타적인 제도를 제정, 운영해 왔다는 점에서는 배외주의적 성격을 일정 정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산발적이고 일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실제 몇몇 극우에 의한 테러범죄가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지방자치체 차원에서 다문화공생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따라서 최근 ‘혐한’과 ‘재일특권폐지’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풀뿌리 운동으로서 확산된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하 재특회)’로 대표되는 배외주의 운동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현상으로서 일본형 배외주의를 대표하는 현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 ‘혐한’은 2000년대 초반 익명 인터넷 사이트인 니찬네루에서 발생하여 이중 일부가 독자적인 혐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화혐한류』가 출판되었으며, 이후 인터넷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우익 시민단체로서 ‘재특회’가 탄생한 이후 혐한 데모와 전국적인 조직화 등 가시적인 활동을 통해 명확한 사회적 흐름으로 드러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2000년대 일본에서 배외주의적 흐름이 혐한, 나아가 혐중으로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타겟은 명백히 한국과 북한, 중국으로 대표되는 반일국가로서 ‘특정아시아(特定アジア)’였지만 전사회적으로 혐한은 ‘외국인 참정권’, 나아가 ‘재일특권’ 논란을 둘러싸고 가열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배외주의 단체인 재특회는 2006년 창립된 모임으로 인터넷상의 우익적 발언에 그치지 않고 시위와 혐오발언을 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촬영하여 이를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서 지지자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일본 우익계 시민단체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때 재특회가 주장하는 ‘재일특권’이란 “구식민지 출신자로서 제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기 이전부터 일본에 살고 있던 사람 및 그 자손에 적용되는 ‘출입국관리특례법’ 및 그에 수반된 다양한 권리- 특별영주자격, 조선학교 보조금 교부, 생활보호 우대, 통명(通名)제도 등-”를 의미한다. (히구치 59쪽)

20세기 초반 일본제국주의 당시 식민지로서 일본제국에 의해 지배된 조선, 대만 출신자는 일본국민으로 국적을 부여받았으며 이들 중 일부는 일본에 이주하여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런 상황은 일본제국의 패전으로 인한 식민지의 해방으로 인해 극적으로 바뀌었다. 식민지 출신으로 일본국적이었던 이들을 일본정부는 모두 ‘외국인’으로 간주하였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내에 머무르고 있던 식민지 출신 조선인, 대만인, 일부 중국인들은 일본 국민으로서의 혜택이 박탈되었다. 이들은 ‘외국인’으로서 일본사회에 귀화하여 동화될 것을 종용받았으며, 그 과정 또한 지난한 것이었다.

한편, 외국인 참정권은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장기간 거주한 외국인들에게 시민으로서 일정 정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특히 다민족국가는 현지에서 태어난 제 2세대에게는 일반적으로 국적으로 부여하여 이민자들의 정치적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과거 식민지, 특히 “구식민지 출신자가 전후가 되어 참정권을 박탈당했다”(히구치 302쪽)는 문제가 외국인참정권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과거의 국민’의 잃어버린 권리 회복이라는 식민지 청산의 논리가 정치를 움직인다”(히구치 303쪽)는 것이 일본적 특성이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은 2000년대 이후 일본사회의 변화이다. 이 시기는 버블 경기 붕괴 이후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던 일본 경제의 불황과 함께, 뉴커머로서 저임금 노동자의 일본 유입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1990년대 이후 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라 급속하게 증가한 뉴커머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을 위해 지방자치체 중심의 다문화공생 정책이 실시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에 불법으로 입국하여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는 불법입국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필리핀 출신의 불법이민자 가족인 칼데론 일가의 추방을 둘러싼 문제가 최초에 언론에 보도된 것도 2006년이었으며, 가족 중 일본에서 출생하여 소학교에 입학할 연령이 된 장녀 칼데론 노리코가 일본에 남을 수 있도록 2009년 경 조처가 취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논쟁은 일본사회에서 대두하고 있던 배외주의적 흐름과 결합하여 ‘불법입국’ 외국인들의 정치적 참여가 가져올 위기에 대한 논란으로 발전했다.

또한 2000년대 후반은 일본과 중국의 국경분쟁-센가쿠열도 문제 등-이 첨예화되는 시기로서, 이 시기의 외국인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은 점차 ‘외국인 참정권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외국인 참정권이 실현되면 일본이 외국세력에 의해 점령당한다는 식의 논의가 인터넷 우익을 넘어서 자민당까지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일본의 변경지역이나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지역에 ‘외국인들이 집단 이주하여 집단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하여 그 지역을 좌지우지한다’는 식의 논리가 퍼져나가면서 일본사회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일본사회의 배외주의적 성격은 전전 일본제국주의가 전후 민주주의 일본으로 탈바꿈하면서 공적인 영역에서는 문화내셔널리즘이 주류였지만, 식민지 출신자들의 국적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처리방식과 기성 우익들의 테러 등을 통해 지속되어 왔고, 1990년대 이후 보수논단을 중심으로 한 역사인식 문제, 다문화공생으로 인한 이민자 정책 문제, 외국인 참정권을 둘러싼 사회적 불안 등의 요인에 의해 표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형 배외주의’의 특성은 무엇이며 서구의 배외주의와 어떤 차이를 갖는가?

히구치는 일본형 배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근린제국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외국인 배척 움직임을 가리키며, 식민지 청산과 냉전에 입각한 문제이다. 직접 표적이 되는 것은 재일 외국인이지만 배척 감정의 바탕에 있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보다 오히려 근린제국과의 역사적 관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서 배외주의를 낳는 요인으로 제시되는 외국인의 증가나 직업을 둘러싼 경합이라는 요인은 일본형 배외주의를 설명할 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히구치 370-371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형 배외주의를 낳은 궁극적인 원인이 냉전체제 하 일본이 식민지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전후 일본은 재일 조선·한국인들을 일정 정도 구제하는 제도-지문날인제도 폐지, 특별 영주권 부여, 지방 참정권 부여 등-를 도입함으로써 이를 봉합해 왔으나, 냉전 종식 이후 명시적인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한국과 북한, 중국이 주된 ‘반일국가’로서 보수 우파의 반발을 사는 대상이 되었다. 즉 혐한이라는 흐름과 그것이 타겟으로 삼는 ‘한국적인 것’은 명시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우익에서 발흥하였지만 이것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냉전 종식에 따른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 변화와 이에 따른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대두, 역사수정주의의 대두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형 배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원류는 기존 우익의 일부, 역사수정주의적인 우파 시민운동, 인터넷 우익으로 볼 수 있다. (히구치 33쪽) 세계화의 영향으로 1990년대부터 뉴커머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2004년 <외국인 범죄 추방운동>이라는 단체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첫 번째 원류인 기존 우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인적, 물적 연계는 없지만 이런 배외주의적인 흐름이 가시화된 사회적 배경으로서 역사수정주의적인 우파 시민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여전히 일본의 ‘패전’으로서 부끄러운 과거인 동시에,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복잡한 입장을 일본사회가 견지함으로써 발생한 이런 흐름은 명확한 ‘혐한’‘혐중’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일본형 배외주의가 외국인과 이민 배척이라는 서구 배외주의의 일반적인 특성과는 달리 일본제국주의, 그리고 전후 일본이 일본 주위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맺어온 역사적 관계성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형 배외주의의 탄생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가 갖는 중요성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재특회로 잘 알려진 2000년대 이후의 인터넷 우익인데, 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익적인 메시지를 전파하고 동조자를 동원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 이후 혐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일본사회의 한류를 들 수 있다는 점이다. 고속인터넷망을 통한 문화교류 및 이동수단의 다양화, 한국 대중문화콘텐츠의 일본내 인기 등으로 인해 한국의 가시성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이것이 일본의 위기감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혐한을 필두로 한 일본의 배외주의는 서구와는 달리 외국인의 증가, 직업을 둘러싼 경합 등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일코리언은 이미 제 3세대로 들어가면서 일본적으로 귀화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이미 일본사회에 뿌리내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혐한을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의 사회적 불만, 불안 등의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전후 일본사회가 외면해온 역사 처리의 문제, 그리고 숨겨져 왔던 한국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변화하는 한일관계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규제와 향후 추이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제 2차 아베정권이 성립한 이후 헌법개정 및 재해석 문제, 그리고 최근의 ‘공모죄’ 법안 통과에 대한 논란 등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은 혐오발언(hate speech)에 대한 규제는 점차 법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특회의 과거 폭력시위 등은 재판을 통해 민사상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2016년 5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로 인해 과거 재특회가 공개적으로 행했던 혐오발언이나 폭력사태는 법률적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법률적 규제와는 달리, 혐한의 여파는 최근의 한일 관계 이슈를 둘러싸고 지속되고 있다. 재특회의 명시적인 배외주의는 규제의 대상이 되었지만, 혐한이 일종의 흐름이 되면서 2013, 2014년경에는 대대적인 혐한서적붐이 일어났으며, 그 여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일본사회의 한국에 대한 무시와 편견을 일정 정도 제어해 왔던 지식인층, 관련 관료 및 정치인들이 점차 피로를 토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 소녀상 건립, 그리고 최근 무토 전 주한일본대사의 한국에 대한 비판적 서적 출판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일의 입장이 갈릴 수 밖에 없는 미묘한 사건이 증가하면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이 점차 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1) 제도적 규제에 부딪혀 ‘혐한’이라는 명백한 배외주의는 어느 정도 제어되는 한편, ‘반일국가’ 한국의 이미지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2) 현실적인 위협으로서 북한의 존재와 북한과 중국에 보다 경도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정부의 스탠스가 일본에 끼치는 영향이다. (박정진 2017) 이 두 가지는 별개의 현상이지만, 일본인에게 이는 남북한이 중국과 손을 잡고 함께 일본에 적대시한다는 인상, 즉 ‘반일국가’로서 한국의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배후에 깔려 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다. 급격한 한국의 정치상황 변화, 그리고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발사는 한일관계에서 중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 상황이 일본 내의 다양한 한국 관계자들에게 배외주의와는 다르지만 일본에 적대적인 국가로서 한국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뿌리는 다르지만, 이런 한국의 이미지가 추후 일본의 배외주의자들에게 쉽게 이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와 더불어 일본형 배외주의를 생각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회의(日本会議)의 존재감이다. 아베의 정치적 배경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이 단체는 명시적으로 배외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전후 민주주의의 부정, 일본적 가치관과 전통을 중심으로 한 젠더 프리(gender-free) 교육의 부정, 메이지 헌법으로의 회귀 및 국방군 부활 주장, 자학사관 탈피 등 극우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과거 서구와 일본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담론으로서 소비되었던 문화내셔널리즘을 넘어서 이를 사회규범 및 정치운동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회의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태도와는 달리, 글의 서두에서 살펴본 ‘배외주의’의 개념에 오히려 가깝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재특회처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신흥 배외주의 단체와는 달리, 풀뿌리 보수단체로서 시작하여 일본 전국에 그 조직기반을 두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단체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의 배외주의를 전망할 때는 일본회의의 향후 움직임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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