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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세계경제 위기와 일본의 통화·재정 정책

이지평

2017.08.21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경제 위기와 각국의 대응 (3) 일본 - 세계경제 위기와 일본의 통화·재정 정책
저자: 이지평 (LG경제연구원)
No.2017-043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경제 위기와 각국의 통화, 재정 정책” 입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둘러싼 각국의 논의들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계 각국은 경제위기의 대응책으로 어떠한 통화, 재정 정책들을 사용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각국의 경제성장 전략과 통화정책, 재정정책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분석할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양적금융완화 출구의 어려움

미국 연준이 지난 6월에 올해 들어서 두 번째로 금리인상 정책을 단행한 데 이어 빠르면 오는 9월에 보유 자산규모의 축소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 연준으로서는 미국경기의 확장 세가 지속되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융정책의 정상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빠르면 9월경에 채권 매입 금액을 줄이면서 서서히 양적금융완화 정책에서의 출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일본 중안은행은 지난 6월 8일의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금융정책의 현상유지를 결정, 구미 각국과 달리 양적금융완화 정책에서의 탈출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은 본원통화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소위 양적금융완화나 정책금리를 0% 이하로 낮추는 파격적인 금리정책을 실시해 왔다. 이러한 성과에도 힘입어서 선진국 경기는 일본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그 회복세는 미약하고 미국경제는 2%대 성장세, 유럽이나 일본은 1%대 성장세에 그치고 있다. 전반적인 저성장 추세 속에서의 순환적인 경기회복세가 지속되고 있는 국면에서 선진국들은 그 충격을 고려하면서도 금융정책의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도 이번 경기회복 국면에서 3%대의 정상적인 정책 금리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여전히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 4일에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을 결정, 본원통화를 2배로 늘리고 2년 동안에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으나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금년 4월에도 0.4%(전년동월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은행은 2%의 물가 목표 달성을 위해 그동안 금융완화 정책을 강화해 왔다. 2014년 10월에는 본원통화의 연간 확대 규모를 60~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확대했으며, 2016년 1월부터는 시중은행들이 일본은행에게 맡기는 당좌예금에 대해 -0.1%의 금리를 적용하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도입되었다(일본은행,‘양적·질적 금융완화의 도입에 관해서’, 2013.4.4., 일본은행, ‘양적·질적 금융완화의 확대, 2014.10.31’, 일본은행, ‘마이너스 금리 있는 양적·질적 금융완화의 도입’, 2016.1.29.).

2016년 9월에는 기존의 본원통화 위주의 금융완화 정책에서 단기·장기 금리 조작(yield curve control) 중심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전환했다. 아울러 일본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도 당장 금융완화 정책을 해제하지 않고 충분히 중장기적으로 2%대 물가가 정착될 때까지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는 방침(overshoot commitment)을 제시했다. 일본은행은 국채 등의 자산 매입과 함께 매입 금리를 지정하는 금리정책을 평행함으로써 각 경제주체들의 물가상승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일본은행, ‘금융완화 강화를 위한 새로운 틀: 장단 금리 조작 있는 양적·질적 금융완화, 2016.9.21.’).

2016년 9월 이후 유지되고 있는 일본은행의 이러한 ‘장기·단기 금리 조작,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은 2년 동안에 2% 물가를 달성하겠다고 하던 당초의 단기결전(短期決戰)형 대규모 양적 금융완화 정책의 한계를 인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행의 대규모 자산 매입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은행의 자산이 구미 각국에 비해서도 크게 팽창해 점차 추가적 자산매입의 부작용이 인식되기 시작해 일본은행도 장기전에 대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일본은행의 보유 자산 규모는 500조엔을 돌파해 명목GDP에 대한 비중은 90%를 초과했다. 이는 미국의 23%에 비해 훨씬 큰 규모이다.

일본은행이 보유한 정부 국채 등의 자산 규모가 팽창했기 때문에 만약 금리가 상승할 경우 일본은행으로서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는 결국, 일본은행 및 엔화에 대한 신용을 악화시키고 어느 시점에서 엔화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경우 일본의 물가와 금리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급등세를 보일 위험이 잠재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위기가 당장 발생할 가능성은 낮으나 일본은행으로서는 금리가 상승하기 이전에 보유자산 규모의 팽창 억제 및 축소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은행은 본원통화를 연간 80조엔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공식적인 정책과 달리 움직이고 있는 측면도 있다. 금년도의 본원통화 증가액(계절조정치 전월비)을 보면 1월에 6.6조엔, 2월 5.5조엔, 3월 3.4조엔, 4월 3.7조엔, 5월 5.6조엔에 그쳤으며, 이는 공식목표 대비로 25% 넘게 적은 액수다(일본은행, 홈페이지). 일본은행이 앞으로도 본원통화의 공급규모를 80조엔 보다 훨씬 적은 수준에 억제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출구전략을 공식화할 경우 금리상승과 함께 엔고 압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일본은행으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 전후가 가능할 정도가 되어 디플레이션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 물가 달성이 당분간 어렵다는 것도 어느 정도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으로서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억제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유도하면서 양적금융완화 정책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금융완화 정책에 대한 방향성과 시장의 기대를 유지해야 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정정책, 공공투자 중시에서 사람 중시로 변화

금융정책의 효과가 한계를 보이면서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측면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량 매입하고 있어서 일본 정치권에서는 극심한 재정적자 문제를 경시하고 재정정책을 통해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중심이자 아베내각의 참모인 하마다 코이치 내각참여관(동경대학 및 미국 예일대학 명예교수)은 금융정책에 의한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자신의 기존 주장이 한계를 보이자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크리스토퍼 심즈 교수가 제창한 ‘물가수준의 재정이론(FTPL: 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을 칭찬하면서 재정정책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채무를 증세나 지출감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정부가 명시한다면 각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Christopher A. Sims, ‘Fiscal Policy, Monetary Policy and Central Bank Independence’, 2016 Economic Symposium - Federal Reserve Bank of Kansas City). 다만, 이는 재정정책을 통해 투자 및 소비가 확대되고 유효수요가 늘어나지 않으면 정부채권에 대한 매도 압력과 금리상승만 초래하는 위험성이 있다.

사실, 아베노믹스 초기에는 공공투자 중심의 재정확대 정책이 모색되었으나 그 효과에는 한계도 있었다. 2012년 말에 집권한 아베 총리는 그 이전의 민주당 정권이 내세웠던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복지 중시의 재정정책과 달리, ‘사람에서 콘크리트로’ 라는 식으로 공공투자 확대에 주력했다. 2013년 1월 11일에 결정된 경제대책(일본경제 재생을 향한 긴급경제대책)에서는 20.2조엔의 사업규모가 책정되었다. 사실, 2013년 GDP 통계를 보면 일본정부 공공투자의 증가율은 실질기준으로 6.7%를 기록해 2012년의 2.7%에서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투자 확대는 일본의 저출산·인구고령화에 따른 건설 인력의 감소세 속에서 부작용을 확대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일본의 건설업 취업자 수는 1997년대 685만명에 달했으나 2012년 503만명, 2016년 492만명에 머물고 있으며, 인력수요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의 취업자 수가 늘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건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투자가 크게 확대된 결과, 부작용도 커졌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복구 수요, 2020년 도쿄올림픽의 준비 등 건설 수요가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아베노믹스 초기의 공공투자 확대 정책은 민간건설 사업의 지연과 건설 단가의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다. 사실, 일본정부 공공투자의 경우도 예정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예산이 남게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아베 내각은 공공투자 중심의 정책에서 점차 저출산·인구고령화, 일자리 개혁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9월 25일에 아베노믹스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언급하면서 ‘1억 총활약사회’를 지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인구 및 사회보장 정책을 성장전략으로 연계시키겠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아교육에 대한 지원, 교직원수 확충, 간호 로봇 및 재생 의료 산업 이노베이션, 비정규직의 육아 휴직 촉진, 보육원 대기 아동 수 감축을 위한 시설 확충, 고등교육 장학금 확충, 보육사 처우 개선, 고령자 간호 분야에서의 외국인 인력 활용 등이 추진되었다. 고령자와 여성의 사회진출을 촉진하면서 장기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억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내각부, ‘일본-1억총활약 플랜’, 2016월 2일 각의결정).

이결과 GDP 통계에서 공공투자의 증가율은 2013년의 6.7%에서 2014년 0.7%, 2015년 -2.1%, 2016년 -3%로 하락한 반면, 정부소비지출은 2014년 0.5%에서 2015년 1.7%, 2016년 1.3%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그리고 여성과 고령자의 취업이 확대되면서 경제성장에도 일정하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의 1인당 실질GDP 증가율은 취업자가 확대된 효과로 인해 아베총리가 집권한 2012년 말 이후 뚜렷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취업자 1인당 GDP는 정체되고 있어서 생산성 향상이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여성 및 고령자가 저임금 비정규직에 취업함으로써 근로자 평균 임금의 정체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성장잠재력을 높이겠다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전망과 시사점

일본의 금융 및 재정정책은 2% 성장, 2% 물가라는 당초 목표의 달성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고 일본경제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도한 양적금융완화 정책의 만성화의 리스크와 함께 이로 인해 정치권의 재정 규율이 약화되는 등 위험 요인도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경제는 세계경제에 큰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2020년 도쿄올림픽을 향해 1% 전후의 완만한 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2016년 기준으로 명목GDP의 2.3배(그리스는 2배)에 달하는 정부채무 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로서는 이와 같은 일본의 저출산·인구고령화 시대의 어려움에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선, 완화적인 금융환경으로 디플레이션 기대를 사전에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디플레이션 심리가 고착될 경우 일본처럼 극단적인 처방을 써도 쉽게 디플레이션 심리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저출산 인구고령화 시대에는 재정정책이 단순한 수요 진작 효과만 막연하게 기대할 경우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 경제 및 산업의 세부 현실을 감안해 생산성 향상을 수반하는 성장전략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전략적으로 재정을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일본의 ‘1억 총활약사회’ 정책처럼 모든 국민의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보장 정책이 추진되면서 가계 소득을 늘리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림 1] 일본의 1인당 소득 증가율 추이
(출처: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일본 후생노동성 노동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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