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협력 보고서

[이슈브리프]얼음 속에 숨은 북극의 가치,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작성자 : 나지원 2017.07.25 조회수 : 2791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북극 전략 (1)미국 - 얼음 속에 숨은 북극의 가치,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저자: 나지원(동아시아연구원)

No.2017-036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북극 전략과 관련된 최근의 논의와 정책 방향 전망” 이다. 북극을 둘러싼 각국의 주요 현안 및 주력분야는 무엇인지를 알아보며 각국의 북극전략을 개관한다. 또한 각국의 북극 전략이 주변국가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북극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 추진 상황을 점검한다.



알래스카: 미국 북극 정책의 나침반


러시아도 미 대륙에 식민지가 있었다. 이른바 루스카야 아메리카(Русская Америка)로 불린 이 영토는 한때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1867년 미국과 체결한 조약을 기점으로 러시아는 이 식민지를 완전히 포기했고 그 후로 다시는 미 대륙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 조약으로 미국이 얻은 영토가 바로 지금의 알래스카다. 하지만 당시 조약 체결을 주도했던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William Henry Seward)는 언론과 대중, 지식인을 막론하고 상당한 비판과 조롱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화폐가치로 2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주고 얼음뿐인 불모지를 구입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보기에 국고의 낭비이자 미친 짓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알래스카가 “수어드의 얼음상자”(Seward’s Icebox)라는 조롱어린 별명으로 불렸다는 일화는 이러한 반대여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수어드의 선견지명은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알래스카에서 상당한 규모의 금광, 탄광, 유전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알래스카의 경제적 가치가 재평가된 것이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진정한 가치는 매장된 지하자원보다도 훨씬 더 컸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대외팽창에 나서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의 대결 구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알래스카는 소련을 견제하는 미국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에 적합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획득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소련이 알래스카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보면 미국 정부와 국민들은 머리 위에 최대 적국을 두고 침공을 불안해하는 일상을 보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리정치와 전략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국의 알래스카 구입은 소련에 대한 우위를 가능케 하고 국가안보를 증진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무모한 오판으로 보였던 알래스카 획득이 20세기에 국익을 위한 ‘큰 그림’으로 재평가 받았다면 21세기에는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분기점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가 말 그대로 북극의 지형을 바꾸면서 북극이 접근 불가능한 불모의 영역에서 막대한 잠재력을 지닌 보고(寶庫)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북극의 최대 결빙 면적은 매 10년마다 2.8퍼센트씩 감소해왔고 여름에만 한정하면 10년간 무려 13.5퍼센트씩 줄어들었다. 영구동토층은 2040년까지 현재보다 20퍼센트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바야흐로 북극의 신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 발맞추어 북극 연안국들은 북극에 대한 관심의 초점을 과학 연구과 환경 문제에서 점차 경제와 개발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와 동등하게 ‘북극 연안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바로 알래스카이다. 무엇보다 미국 정책결정자와 학자들이 미국을 바라보는 방식도 알래스카 지역 관리 및 전략적, 정치적, 경제적 활용이라는 역사적 선례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큰 틀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알래스카는 미국의 북극 정책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북극문제 협력의 딜레마: 합의가 어려운 사안들만 남아


순환 임기에 따라 미국이 지난 5월까지 2년간 북극 평의회(Arctic Council) 의장국으로 재임했던 기간의 성과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당초 과학자와 학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던 이 기구는 작년에 설립 20주년을 맞은 북극 평의회는 이제 8개 회원국뿐만 아니라 12개 참관국, 11개 참관 비정부기구가 참여하고 2013년에는 상설 사무국까지 갖춘 거대한 국제기구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기구를 통해 북극과 관련하여 법적 구속력을 갖춘 두 건의 협정-북극지역 항공우주 및 해상 수색구조 협력에 관한 협정(2011년 5월)과 북극 해양 석유 오염, 준비태세 및 대응 협력에 관한 협정(2013년)-이 체결되는 성과를 냈다.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훨씬 더 복잡하고 논쟁적이며 이해 상충의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북극 영해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평의회가 출범한지 2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태까지 영유권 문제가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것은 재난관리나 인명구조 등과 같이 협력이 필수적이며 용이한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논의해왔고 대체로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주도하고 이를 각국 정부들이 추인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협상과 협력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난관리 분야에서의 협력은 앞으로 더욱 그 수요와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결빙해역이 줄어들면서 이른바 북극항로로 통칭되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 북방항로(Northern Sea Route)가 열리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배들이 이 항로를 따라 운항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극소수의 상선이 사실상 시험 운항의 형식으로 이 항로를 활용했지만, 이 항로의 상업성이 확보되었다고 판단되면 정기여객선이 취항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안전성을 사전에 확보하고 검증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난 9월 크루즈 크리스털 세레니티(Crystal Serenity) 호가 캐나다 북부 해안을 따라 앵커리지에서 뉴욕까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사상 최초로 북극항로-정확히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를 따라 운항한 여객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국과 캐나다 간 수색구조(Search and Rescue, SAR) 공조 체계가 잘 갖춰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협력 논의와 법적 성과에 비해 아직 실제로 북극 지역 수색구조에 투입되는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지적이다. 


북극 문제 전문가인 애비 팅스타드(Abbie Tingstad) 교수와 전직 미 공군 응급구조(combat rescue) 장교 티머시 스미스(Timothy Smith) 연구원은 매우 광활하며 기후가 혹독한 북극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향후 예상되는 대규모 인명 재난에 적시에 대응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장비와 인력, 기반시설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필수 생존 장비를 북극 각 지역에 비치하거나 수송기로 사고 지역에 신속하게 살포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현재 군, 해안경비대, 민간단체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북극 구조 관리 체계를 일원화한다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도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구조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이들은 조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과는 별개로 19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 덴마크, 캐나다 간에 UN 해양법 협약(UNCLOS)에 따라 북극 영해 문제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어왔다.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로모노소프 해령(Lomonosov Ridge)이 러시아 영토와 연결되어 있어 대륙붕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당초 공해(公海)로 남아있던 북극 중심부의 1/2 정도가 자국 영해라고 러시아가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의 이러한 당초 주장은 대륙붕 획정 위원회(CLCS)에 의해 이미 2001년 과학적 근거 부족으로 기각되었으나 이번에는 덴마크에서 2014년에 다시 영유권 정정을 신청했고 뒤이어 러시아도 2015년에 재심의를 신청한 상태다.


이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항의해온 국가가 러시아에 버금가는 북극 해안선을 자랑하는 캐나다다. 캐나다 역시 2013년에 영유권 분쟁 지역 일부에 대한 주장을 한 상태이며 2018년에는 더욱 광범한 영유권 주장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관한 대륙붕 획정 위원회의 최종 평가에는 10여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평가 결과 자체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다만 협상의 근거로 활용될 뿐이라는 점에서 최종적인 경계선 획정은 3국간의 협상을 통해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나 우크라이나 동부 및 크림반도 분쟁에서와는 판이하게 국제법 규범과 절차를 준수하면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 유럽프로그램 객원연구원 욘 라벡 클레멘센(Jon Rahbek-Clemmensen)은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가 상대와 상황을 면밀히 구분하면서 공세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증거다. 북극 문제에서 당사국들은 (우크라이나와 달리) 군사, 외교적 역량을 보유한 중견 국가들이며 무엇보다 나토 회원국들이라는 점이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나 문화, 민간교류와 같은 이른바 하위정치(low politics)에서의 협력이 군사, 안보, 영토 문제 등의 상위정치(high politics)에서의 협력을 촉진한다는 파급효과(spillover effect)도 아니고 반대로 상위정치에서의 갈등이 하위정치에서의 협력을 압도하는 상황도 아닌 사안별 병행(parallel) 또는 분리(division) 구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안별 대처는 현실주의적 요소-패권국의 존재, 강력한 동맹의 견제-가 규범적 요소-국제법-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미국 싱크탱크들의 북극 문제 분석에 깔린 공통된 전제라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이 북극 지역에서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보다 더 많은 물리적, 군사적, 인적 자원을 투입하는 동시에 기존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 창출에 유리한 새로운 규범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선순환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북극 협력: 원대한 계획과 부족한 역량 사이


미국의 외교 및 국제문제 전문 연구기관인 외교평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가 독립 태스크포스를 설치하여 수 개월 간의 연구 끝에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인 “북극 최우선 과제: 미국의 제4해안 전략 보강(Arctic Imperative: Reinforcing U.S. Strategy on America’s Fourth Coast” 역시 이러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북극 정책 주요 목표 여섯 가지 중 1순위에 UN 해양법 협약 비준이 거론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60만 킬로미터가 넘는 미국의 북극 해안선과 대륙붕, 그리고 수면 아래에 있는 막대한 자원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무력이 아니라 법과 규칙의 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를 포함한 나머지 북극 연안국들이 조인(調印)한 협약에서 미국만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은 북극 지역에서 미국의 국익 수호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유지와 관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그 다음 목표로 제시된 것이 쇄빙선 함대와 북극 기반시설의 확충이다.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한 다음에 필요한 것은 다른 이해당사자들도 같은 규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압박하고 동시에 이익을 보호, 획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언에는 무엇보다 미국이 ‘북극 경쟁’에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바탕에 있다. 


단적인 예로 러시아는 40척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 또한 두 척을 보유중이며 한 척을 건조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남북극을 포함해 고작 두 척의 쇄빙선을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쇄빙선은 북극해를 유일하게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라는 점에서 군사, 경제, 인명구조 등 북극 지역의 모든 사안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 쇄빙선 추가 건조 예산 확보를 독립적인 정책목표로 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북극 경쟁에서 여타 국가들에 도태되고 있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조바심은 경제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러시아의 주도 하에 북극판 일대일로(一帶一路)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CSIS의 유럽, 유라시아, 북극 프로그램 부원장 헤더 콘리(Heather A. Conley)의 지적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북극 연안을 따라 형성된 북방항로(Northern Sea Route)에 17개 항구를 러시아의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상품을 운송하는 물류 허브로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8년부터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이 항구들을 잇는 철도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핀란드와 노르웨이까지 연결한다는 복안이 일대(Arctic Belt)의 골자다. 


이 일대의 중심에 있는 야말 반도(Yamal Peninsula)와 사베타(Sabetta) 항은 이미 LNG공장 건설과 항만 및 도로 확충이 진행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전년도에 기항 선박 숫자가 두 배로 늘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에 중국의 국영기업 합작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극 개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이익을 취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콘리 부원장은 평가하고 있다. 북극 평의회에 중국이 다른 국가들과 더불어 정규참관국(permanent observer) 자격으로 작년 중앙북극해(Central Arctic Ocean) 어업 중단 협약 협상 및 협약 체결에 참여한 것이나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주변국들과 함께 북극 석유 탐사 및 북극 광물자원 채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북극 외교정책의 제1 관심사: 중-러 협력의 향방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북극 문제 전문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역시 러시아와 중국 간의 협력이다. 상하이 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의 공동 회원국이자 교역 규모 확대 협정 체결, 분쟁 지역에 관한 결의안 투표 성향 일치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긴밀한 관계를 표출했다. 무엇보다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분쟁, 그리고 그 여파로 실시된 서방 국가들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이후, 러시아는 생존과 권력 게임의 측면에서 중국에 더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필요한 투자 자금과 기술 협력, 에너지 자원의 가장 큰 구매자가 되어줄 수 있는 나라가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북극 개발 협력이 확대되는 과정도 이런 맥락 속에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전개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여태까지는 외양에 비해 실속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북극 문제에서 양국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어긋난다는 점은 미국에게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랜드 연구소의 스테파니 페자드(Stephanie Pezard) 박사는 이러한 양국 관계를 정략결혼(marriage of convenience)으로 규정하면서 두 나라가 북극 문제에서 협력을 지속하고 발전시켜나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북극 문제를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안보와 국가 위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에 비해 중국은 주로 경제와 에너지 수급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전략적 안목의 간극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러시아가 당초 중국 등 비연안국들의 북극 평의회 참여를 강력히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참관국으로 받아들인 것이 그 방증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북극해 대부분이 가급적 공해(公海)로 남아 (자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의 접근성을 보장하려고 하는 반면, 러시아는 (앞서 영유권 분쟁에서도 보았듯이) 가능하면 넓은 영해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굳이 러시아가 아니더라도 북극 개발 파트너가 될 다른 국가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 협력 관계의 불안정 요소다. 6월 중순 발간된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의 보고서에서도 중국이 실제로 다른 북극 연안국들과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처럼 협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인 러시아에게 계약 조건 등에서 ‘갑질’을 하고 있다는 불만이 러시아 측에서 나오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야말 반도 개발 사업의 진행이 예정보다 부진한 것 또한 이러한 불협화음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적, 지역적 특성과 이해관계를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양국의 협력 관계는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다. 우선 인접국가로서 양국은 여전히 군사충돌 시나리오를 전략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동방군구(Eastern Military District)의 육군 전력을 꾸준히 보강하고 있다. 중국만을 염두에 둔 행보는 아니겠지만 이 군구가 상대할 단기적으로 가장 유력한 가상 적국을 꼽으라고 한다면 예외 없이 한 국가가 지목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조용한 군비 경쟁은 양국 간 뿌리 깊은 불신의 역사에서 연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소련이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만큼 중국 또한 러시아를 믿기 힘든 상대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련 시절 중-소 갈등과도 연관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러시아가 제정 시대부터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보인 기회주의적인 태도에 대한 환멸의 결과이기도 하다. 즉,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유럽 국가이며 아-태 지역 전략은 유럽에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일회적 미봉책으로서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중국 지도자들이 바라보는 러시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구도 역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경제 제재로 활로가 막힌 상황에서 중국과 부득이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뿐이며 서방과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러-중 관계 역시 급변하리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극 정책 노선: 전략적 이점을 무색케 하는 전술적 패착


때문에 러시아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며 한때 제재 철회 가능성까지 내비쳤던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3국의 북극 역학 구도에서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불가피한 의존 상황을 해제함으로써 양국을 견제하고 그 틈에서 미국의 북극 지역 입지를 다질 기회의 창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더욱이 소련 붕괴 이후 미-러 양국 관계가 최저점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던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우크라이나 문제 등 다른 현안과 달리 북극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양국이 투명하고 호혜적인 협상과 협력을 진행했던 점을 고려하면 보다 더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략적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성공적으로 떼어놓는다고 해도 전술적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펼치고 있는 북극 정책은 오히려 미국의 기반을 침식할 위험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내놓은 예산안을 보면 북극 정책 수행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해안경비대 예산을 무려 13억 달러나 감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외교평의회(CFR) 보고서가 그토록 강조했던 쇄빙선 함대 확충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행보인 것이다. 또한 이 예산안은 북극 문제와 관련해 여전히 긴요한 수많은 탐사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환경보호국(EPA)과 에너지 부(Department of Energy) 및 국립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tmospheric Administration)의 연구부서 예산을 무자비하게 삭감하고 있다.


물론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고 연안 석유 및 가스 시추를 용이하게 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등 트럼프의 ‘친화석연료’ 노선이 미국의 북극 정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국의 북극은 석유와 가스 생산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가능성에 불과하다. 개발을 뒷받침할 공공 서비스와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혹독한 기후와 환경에서 더 크게 요구되는 안전조치들을 정부가 앞장서서 마련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전략적 우위는 고사하고 북극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마저 놓쳐버릴 위험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우선’을 모토로 주권을 중시하겠다며 해양법협약 비준에 반대하는 움직임 역시 역설적으로 미국이 북극에서 국익을 적법하게 추구하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의 여파를 피부로 느끼면서 생계와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극 연안 주민들과 생태계에 대한 고려와 대책이 없다면 북극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잃어버린 것의 가치는 아마도 한참이 지나서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50년 전 알래스카를 헐값에 얻고도 그 엄청난 가치를 나중에서야 깨달았던 것처럼 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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