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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세계가 묻고 세계가 답하다: 1. 중국-‘판 짜는 능력’ 키우는 시스템

이희옥

2017.01.12

나라의 앞날이 달린 이슈에 우리가 외교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외교 전략을 전문화하고, 행정부 중심의 정통 외교에 더해 공공·민간 외교 등 다원화된 외교를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스마트한 전략 외교, 스펙트럼을 넓히는 다각화 외교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해외의 외교에서 해법을 찾아본다. 우리 외교에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같은 주요 이슈를 놓고 국민은 불안하기만 한데 행정부와 청와대, 국회는 손발이 맞지 않고 여야도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다.


[與時齋 - 중앙SUNDAY 공동기획]
세계가 묻고 세계가 답하다

10개 부처 참여 외사영도소조, 북핵 ‘왕이 이니셔티브’ 도출
중국-‘판 짜는 능력’ 키우는 시스템

중국 외교의 특징을 말할 때 알아야 할 바둑 용어가 있다. ‘국도(局道)’다. 이 말은 바둑의 ‘판(局)을 짜는 능력’을 뜻한다. 국도에 기초해 원칙(方)과 유연함(圓)을 결합시키고 연결고리를 찾아 길목을 차지하는 게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중국 역시 세계를 ‘국(局)’별로 분류하고 외교의 판을 짠다.

이 같은 ‘체계적’ 판단은 중국이 오랫동안 천하를 지배하고 관리해 왔다고 믿는 제국적 사유방식에서 비롯한다. 외교에서도 먼저 국제관계가 민주화돼야 하고, 그 속에서 중국은 평화적으로 부상할 것이며 여기에 더해 다극화를 지향하는 ‘조화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창한다.

중국 정부 내에서 외교정책을 결정할 때도 체계적 시스템이 가동된다. 자국 관련 국제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맨 아래층에서부터 중앙정부까지 걸친 의사협의기구들을 설치, 공통된 인식에 도달하려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의견 수렴과 정책 대안 검토를 위한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해 왔다. 덕분에 외통수의 정책수단을 피하고 외교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특히 공산당 중앙에는 ‘외사공작영도소조’라는 기구가 외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국무원, 공산당 서기처, 국방부, 외교부, 상무부, 대외연락부 등 10여 개 유관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해 다양한 현안에 대해 전략을 결정한다.

이 컨트롤타워가 힘을 발휘한 것은 2009년 5월 북한이 중국에 통보도 하지 않고 핵실험을 감행했을 때였다. 당시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참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향후 한반도 정세를 고려해 대북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7월 외사공작영도소조의 회의에서는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해 처리한다”는 것을 밝혔다. 즉 북핵 문제는 북·미 관계 등 근본 원인 모두를 함께 해결할 때 효과를 거둔다는 ‘표본겸치(標本兼治)’ 외교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8월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대표, 9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 담당 국무위원,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을 차례로 방문했으며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성사됐다. 이것은 중국 대북정책의 새로운 분수령이 됐고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병행 처리를 주장하는 ‘왕이(王毅) 이니셔티브’의 출발점이 됐다.

중국의 외교 호흡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길다.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사람의 임기가 보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싱크탱크들과 오랫동안 전략을 다듬는 ‘정층설계(Top-level design)’ 기반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을 맡고 있는 왕후닝(王滬寧) 정치국원은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등 3대에 걸쳐 주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오고 있다. 현대 중국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삼개 대표론’ ‘과학적 발전관’은 물론이고 외교정책의 골간인 ‘신형대국관계’ 등도 이러한 조직과 사람을 거쳐 탄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외교 일선에서 물러난 외교관도 공공외교 일선을 담당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정책의 일관성 유지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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