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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중 ‘원칙 없는 주고 받기’ 안 통한다

관리자

2017.06.04

중국 공세적 외교 본격화하며 한국의 전략적 회피 공간 줄어 제2, 제3의 사드 문제 생길 수도
국민 합의로 국익 우선순위 정해 다른 나라에 일관된 신호 보내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급속히 냉각됐던 한·중 관계가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해빙무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록 특사 자리배치 문제로 의전 결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전화외교와 특사외교 등으로 그동안 꽉 막혀 있던 고위층 간의 대화가 재개되었다는 것만으로 양국 모두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중 관계는 언제든지 다시 악화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중 간 갈등의 실타래를 푸는 일은 쉽지 않다. 과욕과 조급함으로 성급하게 풀려고 하다 보면 더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한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먼저 중국에 대한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버려야 한다. 지난 25년 동안 한·중 양국은 전 분야에 있어 눈부신 진전을 이루며 동반자 관계를 다져왔지만 경열정냉(經熱政冷)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양국 모두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정치·안보 사안을 전략적으로 회피해 왔다.

물론 구동존이(求同存異)로 표현되는 경제협력 우선 정책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인 측면이 있다. 문제는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으로 한국이 회피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면 할수록 미·중 간의 경쟁과 갈등 국면은 격화될 것이고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전략적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드 배치 문제 역시 미·중 간 세력전이(轉移)시대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한국이 직시해야 할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25년간 유지되어 온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이 한·중 양국 관계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경제협력을 통해 정치적 신뢰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단 현 시점에서 되짚어 봐야 할 점은 ‘한·중 양국 간에 회복해야 할 정치적 신뢰가 구축되었던가’이다.

외교부는 한·중 수교 25년의 과정과 성과 중 하나로 정치적 신뢰 관계 강화 및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내실화 노력을 꼽았다. 25년 동안 40회의 정상회담, 27회의 정상급 회담, 117회의 외교장관 회담이 있었다고 한다. 적지 않는 회담 횟수이다.

그러나 이번 사드 배치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 간 소통채널은 중국에 의해 일순간에 닫혀 버렸다. 중국은 오히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방중의원들을 상대로 전통적 이이제이(以夷制夷) 외교술과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사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희망적 사고’는 동북공정 논란(2004년, 2006년),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2010년), 핫라인 불통 사건(2016년) 등이 터졌을 때 이미 여러 번 논란이 됐다.

구동존이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중국외교의 DNA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개방 이후 견지해온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대외환경 조성’이라는 중국외교의 사명은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효과’로 불리는 중국의 특정 외교목표 달성을 위한 경제력의 도구화는 이미 현실이 된 듯하다. 중국의 경제보복이 무서운 것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 때문만이 아니다. 정치외교적인 입장과 원칙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가 유엔 인권투표에서 친중적인 입장을 보인 것과 달라이 라마와의 회담을 취소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외교 DNA의 변화는 북핵문제와 경제발전의 상당부분을 중국에 기대고 있는 한국엔 크나큰 도전이다. 이는 사드 배치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해도 양국 관계가 ‘역사상 가장 좋았던’ 시기로 되돌아 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복잡한 제2, 제3의 사드 배치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향후 중국과의 사드 배치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나쁜 선례를 남기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상황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위태(危)로운 상황을 기회(機)로 살릴 수 있는 ‘위기관리’ 방안의 신속한 마련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이슈들을 미리 선정하여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외교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통한 국가이익의 우선순위와 마지노선을 설정해야 한다.

외교는 협상력이 생명이다. 협상과정에서 이익과 만족을 최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할 선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국내정치 변수를 최소화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고, 일관된 신호로 타국의 오지각(misperception)을 줄일 수 있다.

사드 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패키지 딜이 거론되고 있다. 강대국에 포위되어 있는 한국으로서 고려할 수 있는 카드인 것은 분명하다. 관건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이냐이다. 위기 상황이 터질 때마다 원칙 없이 주고 받기를 하다 보면 꼭 지켜야 할 국가이익을 잃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중앙SUNDAY 6월 4일자에 기고한 글로, 여시재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원문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21635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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