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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되살아나는 게리맨더링의 악몽? - 미국의 선거구 획정 이슈

나지원 (동아시아 연구원)

2017.05.29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2017년 개헌논의와 각국의 정치 체제 (1) 미국 - 되살아나는 게리맨더링의 악몽? 미국의 선거구 획정 이슈
저자: 나지원 (동아시아 연구원)
No.2017-15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개헌논의와 각국의 정치 체제로 고립주의, 트럼프 현상 등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한계이다. 헌법개정, 선거제도 개혁 등, 각국 정치체제에 주어진 현안 혹은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인식하는지를 살펴보고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미래를 바라보는 각국 싱크탱크들의 예측과 제안을 들어본다.

미국에서 최근 정치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을 포함한 선거제도, 의회 인적 구성, 그리고 행정부 조직개편이다. 이 중에서 특히 선거 제도 개혁은 최근 들어 연방과 주 정부 차원에서 공히 가장 활발하게 실질적인 개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의제다.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불거졌던 것은 바로 2000년 대선으로 당시 플로리다 주의 복잡한 기표 방식으로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후보를 선택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는 박빙이었던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당시 대선 후보 간의 접전에 큰 변수로 작용하여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선거 방식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출 자체의 적법성까지 의문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통해 주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며 비효율적인 투표 방식과 유권자 등록 방식에 대대적인 개혁과 통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당시 107대 의회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사실상 묵살하면서 투표 방식 개혁 논의는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서 투표방식 문제보다도 더 오래되고 해묵은 논쟁은 바로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자의적인 선거구 획정을 통해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후보가 유권자를 입맛에 맞게 고르는 이른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곳이 다름 아닌 미국이며 그 역사가 100년도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거구의 자의적 획정이 미국 대의민주제에서 얼마나 뿌리 깊은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 절차의 당파성, 그리고 기술적, 법률적으로 게리맨더링 여부를 판별하기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매번 게리맨더링 논쟁이 일어나고 법정 싸움까지 이어지더라도 대개 그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미국 사법부는 게리맨더링 여부를 확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대체로 게리멘더링에 대해 부득이하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선거구 획정에 인종이 “지대한(predominant)” 영향을 미친 것이 확인될 경우에는 게리맨더링으로 판결하는 사례들이 다수 존재한다. 인종은 상대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말 버지니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 선거구 획정에 대한 두 건의 판결은 인종이 게리맨더링에 끼친 영향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판결을 내렸다. 인종의 차이와 지지 정당의 차이가 중첩되어 두 가지 중 하나의 효과만을 따로 떼어놓고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 이처럼 엇갈린 판결의 주된 이유였다. 이 때문에 ‘합법적인’ 게리맨더링은 여전히 미국 전역에서 만연하고 있다. 일례로 오하이오 주의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구별로 당선자와 낙선자의 평균 득표 비율차가 32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이 다수의 선거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게리맨더링을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상황임에도 확실한 물증의 부족으로 사법적 제재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과 지리정보시스템의 발전에 힘입어 보다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선거구 획정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치 관련 연구소뿐만 아니라 민간 정치운동 단체, 나아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인 차원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즉 익명의 다수가 제공한 정보와 자원을 통해 지도를 선거구 지도를 작성하는 디스트릭트빌더(DisctrictBuilder)라는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현 선거구의 문제점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으며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점을 개선하는 선거구 획정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인종, 행정구역과의 일치 정도, 양당 균형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해 실제 선거구와 가상의 선거구 간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 디스트릭트빌더를 활용해 앞서 언급한 오하이오 주의 선거구를 분석한 결과, 의도적으로 공화당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었다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지표가 발견되었다. 물론 여전히 이러한 자료만을 가지고 게리맨더링 여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다양한 선거구 획정 방식 간에 보다 과학적인 비교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에 더하여 2016년 연두교서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파적 게리맨더링이 미국 민주주의에 심대한 문제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의 물결을 타고 2016년 들어 공정하고 중립적인 초당파 선거구 획정 위원회 설립 청원과 운동이 미국 각 주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핵심에 선거구 획정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당파를 초월하여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0여 개가 넘는 주에서 선거구 획정 위원회 구성을 위한 청원운동, 패널, 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게리맨더링이 심각한 주로 알려진 메릴랜드에서는 주지사의 주도로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위원이 각각 3인씩 참여하는 획정위원회의 설립이 추진 중이다.

입법부와 관련된 정치 제도 개혁의 또 다른 쟁점은 의회의 인적 구성 문제이다. 특히 기업가 출신 의원 숫자가 지난 10여년 사이에 상, 하원을 막론하고 대폭 증가한 것이 눈에 띄는 변화다. 정치계 입문 이전의 직업이 투표 행태에 유의미한 영향이 있다는 정치학자 니컬러스 카니스(Nicholas Carnes)의 연구를 보더라도 노동자 계급 출신 의원보다 기업가 출신 의원이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고유의 선거 지원 및 로비 단체인 정치활동위원회(PAC)의 기부금 추이를 보더라도 기업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의심을 가능케 한다. 1980년 이후 기업계 PAC의 기부금 총액이 노동계 PAC 기부금 총액을 추월한 이래, 격차는 꾸준히 벌어져온 것이다. 물론 PAC의 기부금이 선거 활동 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으며 실제로 입법과정에 PAC의 입김이 그렇게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으나 앞서 언급한 의회 인적 구성의 변화와 맞물릴 경우 그 파급력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입법부 개혁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인 가운데, 트럼프 정부는 비대한 행정부를 개혁하고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명분으로 행정부 조직개편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포괄적 조직개편안(Comprehensive Plan for Reorganizing the Executive Branch)”에 서명했다. 각 부처의 돈줄을 틀어쥐고 있는 운영예산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가 불필요한 부처 조직을 통폐합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각 부처가 180일 내에 운영예산처에 재조직 안을 제출하면이를 운영예산처가 다시 180일 간 검토, 수정하여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무가 중복된 부처를 통, 폐합한다는 것이 개편안의 골자다.

그러나 트럼프 내각이 내걸고 있는 개혁안의 목표와는 달리 이러한 조직 통폐합이 보건, 국방, 안보 등 국가 핵심 기능을 저해하며 예산 삭감이 아니라 기능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작지 않다. 특히 이 행정명령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사실상 독단적으로 ‘불필요한 기관’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보다는 도리어 절차적 정당성마저 훼손할 여지가 있는 퇴행적인 개혁안이라는 것이다.

[ 부록 ]

1. An Agenda for Election Reform (Brookings, Thomas E. Mann, June 2001)
https://www.brookings.edu/research/an-agenda-for-election-reform/
- 2000년 부시 대 고어의 대선 당시 플로리다 주의 투표 방식으로 인한 혼란 초래
- 당선 과정에서 적법성 여부 논란
- 주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며 비효율적인 투표 방식, 유권자 등록 방식 대대적 개혁 주장
- 그러나 당시 107대 의회는 이 문제를 묻어버림

2. Using Crowd-Sourced Mapping to Improve Representation and Detect Gerrymanders in Ohio (Brookings, Michael P. McDonald, June 18, 2014)
https://www.brookings.edu/blog/techtank/2014/06/18/using-crowd-sourced-mapping-to-improve-representation-and-detect-gerrymanders-in-ohio
- 오하이오 주의 경우, 선거구별로 당선자와 낙선자의 평균 득표 비율차가 32퍼센트에 육박
- 정보통신기술과 지리정보기술의 결합을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중립적인 선거구 획정 가능
- DistrictBuilder라는 선거구 획정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다양한 선거구 획정안 제시
- 인종, 행정구역과의 일치, 양당균형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해 이러한 안과 실제 획정 결과를 비교 가능.
- 연구 결과 현행 오하이오 주 선거구는 의도적으로 공화당에게 유리하게 설계됨.
- 과학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지만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크랜츠버그 제1법칙을 명심해야 하나 과학적 기법으로 게리맨더링을 포착하고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

3. Redistricting Reform Gains Momentum in 2016 (Brennan Center for Justice, Eric Petry, June 25, 2016)
https://www.brennancenter.org/blog/redistricting-reform-gains-momentum-2016
- 2016년 들어 초당파적(독립적) 선거구 획정 위원회 설립 청원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옴
- 사우스다코타, 일리노이, 콜로라도, 메릴랜드, 오하이오, 플로리다, 조지아, 뉴햄프셔 등
-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6년 연두교서에서 당파적 게리맨더링을 언급한 것과도 관련
-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핵심에 선거구 획정 문제가 있다는 인식의 공유
- 특히 일리노이 주에서 진행 중인 비영리 선거구 획정 위원회 창립 운동인 “무소속 지도(Independent Maps)”가 대표적
- 가장 게리맨더링이 심각한 주로 알려진 메릴랜드에서도 주 지사 주도로 민주당 3, 공화당 3, 무소속 3의 획정위원회 설립이 추진 중.

4. The justices tackle racial gerrymandering (The Economist, December 6, 2016)
http://www.economist.com/blogs/democracyinamerica/2016/12/race-and-redistricting
- 미국 사법부는 대체로 게리맨더링에 관대한 경향 (게리멘더링 여부를 판정하기 어려움)
- 예외적으로 선거구 획정이 인종에 “지대한” 의존을 한 경우 게리맨더링으로 판결
- 그러나 2016년 말 버지니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 선거구 획정에 대한 상반된 판결은 인종이 정당지지 성향과 결합될 경우 게리맨더링 여부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시사.

5. Vital Stats: The growing influence of businesspeople in Congress (Brookings, Curtlyn Kramer, February 17, 2017)
https://www.brookings.edu/blog/fixgov/2017/02/17/vital-stats-businesspeople-in-congress/
- 114대 미국 의회에서 하원 의원 중 231명이 전직 기업/금융계 종사자.
- 공직자/정치가 출신(271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
- 107대 의회에 비해 1.5배나 증가한 것
- 상원 역시 24명(107대)에서 42명(114대)로 큰 증가세를 보임.
- 문제는 이러한 직업 배경이 실제 입법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 1950년대 노동자 출신 운동가들의 의회 대거 입성 이후 기업가 집단에서도 의원 배출에 노력을 기울임
- 정치학자 니컬러스 카니스(Nicholas Carnes)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계 입문 이전 직업이 투표 행태에 유의미한 영향이 있음
- 경제 문제에서 노동계급 출신 의원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함
- 직능별, 인종별로 의원 배출을 위한 의도적, 체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시사점

6. The Executive Branch is About to be ‘Regorganized’ into Oblivion (Esquire, March 14, 2017)
http://www.esquire.com/news-politics/politics/news/a53848/trump-executive-order-reorganization/

7. Trump signs executive order aiming to trim government costs (CNBC, Jacob Pramuk, March 13, 2017)
http://www.cnbc.com/2017/03/13/trump-to-sign-executive-order-aiming-to-see-where-money-is-being-wasted-in-government-spicer-says.html
- 트럼프 대통령이 3월 중순 “행정부 포괄적 조직개편안(Comprehensive Plan for Reorganizing the Executive Branch)”에 서명
- 운영예산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이 불필요한 부처 조직을 통폐합하는 안을 수립. 각 부처는 180일 내에 재조직 안을 제출해야 함. 이를 운영예산처가 다시 180일간 검토, 수정하여 대통령에게 제출.
-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조치를 통해 비대한 행정부를 축소함으로써 과다 지출을 줄이고 중복 업무를 방지하는 등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주장
- 그러나 보건, 국방, 안보 등 국가 핵심 기능을 저해하며 예산 삭감이 아니라 기능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 존재
- 특히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사실상 독단적으로 ‘불필요한 기관’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행정 명령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

8. Vital Stats: The widening gap between corporate and labor PAC spending (Brookings, Crutlyn Kramer, March 31, 2017)
https://www.brookings.edu/blog/fixgov/2017/03/31/vital-stats-corporate-and-labor-pac-spending/
- 1980년부터 2012년까지 기업 활동을 지지하는 정치행동위원회(PAC)와 노동자 측을 지지하는 PAC의 기부금 격차를 추적
- 1978년에는 노동계 PAC 기부금이 기업계를 근소하게 앞섬(3590만 달러 대 3450만 달러)
- 그러나 1980년에 들어 기업계 PAC 기부금이 2000만 달러나 증가한 데에 반해 노동계는 200만 달러 증가에 그치면서 역전됨
-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2014년 총선 당시에는 1억 7800만 달러 대 5070만 달러의 차이
- 그러나 PAC 당 평균 기부금 액수는 노동계 측이 더 많음(기업계 121,000달러 대 노동계 279,000달러)
- 정당별로도 기업계 PAC는 양당에 분산된 반면 노동계 PAC는 민주당에 집중됨
- 그러나 PAC 기부금이 전체 선거 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음
- 따라서 실제로 PAC가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정당 또는 의원의 기존 입장에 지지를 표명하고 입법 기관과의 소통 창구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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