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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④ 준비안된 한국-“실패한 U시티 전철밟나”…갈길 먼 한국 스마트시티

정순우

2017.04.17

여시재는 매일경제신문과 공동으로 차세대 디지털혁명 시대 도시의 경제적 미래와 이것의 기반이 될 新문명의 가능성을 조망한 <신문명 도시가 미래다>시리즈를 기획,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신문명 도시가 미래다> 시리즈 순서
①도시가 미래다
②신문명 융합공간
③아시아 시장이 열린다
④준비안된 한국
⑤테스트 플랫폼부터 만들자
⑥‘시市·산産·학學’복합체

스마트시티 육성법 만들었지만 문구만 바꾼 U시티법 재탕 불과
해외수출·국제표준 선점 급한데 외국社와 협업·국내 투자 막아
토지수용권·인센티브 등 망라한 제주도특별법보다 못해 개정시급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랜드마크인 ‘트라이볼’ 주변 산책로를 한 행인이 거닐고 있다. 송도국제도시는
성공적인 신도시로 평가받고 있지만 수도권 규제 등의 영향을 받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시티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호영 기자]

KT의 스마트에너지 플랫폼 ‘KT-MEG’는 올 2월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스마트시티 부문 최고 모바일상을 받았다. KT는 세계 최초로 5세대(5G) 통신망 구축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차세대 자율주행차 기술을 확보하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중견 건설사 한양도 영암·해남 기업도시 ‘솔라시도’를 스마트시티로 개발 중이다.

중소기업인 누리텔레콤은 스마트 전력망 핵심인 지능형 원격검침시스템(AMI)을 유럽과 아프리카에 수출해 왔다. 업종이나 규모 차이는 있지만 원조 IT 강국의 위상을 회복하고 다가올 스마트시티 시대에 대비하는 행보다.

하지만 기업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끔 판을 깔아줄 정부의 움직임은 너무 늦다. 미래 먹거리로 스마트시티를 육성하겠다며 법까지 만들었지만 정작 기업들이 원하는 내용은 다 빠졌다. 규제 중심 행정에 젖은 공무원들이 규제 철폐를 두고 머뭇거린다면 스마트시티는 U시티 실패를 답습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스마트시티 조성과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는 ‘유비쿼터스도시의 건설 등에 관한 법률(U시티법)’을 개정한 ‘스마트도시 조성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스마트시티법)’이다. 지난달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오는 9월 22일 시행 예정이다.

하지만 개정법에 스마트시티보다는 U시티법을 간판만 바꿔 재탕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 평가다. 실제 법을 보면 기존 28개 조항에 있던 ‘유비쿼터스도시’ 문구가 ‘스마트도시’로 바뀌었다. 인허가 의제, 조세 감면, 도시건설비용 등 U시티법 지원을 유지하면서 특화단지, 인증제, 해외 진출, 보증우대 등 혜택을 추가했다.

하지만 토지수용권, 부담금 감면, 입주기업 혜택, 국유재산 매각특례, 국유재산 임대료 지원 등 기업이 원하는 조항은 빠져 있다.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등 비슷한 성격의 다른 법에도 있는 조항들이다.

정부는 한국형 스마트시티를 차세대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린다. 하지만 현재 정부에서 수출하고 있다는 한국형 스마트시티는 실제로는 신도시에 가깝다. 제대로 수출산업이 되려면 외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외국 기업의 직접투자나 국내 기업과 공동투자를 통해 기술력과 경험을 키우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절실하다. 미래 신산업 선점에 필수인 국제표준 장악을 위해서도 ‘우물 안 개구리’식 개발과 육성에 그쳐선 안 된다. 국내에 스마트시티를 조성하더라도 국내 자본만으로 투자와 운영을 모두 채우긴 쉽지 않다.

하지만 스마트시티법에는 외국인이나 외국법인에 의해 운영되는 각종 시설물 설립에 대한 근거가 없다. 기업도시특별법은 외국인 카지노와 교육기관 설립을 허용하고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도특별법은 여기에다 외국 의료기관, 외국인 전용약국, 외국방송 재송신까지도 허용한다. 제주도특별법은 법 조항만 400개가 넘는다. 세세한 부분까지 상위법에서 특례로 정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낮춘다. 일반적으로 상위법에 없는 특례조항이 시행령 차원에서 규정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업계는 스마트시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특별법과 일반법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예를 들어 기업도시특별법이나 경제자유구역특별법 적용을 받는 개발사업이 스마트시티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특례법에 따라 동일한 인센티브 및 규제 완화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시티법이 U시티법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정부는 2008년 세계 최초로 U시티법을 만들며 야심 차게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기업 참여를 유도할 방편 없이 지방자치단체 간 성공모델 경쟁만 부추겼다. 지자체들은 홍보관 등 전시성 사업에만 투자했고 소프트웨어 투자는 뒷전이었다. 그 사이 글로벌 IT 시장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재편됐고 ‘유비쿼터스’는 구시대적 단어로 전락했다.

이상호 한밭대 교수는 “스마트시티는 도시를 근간부터 바꾸는 프로젝트여서 정교한 입법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제주도특별법 수준으로 섬세하게 법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시티를 구성하는 핵심 기술을 구현하려면 파격적인 규제개혁도 필요하다. 비슷한 취지의 법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프리존법)’이다. 하지만 규제프리존 혜택을 받으려면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서 지역별 전략산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예를 들어 드론은 전남 고흥군이, 자율주행차는 대구광역시가 규제프리존으로 추진되고 있다. 법이 통과돼 봤자 모든 신기술이 융합되는 스마트시티가 만들어지긴 힘든 구조다.

정부 부처 간 업무장벽도 융합에 걸림돌이다. 현재 스마트시티 업무는 국토교통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자치부 등 4개 부처로 나뉘었고 이를 연계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부처 간 칸막이식 행정으로 융합형 서비스 도입 및 확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스마트시티 수출 추진단’을 ‘스마트시티 추진단’으로 확대 개편해 부처 간 협업의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유관부처 및 지자체와의 협조를 통해 스마트시티 중장기 발전 로드맵도 수립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도 지난달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이 1~2년 전만 해도 스마트시티 선도국가로 주목 받았으나 최근 선두권에서 멀어지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진흥원은 한국 스마트시티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공사례가 없고, 시범사업이 본사업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며, 주민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3가지를 근본적 문제점으로 꼽았다. 해결책으로는 ‘선(先)시범사업 후(後)규제타파’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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