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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일부가 먼저 부유해져야 vs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자

작성자 : 자오후지 2017.04.14 조회수 : 1803


[전직 黨校 교수가 쓰는 중국공산당 이야기] 민주사회주의 논쟁




Impossible is Nothing’이라고 쓰여진 중국 상하이의 한 스포츠용품 매장 앞에 노숙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중국은 장쩌민 전 주석이 계획경제 제도를 폐지하고 시장경제를 기본 경제제도로 채택했다. 김경빈 기자


민주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주장을 논문이나 책으로 펴낸 이는 몇 안 된다. 전 국방대 교수 신쯔링(辛子陵), 전 중공중앙조직부 상임차장 리루이(李銳) 등은 이런 종류의 저작물을 낸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학계·정계에 많이 있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이에 대한 신좌파의 비판을 소개한다.


개혁·개방이 발전 이끌었지만

부정부패·빈부격차 문제 동반

신좌파, 대중의 불만 이용해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 비판


민주사회주의자 신쯔링

『자본론』 1·3권 비교 분석

“불균형 분배가 진보의 지렛대”

마오쩌둥의 급진 노선 비난


19세기 후반 들어 서구 자본주의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1866년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 자본의 집중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됐고, 대규모 투자은행과 주식회사들이 등장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유럽에선 철강공업에 이어 화학공업, 기계제조업과 방직공업 분야에 주식회사가 줄줄이 등장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러한 변화를 보며 “이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주의적 사유산업이 지양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제 자본가들이 기업 전체가 아닌 일부를 사유재산으로 소유하게 된 것이다. 주식회사와 함께 기업의 전문경영인이 나타났다. 이는 관리권과 소유권의 분리를 의미한다. 평화적 혁명으로 기업이 사유재산에서 공유재산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제도의 탄생, 즉 자본주의에서 민주사회주의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제1권에서의 주장을 뒤엎고 “폭력으로 자본주의의 껍데기를 폭파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관계는 계승과 발전의 관계이지 타도와 소멸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1965년 자본주의 국가 수반들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자본가 선언’을 발표했다. “사회주의에서 인민대중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이념을 배워 주식화된 인민자본주의를 실행한다. 사회주의 복지제도를 배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포괄하는 복지제도를 실행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배워 국가가 관여하는 계획자본주의를 실행한다.” 그들은 이를 제3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 국가들 1965년 ‘자본가 선언’


제3의 길로 생산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고 노사 간에 화해가 이뤄졌으며 사회주의가 평화롭게 실현됐다. 나아가 민주사회주의는 도시와 농촌 간의 차별, 농민과 노동자에 대한 차별, 육체노동과 지적노동 간의 차별을 소멸시켰다.


사회민주당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표함과 동시에 전체 사회의 이익을 대표한다. 이는 계급모순과 충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계급 간의 단합을 도모하고 경제 발전을 촉진해 전체 사회의 부의 총량이 지속적으로 증대함과 함께 분배를 조절해 공동으로 부유해지는 길로 간다는 것이다. 공동부유라고 함은 유산자가 무산자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산자가 유산자로 변하게 하며,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고 만들어낸 것이 아닐뿐더러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후 평화적으로 이행됐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주의자는 중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사실상 중국식 민주사회주의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베이징 왕푸징 백화점의 대형 광고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경빈 기자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과 노선이 대다수 사람의 지지를 얻어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자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노좌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경작지를 농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또한 단일한 공유제를 폐지하고 다양한 소유제 형식들이 공동으로 발전하며, 일부가 먼저 부유해지고 점차 공동부유로 가는 정책을 실행했다. 사실상 자본가를 다시 모셔왔고 선진 생산력을 모셔왔다. 이런 정책 노선이 바로 민주사회주의 노선인데 다만 ‘수정주의’라는 누명을 피하기 위해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20년 전 장쩌민의 주도하에 중국은 계획경제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시장경제가 중국의 기본 경제제도임을 만천하에 선언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어서 장쩌민은 ‘삼개대표 사상’, 즉 중국 공산당은 선진 생산력을 대표하고 광범위한 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며 선진 문화를 대표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다시 말해 자본가의 이익과 인민대중의 이익을 조절해 가겠다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중국의 기본 경제제도” 선언


2004년 후진타오 주도하에 장쩌민의 삼개대표 사상과 ‘사유재산을 보호한다’는 조항이 헌법에 명시됐다. 빈부·도농·지역 격차, 인간과 자연의 갈등, 투입과 산출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과학적 발전관’이 후진타오의 정책 노선으로 나왔다. 이러한 정책 노선들이 사실상 민주사회주의 정책 노선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사실 마오쩌둥의 집권 전과 집권 초기의 신민주주의 정책 노선도 민주사회주의와 일치한다. 다만 1950년 중반에 오면서 그 민주사회주의 노선이 ‘폭력 사회주의’로 방향을 잘못 바꾸었다고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아무튼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등 지도자들의 개혁·개방 노선과 이러한 노선들이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실행되며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눈부신 발전은 심각한 부정부패, 빈부격차, 그리고 국유자산의 유실 등 문제들도 동반했다.


이는 노좌파, 신좌파의 격렬한 반발과 비판을 불러왔다. 신·노좌파는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개혁·개방 노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신좌파는 문화대혁명 초기처럼 개혁·개방 노선에 효과적인 제안과 자문을 해주어 중요한 기여를 한 학자들의 이름을 찍어 거론하면서 그들의 개혁·개방 주장은 ‘자산계급 자유화’ 주장이고 개혁·개방 노선을 주도한 지도자들은 자본주의 길로 나가는 ‘자본주의 자유화 개혁파’라고 몰아붙였다. 당내 대규모 투쟁을 벌여 자본주의 자유화 개혁파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와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심지어 그들은 “이제 막 도래할 이 투쟁은 일종의 결전으로서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제국주의의 부용(附庸)이냐 민족독립과 국가주권 수호냐는 두 가지 미래, 두 가지 운명을 가르는 생사결투”라고까지 몰고 갔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신좌파가 개혁·개방 노선과 정책을 극구 반대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마르크스주의이고 무엇이 레닌주의이며 무엇이 수정주의인지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 그리고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 만년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또 혹자에 따르면 『자본론』 제1권과 제3권의 판단과 주장들의 차이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본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신좌파가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교조주의에서 벗어나 새롭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신쯔링이 가장 대표적이다.


신쯔링의 이러한 주장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학자·학생·공무원이 공감을 표하는 반면 신좌파는 격렬하게 반박하고 있다. 신쯔링은 마오쩌둥의 공과 과를 기존과 반대로 7대 3, 즉 공이 3이고 과가 7이라고 평가하며 마오쩌둥의 급진적 노선과 정책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거나 정치적 시달림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천문학적 규모의 부와 시간, 그리고 각종 자원이 탕진됐다고 맹비난했다.  


신좌파의 격렬한 반응은 여기에 집중되고 있는데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비판이 압도적이고 정연한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논쟁은 향후 중국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전체 사회 진보의 기반”


신쯔링은 민주사회주의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라고 주장한다. 청년기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두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1860년대 유럽 자본주의 체계는 1840년대의 자본주의 체계에서 벗어나 민주사회주의 체계로 변모했고 이에 따라 마르크스·엥겔스의 기본 주장도 폭력혁명과 공유제 주장에서 벗어나 민주사회주의 주장으로 변화했다고 신쯔링은 주장한다. 신쯔링은 『자본론』 제1권과 제3권을 상세히 비교하며 마르크스주의 근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생산력의 발전이 전체 사회 진보의 기반이라고 함이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원리다. 차별, 빈부, 사회분화는 사회가 발전하고 부가 증대한 결과이며 이는 거시적 측면에서는 사회의 진보를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사회의 퇴보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착취·압박과 계급투쟁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는 일종의 모순통일체다. 이는 인류가 야만시대와 고별하고 문명의 문턱을 넘어서는 기본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의 핵심이다. 생산력 발전에 의한 사회 진보를 과소평가 내지 외면하고 생산력 발전이 가져온 사회충돌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공상 사회주의를 낳는다. 사회 부의 불균형한 분배는 사회 구성원의 적극성을 동원하여 사회적 진보를 추진하는 지렛대다. 이 지렛대를 활용함에는 도(度)가 있는데, 이 도를 넘으면 사회는 폭발하게 되고 이 도를 없애면 사회는 활력과 전진의 동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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