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협력 보고서

[이슈브리프]러시아 신동방정책의 현재와 미래

작성자 : 이상준 2017.01.12 조회수 : 3063

제목: 러시아 신동방정책의 현재와 미래

저자: 이상준(국민대 유라시아연구소 소장)

No.2017-01




러시아어로 ‘극동’은 멀고 먼 동쪽이다. 400km를 넘지 않으면 거리도 아니라는 러시아인들이“멀고 멀다”라고 표현하면 정말로 먼 곳이다. 이렇게 먼 극동 개발을 지정학적 과제로 선언한 이후 푸틴 대통령은 매년 극동을 방문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1986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한 이후, 푸틴대통령만큼 극에 공을 들이는 지도자는 없었다.


신동방정책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아시아 중시정책은 외교안보적·경제적 목적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16세기 이후 꾸준히 영토를 확장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대양으로 연결되는 출구를 확보하려는 팽창주의 노선을 걸었던 러시아는 외부세력으로부터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과제였다. 러시아의 서진(西進)은 유럽 중심에 자리잡은 강대국들에 의해 봉쇄되었고, 남진(南進)은 오스만 투르크와 이슬람 세력에 의해 막혔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동진(東進)은 중앙집권화된 국가세력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 태평양까지 거침없이 도달할 수 있었다.


올해는 러시아 동진의 상징적인 인프라,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완공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20세기 초반은 러시아 권력층이 대륙 중시 세력과 해양 중시 세력으로 나뉘어져 대립하던 시기였다.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1905년 이후 비떼를 중심으로 한 대륙 중시 세력이 힘을 얻게 되고, 이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철도 건설이 탄력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TSR은 완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거대한 교통 인프라는 냉전체제가 시작되면서 서방과의 대립으로 봉쇄되었고, 그 이용가치가 줄어들면서 국제적 기간망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알래스카를 매각하여 영토를 줄인 적은 있었지만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영토 수축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을 진행하는 내내 체첸 등 분리 독립에 대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다소 생뚱맞지만 1998년 러시아 경제위기 이후 당시 총리였던 에브게니 프리마코프가 경제위기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를 영토보전이라고 의회에서 연설한 것 또한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소련 해체 이후 서방과의 체제경쟁에서의 패배와 경제적 몰락 등으로 1990년대 러시아 외교안보는 줄곧 수세적인 입장으로 내몰렸다. 러시아는 글로벌 무대 보다는 근외 지역 중심으로 외교 역량을 집중하였다.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국가들을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모았지만 회원국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강력한 정치적 구심력을 가지기보다는 주로 경제적 실익에 따라 CIS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8년 러시아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는 수모를 겪으면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1998년의 위기는 강력한 국가를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과 함께 푸틴 대통령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한 그는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고 규정하면서 소련해체 이후 CIS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였던 통합의 동력과 운동이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구성으로 활성화되도록 유도하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가 2007년 관세동맹 창설을 결정하였다. 상품, 사람, 서비스와 자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단일 경제 공간 창설을 전제로 하는 통합의 기반을 조성하였고, 에너지, 교통 및 거시경제적 차원에서의 경쟁력 제고 등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출범시키자는 원칙적 합의도 이끌어내었다. 2010년 1월 형성된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가 참여한 관세동맹이 마침내2010년 1월 공식 결성되었고, 2015년 1월에는 아르메니아, 키르기스공화국 등이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유라시아경제연합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러시아 역사상 그 어떤 지도자보다 푸틴 대통령의 극동개발 의지는 강하다.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복귀하는 데 상대적으로 낙후된 극동 시베리아 개발이 필수적인 요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경제의 중심이 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극동 시베리아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아태지역으로 다변화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실익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아태지역 국가와의 협력 강화로도 이어지게 하는 효과도 가지게 된다. 더묵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 내 인접 국가에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자 하는 현단계 러시아 외교정책 및 전략에 따른 것이다. 물론 푸틴 대통령이 3기 집권을 위해 치렀던 총선과 대선에서 극동지역의 지지율이 다른 지역보다 낮았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나아가 크림 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과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러시아 자원과 서방의 기술을 결합하는 경제 협력이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상황에서 활로를 뚫기 위한 방책으로 극동 시베리아 개발이라는 카드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한국, 중국, 일본의 에너지 자원 해외 의존도는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크며, 그래서 자원시장에는 아시아 프리미엄이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극동개발은 경제적 실익과 전략적 이익을 동시에 실현시켜줄 필요충분한 조건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극동개발과 관련하여 러시아 정부는 법인세 감면 등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12개 지구를 선도 개발구역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유항으로 지정하였다. 향후 선도개발구역과 자유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극동개발의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 여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극동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뿐더러, 러시아의 극동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중·일 3국과의 적극적인 협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2013년 승인된 극동 바이칼 지역 개발에만도 총 10조 7000억 루블(약 194조원)이 필요하다. 전체 투입예산 가운데 러시아 정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이고, 그 대부분이 물류 운송망 및 발전소 건설,주거환경 개선 등 인프라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인해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차질을 빚을 경우, 민간 자본의 90% 이상이 들어오게 될 제조업, 광물자원, 전력 부문에 대한 투자가 순차적으로 미루어지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극동과 아태지역 간 경제 교류와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육로로 직접 연결 가능한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도 통관, 통행에 대한 장벽이 있다. 중국 동북 3성에 건설된 고속도로는 러시아 국경을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불편한 도로로 바뀐다. 그마저도 제한된 시간만 국경이 개방되기 때문에 물동량도 많지 않은 형편이다. 해로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서 들어오는 제품들의 통관 절차 역시 느리게 진행되어,물류는 극동과 아태지역 간 경제 교류와 교역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투자환경 순위가 40위로 껑충 뛰어올랐을 만큼 러시아의 투자환경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효율적인 투자유치 시스템에 익숙한 한·중·일 기업들에게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의 극동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확인하고 경제성을 기대하며 진출을 희망하는 외국 기업들은 이내 항만·도로·철도 등 인프라 미비, 생산·판매·보관을 위한 토지 확보의 어려움, 러시아 정부의 잦은 계획 변경 등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의 거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현실적인 애로 및 민원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자연스럽게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극동개발부가 창설되었다. 하지만 극동의 핵심 자원인 에너지와 광물을 관장하는 에너지 부처, 극동의 지방정부를 관할하면서 지역개발 정책을 지휘하는 극동 전권 대표 및 부총리, 극동지역의 산업발전 관련 인프라 투자를 지휘하는 극동개발부 등으로 각각 나누어진 거버넌스는 극동 개발을 순탄치 않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예를 들어 공장이나 창고를 건설하기 적합한 토지를 국방부 혹은 연방정부 산하 다른 기관이 소유하고 있어서 부지 문제 해결에 많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 부담으로 진출을 포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제약과 현실적인 난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극동개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지난 2016년 9월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이 행한 연설에서도 확인 가능하다.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이 통합과정의 중심이자 협력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신규 생산에 필요한 운송, 에너지 및 기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투자자에게 직접 제공하고 지원 메커니즘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조연설을 마친 후 진행된 토론과정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한국, 중국, 싱가포르의 경험을 분석하여 비즈니스가 가능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혜택이 제공되어야 함을 인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프라 여건으로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상쇄할 수 있도록 법인세, 지방세, 사회보장세 혜택, 부가세의 빠른 환급, 행정수속 절차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을 약속하였다.


기조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이 강조한 에너지 ‘슈퍼링’(superings) 연결, 유라시아 물류 운송망 구축, 극동에 디지털 공간 마련, 루스키섬 첨단혁신단지 조성은 잠재성은 충분하나 현재로서 해결해야 할 장애요인도 많은 실정이다. 러시아 정부 내부의 거버넌스 해결도 중요하지만 역내 국가들의 투자와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극동개발 참여에 한·중·일 3국 간 경쟁을 조성하기보다는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정한 국가에 지나치게 경사되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극동에 있는 인프라를 특정 국가가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여러 국가들이 공유할 경우 경제성이 더욱 좋아진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3국의 금융기관들이 이미 국제금융시장에 깊이 통합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극동개발은 단지 가까운 이웃 국가와의 협력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유로·태평양국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러시아가 펼치고 있는 적극적인 행보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이후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러시아가 다시 유럽 중시 정책으로 회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극동개발을 동력으로 삼아 아태지역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가 신동방정책을 계속 추진할 이유는 많다. 첫째, 아시아 경제의 부상이다. 미국 금리인상과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아시아 경제가 유럽 경제를 추월하는 시점이 어느 정도 늦춰지기는 하였지만 아시아의 부상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가 극동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동인이 될 것이다.지난 2016년 5월 러시아 소치에서 러·아세안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도 극동개발 및 이를 통한 아시아와의 교류, 협력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둘째,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권 개발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북극 대륙에 대해 가장 넓은 점유권을 가진 국가이며 북극항로가 열리면 북극해를 내해로 활용하면서 가장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나라이다. 북극해의 해빙은 북극항로의 항행 시간 및 비용 절감 뿐 아니라 거대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가 거리의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확보하게 하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현실적인 제약도 많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유가하락이다. 극동의 자원수출은 극동개발에 필요한 자본 확충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유가하락 추세는 극동개발에 필요한 자본 확충의 시간을 늦추게 하고 투자의 경제성을 낮추는 원인이 되고 있다. 두번째로는 극동개발과 관련된 논의가 양자 중심, 예를 들어 한·러, 러·중, 러·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양자협력에서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경우 러시아는 상대방을 비판하고 다른 역내 국가와 더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일부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올해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서 이른바 ‘대(Greater)유라시아경제통합’을 제안하였고, 나아가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2017년까지 파키스탄과 인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합의하였다.유라시아 대륙의 동서회랑 뿐 아니라 남북회랑까지 연결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극동개발은 특정 국가와의 양자적 관계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과제일 수 없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극동개발을 위하여 얼마만큼 다양한 형태의 소(小) 다자 협력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만들어넬 수 있을 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참여하는 동방경제포럼을 통해 한·일·러 정상회담을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방안 등 다자자가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 방안들이 계속적으로 제시될 경우 극동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으며 역내 통합과 발전은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남한·북한·러시아 3각 협력의 대표 사업이었던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북핵 위기로 인해 한국의 참여가 보류되었지만 향후 상황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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